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메시야
안철수와 메시야
  • 지성수
  • 승인 2016.05.29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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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마다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캐릭터가 있는 법이어서 예를 들어 조선 시대라면 ‘군자’가 만인의 표상이었다면 요즘 시대에는 강남 아줌마들이 자기 자식들이 그렇게 되어주었으면 하는 캐릭터로서 안철수라는 인물이 있다.

안철수가 상한가를 치던 무렵, 대중은 안철수에게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명박식 성공신화가 아니라, 상식과 원칙을 갖추고 덕성과 인간미까지를 겸비한 고상한 성공신화를 찾았다. 그런 까닭에 안철수는 마치 메시아처럼 순간적으로 한국 땅에 강림했다.

그러나 나는 그 때 신약 성서의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는 구절이 생각났다.

그는 박원순에게 서울 시장 후보를 양보하는 5병 2어 비스름한 기적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나 안철수가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진입한 후 4000만 국민에게 ‘아리송! 안철수’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래서 그는 간철수라는 별호를 득템했다.

예수가 속히 돌아오지 않자 재림에 대한 믿음이 점점 깊어지듯이 안철수에 대한 큰 기대 속에서 안철수는 미국으로 갔다가 다시 조선 땅에 재림 했다.

안철수의 재림은 이명박식 불도저가 아니라 안철수식 첨단 테크놀로지에 입각한 네트워크 안에서 이루어지는 정당정치에 대한 기대가 젊은 세대를 다시 정치로 소환하게 만들었고, 광장으로 모여들게 했다.

대중들은 ‘안철수가 정치를 하면 잘 할 것이다’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안철수가 제공하는 판타지는 그가 정치를 하면 기존 정치에서 실험되지 않았던, 기존정치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발생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이었다.

구약 성서 에스겔서 37장에 보면 해골 골짜기에서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 예언자가 포로로 잡혀와 있는 유대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자기가 본 환상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대중을 선동하는 메시야주의의 표현이다. 고통에 휩싸여 있는 대중이 그 고통에서 헤어 나올 대안이 보이지 않는 대안 부재의 상황일수록 메시아주의는 확산되는 법이다. 메시야처럼 등장했던 안철수가 과연 마른 뼈들을 다시 살아나게 했던가?

그러나 그가 한 것은 ‘새정치’라는 요령을 흔들어 계속 국민을 혼미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이번 선거에서 혼미한 결과가 나타났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와 납득이 되지 않는 결과가.

실수에는 의도한 실수와 의도하지 않은 실수가 있다.예를 들면 운전을 하다가 회전이 안 되는 곳에서 회전을 해서다가 딱지를 떼는 수도 있지만 무심코 신호나 규정 속도를 어긴다든지 하는 일이 있는 것처럼.나는 아무래도 이번 선거는 호남 사람들이 한 눈 팔다가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한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다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이다. 혹시 재생용지처럼 쓰레기 재활용 차원에서 투표를 했다면 모를까? 그러나 투표를 하는데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은 하지 않는다.보통 투표는 유치한 마음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놈 싫어 저 놈 찍고, 저 놈 싫어 이 놈 찍는' 식으로.그런데 이번에는 심각하지 않은 유치한 사태가 집단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민심일가? 아니면 오도된 결과일까? 즉 야바위꾼에게 집단적으로 속은 것이 아닐가?

산에서 너무 일찍 하산한 도사의 결론이다. 한국은 노무현 때처럼 국민들이 미쳐서 감동과 눈물을 흘릴 일이 있어야만 겨우 이길 수가 있는 구조일 뿐 정상적으로는 50%가 넘는 보수 세력을 이길 수가 없는 구조이다.

그러므로 안철수 같은 종류의 사람으로서는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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