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철회 가능하겠냐고? 이 섬은 기지도 없앴다
사드 철회 가능하겠냐고? 이 섬은 기지도 없앴다
  • 지유석
  • 승인 2016.07.18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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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저항 끝에 미군 기지 폐쇄시킨 비에케스섬 주민들

한미 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즉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배치 예정지로 결정된 경상북도 성주 군민들은 한껏 격앙돼 있는 모습이다. 지난 15일 오전 현지로 내려간 황교안 국무총리가 주민들의 반발로 여섯 시간 동안 고립된 일도 있었다. 

성주 군민들의 반대 목소리에 응원을 보내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선다. 우선 군민들은 정부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서 그러했듯, 현 정부에게 국민의 안위는 우선순위가 아니다. 

더구나 한국 정부 뒤에 더 큰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미국이다. 이번 사드 배치 발표는 한미 군당국이 합의한 결과다. 그런데 사드 합의에서 미국이 한국 정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설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노컷뉴스>는 지난 14일 "한미 양국이 사드 배치를 서두른 이유는 확실치 않다, 다만 국방부는 이번 결정이 미국 측 요청에 의한 것임을 확인했다"며 미국 압력설을 제기했다. 이수혁 전 6자회담 수석대표도 "미국이 우리의 팔을 비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며 같은 의혹을 제기했다. 만약 미국 압력설이 사실이라면, 사드 문제 해결을 위해선 미국마저 넘어서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지레 한숨만 내쉬기에는 이르다. 무엇보다 성주 군민들, 더 나아가 남북대결구도 해소와 평화체제 구축을 염원하는 모든 국민들이 합심해 단결한다면 미국으로서도 자신의 의지를 쉽게 관철시킬 수 없다고 본다. 

너무 쉽게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아주 훌륭한 선례가 있어서다.

인구 1만의 작은 섬에서 미군 기지를 폐쇄시키다 

비에케스섬은 푸에르토리코 동쪽 카리브해에 위치한, 인구 1만 남짓 한 작은 섬이다. 미국은 1938년부터 이 섬을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 기간인 1941년 미 해군은 원주민들로부터 토지를 값싸게 매입하기 시작해 약 75%를 소유하기에 이르렀다. 2001년 기준 총 3만3000에이커의 토지 중 약 2만6000에이커가 미 해군의 수중에 있었다. 

사실상 섬을 사들인 미 해군은 이 섬을 해군기의 사격훈련 및 해병대의 상륙작전 훈련장으로 사용했다. 이때부터 원주민들과 미군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원주민들은 1950년대부터 줄곧 미 해군의 사격훈련 중단 및 미군기지 폐쇄를 요구해왔다. 

비에케스섬 주민들은 폭격 훈련으로 인해 핵심 산업인 농업·어업·목축업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뿐만 아니다. 미군이 투하한 폭약에서 흘러나오는 납과 카드뮴으로 인해 심각한 환경오염이 초래된다고 호소했다. 

그러다가 1999년 갈등이 표면화됐다. 그해 4월 19일 훈련 중이던 미 해병대 소속 F-18 전투기가 훈련도중 관제탑을 포격하는 사고가 벌어진 것이다. 이 사고로 푸에르토리코인 1명이 사망했다. 원주민들은 격분했고, 미군의 군사훈련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불복종 운동을 벌였다. 

원주민들은 사건 발생 2일 후인 4월 21일 15척의 배를 몰고 사고 현장 부근에 집결하여 해상시위를 벌였다. 또 폭격훈련 예정지에 캠프를 설치하고 이곳에 상주하면서 미국의 군사훈련에 반대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을 다음해인 2000년 5월까지 전개했다. 이 불복종 운동엔 푸에르토리코 정치인, 종교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미국 뉴욕주 주의원 및 연방 하원의원 등 미 정치권 인사들마저 가세했다. 

이 같은 운동은 사격훈련을 1년간 중단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미 해군과 국방부는 비에케스 섬이 "미 해군과 해병대의 전투력 향상을 위한 최적의 실전훈련장이며, 비에케스섬 이외의 다른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어 해병대와 연방수사국 요원을 동원해 2000년 5월 시위 중이던 주민들을 강제 해산시키고 사격훈련을 재개했다. 

그러나 이 같은 물리력 행사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미 정치권으로서는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정서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였다. 이에 2001년 1월 당시 클린턴 미 대통령과 페드로 로세오(Pedro Rosello) 푸에르토리코 지사는 사격훈련 재개 및 이에 따른 대가로 △ 4000만 달러의 보상금 지급 △ 향후의 사격훈련에서는 공포탄을 사용할 것 △ 앞으로 2년 이내 미군 사격훈련에 대한 찬반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것 등에 합의했다. 

클린턴은 이어 주민투표 결과 과반수가 훈련에 찬성한다면 5000만 달러의 특별 지원금을 제공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훈련을 중단하고 2003년 5월에 기지를 폐쇄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푸에르토리코 국민, 그리고 비에케스 섬 주민들은 미국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았다. 이들은 조건부 합의안 수용을 거부하고 투표결과에 따라 미군은 즉각 사격훈련을 중단해야 한다고 맞섰다. 

사드 철회 가능하다, 우리가 뭉친다면

결국 2001년 6월 부시 미 대통령은 2003년까지 사격훈련을 중단하고 비에케스섬에 위치한 미군기지를 폐쇄할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2004년 5월 비에케스섬의 미 해군 폭격훈련장은 완전 폐쇄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미국 내 반대가 없지는 않았다. 특히 보수 성향의 공화당원들은 비에케스 섬 훈련중단 결정은 미군의 전투력 약화로 귀결될 것이며 한국·오키나와 등 다른 미군 사격훈련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선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목소리는 푸에르토리코 국민과 비에케스 섬 원주민들의 열망을 뛰어넘지 못했다. 

다시 사드로 돌아와 보자. 사드 체계는 효용성이 의심되는 무기체계이며 외교, 특히 중국과의 외교에서 득보다는 실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성주 군민들의 사드 도입 반대 운동이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비에케스 섬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군민들과 온 국민이 똘똘 뭉친다면 제 아무리 미국이라도 자신들의 전략적 이해를 한반도의 주인에게 강요할 수 없다. 

사드 배치 반대의 선봉에 선 성주 군민들에게 지지와 성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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