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두 번 쳐다보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두 번 쳐다보지 않는다”
  • 양재영
  • 승인 2016.06.18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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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LA 박사학위 받은 이지선 씨 인터뷰

2000년 귀가 중인 음주운전자로 인해 발생한 7중 충돌로 전신 중화상을 입은 후 <지선아 사랑해> 등의 책을 쓰며 ‘희망의 아이콘'이 되었던 이지선 씨가 지난 12일 UCLA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지선 씨는 보스턴대학교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재활상담과 사회복지학 석사를 받았으며, 이번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오는 9월에 미국을 방문중인 가족들과 함께 귀국할 예정이다.

자택이 있는 컬버시티의 한 카페에서 이지선씨를 만나 나눈 그동안의 근황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소개한다.  

이지선 씨 © <미주 뉴스앤조이>

- 졸업을 축하한다. 이런 축하 인사를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웃음) 많은 도움을 주시고, 좋게 봐주셔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공부를 할 때도 늘 한국을 염두에 두며 했다.  그동안 해온 것처럼 강연과 책 등을 통해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처음 한국을 떠나 유학을 오게 된 계기부터 듣고 싶다. 

한국에서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그것 때문에 유학을 온 것은 아니었다. 저는 사고 후 수술하면 다 낫는 줄 알았지만, 부모님들은 다른 화상 환자를 봤기 때문에 수술해도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래서, 외국에서 살면 편할 수 있겠다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게 계기가 됐다.

- 미국유학은 계획에 없었다는 말인가?

전혀 없었다. 다만, 치료 받을 때 제 홈페이지에 ‘공부를 하고 싶다'는 글을 남겼는데, 보스턴대학에서 공부하시는 분이 저에게 '재활상담'을 소개해줬다. 그때부터 그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후 우연히 아는 목사님의 돌잔치에 갔다가 하용조 목사님을 만났다. 하 목사님이 제가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온누리교회 장학위원회를 소개해줬고, 시애틀의 형제교회(권준 목사)도 소개해줘 어학연수를 올 수 있었다.

시애틀 밸뷰(Bellevue)에서 토플과 GRE를 공부했다. 형제교회 집사님 댁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밸뷰커뮤니티칼리지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미국생활에 적응했고, 재미있게 지냈다.

- 한국과 미국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차이점은 무엇인가?

가장 큰 것은 ‘미국인들은 두번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먼저 요청하기 전까지는 무관심하다 할 정도의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한국에선 저를 모르는 분들은 두번 세번 쳐다보고, 구경하고, 걱정해준다. 좋게 보자면 정이지만, 쓸데없는 호기심인데 그점이 가장 힘들었다. 저는 정말 잘살고 있는데….

처음에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너무 싫었다. 그렇다고 밖에 나가지 않고 살수도 없고. 그냥 스쳐지나갈 눈빛이 나에겐 조금 더 오래 머물고, 돌아갔던 눈빛이 다시오는 걸 보며 ‘이 사회에서 나는 다른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에 많이 힘들었다. 나중엔 속으로 ‘내가 연예인이라 쳐다보는 거야’라고 장난처럼 생각했다.

- 과한 배려가 오히려 상처를 줄 수도 있겠다.

전에 한 행사에 초대를 받아 페이퍼 커팅식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런데, 저에게 가위를 안주더라. 손이 불편하니까 가위를 못쓸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지나친 배려였다. 커팅식을 위해 나온 사람에게 가위를 안주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아주 뻘쭘하게 서있었다.

(한국에선) 너무 지나친 호기심과 배려가 답답한 적이 많았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겐 ‘장애'가 일상이다. 자연스럽게, 무례하지 않게 물어보는 게 필요한 것 같다. 너무 조심스럽고 타부시하는 게 답답한 적이 많았다.

- 미국인들이 특별히 한국보다 장애에 대해 선진적이다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나?

역사라고 본다. 1923년 이후 흑인과 여성차별 등의 운동이 장애운동으로 이어졌다. 물론 과거 차별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운동이 있었을 것이다. 과거엔 장애인들을 시설에 가두고 실험을 하기도 했다. 이후 장애인들도 독립적으로 살 수 있다는 ‘Independent Living’운동이 활성화 됐다.  

우리나라도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나누고, 배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 특별히 사회복지학을 선택한 계기가 있나?

처음엔 장애인 상담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보스턴에서 재활상담은 '직업 재활'에 촛점을 두고 있었다. 미국은 장애인들이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그래서 재활상담사가 필요했지만, 한국은 그런 시스템이 없었다. 그래서, 좀더 정책적인 부분에 관심을 갖게 됐고, 사회복지를 전공하게 됐다.  

- 9월에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들었다. 한국에서의 계획은 있는가?

지금은 다 열어놓은 상태이다. 박사과정을 할 때는 학교에 가서 강의를 하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그것만이 길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올 연말까지는 강연도 하고, 책 준비도 하면서 보낼 것이다. 하나님이 어떤 길을 열어주실까 기다려볼 생각이다.

- 이지선에게 ‘장애’란 무엇인가?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끼리 나눈 이야기가 있다. 장애를 ‘병명'으로 진단내리고 정의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구조 안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휠체어 탄 사람이 움직이는 데 불편함이 있는 것은 ‘턱’과 ‘계단'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건물에도 앰프와 엘리베이터가 있다면 보행의 장애는 없을 것이다. 과학이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보조할 수 있는 것들이 주어진다면 ‘장애'라는 말은 사라질 것이다. 장애는 부족한 것이 많은 사회적 환경 속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 일부에서 한국에 돌아가면 복지부장관이 되야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만약 장관이 된다면 어떤 것을 바꾸고 싶은가?

이상적이고 순진한 생각으로 들리 수 있겠지만, 희귀병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의료시설을 확충해 돈 때문에 치료받지 못하는 슬픈 현실을 바꾸고 싶다.

제가 9년정도 '푸르메재단'이라는 어린이 재활병원을 짓는 재단의 홍보대사를 하고 있다.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는 많은데,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병원에 별로 없다. 그러다보니 여러 곳을 옮겨다니며 치료받는 아이들이 많다.

미국 의료제도가 문제는 많지만, 돈이 없이 치료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혜택은 많다. 재벌들의 기부도 풍성하다. 한국에도 이러한 제도와 기부문화가 좀더 정착이 됐으면 좋겠다.

- 마지막으로, 유학을 꿈꾸는 장애인들에게 선배로서 한 마디 부탁한다.

저도 했다. 제가 공부를 오래 해서 그런지,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아주 천천히 평범하게 공부한 것 뿐이다. 영어공부도 여기와서 했다. 제 주변 분들은 제가 대단해서 한 게 아니란 것을 다 안다. 여건과 환경이 허락된다면 미리 포기하지 말고 도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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