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한 많은 삶, 힙합으로 노래하다
이민자의 한 많은 삶, 힙합으로 노래하다
  • 유영
  • 승인 2016.07.30 0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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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대의 아픔을 공감하는 래퍼, 1.5세대 한인 제이키 조

힙합은 미국에서 독자적으로 생긴 유일한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뉴욕 흑인들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고, 지금은 전 세계가 열광하는 문화 장르가 되었다. 흑인들을 중심으로 발전해서 저항의 상징으로 불리기도 했다. 힙합에서 Rap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Rap은 DJ의 디제잉에 맞춰 MC들이 내뱉던 미사여구가 문학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걸 ‘돈’ 위주로 변질하게 하는 자본주의의 위력에 Rap도 많이 변했다. 사회 고발적이고 저항적인 가사는 점차 흑인 거리의 범죄 등 갱스터 분위기로 발전했다. 힙합이 대중문화로 성장하면서 자기 자랑, 돈, 파티, 섹스 등 자극적 주제가 주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래도 힙합은 흑인들의 저항 의식이 가장 잘 담긴 음악으로 사랑받고 있다.

흑인들이 현실을 노래하기 위해 불렀던 음악이 허세와 간지로 정착해 가는 시기, 뉴욕 퀸즈에서 한인들의 현실을 힙합으로 표현한 래퍼가 등장했다. 이름은 제이키 조. 그가 만든 음악에는 이민자,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고단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그대로 담겼다. 이민이라는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 아픔을 노래한다. 앨범 전체가 한 편의 '애가'(哀歌)와도 같다. (제이키의 앨범을 들을 수 있는 사운드 클라우드 바로 가기)

재미있는 사실은 그를 작사, 작곡, 랩만 하는 음악인으로만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뉴욕 TriBeCa 영화제를 통해 개봉한 동양계 미국인 래퍼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Bad Rap' 제작자이기도 하다. 더불어 그동안 미국 유명 잡지 <Complex>와 <XXL> 등에서 활동한 기자이자 에디터이기도 하다. 지금은 브루클린 얼럽나이라는 스니커즈 부티크에서 크레이티브 디렉터와 마케팅 담당자로 활동하고 있다. 

제이키 조의 앨범 'GYOPO ANTHEM 킌즈 돈벌어' 자켓

콘텐츠와 문화, 예술로 사회에 말을 걸고, 자신의 세계에 사람을 초청하는 제이키에게 이민 사회와 미국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했다. 흑인들이 밀집해 살아가는 브루클린에 있는 제이키의 작업실에서 그를 만나 보았다. 제이키의 이야기는 두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1부는 제이키가 생각하는 뉴욕과 음악을 이야기하고, 2부는 제이키가 바라보는 이민자의 미국과 한인 커뮤니티를 다루려고 한다. 다음은 제이키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한국 이름은 조재기다. 재기라는 이름을 영어식으로 제이키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 이민자로서 1.5세라고 불리는 존재다. 98년에 IMF가 터지면서 많은 사람이 이민을 갔다. 우리 집도 그 시기에 이민했다. 한국에서 바로 미국으로 넘어온 건 아니고, 미국에 이민하기 전 3년은 중국에서 지냈다. 

그동안 기자, 에디터로 일했다. 안정적인 삶에서 벗어나 하고 싶었던 일에 더 집중하려고 지금 일하는 곳으로 이직했다. 지금은 브루클린 얼럽나이(ALUMNI)라는 스니커즈 부티크에서 크레이티브 디렉터, 마케팅 담당자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 '배드 랩' 공동제작자이기도 하고, 래퍼로도 살아간다.

제이키 조는 음악인으로만 살고 있지 않다. 광고 대행사부터 잡지 에디터 등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분야에서 계속 활동해 왔다. 최근에는 트리베카 영화제에서 개봉한 동양인 래퍼의 다큐멘터리 영화 '배드 랩'을 공동 제작하기도 했다. ⓒ<뉴스 M> 경소영 기자

어린 시절 외국으로 나갔는데 한국을 어느 정도 기억하는지?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에 중국으로 갔다. 중국인 학교에 입학해 다녔는데, 외국인이 우리 형제밖에 없었다. 그 덕분에 한국을 많이 그리워했다. 향수병을 앓아서 몇 가지 기억이 지금까지 기억난다. 어렸을 때 살았던 주택가 특색, 동네 누나들과 놀았던 기억 등 좋았던 추억들 말이다. 

미국으로 온 건 1998년, 만 9살이 되던 해의 일이다. 중국에서 적응할만할 때 미국에 와서 힘들었다. 그래도 어린 나이에는 어디를 가나 빨리 적응하지 않나. 지금은 퀸즈가 고향 같다. 여기서 가장 많은 경험을 했고,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말이다. 

‘GYOPO ANTHEM 퀸즈 돈 벌어’는 정말 재미있는 앨범이다. 듣다가 웃기도 하고, 공감하며 ‘바로 이거야’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앨범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나.

믹스 테잎 ‘GYOPO ANTHEM 퀸즈 돈 벌어’를 통해서는 이민자들의 삶을 현실적으로 이야기하기를 원했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잘 모를 한인들의 뉴욕, 퀸즈 플러싱에서 일어나는 실제 삶 말이다.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 자라면서 느꼈던 경험, 주위 일들을 담으려고 애썼다. 

한국 사람에게 미국 이민 사회는 이질감이 느껴지는 곳이다. 한국 사람들도 듣고 이민자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이해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단한 이민자들의 삶, 꿈같은 영주권, 약을 팔고 불법적인 일을 하는 사람 등 다양한 이민 사회 현실을 들려주고 싶었다. 이것을 음악으로 상세하게 풀어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앨범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민 간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노래를 만들었다. 내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민자로 고단하게 살아가는 한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뉴스 M> 경소영 기자

믹스 테잎이라고 말했는데, 무슨 의미인가?

먼저, 현재 믹스 테잎은 비공식 앨범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된다.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린 앨범이 비공식 앨범이라는 의미다. 물론 비공식 앨범이라는 것만 나타내는 건 아니다. 청소년기에 듣던 믹스 테잎은 기존 음악을 자기 스타일로 재해석한 음악에 붙이는 표현이기도 했다. 자라면서 영향을 받은 음악으로 이야기하고 싶어 믹스 테잎이라고 규정했다. 

주로 청소년기에 들은 음악이 마음에 가장 많이 남지 않나. 그 당시 나에게 영향을 많이 주었던 음악이 미국 힙합이다. 특히 뉴욕 출신 아티스트들이 제작한 곡들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앨범을 만들면서 청소년기 영향을 받은 음악들을 샘플링하고, 뉴욕 힙합 특색을 살리고 싶었다. 내가 자란 뉴욕 퀸즈 특색을 많이 나타내려고 했다. 그래서 앨범 제목도 그렇게 지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 자랑, 돈, 섹스 등 자극적 주제로 작업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뉴욕의 실제 모습, 뉴요커들이 살아가는 삶을 제대로 알려주고 싶었다. 사실 뉴욕은 미국에서도 특별한 곳이다. 뉴욕을 미국의 일반적인 도시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미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뉴욕을 화려하고 예쁘기만 한 곳으로 그리는 경향이 있다. 한국도 그런 것 같다. 뉴요커가 브랜드화 되어 있다. 

교환학생으로 갔을 때 한국에서 생각하는 뉴욕이 어떤 이미지인지 알았다. 2009년에 연세대학교에 교환 학생으로 갔고, 졸업 후 광고 대행사에서 반년 정도 일했다. 그곳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뉴욕과 뉴요커와 관련된 환상이 많았다. 멋진 도시, 한 손에는 커피를 든 여유로운 패션 잡지에 나올 법한 사람들의 이미지로 가득했다. 내가 퀸즈에서 왔다고 하면, '뉴욕이면 뉴욕이지 퀸즈가 어디? 브루클린이라면 모를까'라는 반응도 자주 접했다. 

다양한 이민자가 모여 살아가는 뉴욕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환상 속 도시가 아니다. 실제 거주하는 사람은 환상 속에서 살지 않는다. ⓒ<뉴스 M> 경소영 기자

뉴욕은 환상 속 도시가 아니다. 많은 이민자가 모여 사는 곳이다. 실제 거주하는 사람은 환상 속에서 살지 않는다. 사람들의 환상을 깨고 싶었다. 그래서 이민자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며 고민하는 내용을 가사로 써서 앨범에 담았다. 

예를 들어 플러싱에서 약을 파는 불법적 행위를 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있다. 주변에 대마 파는 일을 하는 친구들이 "내 이야기 같다"고 말해 주었다. 뉴욕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실제 뉴욕은 이러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한인 2세로서 겪는 시련만 해도 할 이야기가 많다. 2세들은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상황에서 살아간다. 부모님들은 신분 문제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경험한다. 일하느라 바빠 아이들과 대화할 시간도 없이 지낸다. 그런 상황에서도 자녀 교육에 모든 걸 건다. 대화 없이 지내는 상황이 만든 언어 장벽은 점점 악화된다. 관계 단절의 골이 더 깊어진다. 

가난하게 살다 보니, 돈을 벌기 위해 청소년 시기부터 약이나 술 등을 파는 2세들도 많다. 그 친구들은 '엄마한테 들키면 어떻게 하지', 이런 걱정을 한다. 의외로 정말 많은 친구가 그렇게 산다. 실제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 노래 가사의 현실성을 살리고 싶었다.

제이키의 작업실에 걸려 있는 시계. 뉴욕과 한국 시간을 따로 표시해 두고 살아간다. 한인이자 한국계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이민자들의 삶은 어쩌면 두 가지 시간 어디에 끼인 채 존재하는 지도 모르겠다. ⓒ<뉴스 M> 경소영 기자

미국에서 우리말로 뉴욕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말로 음반을 만든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말을 하는 한인들이 공감하기 원해서다. 이상한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민 사회에서 한인들의 우리말 능력은 하늘과 땅 차이다.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있고,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중에서 우리말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듣고 공감할 수 있을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자라면서도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 고민이 많았다. 한국 문화가 몸에 익어 여전하다. 사실 태어난 곳도 한국이고, 집에 들어가면 한국 방송 프로그램이 항상 나오고, 꼭 우리말을 썼다. (부모와 영어로 대화하는 한인 2세가 많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한국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많이 접했다. 난 사실 명절 음식 만들 때, 전도 잘 부친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나는 한국의 음악, 작품, 예술 등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 주변 다른 친구들도 음악을 많이 하는데, 이 부분에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결국, 경험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한국 문화가 나에게는 많은 영감을 준다. 

제이키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주는 것은 한국 문화다. ⓒ<뉴스 M> 경소영 기자

우리말과 문화가 더 큰 영감을 주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실제로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외국 문화가 더 멋있어 보이겠지만, 외국에서 자란 한국인에게는 한국적인 미가 더 색다르고 멋지게 느껴진다. 예를 들어 빅뱅이 브루클린에서 뮤직비디오를 찍으면 한국 사람들은 색다르고 멋지다고 느끼겠지만, 흑인이 브루클린에서 뮤직비디오를 찍으면 동네에서 촬영하는 느낌이 날 것이다. 

그런데 이 동네 사는 흑인이 한국에 가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면 어떨까. 뭔가 다르고 멋지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자란 한인으로 한글을 보면 영감을 받는다. 색다르고 재미있게 응용하고 싶어진다. 그게 더 멋있다고 느낀다. 

매력을 느끼는 것 외에도 우리말과 문화는 진실성을 찾게 해 준다. 힙합 음악에서는 ‘진짜’, ‘진실성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진실성 있게 힙합을 하고 싶어 우리말로 작업한다. 나한테 가장 진실성 있는 건 한국 음악이었다. 우리 집에서는 조용필, 이선희를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흑인 아티스트 너무 다른 음악을 경험하며 자랐다. 

외국에서 자란 한국인에게는 한국적인 미가 더 색다르고 멋지게 느껴진다. ⓒ<뉴스 M> 경소영 기자

그래서 샘플링하는 음악도 다르다. 보통 작업할 때, 선호하는 아티스트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소울음악을 기반으로 샘플링 한다. 소울음악으로 작업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린 시절 들었던 내가 좋아하는 그 음악이 내 음악을 형성하는 DNA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롭게 만들 음악 설계도가 되어준다. 

한국 음악에서 ‘한’이 들어 있는 음악이 좋다. ‘한’이 담긴 음악이 미국 ‘소울’ 장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이해할 수 있고 잘 풀어나갈 수 있는 음악을 해야 한다고 느낀다. 

지금 새로운 앨범은 한국의 소울, 내 음악의 DNA가 되어준 음악을 기반으로 작업해 보려고 한다. 트로트 음악 샘플링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7080세대 곡들을 샘플링해서 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 것들이 내 정체성과 가장 적합하다. 그래서 앞으로 그런 식으로 계속 풀어나갈 것 같다.

(기사 최하단에 그의 노래 중 한 곡을 링크해 두었다. 2부에서 계속)

제이키는 스니커즈 부띠크에서 크레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만든 신발 중 하나. ⓒ<뉴스 M> 경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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