'까이는' 기자, 부당한 명예훼손에 맞서다
'까이는' 기자, 부당한 명예훼손에 맞서다
  • 유영
  • 승인 2016.04.27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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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유석 기자, "금권, 교권과 맞서는 기자와 언론 교인들이 길러줘야"

'국경 없는 기자회'는 한국 언론 자유도 지수를 70위로 발표했다. 사상 최저 기록을 경신했다. 세네갈, 말라위 같은 아프리카 국가보다도 낮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언론과 정부의 유착 관계와 함께 명예훼손을 대표적 원인으로 지목했다. 최대 7년형까지 처벌할 수 있어 기자와 언론사가 자기 검열을 해야 하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기독교 언론 상황도 다르지 않다. 교회·교단과 교계 언론의 유착은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 기관지와 홍보지로 전락했다는 지적으로 가득하다.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교계 언론은 명예훼손 등의 소송과 싸워야 한다. 소송이 어렵다기보다는 경찰·검찰 조사로 이어지는 과정에 힘을 쏟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언론 자유 지수 70위를 기록했다. 대표적 언론 압박 수단은 형사 처벌할 수 있는 명예훼손이다. 일반 언론 상황과 기독교 언론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더 심각한 수준인지도 모른다.

교계에서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언론들이 소송당한 소식을 자주 접한다. 그중 눈을 씻고 다시 살피는 이름의 목사가 있다. '전광훈' 목사. 종북몰이와 색깔 논쟁으로 많은 이의 명예를 훼손해온 전 목사가 소송을 당했다는 소식이 아니기에 다시 확인한다. 전 목사가 소송한 사람들은 주로 누리꾼들과 언론사, 기자다. 이유는 '빤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언론사들에 보내는 내용증명에는 조사위원회 조사를 거쳐 '빤스'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사실 조사위원회 위원들은 대부분 기자였다. 전 목사와 전 목사 집회에 우호적인 언론사 기자들이 조사를 벌였다. 그리고 조사에서 그런 말은 한 적이 없었다는 결과가 아닌 원래 의미를 왜곡해 언론이 보도했다는 결과를 밝혔다. 

전광훈 목사도 '빤스' 발언을 보도한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서 보도가 왜곡되었다고 주장했다. 말 그대로 "'빤스'를 내리라고 해서 내리면 내 성도"라고 여성들에게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불륜 문제가 있는 목사를 두고 이야기하다가 나온 이야기를 기자가 악의적으로 보도했다고 밝혔다. 

지금 전광훈 목사가 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사안은 '빤스'라는 호칭을 사용한 누리꾼들과 기자들이다. 여러 블로거가 약식 재판을 통해 벌금을 냈고, 언론들은 기사를 내리거나 관련 표현을 삭제하는 상황이다. 표현의 자유와 명예 훼손을 두고 논의 한 번 제대로 펼치지 않았다. 소송이 두렵고, 어려운 사람들은 그냥 일방적으로 당해왔다.

그런데 전 목사의 무차별 소송에 맞서 정식 재판을 신청한 기자가 있다. 벌금보다 비싼 소송비용에 개인 재정을 쏟아부었다. 전병욱 목사의 성범죄를 밝힌 <숨바꼭질>의 공동 저자이기도 한 지유석 기자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정식 재판을 선택한 기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지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벌금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야 할 재판에 뛰어든 이유가 궁금하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법원 결정은 200만 원 벌금이었는데, 자칫 ‘벌금 내기 싫어 일 벌인다’는 오해를 사기 쉬웠다. 재판 절차가 번거로워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기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나 법원 결정을 인정하면 이것이 선례로 남아 네티즌들이 목회자의 언행을 자유로이 비판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전 목사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문제의 '빤스' 발언을 보도한 <뉴스앤조이>와 보도 직후 인터뷰에서는 의미가 왜곡되었다고 했는데, 말을 바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언론 보도를 통해 전 목사의 해명을 접했다. 처음에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했다가 나중에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을 바꿨다. 이 점은 쉽사리 수긍할 수 없다. 

이번에 전 목사가 문제 삼은 글은 포털 다음에 개설된 카페 게시글이다. 그렇다면 먼저 쪽지나 메일을 통해 ‘빤스’ 발언의 취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게시물을 수정해 달라거나 삭제해 달라고 요청하면 됐다. 혹시 내가 그 요구를 쉽사리 수용할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이 들면 포털의 권리침해신고센터에 신고해 즉각 게시물을 차단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전 목사 측은 아무런 예고 없이 곧장 고소·고발에 나섰다. 이 점은 의도를 의심케 한다. 적어도 전 전 목사가 자신을 비판하는 누리꾼의 입을 막으려 한다고 본다. 

한국 교계 언론에서는 전 목사의 심각한 발언들을 지적하지 않는 분위기다. 언론인으로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보는가.

교계 언론에 종사하다 보니 이쪽(?) 분들의 언론관이 많이 왜곡됐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유력 교회나 교단 총회는 언론을 소식지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부정적인(?) 이야기는 최대한 배제하고, 교회나 목회자들의 미담과 좋은 사례를 소개하는 것이 기독교 신문이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긴다. 

매체들 역시 왜곡돼 있기는 마찬가지라고 본다. 기독교계 안에서 그야말로 선지자적 역할을 감당하는 언론 매체는 얼마 없다고 생각한다. 대다수 매체가 유력 교단이나 교회 입맛에 맞는 기사를 생산하고, 그 대가를 챙기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보통이다. 말하자면 매체와 교회·교단이 공생하는 사이다. 이런 환경에서 전광훈 목사의 문제 발언은 교계 언론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세월호 1주기 즈음해서 교계 매체에서 활동하는 기자란 사람이 대뜸 지면에서 “세월호 참사에 왜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고 따진 걸 목격했다. 성소수자 혐오를 부추기는 일도 버젓이 자행된다. 사실 현재 일반 언론의 생태계도 심각하지만, 교계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계속된 문제 발언으로 한국교회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전광훈 목사가 한국 사회를 걱정하며 정치권에도 영향력을 계속해서 행사하려고 한다. 이러한 전 목사를 한국교회가 계속해서 돕고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교회가 돕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 목사는 이번 총선에서 기독자유당 후원회장을 맡아 활동했는데, 이 당 득표율은 고작 2.63%에 불과했다. 한국교회 신도는 약 1,000만으로 추산하는 게 보통인데, ‘기독’을 표방한 정당의 득표율이 이 정도라면 처참하게 외면당했다고 봐야 한다. 아마 상임고문으로 이름을 올린 조용기, 길자연 목사 등 대형교회 목회자들이나 전 목사를 돕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 목사는 유력 교회의 후원을 등에 업고 “1천만 성도를 잘만 공략(?)하면 원내진출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총선 후 언론에 “대한민국을 바꿀 1천만 회원을 즉시 조직하겠다”고 호기를 부리는 걸 보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 한국교회 성도들도 깨어서 정치인이 교회를 다닌다고, 장로라고, 목사님들이 정당을 한다고 여기에 무조건 몰표를 주지는 않는다. 이번 총선이 이를 여실히 보여줬다. 얄팍하게 1천만 성도 운운하며 교세에 의지해 원내진출할 생각은 말아주었으면 한다. 

언론에게 명예훼손은 늘 큰 부담이다. 명예훼손과 표현의 자유가 대립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하는 비판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명예훼손과 표현의 자유를 가르는 선은 무척 얇아 보인다. 매 순간 선이 명확하게 그어지지는 않는다. 단, 표현의 자유가 혐오를 부추긴다든지,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비하하거나 흠집을 내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런 경우라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그 어떤 표현이라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사실 민주주의는 하해와 같기에 그 어떤 말도 공론의 장에서 다 유통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교회는 무척 경직된 게 사실이다. 혹시라도 교회나 담임목사에게 누가 될 표현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무척 강하다. 이런 분위기는 교회의 자정을 막는 걸림돌이다. 

전병욱 전 삼일교회 목사의 성추행 사건이 단적인 예라고 여긴다. 사건 당시 삼일교회를 다녔는데, 사태 초기에 그 누구도 이 문제를 쉽사리 꺼내기 어려워했다. 그런 분위기가 발 빠른 초동 대처에 걸림돌이 됐고, 결국 홍대새교회 개척이라는 불상사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공동체 안에서 모든 의견이나 표현이 자유로이 유통될 때 교회 내 부조리나 비리는 설 자리를 잃어버릴 것이다. 

스스로 표현의 자유에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려 한다. 내가 쓴 기사로 인해 공격을 많이 당한다. SNS상 실명까지 거론되며, 흔히 쓰는 말로 ‘까인다.’ 때론 화도 나고 하지만, 스스로 “이분들에게도 표현의 자유는 있다”, “정말 악의적인 비방이나 비하가 아니라면 겸허히 귀 기울이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나도 비판을 많이 하니, 밖으로부터 오는 비판에 겸허해져야 한다. 

사실 적시를 해도 명예훼손이 되는 한국 언론 환경과 기레기라고 불리는 기자의 조합에 한국 언론 환경은 악화일로에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기독교인들에게 교계 언론을 위해 함께 움직여 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 

지금 몸담고 있는 매체를 비롯해 수많은 매체가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대형 교회가 주는 광고에 기대려는 모습을 자주 본다. 사실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려면 자본에 자유로워야 하는데, 교계에서는 쉽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사회 언론이 훨씬 낫다. <뉴스타파>가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뉴스타파>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 기반을 구축했고, 자본 권력이나 정치권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반면 교계는 교단 혹은 대형 교회의 광고에 기대려는 구태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1000만 그리스도인들이 십일조 낸다는 마음으로 매월 1만 원 씩 헌금해 독립 언론을 만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니면 개혁 성향이 뚜렷한 인터넷 매체에 후원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와중에라도 언론인은 언론인의 사명, 아니 그리스도인 본연의 사명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가난하고 아프고 억울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줘야 한다. 교계 언론에 몸담고 있는 모든 언론인이 너나 할 것 없이 본연의 사명만 잘 지키면 사회에서도 교회 언론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본연의 역할을 하는지 늘 묻고 또 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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