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총체적 부실덩어리 대한민국을 비꼬다
리뷰] 총체적 부실덩어리 대한민국을 비꼬다
  • 지유석
  • 승인 2016.08.22 0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정우 주연의 [터널], 재난영화 보다 풍자에 가까워

터널이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그 속에 사람이 갇혔다. 자, 밖에 있는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김성훈 감독이 연출하고 하정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 <터널>을 보며 떠오른 의문이다. 영화의 시작은 느닷없다. 대게 재난 영화는 앞으로 닥칠 대재앙의 전조현상을 살짝 보여준다. 그러나 <터널>은 그렇지 않다.

<터널>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하도 터널은 그냥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그런데 이런 설정이 보는 관객에게는 익숙하다. 그 이유는 찾기 쉽다. 이미 우리는 멀쩡한 것 같았던 다리와 백화점이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학생들을 싣고 제주도로 출발한 세월호가 맹골수도에서 서서히 침몰하는 광경을 생방송으로 지켜봤다. 여기서 그쳤으면 모르겠다. 침몰하는 세월호에 탄 승객들은 애타게 구조를 기다렸다. 그러나 국가는 이들을 외면했고 오로지 대통령을 위시한 고위 공직자를 잘 모시기에만 골몰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터널>에서 구조상황을 총괄 지휘하는 부처 장관으로 여성이 등장하는 건 현시국의 풍자로 읽힌다.)

터널 속에 갇힌 이정수(하정우)는 처음엔 당황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상황을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이 역시 여느 재난영화와 궤를 달리하는 대목이다. 실베스터 스텔론 주연의 1996년 작 <데이라이트>를 살펴보자. 이 영화 역시 매몰된 터널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때 등장인물들은 거의 예외 없이 격한 반응을 보인다. 이 와중에 주인공인 실베스터 스텔론은 당황한 와중에도 특유의 침착성으로 주변인물들을 다독이고,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위기를 타개해 나간다.

그러나 이정수는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매몰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시점에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사람을 만난다. 민아라는 이름의 여성은 정수를 만나자 먼저 물을 찾고, 다음엔 전화를 요청한다. 정수는 민아의 면전에서는 알겠다고 하지만 내심 못내 못마땅해 한다. 민아가 자신의 반려견에게도 물을 주라고 부탁하자 정색하고, 민아와 엄마의 전화통화가 길어지자 또 정색한다. 그러다 민아가 죽음에 이르자 그때 비로소 민아를 돕지 못한 걸 아쉬워한다. 이 장면에서 정수 역의 하정우가 보여준 연기는 섬세하기 이를 데 없다.

정수의 행동을 보면서 분노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자. 나 하나 살기도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 옆에 있는 이가 애타게 구조신호를 보낼 때, 나는 정말 그 상황에서 내가 마실 물과 배터리 잔량이 얼마 남지 않은 전화기를 선뜻 내줄 수 있을까? 아마 나라도 정수 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터널>이 보여주는 상황은 얼핏 작위적인 것 같으면서도 무섭도록 현실적이다.

부실 대한민국의 공범은 ‘언론’

이 영화는 생각할 거리를 하나 더 던져준다. 영화가 언론을 다루는 방식은 호의적이지 않다. 터널이 무너져 내리자 긴급 상황실이 설치된다. 언론들이 이 장면을 그날 지나칠 리 없다. 한 언론사는 운 좋게 정수와 연락이 닿았고, 그래서 정수의 육성을 생방송으로 내보낸다. 방송사로서는 그야말로 특종이다. 그러나 이를 본 구조대장 김대경(오달수)은 노발대발한다. 만에 하나 정수의 휴대폰 배터리가 소진됐을 경우 정수가 더욱 위험해 처하는데, 방송은 아랑곳 하지 않아서다. 대경은 기자들에게 다가가 묻는다.

“기자님들, 방송이 중요합니까? 생명이 중요합니까?”

기자들은 이 질문에 우물쭈물한다. 그러자 대경이 재차 묻는다.

“이런 쉬운 질문에도 대답 못합니까?”

사실 현장의 기자들이 특종 욕심에서 한 발 물러나 상황을 냉철하게 고민했다면, 섣불리 정수와 접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대경이 던진 질문은 송곳처럼 폐부를 파고든다.

그럼에도 언론은 여전히 제 구실을 못한다. 구조작업 도중 하도 터널이 부실 덩어리임이 드러난다. 그래서 순탄하게 이뤄질 것 같았던 구조작업은 어려움에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구조작업에 참여한 인부 한 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일까지 벌어진다. 이러자 정수의 생사도 불분명한데 구조작업을 계속해야 하냐는 여론이 고개를 든다.

왜 이런 여론이 불거졌을까? 구조작업 때문에 제2터널 공사가 늦어지고, 그래서 이 공사로 이득을 얻게 될 토건업자들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이 여론몰이를 하지 않았다면, 그보다 구원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렸을 한 생명이 저기 갇혀 있고 그래서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그를 구해야 한다고 여론을 형성했다면 토건업자들의 불만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토건업계의 목소리를 대신 전했다.

이게 과연 영화만의 이야기일까? 사회적으로 중요한 쟁점이 불거질 때 마다 신문·방송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류 언론들은 재계와 정부의 나팔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즉, 힘 있는 자의 편에 서서 약자들의 아우성을 침소봉대했다는 말이다.

정수는 갇혀 있으면서 국가와 언론의 속성을 제대로 간파했나 보다. 정수가 끝내 세상 밖으로 나오자 취재진들은 늘 그랬듯 벌떼 같이 달려든다. 한편 윗선은 관계부처 장관이 온다는 이유로 구조헬기의 이륙을 지연시킨다. 이 와중에 취재진 중 한 명이 정수의 심경을 묻는다. 이러자 정수는 구조대장 대경의 입을 빌려 이렇게 외친다.

“다 꺼져 이 X새끼들아 !”

영화는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이었고, 재난영화이면서도 풍자의 성격이 강했다. 난 이 영화를 총체적 부실 덩어리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을 비꼬는 풍자영화로 봤다.

이 나라에 살다보면 언젠가는 나 역시 정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정수처럼 그 상황에 적응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세상 밖으로 나와 내 목소리로 외칠 것이다.

“다 꺼져 이 X새끼들아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