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세상을 치유하는 `지극한 배려`
아픈 세상을 치유하는 `지극한 배려`
  • 신순규
  • 승인 2016.06.1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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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규 (<뉴스 M >자료 사진)

유학 초기 34년 전 나는 한국말이 그리워서, 그리고 한국 소식이 알고 싶어서 단파라디오를 구입했다. 그것으로 한국 방송을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전파가 너무 약해서 한국 뉴스를 듣지 못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인터넷을 통해 한국에 있는 이들처럼 한국 뉴스와 방송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아이폰에서 흘러나오는 모 방송국의 뉴스쇼를 매일 듣고, 독서 프로그램과 라디오 드라마 등을 청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모국에서 전해지는 소식 중 안타깝고 슬픈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나라 곳곳에서는 기업의 금전욕과 정부기관의 무관심 등이 초래한 안전사고로 희생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랑과 보호로 감싸야 하는 아이들을 상상하기 어려운 잔인함으로 해치는 부모들의 이야기도 너무 자주 듣게 되었다. 이유도 없이 낯선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세상이 항상 이렇게 잔인했던가?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더 사회적으로 병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살기 너무 힘들어서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란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가야 할 젊은이들에게는 삶에 소중한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로 '헬조선'이란 이름이 붙은 나라가 우리나라란다.

이런 뉴스를 매일 접하다 보니 과연 무엇이 나로 하여금 아직도 삶의 희망을 붙잡게 하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나 자신이나 나의 가족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70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이 세상에 대해서 아직은 희망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 이유는 수도 없이 내가 경험해온 사람들의 따스함, 친절함, 하나만 해도 될 것을 둘이나 셋을 하는 사람들의 성실함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나를 15세 때부터 키워주신 내 미국 부모님에 대한 얘기를 할까 한다. 그들은 1982년 한국에 있는 선교사 친구에게서 부탁을 받는다. 한국에서 15세 난 시각장애인 아이가 유학을 가는데 입학하기 전에 6주 정도 데리고 있으면서 영어와 미국 문화를 가르쳐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때 당시 그들의 현실은 이런 부탁을 받아줄 상황이 아니었다.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쌍둥이 딸들을 살려보겠다고 하루에 13잔의 유기농 채소주스를 만들어 먹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친구의 부탁을 들어줬다.

1982년 7월 중순 내가 도착한 곳은 북서 뉴저지에 자리 잡고 있는 한 시골 마을이었다. 내가 6주 동안 지낼 곳은 100년 전에 지었다는 큰 농가였다. 나중에 나의 미국 부모가 될 분들은 나를 맞을 준비를 완벽하게 해놓고 있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놀라운 것은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여러 가구와 집 군데군데 있는 딱딱한 모서리들을 두꺼운 카펫으로 감싸놓은 일이었다. 시각장애인과 같이 살기는커녕 만나보지도 못한 그들이 이런 준비를 할 생각을 했다는 것이 감동스러웠다.

1982년 7월 중순 내가 도착한 곳은 북서 뉴저지에 자리 잡고 있는 한 시골 마을이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놀라운 것은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여러 가구와 집 군데군데 있는 딱딱한 모서리들을 두꺼운 카펫으로 감싸놓은 일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그들은 학교, 도서관 등에 연락해서 시각장애 학생이 필요한 것들에 대해 문의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도착했을 때는 내가 쓸 책상 한가운데에 한국에서는 구할 수도 없었던 점자 타자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제작한 오디오북 플레이어와 많은 오디오북도 마련돼 있었다.

친구가 부탁한 것은 나를 데리고 있으면서 영어 좀 가르쳐주고, 미국 문화 적응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좀 시켜달라는 것이었다. 그 부탁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나의 맘과 대드의 준비와 노력으로 나의 언어와 문화 적응은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세상에는 이런 분들이 많다고 믿는다. 우리가 접하는 뉴스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몰상식한 행동과 상상할 수 없는 이들의 잔인함을 더 자주 전하지만, 작게나 크게나 다른 이들을 위해 한 걸음 두 걸음 열 걸음을 더 걷는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는 찾아보면 우리 주위에 많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가 더 자주 접할 수 있는 세상, 그래서 이런 아름다운 배려의 삶이 당연한 것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게 우리가 같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작은 것이라도 하루에 한 번씩 기대치 넘는 배려를 하는 것으로 이 일을 시작해보자.

신순규 / 시각장애 월가 애널리스트

이 글은 <매일경제>에도 기고된 글입니다. (원문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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