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더스의 패배로 다시 한 번 부각된 “사회주의”의 미국 내 위상
샌더스의 패배로 다시 한 번 부각된 “사회주의”의 미국 내 위상
  • 뉴스페퍼민트
  • 승인 2016.05.19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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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래전부터 버니 샌더스가 주장하는 이념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는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 혹은 복지국가 자유주의(welfare state liberalism) 정도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샌더스는 줄곧 민주적 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앞에 붙은 민주적이라는 단어는 제쳐두고 사회주의라는 말에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샌더스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겠지만, 사람들은 기간산업 국유화 같은 공산주의 사상을 떠올렸습니다.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특히 미국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샌더스 본인이 원했던 원치 않았건, 민주당 경선 과정 내내 샌더스는 (민주당 주류가 지지하는 후보 힐러리 클린턴에 도전장을 내민) 사회주의자로 그려졌습니다. 사회주의자라는 이미지 덕을 본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샌더스는 그저 그런 기존 정치인이 아니라,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정치인의 모습을 보이며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미국 정치 지형에서 진보 혹은 자유주의자로 분류되는 민주당과 힐러리 클린턴에게 “새로운 걸 기대할 수 없는 뻔한 리버럴”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싶던 사회주의자와 좌파 유권자들은 샌더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더 큰 그림에서 봤을 때 미국에서 “사회주의”는 여전히 아주 인기 없는 개념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갤럽 여론조사: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래 단어를 들었을 때 긍정/부정 중에 어떤 종류의 감정이 떠오르시나요? (사회주의(Socialism)는 가장 인기가 없습니다)

중도좌파 성향의 민주당 정치인들은 “연방 정부(the federal government)”가 “중소기업(small business)”, “창업가(entrepreneurs)”, “자유기업 체제(free enterprise)” 같은 개념보다 훨씬 사람들이 기피하는 단어라는 사실에 적잖이 실망할지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연방 정부는 “대기업(big business)”보다도 인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기업이든 자본주의든 연방 정부든 그 어떤 단어보다도 훨씬 인기가 없는 개념이 있으니, 그게 바로 “사회주의(socialism)”입니다.

이 여론조사를 보면 왜 민주당 지도부와 슈퍼대의원들이 본선 일대일 가상 대결에서 클린턴보다 더 압도적으로 트럼프를 이길 것으로 예측되는 샌더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샌더스가 결국은 민주당 사람이 아닌 외부인이라서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민주당이 가장 걱정할 만한 상황은 대선 구도가 자본주의자 대 사회주의자의 대결로 압축되는 겁니다. 민주당 후보라는 사실보다 사회주의자라는 사실이 부각될 경우 민주당으로서는 대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사실 샌더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샌더스가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제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런 게 아니”라며 복지 제도를 적극적으로 확대한 덴마크식 복지국가 모델에 가깝다는 설명 혹은 해명을 했던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 겁니다. 북유럽 모델은 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하는 사기업이 핵심 주체라는 사실만 봐도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멉니다. 덴마크 총리도 기업의 주주입니다. 라스무센 총리가 샌더스 후보의 발언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덴마크는 시장경제 체제”라고 못을 박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샌더스는 경선 내내 주목할 만한, 의미있는 돌풍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결국 샌더스가 넘지 못한 마지막 벽은 어쩌면 여전히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대단히 기피하는 미국 사회 전반의 관념인지도 모릅니다. (복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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