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과 ‘먹사’는 일맥상통?!
'한남'과 ‘먹사’는 일맥상통?!
  • 유영
  • 승인 2016.06.21 07:11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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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적한 경험으로 무언가를 판단하면, 인식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특히 20여 년 이상 몇 곳에서 동일한 경험을 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우리 사회가 교회와 목사를 바라보는 인식은 바로 이러한 경험에서 시작한다. 우리 가정이 경험한 교회와 목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들을 비하해 부르는 '먹사'와 벌레와 한국남자를 합성해 부르는 '한남충'은 일맥상통한다. 오랜 경험에서 쌓인 판단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우리 가정의 경험과 한남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편집자 주-

[뉴스 M = 유영 기자] 서울이 부동산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던 시절, 나는 서너 살 정도 먹은 어린애였다. 우리 가족은 부동산 문제로 이사를 자주 했다. 부모님은 부동산으로 피해를 보기도 했고, 큰 이득을 얻기도 했다. 그 덕분에 한 집에서 2년 이상 살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무수한 이사 속에서도 교회는 3번 정도만 옮겼다. 나름 충성스럽게 교회를 다녔다. 물론 어려서 앞뒤 분간 못 했던 나는 이사 때문에 교회를 옮긴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 어머니와 이야기하면서 이사와 상관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꽤 충격이 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모두 교회에서 경험한 사건을 이유로 다니던 교회는 나와야 했다. 

그 때 그 시절의 교회

1979년, 어머니는 서울 송파구에 있는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다닌 첫 교회이기도 하다. 그 교회는 독립한 예배당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다. 다섯 살 정도였던 것 같다. 공사를 진행하던 지하 예배당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예배가 지겨웠던 동생과 지하에 몰래 들어가 놀았다. 

어머니는 교회를 사랑했다. 하나님을 신앙하게 된 교회, 첫 신앙 공동체를 무척 아꼈다. 여전히 교회에 나가지 않는 아버지는 당시에도 반대가 심했다.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서 빚이 많았지만 열심히 헌금했다. 교회에서 요청하는 여러 봉사에 나가는 일도 기쁘게 여겼다. 

그렇게 사모했던 교회를 떠난 이유는 ‘세습’이었다. 1980년대 군부 독재가 여전했던 시기여서 그랬는지 담임목사는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려고 했다. 당시 번듯한 예배당을 지어 올린 이유도 세습에 있었다. 세습 이야기가 나오자 교회는 심각한 분쟁을 경험했다. 어머니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고, 멀리 이사했어도 옮기지 않았던 교회를 나왔다. 우리 형제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친척처럼 따랐던 교회 어른들과 이별해야 했다. 

두 번째 교회는 당시 개발을 진행하던 강동구 끝자락에 있었다. 100여 명이 조금 넘게 모이는 교회였다. 우리 교회는 5층짜리 주공 아파트들이 막 들어서던 동네 언덕 언저리에 자리 잡았다. 주변 개발이 한창인 아파트 단지 입주를 마치면 교인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리라고 예상한 교인들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발전하는 동네 교회는 가만히 있어도 교인이 몰려든다는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었다. 

교회 분쟁은 이러한 기대감 때문에 일어났다. 이사를 온 지역 주민들은 한두 번 교회에 나오고는 다른 교회로 나갔다. 시무장로들은 담임목사의 설교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들은 억지 주장이라고 받아쳤다. 교회가 분란이 일려고 하자 담임목사는 사임했다. 장로들은 재산을 팔아 떠나는 목사의 개척 자금을 마련해 주었다. 목사를 지지하던 몇 교인이 따라나섰다. 나도 어머니와 함께 교회를 옮겨야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우리 사회는 자기 권익에만 목숨을 거는 많은 목회자를 오랫동안 경험했다. 대형 교회만의 문제라고 하기에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기득권 이미지가 강하고, 목회자들은 종교인이라기 보다는 사기꾼이라는 이미지를 쌓아왔다. 일부의 일이라고 하기에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교회에 남아 있는 사람 중 많은 교인이 이러한 문제에 공감할 것이다. 다만 말로 하지 못할 뿐이다. 사진은 사학법 개정에 반대해 거리로 나온 목사들 모습이다.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던 이들을 비판하던 목사들이 교회 이권이 걸린 사학법 문제에서는 십자가까지 만들어 길거리로 나왔다.

교회에서 목도한 첫 성폭행 사건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서 아파트를 떠나 주택가 반지하로 이사했다. 막 건설하고 있던 동네라 자제가 나뒹굴었고, 친구들과 나무와 못으로 총을 만들어서 놀았다. 교회 친구들도 많이 사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헌금으로 몰래 사탕과 과자 사 먹는 재미에 즐거웠다. 물론 어머니랑 친했던 슈퍼 사장님이 아침에 오고 또 왔냐고 말해 집에 가서 자주 맞았지만 말이다. 

하여튼 이때 다니던 교회에서는 어린 나도 친구들과 지내는 일이 즐거웠다. 반대로 어머니는 너무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면서 목회자 불신이 커졌다. 한 목사가 여성 교인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난 탓이다. 담임목사가 아닌 부흥 강사로 온 목사가 일으킨 범죄였다. 

요새는 부흥 강사가 오면 교회에서 부흥회 기간 입을 와이셔츠와 속옷 등을 전부 사준다. 당시에는 여전도회 집사와 권사가 부흥 강사 빨래를 해주었다. 숙소도 교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모텔이나 여인숙을 잡아주었다. 이 정도 정황만 이야기해도 감이 올 것이다. 숙소에서 쉬던 목사가 빨래와 청소를 하러 온 젋은 집사를 강간했다. 

무용을 전공한 키도 크고 날씬한 여성이었다고 어머니는 기억한다. 신혼이었고 돌이 막 지난 아기가 있었다. 피해 여성은 큰 충격에 휩싸였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성폭행 피해자가 강간범보다 더 지탄받던 시기였던 터라 두려움이 컸다. 

치졸하기 그지없었던 목사는 젊은 집사를 협박했다. 남편에게 강간당한 사실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자기 방으로 한 번 더 찾아오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부터 피해자인 집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아기와 가면 혹시라도 괜찮을까 싶어 어린아이를 안고 목사 숙소로 찾아갔다. 인면수심이었던 목사는 아기 앞에서 두 번째 강간을 저질렀다. 

결국, 이 사실을 교회에 다니지 않는 남편이 알았다. 처음에는 교회에 와서 담임목사 멱살을 잡고 난리를 쳤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남편은 부흥 강사가 시무하던 교회에 찾아갔다. 그곳에서도 그 사람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일요일 밤늦게까지 난리 치며, 목사를 죽이겠다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강간한 목사를 만날 수 없었다. 목사는 끝까지 나오지 않았고, 목사 아내가 나와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여성 뒤에 숨어버린 것이다. 죄는 목사가 저질렀는데, 용서는 사모가 구했다. 남성이 여성에게 저지른 잘못을 무고한 다른 여성이 사죄해야 했다. 피해자와 가족에게 정의는 없었다. 목사 아내 개인 외에는 목사도, 교회도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피해자 부부는 이혼했다. 성폭행이 피해 여성 탓이라는 생각이 지금보다 더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살 수 없었던 피해 여성은 교인들과 인사도 하지 않고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피해 여성과 남편 이야기는 확인할 수 없었다. 피해자가 다니던 교회는 시간이 흐르고 아무런 문제 없었던 것처럼 잘 돌아갔다. 흔히 말하는 정상을 회복했다. 

가해자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어머니도 알지 못한다. 인터넷이 있었던 시기도 아니었고, 성폭행을 신고하지도 못했던 시대였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 사건으로 어머니는 교회를 옮겼고, 앞선 사건들과 합쳐져 목사를 믿을 수 없는 부류의 사람으로 치부하게 됐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가 일반적으로 목회자 하면 떠오르는 모습을 어머니는 다니던 교회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직접 경험했다.

물론 모든 목사를 범죄자로 본다는 의미는 아니다. 신뢰하며 기도 부탁도 하고, 친밀하게 지내는 목사들도 있다. 하지만 목사가 교회에서 범죄를 저지를 유혹과 기회, 상황이 무척 많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의미다. 어머니는 지금도 교회에 나가고 있다. 작년에 권사 안수를 받았다. 신앙생활도 교회 생활도 하지만, 목회자를 경계하며 계속 지켜보는 시각도 유지하고 있다. 

한국 남성의 여성 차별 역사는 기독교보다 더 오랜 시간 사회가 축적한 경험이다. 그리고 지금 드러나는 통계는 몇 사건으로 나타난 문제가 아니라 이제서야 드러난 어두운 역사의 보고서와 같다. 우리가 눈감고 지나갔던 시절에도 여성 혐오 범죄는 사회에 가득했고, 이를 설명할 단어와 문장이 없었을 뿐이다. 여성들이 이제 들고 나서고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오랫동안 투쟁해 왔기에 이 정도라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한남'과 '먹사'

최근 일어나는 많은 여성 관련 범죄 때문에 말이 많다. 특히 남성들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는데 잠재적 범죄자, 가해자로 몰린다며 분노한다. 이 모습을 보며 우리 어머니와 지금 시대가 목회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떠올랐다. 목회자를 범죄자 보듯 하고 먹사라고 부르며 조롱하는 상황 말이다. 

많은 목회자가 일부의 일탈로 얻은 호칭이라며 억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별수 없다. 자성하지 못하고, 자정 능력을 잃은 집단이 되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지금은 우리 어머니처럼 당하고도 교회에 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받아들여야 한다. 경계하고 점검하는 시선이 있어야 견제할 수 있고, 그만큼 잘못된 선택을 할 기회가 줄어든다.  

남성들도 다르지 않다. 아마 이번 여러 일로 억울하다고 말하는 남성들 중에서도 목사들을 먹사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먹사라고 불리는 목사 집단도 한남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몇 목사 때문에 훌륭한 목사 대부분이 같이 욕먹어야 하는 상황이 억울하다고 말이다. 목사 집단을 먹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이 반박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할까. 콧방귀나 뀌지 않으면 다행이다. 

결국 잠재적 가해자로 목회자 집단을 보며 먹사라고 부르는 일과 ‘한남’이라는 호칭으로 남성을 부르는 일은 일맥상통한다. 목사와 한국 남성은 사회에 어떻게 반성할까 함께 고민하는 게 먼저다. 연좌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축적한 경험을 바꿔가려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게 자정 능력이고, 자성하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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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2016-06-25 08:34:12
혹자는 하나님이 모든 인간을 똑같이 사랑하는 것은 아니고 누구는 더 사랑하고 누구는 덜 사랑하기 때문에 더 사랑하는 자에게 마치 다윗에게 준 것처럼 반칙의 특권과 재물의 특권을 주었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예컨대 전병욱 김홍도 조용기같은 목사들에게 이들이 업적이 워낙 뛰어나 잘못은 그에 비하면 적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다윗같이. 하지만 틀렸다고 본다. 하나님의 사랑은 동일하다고 본다. 다윗의 경우에더 그때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되고 전쟁과 살인이 일상화된 시대였다. 물론 최근까지도 노예제도가 있었고 여자의 참정권은 20세기에야 허용되고 아직도 갖가지 차별이 횡행한다고 하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의 차별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것은 마치 박정희의 수많은 문제에도 경제발전 하나로 덮어주자는 것과 같다. 첫째 그가 아니라 누구라도 했을 것이며 당시 시대상황 대치상황이 준 것에 불과하며 둘째 그건 마치 최태원이 국가에 또는 누구에 일억원을 줄테니 일조원을 도박으로 날려도 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신도를 많이 모아도 그건 마케팅일 뿐 진짜 신도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비윤리적 행동은 도저히 본이 안된다. 사회가 더욱더 철면피 사회 즉 남에게 피해를 주고도 전혀 미안해하지도 않는 사회로 되는 것이다.

00 2016-06-25 07:43:25
물론 많은 경우 제로섬이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경우가 제로섬이다. 누가 더 가져가면 누군 덜 가져간다. 일프로가 99프로를 가지면 돈이나 권력이나 도덕적 권위나 그 무엇이든 나머지 99프로가 일프로를 갖는다. 더 달라고 빌면 누군가 뺏긴다. 물론 평균은 되게해달라고 하는건 무방하다. 그러나 59등이 되달라고 하면 다른 59등이 60등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이자제도 주식제도 환율제도 투기제도 부동산제도 불로소득제도비무상의료 비무상교육제도는 착취제도이기떄문에 폐지되어야하며 (지식전달이나 고쳐주는걸 미끼로 돈을 버는건 그것도 아주 많이 버는건 죄악행위이다) 헛된 욕망을 불어넣는 것도 폐지되어야한다. 그걸 미끼로 재벌목사가 탄생되는건 죄악이자 수전노이다. 금전 물질 재물 부 성공 추구는 반드시 성의 추구와 연결된다. 정주영도 청문회때 왜 그리 바람을 많이 피고 첩을 많이 두었냐고 물으니 하는말이 왜 돈을 버냐고 그러려고 돈버는거 아니냐고 대답하더란다. 심리학에서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먼저 목마름이고 그 다음이 배고픔 그리고 마지막이 성이라고 즉 기갈성이라고 한다. 기도의 목적은 대부분 천국이나 배고픔 아픔 그런것이다. 그런데 그런게 결국엔 성으로 연결된다. 지나치면 안된다. 평안함까지는 좋다고 본다. 약값이 절약되니까. 하지만 지나치면 전병욱이나 재벌목사들처럼 되지 않을까. 물론 대부분의 목사들은 재벌목사가 아니다. 그러나 여건이 주어지면 그럴 소지가 많다. 여건이 주어지지 않을 뿐이다. 물론 대부분은 어려운 자들과 함께하려한다. 하지만 한국내에서 지위가 너무 과대평가되어있다. 운전기사가 딸리는 등. 한 두건이 아니다. 물론 단 일프로라도 나쁜건 눈에 띄게 마련이므로. 아마 양산도 원인이리라.

00 2016-06-25 07:20:43
죄를 강조하는 이유는 워낙 이기주의를 추구하다보니 마음이 걸려서다. 그걸 해결하는게 용서해주신다는거다. 마음이 편해진다. 왜? 다 죄인이니까. 이타주의는 이기주의를 가리기위한 방패이다. 사랑하라고 호통을 치면서. 뒤로는 호박씨를 깐다. 자기가 그러면 남도 그런 줄 알고 더 미운법이다. 자기가 자기에게 싫어하고 캥기는 게 있으면 남이 그러면 더 미워지는 법이다. 본문의 뜻은 마치 모든 남자가 한남충이 아니듯 목사라고 다 먹사가 아니고 일프로만 그렇다고 주장하는 뜻은 알겠는데 그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물론 사람은 궁극적으로 모두 착하다. 백지에다가 그린 그림이니까. 루소가 말한 것처럼.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나쁘고 벌레같은 존재이다. 언제나 피해를 주는 위험존재이니까. 없는게 나은 존재이니까. 이렇듯 황희정승처럼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뭔가를 빈다는 것. 그 위험성. 너무나 절실히 빌면 남에게 피해를 주게된다. 그러면 마음이 안좋아 정당화의 방법으로 용서해주신다고 믿게된다. 나아가 용서를 강요하게 된다.

00 2016-06-24 06:37:00
또한 교리가 공짜로 기도하여 얻을것을 강요하고 잠언에서도 모사 꿍꿍이를 강요하니 생기는 현상인 듯. 이타주의도 있으나 이는 이기주의를 가리기 위한 것이고 그조차 천국에 가기위한 이기적 동기. 즉 피라미드 판매처럼 손님 끌어오면 올라간다. 포장이자 속임수 너무 이기주의 강조하니 미안해서 하는말이며 위선이며 스스로 부끄러워 남에게 안들키려고 가리는 곁가지 끼워팔기 위장막 함정. 이타주의 본령으로 돌아가야 함. 쇼 말고. 독일처럼 성직자에게 국가에서 공무원처럼 월급을 주어 재벌목사 막아야. 세습이라니. 삼성은 되고 왜 자기들은 안되나고. 삼성과 다를뿐더러 삼성도 그러면 안됨. 선진사민국가에서 의사나 성직자는 준공무원 개념.

00 2016-06-22 11:09:55
그럼 어떤걸 학문이라 할 수 있나. 따지고 보면 모든게 남을 착취한다. 그런것 따질 필요 없고 남 등이나 잘치면 되는거다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뭐 사실 크게 틀린 말도 아니구요. 대부분 사회과학 인문과학 말의 향연이구요 현실개선에 무력합니다. 오히려 가진자의 편을 들고 자기 위안의 도구일 뿐이죠. 성공의 도구 자기합리화 핑계 아플때 먹는 아스피린 신경안정제 마약 비슷합니다. 때로는 주술의 역할도 합니다. 자연과학도 남을 등치는데 합리화하는데 쓰이는게 비일비재합니다. 의술로 돈벌거나 떼돈을 폭리를 사대강 보고서 옥시 보고서 잘 써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