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콰도르 다섯 선교사의 죽음에 담긴 진실
에콰도르 다섯 선교사의 죽음에 담긴 진실
  • 김종희
  • 승인 2008.02.20 21:09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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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석유회사 지원받은 선교, 문명화가 아니라 황폐화로 귀결

선교사들의 희생과 열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 이름을 들려주기 위해 젊음을 바쳤던 사람들이 있었다. 예수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창으로 찔러 죽이는 잔혹한 ‘야만인’들에게, “예수의 이름이 당신에게 꼭 필요하다”면서 자기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1950년대 남미 에콰도르의 살인 부족 ‘아우카’ 인디언들에게 예수의 이름을 들려주려고 정글로 들어갔다가 그들의 창에 찔려 죽은 다섯 명의 젊은 선교사들 이야기가 담긴 <전능자의 그늘>과 <영광의 문>을 읽었다. 두방망이질하는 심장을 며칠 동안 진정시킬 수 없었다.

나뿐 아니라 이미 전 세계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 사건을 접하고 그 책을 읽고 벅찬 감동과 깊은 은혜를 경험하면서 선교사의 길로 들어섰다. 이 책들은 출간된 지 50년이 조금 넘었지만 이미 현대 기독교의 고전이 되었고 선교 모델로 극찬을 받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그 사건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헌신의 불을 지피고 있다.

작년 7월 아프가니스탄으로 단기선교를 갔다가 탈레반의 총에 맞아 죽은 고 배형규 목사도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기 전에 했던 설교에서 에콰도르에서 순교한 다섯 선교사 얘기를 했다. “잠시 잠깐뿐인 이 땅에서 헛된 것에 집착하지 말고 영원한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자”고 했다.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영원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짐 엘리엇도, 배 목사도 그렇게 믿고 그렇게 살고 그렇게 죽었다.

다섯 명의 선교사들이 죽었을 때 당시 언론들은 ‘공연한 낭비’라고 그 사건을 부정적으로 다뤘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커다란 결실을 맺었다. 짐 엘리엇의 아내 엘리자베스 엘리엇과 네이트 세인트의 누나 레이첼 세인트는 어린 자녀를 데리고 다시 에콰도르로 들어갔다. 1958년의 일이다. 그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다섯 명의 선교사들이 죽은 지 30년이 훨씬 지난 1992년 9월 국내 일간지에 기사가 하나 실렸다. “1992년 6월 11일 와오라니 우림 지역의 외딴 마을 티네노에서는 감격적인 신약성경 봉헌예배가 드려졌다. 75명의 와오라니 인디안 기독교인과 수 명의 성경 번역 선교사, 봉헌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온 손님들이 함께한 이번 예배에서는 와오라니어로 번역된 신약성경을 와오라니 기독교 지도자가 잔잔히 읽어 내려갔다. 이번 예배에 참석한 와오라니 인디언 기독교인들 가운데 3명은 5명의 선교사 살해에 가담한 사람들로, 이들은 현재 와오라니 교회의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더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한 것 같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다. 앞으로 어떤 식, 어떤 모양으로 어떤 결실이 맺힐지 지금은 알 수 없다.

▲ 에콰도르에서 죽은 다섯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과 영상물. 여기에서 선교 활동과 석유회사와의 연관성을 알 수는 없다. 그저 순수한 복음의 열정만 충만하다. 물론 그것이 선교사들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순수성이 자기도 모르게 이권과 결탁되었을 때 나타나는 결과는 본의 아니게 엄청난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벅찬 감동 틈바구니로 들어오는 작은 의구심 하나

벅찬 감동을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은혜로 꽉 찬 것 같았던 가슴 틈바구니로 작은 의구심 하나가 사라지지 않고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 의구심은 바로 이것이다.

아프가니스탄도 10년 넘도록 미국과의 승산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그로 인해 ‘희망’이라는 단어가 그들의 가슴속에서 소멸되어 있다. 이라크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갖고 있는 천연가스나 석유가 이들에게 희망이 되기는커녕 당시 소련이나 미국과 같은 제국의 먹잇감으로 희생되는 까닭 중 하나가 되었다.

에콰도르는 어떠한가. 선교사들에 의하면, 에콰도르 아우카 족의 언어에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아예 없었단다. 원래부터 없었던 것일까, 언제부턴가 누군가에 의해 사라진 것일까.

에콰도르는 1500년대부터 1800년대까지 300년 가까이 스페인의 통치를 받았다. 남미 대륙의 대부분 국가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정복자의 뒤를 선교사들이 따라 들어왔다. 이들에게 백인은 어떤 모습일까. 특히 복음을 들고 들어오는 선교사는 어떤 모습일까.

<영광의 문>을 읽다 보면 금광이나 석유를 탐사하던 백인들이 원주민들의 창에 찔려 죽는 얘기가 나온다. 금광이나 석유를 탐사하던 이들과 선교사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까. 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원주민들의 눈에는 무관한 사이로 보였을까.

자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나의 의심에 어느 정도 단서를 줄 만한 자료가 있었다. 2004년 출간된 <경제 저격수의 고백>이라는 책이었다. 저자 존 퍼킨스는 10년 넘게 ‘경제 저격수’로 활동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저자 자신의 고백이라는 말이다. 무엇을 고백했을까.

저자는 미 국가 안전 보장국에서 훈련받았고, 겉으로는 민간 컨설팅 회사의 경제 분석관으로 세계를 누비며 개발도상국의 대규모 경제 개발 계획을 세우는 데 필요한 각종 경제 지표를 산출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해당 국가의 잠재 성장률을 부풀려서 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도록 하고, 미국 기업들이 개발 사업에 참여하여 모든 이익이 미국으로 돌아오도록 조종했다. (저자 소개에서)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경제 저격수’란 전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을 속여서 수조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털어내고, 그 대가로 고액 연봉을 받는 전문가들이다.

그는 에콰도르의 하이메 롤도스 대통령과 파나마의 오마르 토리호스 대통령이 불의의 사고로 죽은 것을 계기로 양심선언을 하려고 했다. 그가 보기에는 이들은 결코 우연한 사고에 의해서 죽은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나라를 집어삼키는 미국의 방식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단계로 경제 저격수가 개입한다. 그것이 실패하면 두 번째 단계로 중앙정보국의 자칼(암살을 뜻한다)이 끼어든다. 그것도 무위로 그칠 경우 세 번째 단계로 전쟁을 일으킨다.

두 대통령의 죽음은 첫 번째 작전이 먹혀들지 않자 두 번째 단계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저자는 판단했다. 그리고 미국의 파나마 침공·제1차 걸프전·소말리아 사태·오사마 빈 라덴의 출현 등을 보면서 책을 쓸 결심을 했다. 그러나 끊임없는 뇌물과 협박에 못 이겨 번번이 뜻을 굽히다가,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을 보고는 그동안 억제해왔던 결심을 마침내 실천으로 옮기게 되었다.

책을 쓴 배경에 대한 설명은 이 정도로 하자. 정작 중요한 것은 에콰도르에서 일어난 다섯 선교사의 죽음과 이 책의 내용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니까.

석유회사와 유착 관계의 선교사

▲ 존 퍼킨슨의 표현에 의하면, '경제 저격수'란 전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을 속여서 수조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털어내고, 그 대가로 고액 연봉을 받는 전문가들이다. 저자는 에콰도르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했기 때문에 그곳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당시 선교사들의 죽음과 연관된 이야기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쉘이라는 도시는 국경 지역의 전초지이자 에콰도르 쪽 아마존 지역에 만들어진 군사 기지이기도 하다. 이곳은 같은 이름을 가진 석유회사를 위해 만들어진 도시로서, … 항상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이 도시의 거주민은 대부분 군인, 석유회사 직원들, 이들을 위해 창녀나 막노동꾼으로 일하는 슈아르 족이나 키추아 족 출신 토착민들이다.”(20쪽)

키추아 족은 살해된 다섯 명의 선교사 중 세 명이 기거하면서 선교 사역을 하고, 동시에 원주민의 언어를 배우면서 아우카 족에게 들어갈 준비를 하던 곳이었다. 선교사들 표현대로 ‘다른 원주민보다 키추아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유순했기 때문일까’. 이들은 석유회사가 만든 도시에서 창녀나 막노동꾼으로 전락했다. ‘야만인’인 이들을 ‘문명인’으로 만들려고 한 선교사들의 당초 의도와는 정반대로 말이다.

경제 저격수가 에콰도르를 처음 방문했을 때는 1968년이었다. 당시 텍사코라는 석유회사가 아마존 지역에서 석유를 막 발견했을 무렵이었다. 1968년이면 다섯 명의 선교사 중 네이트 세인트의 누나인 레이첼 세인트가 이곳에서 사역을 하고 있을 때다. 그의 책 244쪽부터 석유회사와 선교사들의 유착 관계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에콰도르가 외국 자본에 의해 석유를 착취당하기 시작할 무렵, 서머언어학연구소(SIL) 선교사 다섯 명이 와오라니 족(아우카 족은 와오라니 족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당시 선교사들도 그들을 야만족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불렀다)의 창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했다. 와오라니 족들이 석유회사와 선교사들을 하나로 묶어서 본 것으로 저자는 생각한 것이다.

저자는 “지진학자들이 특정 지역에 석유 매장량이 많다는 예측을 내놓기만 하면 SIL가 끼어들었다. 토착민들에게 선교회 측에서 제공하는 숙소로 옮기면 무료로 음식과 휴식처, 옷, 의료 혜택뿐 아니라 선교 방식의 교육도 받을 수 있다며 고향을 떠나도록 부추겼다. 대신 땅을 석유회사에 넘겨야 이 모든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조건이 걸려 있었다”고 했다.

이런 정황이기에 와오라니 족은 다섯 명의 선교사들과 석유회사를 일심동체로 본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다섯 명이 석유회사와 ‘직접’ 연결되었는지는 아직까지 확실하지 않다. 이들에 대한 두 권의 책 어디에도 이런 내용은 볼 수 없다. 백옥처럼 맑은 영혼과 복음과 인간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충만한 모습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이에 비해 네이트의 누나 레이첼은 와오라니 족에서 나온 여자 원주민 한 명을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전국을 순회하면서 각종 집회에서 간증을 하고 텔레비전에 출연하면서 엄청난 선교 후원금을 마련했다. 저자에 의하면, 레이첼은 “야만인들을 교육시켜 교양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SIL과 석유회사를 돕기 위해 기금을 조성하자”고 호소했다. SIL은 록펠러재단으로부터도 기부를 받았다. 존 록펠러는 스탠더드오일의 창립자이다. 레이첼은 이처럼 석유회사와 유착되어서 사역을 했던 것이다.

<경제 저격수의 고백>의 그것과 비슷한 주장은 다른 곳에서도 나온다.

기자들의 현장 취재 이야기를 바탕으로 1996년 출판된 <Thy Will Be Done, The Conquest of the Amazon>이라는 책에서는 석유 재벌 넬슨 록펠러와 위클리프성경번역선교회(WBT) 설립자인 윌리엄 카메룬 타운젠드가 결탁해서, 제목 그대로 ‘아마존을 정복하는 뜻을 이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선교단체와 재벌이 아마존 정글을 경제적·문화적으로 어떻게 식민지화하고 있는지 그 과정을 그리고 있다. WBT과 SIL은 서로 무관한 사이가 아니다.

작년 5월 한국에서 열린 인권영화제 때 상영된 다큐멘터리 ‘장신구와 구슬’(Trinkets and Beads)에서도 다섯 명의 선교사들이 석유회사를 등에 업고 정글에 들어온 것으로 묘사되었다. 특히 레이첼 선교사의 역할이 두드려졌다. 1996년 미국의 크리스토퍼 워커 감독이 만든 이 다큐멘터리는 <경제 저격수의 고백>에 담긴 것과 거의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문명화’라는 명목으로 밀고 들어오는 선교사들과 기업들은 원주민들의 터전과 삶의 방식을 망가뜨렸다. 생태계는 완전히 파괴되어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이 기름이 찌들어 더 이상 신선한 산소를 배출하지 못하고 죽어가게 되었다.

다섯 선교사의 이야기는 두 권의 책뿐 아니라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End of the Spear’ ‘Beyond the Gates of Splendor’ 같은 작품은 선교에 대한 열정을 꿈꾸는 이들에게 책 못지않게 커다란 감동과 자극을 주었다. 그러나 ‘End of the Spear’는 반드시 ‘Trinkets and Beads’와 함께 보아야 한다. 극찬 일변도의 영웅담은 반쪽짜리의 진실 아닌 진실만 보여줄 뿐이기 때문이다.

복음을 내세웠지만 모든 것이 파괴되다

다시 <경제 저격수의 고백>으로 돌아가자. 복음과 석유가 함께 들어간 에콰도르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날 에콰도르에서의 총수출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이 넘는다. 미국의 석유 재벌 덕분이고, 저자와 같은 ‘경제 저격수’ 덕분이다. 이 덕에 에콰도르는 미국에 석유를 공급하는 10대 산유국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 대가로 거대한 정글이 파괴되고, 각종 생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했고, 토착 문화들이 사라져가고 있다.”(23쪽)

그럼 먹고사는 문제라도 해결되었는가. “정글에서 100달러어치 원유가 생산되면 석유회사가 75달러를 가져간다. 남은 25달러 중 4분의 3은 외채를 갚는 데 사용된다. 그 나머지의 상당 부분도 군사비를 비롯한 정부에서 사용하는 비용으로 지출된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보건, 교육 및 기타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돈은 고작 2달러 50센트에 불과하다.”(27쪽) 석유회사가 챙긴 75달러 중에서 얼마가 선교사들을 통해서 원주민들에게 되돌아갔을까.

저자가 상당한 애정을 보이는 에콰도르 대통령 하이메 롤도스는 선교단체인 SIL이 석유회사와 유착 관계에 있다고 비난하면서, 에콰도르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그해 그는 헬기 폭발 사고로 죽었다. 새로 당선된 대통령은 SIL과 석유회사를 다시 불러들였다. 파나마 대통령 오마르 토리호스도 롤도스와 마찬가지로 SIL을 추방했다. 롤도스가 죽은 지 두 달 후 그 역시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 미국 언론에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으나, 많은 사람들은 미국 중앙정보국에 의해서 남미의 두 대통령이 제거되었다고 믿고 있었다. 당시 미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다섯 명의 선교사들은 절대로 재벌 기업의 끄나풀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말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들이었고, 원주민들의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들이 더 이상 미개한 곳에서 비참하게 살지 말고, 개화된 곳에서 인간답게 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신변보호를 위해 엄포용으로 총을 갖고는 있었지만, 죽는 순간에도 총을 꺼내지 않았다. 그 진심에 대해서는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복음은 석유회사와 함께 들어갔다. 석유회사와 복음은 상부상조했다. 둘 다 엄청난 성과를 이뤘다. 원주민들은 ‘미국화’되고, ‘기독교화’되고, ‘복음화’되었다. 이 사건은 지금부터 50년 전 그때 그곳에서 단 한 번 일어난 일이 아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석유회사와 복음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이것이 진정 우리가 꿈꾸는 하나님나라이고, 그분이 정말 기뻐하는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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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7 2008-03-04 12:55:57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조차 목회성공의 도구로 전락해버리는 목회성공은 곧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잘못된 등식이 판을 치는 현세에서 그 말씀이 잘못인용될까 심히 염려됩니다. 그리고 만약 목회를 어떻게 하던지 간에 많은 수의 영혼을 세례만 준다면 하나님이 "과정은 묻지마"로 나가신다면 저는 절망할것 같습니다. 칭의만큼 깨어있는 성도로의 성화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바가지 2008-02-26 00:44:51
저도 혼란스러울만큼 이해가 되지 않는 면도 있지만 그래도 전파되는 것이 예수라면 기뻐하신다는 말씀을 보며 제가 이해하고 납득되는 것을 내려놓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일을 알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의롭고 정의로와야함을 외칩니다. 어쩔때는 부불의를 보고도 참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의일까요, 아니면 그리스도의 의이겠습니까? 이 기사를 통해 우리의 의가 앞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바가지 2008-02-26 00:40:01
빌1:15~18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명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 그래도 기뻐하신답니다

atom 2008-02-25 13:50:01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구조악적 집단 에너지에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같습니다. 죄와 구원에 대한 폭ㅤㄴㅓㅄ은 이해, 복음과 상황에 대한 이해, 하나님 나라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여전히 우리의 신앙의 주제가 되어야 함을 다시 느낍니다.

보스토니안 2008-02-23 12:43:11
기자님의 글에 완전 동의 합니다. 복음을 증거한답시고 올바른 과정을 거치지 않는 다면 에쿠아도르나 다른 중미국가 처럼 참담한 비극이 초래됩니다. 그런 면에서 정의롭게 일을 진행시키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좋은 글을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수고하시고요. 화이팅~!!! 입니다. 기자님의 글을 보면 가슴이 후련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