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권리 누리는 여성의 마지막 파티와 안락사 논쟁
죽을 권리 누리는 여성의 마지막 파티와 안락사 논쟁
  • 유영
  • 승인 2016.08.13 05:5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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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미국 캘리포니아 벤투라카운티 오하이 마을에서는 조금 특색 있는 파티가 열렸다. 파티를 연 사람은 벳시 데이비스, 행위예술가로 활동한 여성이다. 벳시는 친구들과 친지 30여 명을 집으로 초대했고, 1박 2일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파티의 규칙은 단 하나였다. 자신 앞에서 ‘절대 울지 않는 것’. 이 특별한 규칙을 제외하고는 파티 복장, 대화 주제, 즐기고 싶은 음악과 춤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규칙을 지키며 음악을 연주하고, 피자도 함께 먹고, 맛좋은 칵테일을 마시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파티가 끝날 무렵, 벳시는 파티에 참석한 이들과 석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과 인사하고 키스하며 인사를 나눴다. 인사를 마치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네 시간 뒤, 그는 친구들과 마지막 시간을 뒤로 하고 숨을 거뒀다. 

이날 파티는 ‘죽을 권리’를 누리는 벳시가 준비한 이별 파티였다. 벳시는 지난 2013년 루게릭 병에 걸렸다. 점차 몸은 마비되어 갔고, 전동 휠체어에 앉아 다른 이가 돌봐주지 않으면 무엇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벳시는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죽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의사의 도움을 받는 안락사를 선택했다. 

죽을 권리를 누리는 이별 파티를 연 벳시 데이비스

뉴욕에 사는 벳시의 친구 사진작가 닐스 앨퍼트도 캘리포니아까지 날아갔다. 닐스는 친구의 초대에 응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초대받은 모든 사람들은 데이비스를 위해 파티에 참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고 말하며, 벳시의 마지막 파티를 이렇게 기억했다.

"화가이자 행위예술가로서 벳시가 준비한 마지막 예술 연출이었다. 자신에게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선물하면서 지금과는 다른 예술의 세계로 떠났다고 생각한다.”

죽을 권리, 논쟁이 되다

벳시가 안락사를 선택한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여섯 번째로 허용한 주다. 안락사 허용 이후, 존엄한 죽음, 죽을 권리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벳시의 경우, 자신의 마지막을 웃음으로 함께하기 위해 친구들과 친척들을 모아 함께하는 시간을 보낸 특별한 경우다.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회는 지난해 9월, 10년 한시 법안으로 가결했다.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회복이 불가능한 말기환자에게 안락사를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은 오리건, 원싱턴, 몬태나, 버몬트, 뉴멕시코 주 순으로 안락사를 허가했다. 이 외에도 현재 20개 주 이상이 안락사 관련 법안을 논의하고 있다. 

안락사 규정은 보통 이렇다. 약을 먹을 수 있는 환자가 의사에게 여러 차례 서면으로 안락사 허가를 요청해야 한다. 이후 의사 2명 이상이 안락사를 승인해야 하고, 안락사 전 과정을 증인 2명 이상이 지켜보아야 한다. 안락사를 위해 약을 먹을 때 그 누구도 옆에서 도와서는 안 된다. 의사도 옆에서 아무 역할을 할 수 없다. 

현재 안락사를 선택하기 위해 거주지를 이전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3년 기준으로 오리건 주 안락사를 선택한 사람은 750여 명에 이른다. 안락사를 지지하는 여론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갤럽이 한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인 70%가 말기 환자에게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는 2014년 조사보다 10%가량 증가한 수치다. 

미국 전역에 안락사 입법화 논쟁은 죄종양으로 죽음을 앞둔 브리타니 메이나드가 안락사가 불법인 캘리포니아 주를 떠나 합법적으로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는 오리건 주로 이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촉발됐다. 캘리포니아 주는 지난해 10년간 한시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했다.

실제 안락사 인정은 많은 논쟁 속에서 논의됐고, 허용 이후에도 많은 논쟁을 낳았다. 캘리포니아에서 안락사가 논의된 건 지난 2013년, 뇌종양으로 투쟁하던 여성이 안락사를 위해 오리건 주로 이주해 죽음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자살, 자살방조 등을 두고 많은 논의가 오갔고,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자기 몸에 관한 권리로까지 논의가 이어졌다. 

여론은 안락사 인정이 다수를 점했지만, 의사들과 정치권에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강했다. 캘리포니아 의사협회는 의사가 환자의 죽음을 돕는 일이 ‘환자를 해하지 않는다’는 원칙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치인들은 의료비용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죽음을 강요받을 수 있다며, 안락사 허용을 반대했다. 더불어 안락사 법안을 이용한 살인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의사들도 생각이 많이 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 의사 2만 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54%가 안락사 허용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약물에 취한 상태로 죽는 날을 기다리기 보다는 사랑하는 가족과 작별 인사를 나누며 자기를 지키며 죽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 많았다. 정치권에서도 환자의 죽을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인식이 보편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늘어가는 안락사 인정

안락사 논쟁은 미국의 병리의사 잭 케보키언(Jack Kervokian)으로 불거졌다. 그는 130여 명의 불치병 환자들이 존엄한 죽음(안락사)을 선택하도록 도왔다. 루게릭 병 환자의 안락사 과정을 모두 촬영해 미국 CBS에 공개해 논란을 낳았다. 미시건 주는 케보키언이 안락사(당시 자살 조력으로 불렸다)를 돕지 못하도록 자살 조력을 할 경우 징역형이 가능하도록 법을 바꾸었다. 하지만 그는 안락사를 돕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캐보키언은 1999년 재판에서 2급 살인죄 명목으로 25년 형을 선고받았다. 재판 과정에서도 그는 사람들의 죽음을 돕는 일이 자신의 의무라고 주장했다. 유죄를 선고받고 감옥에서 지낸 그는 계속된 가석방 신청 끝에 2007년 모범수로 8년 2개월 만에 출소한다. 

죽음의 의사로 불린 잭 케보키언을 다룬 타임지 표지. 케보키언은 130여 명의 중증 환자 안락사를 도왔다.

감옥에서 그는 MSNBC 방송과 인터뷰를 통해 가석방 되면 자살 조력이 아닌 법 개정 캠패인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가석방 후 강연 활동을 통해 약속을 실천했지만, 기독교 단체는 그를 악마라고 비방하며 그의 캠패인에 반대했다. 캐보키언의 안락사 도움 사건은 북미에서 논의되는 안락사 논쟁의 단면을 보여 준다. 여전히 자살과 조력 자살 등으로 부르는 반대 세력과 논쟁이 일고 있다. 

많은 논란 속에서도 극심한 고통으로 죽음이 합리적으로 예견되는 환자에게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 개정은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 캐나다도 지난 2016년 1월 안락사를 합법화 했다. 스위스의 경우는 1942년 합법화 했고, 전문병원은 4곳에 이른다. 이중 1곳은 외국인 환자도 받고 있어 매년 200명 이상이 안락사를 위해 이곳을 찾는다. 네덜란드는 2000년, 독일은 2009년에 안락사를 합법화 했다.

프랑스는 2004년 중증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을 위한 음식과 수분 공급을 중단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됐다. 우리나라는 2009년 프랑스와 같은 소극적 안락사를 위한 법률을 인정하면서, 무의미한 연명 치료 장치 제러를 엄격하게 제한해 허용하고 있다. 벨기에와 콜롬비아도 사회적으로 안락사를 용인하는 분위기다. 

안락사를 합법화 하고 있는 곳에서는 자살과 자살로 위장한 살인을 막기 위해 까다로운 절차와 조건을 내걸었다. 통상적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암환자’, ‘고통을 이겨낼 방법이 죽음 외에는 없는 중증 질환’ 등의 경우에만 의사에게 안락사 소견을 물을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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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2016-08-15 04:54:46
앞으로 자살권과 매춘권이 인정될 듯. 그럼 신은? 마음의 위로 주는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시켜주는 존재. 물론 병도 낫게 하는. 세상은 병으로 가득하다고 하니. 갑자기 박근혜의 병걸리셨어요라는 말이 생각난다. 자기가 병에 걸린 사람은 남도 다 걸린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