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강한 여운… '동화의 나라' 수도 모스크바를 가다
짧고 강한 여운… '동화의 나라' 수도 모스크바를 가다
  • 김명곤
  • 승인 2016.06.1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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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의 민가에서 보낸 첫날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일본의 유명한 노벨문학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문장입니다. 

1월 3일 오후 5시 러시아 모스크바 셰례메티예보(SVO)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밖은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혀 있었습니다. 어렷을 적 ‘토끼하고 발 맞추는 동네’에서 겨울을 지내며 동화와 소설로만 익혔던 ‘로서아’가 버튼 하나로 화면이 바뀌듯 눈앞에 확 펼쳐졌습니다. 

쉽게 문학 소년의 꿈을 꾸게 했던 톨스토이, 토스토예프스키, 푸쉬킨, 안톤 체호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그리고 피가 펄펄 끓던 시절 이상향을 꿈꾸게 했던 막심 고리키와 레닌의 고향에 온 것입니다. 첫날부터 살푸른 어린 아이의 눈으로 ‘네플류도프’와 ‘닐로바’와 ‘라라’의 모스크바를 보기로 했습니다. 

방금까지 20 수년 동안 끼고 살았던 녹색의 고장이 백색 풍경으로 뒤바뀌는 데는 무려 22시간이나 걸렸습니다. 2일 오전 11시 플로리다 올랜도의 집을 떠나 애틀랜타를 거쳐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그리고 모스크바까지 두 개의 긴 국경을 통과하는 일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두번 갈아타는 시간을 포함하여 실제 전체 비행시간 15시간 30분을 훨씬 넘겨 모스크바에 도착한 것은 우습게도 비행기 고장 때문이었습니다. 당초 오후 2시 20분에 올랜도를 출발하여 미국 북쪽 미네아폴리스에서 오후 7시 45분에 갈아타기로 되어 있던 델타는 2시간 정도를 수리하고도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애를 태웠습니다. 결국 델타 서비스 데스크는 애틀랜타행 비행기표로 급히 바꿔 주었습니다. ‘마을버스’도 아니고 유명 항공사의 비행기를 2시간도 넘게 고치고 있는 것을 보자니 속도 타고 불안하기도 했는데 잘됐다 싶었습니다. 

올랜도 국제공항에서 미네소타 미네아폴리스 공항으로 향하려던 비행기가 고장나 고치고 았는 모습. 2시간 동안 수리에도 불구하고 마치지 못하지 다른 비행기편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사진 제공 김명곤)

애틀랜타에서 짧은 환승시간 때문에 허겁지겁 암스테르담 비행기에 오르고나서야 안도의 한숨이 나온 것도 잠깐, 암스테르담에서 모스크바행 비행기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습니다. 환승시간이 50분 밖에 되지 않았고, 연착이 우려되는데다 공항에서 보안검색에 걸리는 시간도 만만치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지요. 

처음부터 삐걱거려 불안 속에 출발한 여행이었습니다. 제1회 재외동포언론인협회(회장 김훈) 유럽대회의 초청에 응하여 티켓팅을 하고도 두 차례나 취소한 끝에 결행한 터입니다. 더구나 출발 사흘을 남겨두고 혹시나 하여 휴스턴 총영사관에 전화를 했더니 “모스크바 여행은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티켓팅을 하기 전에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한 사람(영주권자)이 무비자로 갈 수 있는 나라가 무려 170개국이 넘고, 러시아도 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티켓팅을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비자를 받아야 한다니. 

고개를 갸우뚱 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워싱턴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처조카가 떠올라 전화를 했더니 웃으며 “이모부님, 걱정하지 말고 다녀 오세요”라고 했습니다. 다시 휴스턴 영사관에 전화를 걸어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있는 영주권자가 모스크바 여행에 비자를 받아야 하는지 다시 확인해 달라’고 했더니, 5분여 정도를 기다린 끝에 “2014년에 러시아와 무비지협정을 맺은 것을 잘 몰랐다”며 “죄송하다”는 답변을 하더군요. 그러면 그렇지! 신년초부터 꾸지람을 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 “에이, 놀랬잖아요” 그러며 웃고 넘어갔지만 씁쓸했습니다. 

암스테르담 국제공항에서 대기중인 모스크바행 KLM 비행기

자꾸만 ‘비자를 보여 달라’는 사람들 

사실 난관은 이것만이 아니었습습니다. 인터넷으로 사전 체크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올랜도 공항 델타 탑승 데스크에서 직원이 다시 “왜 비자를 받지 않았느냐”고 물었고, 애틀랜타에서 암스테르담행으로 환승하는데서도 같은 질문을 받아야 했습니다. 모두가 한참이나 확인하더니 공식 보딩 패스를 내 주더군요. 

암스테르담에서 모스크바행 비행기에 탑승할 때는 더 황당했습니다. 탑승을 하기 위해 줄을 주욱 서 있는데 무뚝뚝한 표정의 러시아 남자 직원이 제 여권을 이리저리 한참 살펴보더니 “왜 (비자) 스탬프가 업냐”고 서툰 영어로 추궁하듯 물었습니다. 애써 짜증을 감추고 웃는 얼굴로 “I don’t need a visa!”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찌푸린 표정으로 아래 위를 훑어 보던 그가 갑자기 호주머니에서 뒤적뒤적 길다란 종이 쪽지를 꺼냈습니다. 무비자국 명단을 주욱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의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여권을 건네주고는 어서 가라는 듯이 눈짓을 했습니다. 

뒷줄에 서 있던 탑승객들이 관심있게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는데요. “아이고 참! ‘Have a nice trip!’ 한마디 하면 어디 덧나냐?” 그러며 시민정신으로 한마디 하고 싶었습니다. 그저 ‘무사히 로서아 땅에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꾸욱 참았고, 뭐 저런 정도 갑질하는 맛을 인정해 주는 것도 좋겠다 싶어 아무말 않고 유유히 걸어들어 갔습니다. 

사실 모스크바 공항에 내려서 마지막 관문인 ‘입국심사’가 은근히 더 걱정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4시간여의 비행끝에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해 입국 심사대 앞에 서니 조금 긴장이 되었습니다. 다른 줄은 3~4분만에 한사람씩 심사를 마치고 도장을 찍어주는 소리가 들리며 줄이 푹푹 줄어들었습니다. 심사관은 여권 사진을 들고 제 얼굴을 대조해 보고 또 보고, 컴퓨터에 뭔가를 한참이나 입력했는데요, 한 10분은 걸린 것 같습니다. 드디어 여권에 ‘째까닥 쾅!’ 소리를 내며 도장을 찍어 주었습니다. 

모스크바로 가는 도중 수만피트 상공에서 찍은 유럽 대륙 모습.
착륙 20분 전 상공에서 본 모스크바의 야경. 

소풍가는 어린애처럼 전날부터 한숨도 자지 못해 구름위를 걷는 기분이었으나 그 ‘째까닥 쾅!’소리에 온갖 피로가 확 풀렸습니다. 이제 마중나오기로 되어 있는 분만 만나서 숙소를 찾아가면 됩니다. 잠시 아내에게 전화를 시도했으나 불통이었습니다. ‘와이파이’가 켜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한 10분여쯤 카톡도 시도해 보고 이런 저런 궁리를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려서 받아보니 한국의 형님이었습니다. ‘아 이제는 되는가보다’하고 전화를 시도했는데요, 여전히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 수는 없더군요. 

여행에 앞서 구글 검색에서 ‘심’(Sim)카드를 구입해 사용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내기는 했으나, 도대체 공항 어디에도 영어 한마디가 적혀 있지 않아 어디에서 어떻게 심카드를 구입해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참 다행히도 와이파이를 켜면 텍스트 메시지가 작동하여 우선 집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짐을 앞에 세워두고 1시간 반 동안 기다리는 사이 여러명의 택시 운전사들이 다가와 좋은 값에 태워다 주겠다며 끈질기게 졸라댔습니다. 

거절하는 일이 귀찮아 공항 밖으로 짐을 끌고 나오니 그야말로 ‘생살을 세멘트 페퍼로 문지르는 듯한’ 추위가 엄습해 왔습니다. 하반신에 내복을 입고 짧은팔 긴팔 셔츠를 겹겹이 껴입고 올랜도 바닥을 뒤져서 겨우 마련한 겨울용 파커를 뒤집어 쓰듯 입었으나 모스크바 추위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군대시절 한겨울에 3박 4일간 최전방 보초도 서보고 미국에 와서 미시간 추위도 맛 보았으나, 모스크바 추위는 이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겨울이 없는 플로리다에서 어언 25년 이상을 산 터여서 더 추위를 느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마중나온 분의 차 속에서도 얼굴을 빼꼼이 내놓은 채 눈을 껌벅이며 차창밖을 바라다 보았습니다. 서울 외곽의 어느 도시나 애틀랜타의 도심지같은 풍경을 지나쳤는데요, 도대체 도로 표지판이나 상점 간판에 영어 한마디가 없어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모스크바 공항 대합실에 있으면서 ‘아는 사람 없이 이곳에 왔다가는 국제 미아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정말 ‘까막눈’의 답답함을 절실하게 체험해야 했습니다. 그나마 주요소 앞을 지나치며 가솔린 값이 숫자로 표기된 것이 반갑기 그지 없었습니다. 저 멀리에 노란색 맥도널드 로고 간판이 보이자 갑자기 시장끼가 느껴졌습니다. 

플로리다 올랜도의 겨울 날씨가 연일 기록을 깨며 섭씨 30도까지 올라갔다. 사진은 지난 연말 올랜도의 일주일 날씨를 예보한 방송.

러시아 민가 별장의 별난 풍경 

1시간여를 달리며 목적지 동네에 들어섰습니다. 남쪽 모스크바 외곽의 ‘모스랜겐 생태 크루이즈’라는 동네인데요, 이곳에 재언협 유럽지역 박종권 부회장의 별장이 있고, 그곳에서 하룻저녁을 자고 개회식을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동네길은 온통 눈으로 뒤덮혀 있었는데요, 움품움푹 패인 길을 10여분쯤 달리다 동네 고샅 편의점 앞에서 마중나와 있는 러시아인을 만났습니다. 엘리야스라는 이름의 이 청년은 <겨레일보> 직원이기도 한데요, 저에게 손짓 발짓으로 뭐라고 뭐라고 했는데,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먼길 오느라 수고했다, 밥 다 해놓고 기다리고 있다’ 뭐 그런 거 같았습니다. 

골목길을 이리저리 들어가서 3층 별장에 도착하니 참 희한한, 그러나 머리를 맑게하고 가슴을 착 가라앉게 하는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널따란 뒷마당에 파킹을 하고 막 집쪽으로 걸어 가려는데 늑대 만큼이나 커 보이는 옆집 개가 컹컹컹 짖어댔습니다. 사립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기도 전에 ‘쫑’이 컹컹컹 짓어대던 제 어렷을 적 고향집 풍경입니다. 아, 더 놀라운 광경이 있었습니다. 몇 발자국 집쪽으로 움직여 가자 갑자기 닭이 ‘꼬끼요!’하고 장단을 맞추는 겁니다. ‘짜르’의 위엄과 ‘볼셰비키 혁명’의 그림자가 서려있는 땅에서 개짓는 소리와 닭우는 소리를 듣다니! 예상치 못한, 허를 찌른 풍경입니다. 

모스크바 남부 민가 동네의 모습. 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모스크바 남부 민가 동네의 편의점 모습.

함박눈을 털며 정문 안쪽으로 돌아 들어가자 러시아인들이 즐겨 먹는다는 ‘샤슬록’ 익는 냄세가 코를 찔렀습니다. 러시안 양념을 한 돼지고기나 양고기를 긴 꼬치에 꿰어서 자작나무 숯불에 구운 것입니다. 물론 러시안들의 일상 ‘음료수’인 보드카가 곁들여졌는데요, 몇 순배 돌고 나자 얼어붙었던 몸이 사르르 녹으며 불콰해 졌습니다. 

첫날 밤은 프랑스에서 온 이석수 <프랑스 존> 발행인, KBS 몽골특파원 알렉스 강 기자(몽골인문대학 교수), <한인일보> 김상욱 발행인(카자흐스탄 국립대학 교수), 러시아 <겨레일보> 박종권 발행인, 그리고 저 이렇게 다섯이서 12시가 넘도록 재외동포 언론인 유럽대회 전야제를 꾸렸습니다. 

러시아에 정착한지 20년이 됐다는 <겨레일보> 박 대표는 참 흥미로운, 그리고 순박한 사람입니다. 부인이 러시아인인데요, 딸 소피아 박은 스포츠 댄서로 유럽대회 챔피언은 물론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해 어느덧 유럽 스포츠계에서 유명인사가 됐다고 합니다. 제가 박 대표를 ‘흥미롭다’고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언어철학을 전공하고 비트겐슈타인에 심취한 적이 있다는 박 대표는 신문일 외에도 ‘명이나물’ 농사에 꽂혀 있었습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잔치 음식이라는 '샤슬록'. 자작나무 숯으로 구워야 제맛이 난다고 한다.
완전히 익은 샤슬록 모습.

러시아에서 농사를 짓는 철학 전공 언론인, 뭔가 멋진 그림이 보입니다. 그는 어느덧 ‘명이나물’ 전문가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재배법은 물론, 자체 열이 많이 난다는 명이나물의 보관법까지 훤히 꿰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의 집에 하루 반나절을 머무르는 동안 미네랄과 각종 비타민이 많아 한방 자양강장제로 잘 알려져 있다는 명이나물 김치와 짱아찌, 그리고 명이나물 쌈을 끼니때마다 맛보았는데요, 쫄깃쫄깃 어떤 때는 물컹물컹 씹히는 맛이 그만이더군요. 

집에서 한 두 시간쯤 거리에 큰 땅을 마련하여 명이나물을 친환경 재배할 계획이라며 다용도 ‘명이나물 강의’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자니 마치 포레스트 검프 주인공이 ‘새우’에 꽂혀 말하던 장면이 떠올랐고, 얼마전에 읽었던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재언협 대회 둘째날에 강연을 할 문명비평가 철학자 수린 박사가 그와 절친이라는 게 이해가 갔습니다. 

첫날 모스크바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습니다. 샤슬록과 보드카, 그리고 명이나물 짱아치와 쌈을 오물거리며 이런 저런 얘기를 늦게까지 펼치느라 시간 가는줄 몰랐습니다. 창밖에서는 싸락눈이 내리고 자작나무 불꽃이 혀를 날름거리며 우리의 노변정담을 엿듣고 있었습니다. 

막 뜯어놓은 싱싱한 명이나물
러시아 남부 동네 모스랜갠 생태 크루이즈의 민가 모습. 20연을 현지에서 산 박종권 <겨레일보> 대표의 별장겸 신문사 사무실이다.

김명곤 기자 / <코리아위클리 플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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