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 보다 앞선 시기 대선 후보로 나섰던 여성들
힐러리 클린턴 보다 앞선 시기 대선 후보로 나섰던 여성들
  • 유영
  • 승인 2016.06.15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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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계를 장악한 두 거대 정당 중 하나인 민주당 대선후보가 된 힐러리 클린턴. 미국에서 여성 참정권이 인정되고 100년 만에 거대 정당의 첫 여성 대선 후보가 됐다. 하지만 힐러리보다 앞서 여성 참정권을 위해 싸워온 여성 대선 후보들이 있었다.

[뉴스 M = 유영 기자] 힐러리 클린턴이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로 확정됐다. 주요 정당의 첫 여성 대선 주자로 역사에 남았고, 어쩌면 첫 여성 대통령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힐러리 후보를 보는 세간의 시선이 어떠한지는 접어두더라도 여성 후보가 주요 정당 대선 후보가 된 것 자체는 큰 의미가 있다. 

미국 여성이 투표할 수 있게 된 건 1920년 8월 18일에 미국 수정헌법 19조가 채택된 이후부터다. 연방정부와 주 정부가 성별에 따라 미국 시민의 투표권을 거부하거나 침해해서는 안 되다고 규정했다. 투표권이 생기고 100여 년이 된 지금에서야 거대 정당의 대통령 후보로 여성이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알아둘 사실이 있다. ‘주요 정당’ 첫 여성 대통령 후보라는 말은 그야말로 대권에 가장 근접한 첫 여성 후보라는 말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오랜 양당 체제의 틈새에서 등장했던 제삼당 여성 대선 주자들이 있었다. 심지어 여성 참정권이 없던 1800년대 후반에도 여성들은 정당한 정치적 권리와 평등을 주장하며 정당을 꾸리고 대선 후보를 내세웠다. 

미국 참정권의 역사를 만들고, 권리와 평등을 주장하며 여성 대선 주자의 길을 닦아 왔던 인물들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빅토리아 우드훌

1. 빅토리아 우드훌 (Victoria Woodhull, 1872)

빅토리아 우드훌은 1872년 대선 후보로 나섰다. 우드훌을 대선 후보로 지명한 당은 ‘동등한 권리당(Equal Rights Party)’이라는 여성들의 정당이었다. 그는 당시 가장 진보적인 작가 중 한 명이자 활동가로 살았다.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영어로 번역한 첫 작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후드훌이 대선 후보로 나섰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여성 참정권이 없던 시기였고, 그가 주장하던 양성평등과 노동 개혁 등 사회 문제 지적은 당시 너무 급진적이었다. 더불어 출마할 당시 만 35세 미만이어서 참정권이 인정되어서 당선이 되어도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첫 여성 대통령 후보로 여겨지지만, 선거인단 투표와 일반 투표에서 표를 받을 수 없었다. 선거 후, 영국으로 건너갔고 1927년에 사망했다. 

벨바 록우드

2. 벨바 록우드(Belva Lockwood, 1884 1888년)

동등한 권리당은 1884년과 1888년 대선에도 여성 대통령 후보를 지명한다. 벨바 록우드, 미국 연방 대법원 변호사 자격을 얻은 첫 여성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변호사였다.  
록우드는 자신이 대선 주자로 나서는 일이 여성 참정권 획득과 정당 정치에 참여하는 길을 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기자들에게 “남자들이 나에게 ‘네가 뭘 할 수 있겠어’라고 말하더라. 하지만 우리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면 무엇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고 자주 말했다. 

그는 여성 참정권을 위해 활동했고, 평화 운동을 펼치며 대선에 참가했다. 1888년 대선을 마치고 다시 법조인으로 활동하다가 여성 참정권 쟁취를 보지 못하고, 1917년 워싱턴 DC에서 사망한다. 

샤를린 미첼

3. 샤를린 미첼 (Charlene Mitchell, 1968)

1968년, 미국 공산당은 첫 여성 흑인 대통령 후보 샤를린 미첼을 지명한다. 만약 그가 당선됐다면 오바마로 대표된 흑인 첫 대통령과 힐러리로 대표되는 첫 여성 대통령의 역사를 미첼이 쓸 수도 있었다. 미첼은 십대였던 1946년부터 미국 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했고, 대선에 나서자 미국 ‘하원 반미 활동 조사 위원회’(빨갱이 사냥으로 유명했던 위원회)에 증언할 것을 강요받기도 했다. 

미첼은 정말 힘들게 선거운동을 벌였다. 선거 운동을 돕는 이들도 거의 없었고, 동료 한두 명이 수행원으로 함께했다. 미첼의 캠패인은 그가 방문한 지역에 있는 공산당 소속 노동자들이 전부였다. 그가 연설할 수 있었던 곳은 대학가, 길모퉁이, 공원 정도였다. 평소처럼 많은 시간 가게를 보았고, 캠페인에 응대하는 전화를 받았다. 

엘렌 맥코멕

4. 엘렌 맥코멕 (Ellen McCormack, 1980)

로널드 레이건이 출마했던 1980년 대선에 참가한 여성 후보도 있었다. 생존 권리당에서 지명 받은 엘렌 맥코멕이다. 4년 전, 맥코멕은 민주당 경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1976년 경선에서 내세운 정체성은 ‘주부’였다. 18개 주에서 표를 얻었지만, 지미 카터에게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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