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둘 여성 영화감독 20인 (1)
기억해둘 여성 영화감독 20인 (1)
  • 양유창
  • 승인 2016.07.26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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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 기블랑쉬, 로이스 웨버, 도로시 아즈너

시리즈 첫번째로 영화 역사 초기의 세 감독을 살펴봅니다. 프랑스 영화의 개척자 알리스 기블랑쉬, 자체 프로덕션을 설립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로이스 웨버,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개척자 도로시 아즈너입니다.

1. 알리스 기블랑쉬

 

 

초기 프랑스 영화의 개척자 알리스 기블랑쉬는 1896년~1920년 사이 무려 1000여편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첫번째 사진 속 그녀는 보터 모자를 멋드러지게 쓰고 레이스 달린 드레스를 입고 카메라 옆에 섰네요. 모델일 것 같지만 극작가 겸 영화감독 겸 제작자입니다. 내러티브 영화를 처음으로 시도했고, 영화 스튜디오를 차리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유성영화 실험, 컬러 배합, 다인종 캐스팅, 특수효과 시도 등 초기영화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화인입니다.

기블랑쉬는 21살에 레옹 고몽의 조수로 사진 일을 시작했습니다. 영화의 탄생을 목격한 그녀는 에밀 졸라, 구스타프 에펠의 작업을 도와주다가 뤼미에르 형제의 35밀리 카메라 영사 시연을 본 뒤 직접 영화감독으로 나섭니다. 그녀는 미국으로 이주해 뉴욕 퀸스에 스튜디오 'Solax'를 세우고는 매주 한 편씩 단편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1920년 마지막 작품 <녹슨 명성(Tarnished Reputations)>을 만든 뒤 남편과 이혼하고 파리로 돌아갔는데요. 1940년대 영화계는 그녀를 역사에서 누락시켰습니다. 그러나 전후 1953년 프랑스 정부는 그녀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하며 업적을 기렸습니다. 기블랑쉬는 1968년 9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고, 2012년 마틴 스콜세지는 그녀에게 미국감독조합 평생공로상을 수여했습니다.

2. 로이스 웨버

수많은 무성영화를 남긴 감독, 작가, 제작자 겸 배우였던 로이스 웨버입니다. 역사학자 안소니 슬라이드는 그녀를 'D. W. 그리피스와 함께 미국 영화의 진정한 작가'라고 추앙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20세기초에 가장 성공한 여성감독입니다. 그녀의 명성은 그리피스나 세실 B. 드밀과 비견될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남편 필립 스몰리와 함께 공동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웨버가 쓴 시나리오를 함께 연기하고 공동연출해 'The Smalleys'라는 타이틀로 공개했습니다. 1912년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렉스 브랜드에 흡수돼 일주일에 한두 편씩 단편영화를 만들었는데 이 영화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커플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이후 장편영화에 도전해 <베니스의 상인>(1914)을 만들었는데 이 영화는 여성감독이 만든 최초의 장편영화입니다. 유니버설을 나온 웨버는 창작의 자유를 보장한 호바트 보스워스 프로덕션으로 옮겨 <위선>(1915)을 만듭니다. 영화가 논란 속에 흥행한 이후 부부는 다시 유니버설로 옮겼는데 이때 그녀에 대한 영화사의 대우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습니다.

남편과는 파트너십을 유지해 크레딧에 이름을 함께 올리긴 했지만 웨버는 단독으로 홍보물에 이름이 올라갈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았고 명성도 얻었습니다.

그녀가 만드는 영화들은 독특한 카메라 앵글과 화면 분할이 주특기였습니다. 그녀가 쓴 시나리오는 사회적인 문제, 여성에 대한 편견, 낙태 문제 등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웨버는 검열, 사형제도 등에 반대했고, 산아제한 토론에서 승리할 만큼 달변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칼 램믈의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가장 높은 급여를 받는 여성감독이었습니다.

그녀는 명성을 혼자 독차지하지 않고 재능있는 여성 영화인을 발굴했습니다. 클레오 매디슨, 도로시 데븐포트 등을 감독으로 데뷔시켰고, 아카데미 각본상을 두 차례 수상한 프란시스 마리온을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에게는 최초라는 타이틀이 익숙합니다. 장편영화를 연출한 최초의 미국 여성감독, 영화감독조합의 첫 여성 회원, 캘리포니아 유니버설시의 첫 시장, 자기 이름의 스튜디오를 가진 첫 영화인 등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하딩의 '정상으로 복귀' 정책으로 영화계가 보수화됨에 따라 웨버가 만드는 영화들이 흥행에서 쓴 잔을 마셨고, 이후 그녀는 자신의 스튜디오를 임대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남자는 무엇을 원하나?>

웨버의 대표작은 <남자는 무엇을 원하나?>(1921), <너무 영리한 아내들>(1921), <얼룩>(1921) 등입니다. 그녀의 재능은 1922년 이혼과 함께 서서히 저물어가는데요. 이에 대해 그녀를 폄하하는 사람들은 사실 그녀 작품에 남편 영향이 지대했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웨버는 이혼 이후 편수는 줄었을지언정 <그녀 인생의 챕터>(1923), <결혼 조항>(1926), <브로드웨이의 천사>(1927), <백색 열기>(1934) 등의 인정받은 작품을 남긴데 반해 전남편 스몰리는 변변한 작품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감독으로서 여성의 능력에 대해 웨버는 1921년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평균적인 지능을 갖춘 여성이 비슷한 수준의 남성보다 더 나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센스를 갖췄다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여성에겐 디테일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

로이스 웨버는 1939년 60세를 일기로 사망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스타제조기'로 칭송받았습니다만 1970년대 들어 앤소니 슬라이드 등의 연구를 통해 연출 능력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이루어집니다. 그녀의 영화와 삶은 2006년 셜리 스탬프가 발굴해 책으로 펴내면서 세상에 자세히 알려졌습니다.

3. 도로시 아즈너

도로시 아즈너는 미국 영화 역사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여성 스튜디오 감독입니다.

어린 시절 아즈너는 할리우드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영화와 친숙해졌습니다. 아버지의 식당 옆에 바로 극장이 있어 식당에 배우들이 자주 드나들었고 그녀는 파라마운트(당시엔 페이머스 플레이어스-래스키 코퍼레이션)의 각본을 타이핑하는 것으로 영화일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필름을 편집했는데 52편의 영화를 작업했고, 장편영화를 맡으며 제임스 크루즈 감독을 멘토로 삼기도 합니다.

이후 자신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각본을 쓰기 시작한 그녀는 파라마운트에서 무성영화 4편을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합니다. 곧바로 유성영화 시대가 도래했고, 그녀는 운좋게 파라마운트의 첫번째 유성영화 <와일드 파티>(1928)의 감독으로 낙점되는데 이는 이 영화의 무성영화 버전을 그녀가 편집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930년대에 그녀는 남성들이 지배하는 할리우드에서 유일한 여성감독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질문에 당시 그는 한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밝힌 바 있습니다.

"내가 여자라는 사실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더 많은 도움을 줬다. 하지만 나는 내가 만드는 영화에 온전히 독립적이지 못했다. 나는 항상 내 방식대로 안되면 다른 감독에게 영화를 넘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게 맞건 틀리건, 나는 이것이 내가 20년 동안 이 일을 유지해온 방법이라고 믿는다."

훗날 초기 페미니스트 평론가들과 퀴어 이론가들은 그녀의 영화를 주목했습니다. 관습적이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여성감독으로서 할리우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그녀는 여성인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고 이를 비평가들이 인정한 것입니다.

<즐겁게 지옥으로>

파라마운트에서 그녀는 11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했습니다. <사라와 아들>(1930), <모두의 여인>(1930), <연인들의 명예>(1931) 등이 대표작입니다. 1932년에는 파라마운트 스튜디오를 떠나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RKO, 콜럼비아, UA, MGM 등의 영화를 연출했습니다. 이 기간의 대표작은 <즐겁게 지옥으로(Merrily We Go to Hell)>(1932), 캐서린 헵번 주연의 <크리스토퍼 스트롱>(1933), <크레이그의 아내>(1936), 조안 크로포드 주연의 <신부는 붉은색을 입었다>(1937) 등입니다.

나이가 들어 그녀는 여군부대에서 영화를 가르쳤고, 이후 UCLA에서도 강의합니다. 그녀는 펩시콜라 회장 알프레드 스틸의 아내이자 배우인 조안 크로포드의 간청으로 50편의 Pepsi 광고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또 그녀는 붐마이크를 발명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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