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법원, '평화의 소녀상' 철거 소송 기각
美법원, '평화의 소녀상' 철거 소송 기각
  • 경소영
  • 승인 2016.08.11 0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방항소법원, 일본계 극우단체의 소녀상 철거 항소에 패소 판결내려

[뉴스 M = 경소영 기자] 미국 항소법원이 일본계 극우단체 회원들의 글렌데일 시 ‘평화의 소녀상’ 철거 소송에 또다시 패소 판정을 내렸다. 

지난 4일 연방 제9회 순회항소법원은 ‘역사의 진실을 추구하는 글로벌 연합(이하 GAHT)’이라는 일본계 극우단체가 글렌데일 시를 상대로 제기한 ‘평화의 소녀상’ 철거 소송과 관련해 “원고 측 주장이 잘못됐다”라며 기각했다. 

소녀상 건립을 주도한 가주한미포럼과 글렌데일 시의 이창엽 커미셔너는 “이번 결정으로 다른 도시에서도 걱정 없이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건립과 교육 활동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법원이 글렌데일 시의 손을 연거푸 들어준 만큼 더는 상고하기가 힘들 것이다. 이번 분쟁은 사실상 결정 난 것이다”라고 밝혔다.

소녀상 건립이 헌법 위배라고?

‘평화의 소녀상’은 2013년 7월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 시립공원 앞에 세워졌다. 글렌데일 시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를 기리는 소녀상을 세우겠다는 한인 시민단체의 요청을 받아들여 시립도서관 앞 시립공원의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글렌데일 시는 캘리포니아 주 내에 한국계 미국인의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로, 1만 명 이상의 한인이 거주하고 있다.

2013년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질 당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방문했다. (사진/재팬타임즈)

원고 고이치 메라 등이 포함된 일본계 극우단체 GAHT는 지난 2014년 2월 LA 연방지법에 소녀상 철거 소송을 제기했다. 글렌데일 시가 ‘역사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를 주제로 한 상징물을 세운 것은 연방 정부만이 가진 외교 권한을 침해한 것’으로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미국의 대일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주장도 했다.

이에 맞서 글렌데일 시 정부도 연방 법원에 제출한 서면을 통해 "소송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도전이다. 시는 필요한 법적 절차를 거쳐 소녀상의 설치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같은 해 8월 LA 연방지법은 ‘글렌데일 시는 소녀상을 외교 문제에 이용하지 않았으며, 연방 정부의 외교방침과 일치한다. 따라서 소송의 원인이 성립되지 않는다’며 소송을 각하했다. GHAT 측은 곧바로 캘리포니아 주 제9회 순회항소법원에 항소했지만, 결국 항소법원은 "연방 정부의 외교권을 이유로 개인이 헌법상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지적한 글렌데일 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특히 법원은 소송 기각과 함께 글렌데일 시가 소녀상 철거 주장이 언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를 방해한다며 신청한 ‘반 전략적 봉쇄 소송(Anti-slapp)도 받아들였다. 이는 곧 정부의 활동이나 공적 이슈에 대한 개인, 단체의 소모적 비판 활동을 막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소녀상은 평화의 상징

2014년 일본계 극우단체가 철거 소송을 처음 냈을 때 LA일대에 거주하는 아시아계 미국 시민들은 이를 강력히 규탄했다.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반성을 한 목소리로 촉구하고 ‘평화의 소녀상 지키기’에 나섰다. 한국, 중국, 필리핀, 일본계 미국 시민단체 회원들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글렌데일 소녀상을 차례로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 규탄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소녀상은 한일 간 분쟁의 대상이 아닌, 반인륜 범죄를 기억하기 위한 상징물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필리스 김(가주한미포럼 회원)씨는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없애달라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몇몇 재미 일본계 시민단체도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공동 행동에 나서며, 철거 요구 소송을 낸 사람들은 대표성 없는 소수 일본계 극우세력에 불과하다고 했다. 

글렌데일 시 '평화의 소녀상'을 찾은 에드 로이스 연방하원 외교위원장

에드 로이스 연방하원 외교위원장도 연방 항소법원의 소녀상 철거 소송 기각 결정을 환영했다. 성명을 통해 "글렌데일 평화의 소녀상이 위안부의 역사와 아픔을 알리는 사실을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 소녀상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여성 피해자를 기억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과거를 기억하는 일은 그와 같은 일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도와준다"라고 말했다.

로이스 외교위원장은 지난 2007년 하원에서 마이크 혼다 의원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공동 발의했다. 이후 남가주 한인사회와 글렌데일 시의회는 결의안 내용을 토대로 일본 제국주의의 성범죄 만행을 알리려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했다.

그는 특히 법원의 이번 결정을 계기로 일본 정부가 위안부 과거사를 직시할 것을 주문했다. "일본이 그들의 어두운 과거를 인정하는 일은 중요하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일본군은 강요된 성노예를 운용했다"라고 강조했다.

역사적 아픔에 동참하는 지방 정부

이번 판결을 진행한 연방 제9회 순회항소법원 김 맥래인 워드로우 판사는 "글렌데일 시는 인권 침해를 반대하는 입장을 밝히는 기념비를 세웠을 뿐이며, 기념비를 세우고 유지하는 것은 모두 지방정부의 관할이다"라고 밝혔다. 

워드로우 판사는 "글렌데일 시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에 기념비를 헌정함으로써, 국경을 넘어 여러 사건들에 대한 입장 표명을 위해 공공 기념물을 사용해 온 미국의 수많은 다른 도시들과 함께하게 됐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다.

폴라 디바인 미국 LA 글렌데일 시장(아래 세 번째) 등이 지난 5일 글렌데일시 시의회에서 자매결연서에 서명했다.(사진=보은군 제공)

한편, 글렌데일 시는 지난 5일 한국의 보은군과 자매결연을 체결했다. 글렌데일 시장 폴라 디바인은 <LA 타임스>를 통해 "자매결연 일과 맞물린 이번 승소 판결 시기가 매우 적절했다"는 말을 전했다. 

디바인 시장은 실제로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이 글렌데일 시를 방문했을 때 함께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그는 "생존 피해자들은 어린 소녀로서 겪어야 했던 고통을 아직도 감내하고 있다.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기 않도록 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