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 ‘길 위의 목사’ 영원히 잠들다
카이로스] ‘길 위의 목사’ 영원히 잠들다
  • 지유석
  • 승인 2016.08.23 0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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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는 고 박형규 목사의 장례예배가 기장 총회장으로 엄수됐다. ⓒ지유석

1974년 유신 시절 대표적인 시국사건인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을 비롯해, 여섯 차례나 옥고를 치르며 불의한 정권에 맞섰던 고 박형규 목사(1923~2016)가 22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장례예배가 열린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은 고인에겐 각별한 기억이 서린 곳이다. 7,80년대 군사독재 시절 조에홀에서는 목요일마다 기도회로 모여 이 땅에 공의가 하수처럼 흐르기를 간구했다. 이 목요기도회의 결성계기는 바로 민청학련 사건이었고, 박 목사는 목요기도회에서 발언하기도 했다. 

예배 분위기는 침통하기 이를 데 없었다. 민청학련 사건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던 이철 민청학련 계승사업회 회장은 조사를 읽다가 흐느끼기도 했다. 이 같은 침통함은 비단 생전의 고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발로만은 아닐 것이다. 

2008년 이명박 보수정권 집권 이후 민주주의는 후퇴하는 징후가 역력했고, 급기야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시간은 유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양상이다. 

고인은 군사독재에 맞서 몸을 던졌건만, 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으니 고인을 보내는 심경은 이루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아마 고인 역시 마음 편히 떠나지 못했으리라. 

삶 자체가 민주화 운동이었던 고 박형규 목사님, 부디 독재도 없고 부당한 억압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쉬소서.

[2016.08.22.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

지난 18일 소천한 고 박형규 목사의 시신이 담긴 관. ⓒ지유석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열린 고 박형규 목사 장례예배에서 참석자들이 고인의 관에 헌화하고 있다. ⓒ지유석
장례예배를 마친 뒤 운구행렬이 한국기독교회관을 나서고 있다. ⓒ지유석
고 박형규 목사의 친동생인 박희원 권사가 부축을 받으며 운구행렬을 따르고 있다.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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