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의 재평가, 숨겨졌던 상징 7개의 의미
[설국열차]의 재평가, 숨겨졌던 상징 7개의 의미
  • 하지율
  • 승인 2016.08.25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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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국열차>는 내 인생 영화다.ⓒ CJ E&M

나의 '인생 영화'는 <설국열차>다. 이 영화는 지구온난화와 인공냉각제 살포로 인류가 자초한 빙하기를 배경으로 한다. 인류 최후의 생존자들이 자급자족 시스템을 갖춘 세계 일주 열차에 탑승한 지 18년째가 되는 시점이 다가오고, 단백질 블록으로 연명하는 꼬리 칸 사람들과 열차의 자원을 독점한 앞칸 사람들은 서로 계급투쟁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의 뼈대가 자연스레 드러나고, 관객은 해야 할 일이 많다.

영화의 장면 장면마다 상징들이 흩뿌려져 있어서 '숨은그림찾기'하듯 미리미리 찾아내 뼈대에 살을 붙일 준비를 하지 않으면, 결말에서 앙상한 허무함만 남을 수도 있다. 그러나 퍼즐 조각을 당장 많이 발견하지 못해도 괜찮다. 이 영화는 한번 보고 말 영화가 아니다. 인생을 살아가다가 가끔 다시 돌려보며 스스로 세상 보는 시야가 얼마나 넓어졌는지 시험해보기 좋은 영화다.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자주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

① 남궁민수 ② 담배

영화 <설국열차> 남궁민수(송강호). 열차의 보안설계자. ⓒ CJ E&M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어떤 상징들을 발견해낼 수 있는지, 몇 가지 사례만 들어보고자 한다. 우선 영화에서 꼬리 칸 사람들은 머리 칸 엔진실을 장악해 열차의 지배자 윌포드(애드 해리스 분)를 죽이고 지도자를 교체하고자 혁명을 일으킨다. 그다음 열차의 보안설계자 출신인 남궁민수(송강호 분)를 감옥에서 빼내 앞칸으로 가는 문을 열어달라 요구한다.

꼬리 칸 사람들은 17년 동안 좁고 더러운 공간에서 단백질 블록으로 연명한 데다가, 앞칸 사람들의 핍박을 받아 흥분해 있는 상태다. 그런데 남궁민수는 이들을 앞에 두고 뜬금없이 담배를 꺼내 핀다. 그러자 꼬리 칸 사람들 사이에서 "말보로 라이트?"하는 탄성이 터져 나오고 다들 담배 연기에 황홀해 한다. 담배는 열차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영화 속 주요 등장인물인 티미의 엄마는 이 자리에서 '맙소사 말보로 라이트?'라며 반응을 보인다. 이때 남궁민수가 꺼낸 말이 걸작이다. "너도 한번 빨아보고 싶냐?" 문을 열어달라는 사람들의 말에 대뜸 담배부터 꺼내고 반응을 살피는 남궁민수. 그는 인간의 본성을 꿰뚫고 있었다.

담배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꼬리칸 사람들도 결국 욕망을 가진 인간이라면, 이들이 앞칸을 차지해도 근본적으로 바뀌는 건 없지 않을까 남궁민수는 시험해본 것이다. 한편 남궁민수가 열차의 구조를 꿰고 있는 보안설계자다. 열차가 사회의 은유라면, 인간의 본성을 꿰고 있고 기존의 사회구조를 정당화하는 사상적 토대를 마련하기도 하고 해체도 하는 사람들은 누굴까. '철학자'다. 남궁민수는 '철학자'의 은유다.

③ 크로놀 ④ 요나

크로놀. 마약이자 폭탄이 될 수 있는 위험한 물질.ⓒ CJ E&M

어쨌든 남궁민수는 무슨 생각인지 일단 꼬리칸 사람들에게 협조하기로 한다. 단, 조건을 제시한다. 문 하나 열 때마다 산업폐기물인 '크로놀'을 두 개씩 달라는 것이다. 크로놀은 앞칸 상류층들 사이에서 마약 대용으로 쓰인다는 소문이 있었으므로, 꼬리 칸 사람들은 남궁민수가 약물 중독자인 줄 편견을 갖게 된다. 하지만 결말에서 남궁민수가 크로놀을 모은 이유가 마약 대용이 아닌 폭탄으로 쓰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반전이 드러난다.

남궁민수가 진짜 열고 싶은 문은 앞칸으로 가는 문이 아니라 열차 바깥으로 나가는 문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열차 내 싸움에 집중할 때, 혼자 바깥세상의 기온이 낮아지는 징후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결국 크로놀은 '철학'을 상징한다. 크로놀을 '뭉쳐서' 폭탄을 만든다는 설정도 재밌다. 철학은 사람에 따라 지적 유희에 그칠 수도 있지만,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힘을 가질 수도 있다. 크로놀이 마약이 될 수도 있지만 인화물질이 될 수도 있듯.

또한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왜 문 하나를 열 때마다 남궁민수는 크로놀을 받는가. 열차의 칸은 인류의 역사와 질서들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시대가 바뀔 때마다, 혹은 열차의 질서를 알게 될 때마다 인류가 교훈을 얻게 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남궁민수가 커티스에게 '미래 세대'를 상징하는 딸 요나(고아성)에게 크로놀을 꼭 챙겨주고, 커티스에게 "앞으로 가려면 얘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추론과 잘 어울리는 대목이다.

④ 예카테리나 다리의 상징들

예카테리나 다리와 세 번의 폭발은 인류의 역사를 상징한다.ⓒ CJ E&M

이 영화에서 많은 상징이 쏟아지는 건 열차가 예카테리나 다리를 통과하기 전후, 물 공급 칸 앞칸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서다. 요나에게는 앞칸의 상황을 미리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는 투시력인 줄 알지만, 트레인 베이비(열차에서 태어나 땅을 못 밟아본 신인류)이기 때문에 청각 능력이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요나가 전투가 벌어지기 전 문을 열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는 찰나.

간발의 차이로 남궁민수가 문을 열어버리고, 꼬리 칸 사람들은 도끼와 창으로 무장한 십자군 같은 복장의 괴한들과 마주한다. 그런데 이 괴한들은 전투를 치르기 전 웬 물고기의 배를 가르는 의식을 치른다. 나중에 물고기는 수족관 칸에서 스시로도 등장하는데, 수족관의 생태계 균형이 최적으로 맞아떨어질 때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

따라서 물고기는 '균형'을 상징한다. 이처럼 열차 내에는 아무런 이유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소품은 하나도 없다. 전쟁은 많은 희생을 동반하지만(물고기의 배를 가르는 의식), 결과적으로 인구수를 줄여(스시가 된 물고기) '균형'을 이루기도 한다. 결말에서도 커티스가 주동한 혁명도 결국 윌포드의 빅 픽쳐(큰 그림)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커티스가 충격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어쨌든 전투가 한창 벌어지던 중, 승무원이 뜬금없이 "승객 여러분, 예카테리나 다리를 통과합니다!"라고 말한다. 괴한들은 전투를 멈추고 갑자기 "10, 9, 8, 7..." 카운트를 한다.

그리고 "해피뉴이어!" 하고 외치더니 꼬리 칸 승객들도 환호성을 지른다. 그 뒤에 산사태로 무너져 선로까지 침범한 얼음덩어리를 열차가 통과해야 하는 위기가 닥친다. 딱 세 번. 산사태가 났다는 것은 눈이 녹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열차가 계속 운행을 해야 할 당위성도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다. 열차가 '자본주의'를 상징한다면, 세 번의 충돌은 '1차 대공황' '2차 대공황'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상징으로 읽힌다.

이때 사람들은 꼬리칸, 앞칸 할 것 없이 웅크려 열차가 무사 통과하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해 하고, 오직 남궁민수만 똑바로 서서 창밖을 유심히 관찰한다. 이 장면은 대부분의 사람이 기존의 틀 안에서 경쟁하지만 결국 그 틀을 벗어날 생각은 못(안) 하기는 똑같다는 현실을 풍자한 듯 보인다. 한편 예카테리나 다리를 무사히 통과한 후, 다시 전투가 벌어지는데 이때 영국 영어를 쓰는 열차의 2인자 메이슨 총리(틸다 스윈튼 분)가 등장한다.

그리고는 꼬리 칸 사람들에게 "너희들 중 74%가 죽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앞칸 괴한들이 일제히 야간 투시경을 쓴다. 꼬리 칸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하자 남궁민수가 커티스에게 다가와 "너네 완전 X됐다. 이 꼬리 칸 촌놈들아. 원래 예카테리나 다리 지나면 긴 터널이 나와"라고 알려준다. 이 장면은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제3세계 침략을 의미한다. 제3세계 국가들은 제국주의 침략 당시 근대 문물에 어두웠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는 무리한 해석이라 보기 어려울 것이다.

야간 투시경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앞선 '기술', 또 그 기술을 통한 '무기체계'를 상징하고, 긴 터널이란 '침략과 착취'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란 '선택과 집중'을 기본 속성으로 갖는다. 더 많은 경제적 부(富)를 창출할 수 있는 우수한 집단을 택해 자원을 몰아줘야 효율적이라는 사고방식이다. 자원은 한정돼 있으므로 내수 시장을 장악하고 착취가 거의 이뤄지면, 해외 식민지로 눈을 돌린다. 왜 경제 위기 이후 이런 일들이 생길까.

노동자는 단순히 노동자이기만 한 게 아니라, 상품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노동자를 착취하면 물건이 안 팔려 재고가 쌓이게 되고, 그 결과 기업도 도산하고 다시 노동자가 직장을 잃는 연쇄적인 악순환이 벌어진다. 이 위기를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고, 위기만 넘기면 다시 침략과 착취를 반복하게 된다.

⑤ 불

내가 생각하기에 불은 인간의 '인정투쟁'을 상징한다.ⓒ CJ E&M

어두운 터널에서 앞을 볼 수 없는 꼬리칸 사람들은 앞칸 괴한들에게 무참히 도륙 당한다. 그런데 커티스는 번뜩 남궁민수에게서 챈이라는 동양인 꼬마가 성냥을 가져갔다는 사실이 떠올라 "챈! 불이 필요해!"를 외친다. 그리고 챈이 성냥 불을 켜고 점점 횃불로 번지며 꼬리 칸 사람들은 반격에 성공하는데, 나는 이 장면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왜냐하면 불은 제3세계 국가들의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인간의 '인정욕구'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대 사회연구소 악셀 호네트 소장의 <인정투쟁>에 따르면, 인간은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존엄성, 정체성을 무시당하며 '울분(도덕적 분노)'을 경험하며 인정받고자 하는 '인정투쟁'을 벌인다. 때때로 그것이 더 많은 사람이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로의 진보를 끌어낸다.

인정욕구는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정욕구 자체는 순수한 심리적 에너지 그 자체다. 마치 불 자체는 순수하고 인간이 그것을 쓰기 나름인 것처럼. 인정욕구도 '어떤 방향으로' 분출되느냐가 중요하다. 앞서 담배가 '욕망'을 상징한다고 했는데, 담뱃불조차도 결국 불이므로 인정욕구가 왜곡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인정욕구는 세상의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필수 요소다.

철학자가 아무리 철학을 열심히 해도 사람들이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하지 못하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남궁민수가 아무리 크로놀(관념덩어리인 '지식')을 열심히 모아도 불을 댕길 수 없다면 열차의 문을 열 수 없듯이. 크로놀은 불을 붙여야 폭발하고(에너지, 곧 '인정욕구'이자 '분노'), 이론은 실천과 결합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⑥ 엔진 ⑦ 희생

윌포드는 소수의 희생이 다수의 행복이고 곧 '균형'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CJ E&M

우여곡절 끝에 커티스는 열차의 머리칸 엔진실에 도착한다. 윌포드와 최후의 대화를 나누며 커티스는 충격적인 열차의 비밀을 알게 된다. 자신이 존경하던 꼬리칸의 성자 길리엄(존 허트) 역시 윌포드와 내통하던 파트너였고, 자신의 혁명조차 열차의 적정 인구의 균형을 맞추려고 무력 충돌을 조장한 윌포드의 빅 픽쳐의 일부였다는 것을. 길리엄과 윌포드는 종교와 정치의 암묵적 유착관계를 상징한다.

길리엄은 열차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인류 존속의 차선책이라 생각해 예카테리나 다리에서 혁명을 끝내도록 윌포드와 당초 협의했다. 그러나 꼬리칸이 '불'로 반격하는 변수가 생겼고, 엔진실까지 차지하겠다는 커티스의 강한 의지를 적극 만류하지는 않는다. 길리엄도 막판에 희망을 가졌던 것 같고 그 대가로 윌포드의 심복에게 총살당한다. 충격에 빠진 커티스에게 윌포드는 자신은 늙었다며 지도자를 맡아달라 회유하기 시작한다.

윌포드: 사람들이 적당히만 미쳤다면 열차에서 살아남기 쉽겠지. 불안, 두려움 등은 적정하게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어. 만약 균형이 깨질 경우 우리가 만들어야지. (커티스를 엔진실로 데려가며) 어때? 편안하지? 평화롭고? 난 내 일생을 여기에 바쳤어. 영원한 엔진. 이 자체로 영원한 것. 기억하게. 구역과 구역이 나뉘어 있고 또 그대로 나뉘어 있을 거야.

이것이 다 무엇 때문인가? 열차를 위해서야. 지금 인구수가 딱 적당하고 모두 제 위치에 있지. 이것이 다 무엇 때문인가? 인류를 위해서야. 열차가 곧 세계고 우리가 인류야. 자네에게는 인류를 지도할 신성한 의무가 있어.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멸종할 거야. 지도자 없이 인류가 어떻게 되는지 자네도 이미 알지 않는가. 서로를 삼켜대지. 그게 사람이야.

이 대사는 지배 계급의 '영원함'에 대한 강박증과 강력한 '대인 불신'을 상징한다. 사회심리학의 공포관리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행동의 강력한 동기이자 원초적 감정인 '생존 공포'에서 오는 불편함을 관리하려는 심리가 있다. 살고자 하는 본능이 있지만 자신이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두 심리 사이의 마찰에서 오는 불안함을 방지하려고 한다.

어떻게? 문화와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서로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게 관리하고 통제하고, 거기에 자신을 귀속시켜 상징적인 불멸성을 획득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다. 꼬리 칸 사람들 74%는 죽어도 엔진은 영원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엘리트만이 세상을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윌포드처럼. 따라서 엔진은 '구질서'를 상징한다.

하지만 '영원함'과 '완벽함' 사이에는 어떠한 논리적 연결고리도 없다. 영원한 것은 완벽한 것이 아니며,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만물은 변화한다. 문화가 '구성'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문화에 현실을 끼워 맞추는 게 아니라 현실에서 출발해 문화를 '재구성'할 수도 있다. 그것은 미래 세대의 몫일지도 모른다.

윌포드의 제안에 잠시 흔들렸던 커티스는 요나가 엔진실 바닥에서 흑인 꼬마 티미를 발견하자 인간성에 눈을 뜬다. 엔진은 이미 망가져 가고 있었고 작은 체구의 티미를 부품 대신 일 시킬 정도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커티스는 자신의 팔 하나를 희생해 티미를 꺼내고, 요나에게 성냥을 건네며 남궁민수가 만든 폭탄에 불을 붙여 문을 날려버리라고 한다.

그리고 열차 폭발 직전 커티스는 남궁민수와 함께, 요나와 티미를 끌어안아 보호한 뒤 산화한다. 희생은 인간 본성의 또 다른 가능성, 즉 '이타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폭발의 충격으로 산사태가 일어나 열차가 산산이 조각나고, 남궁민수의 딸 요나와 티미가 생존해 언덕 저편에 북극곰을 발견하며 영화는 끝난다. 새 세상, 새 세대에게 바톤이 넘어간 것이다. 그런데 자칫 일부 관객들은 이런 결말에서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가장 흥미로운 신 중 하나였던 '교실칸'ⓒ CJ E&M

‘사회구조 자체를 넘어서야 한다'라는 말은 원론적으로 옳지만, 사회구조도 영화처럼 간단히 날려버릴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객 스스로 '어떻게?'에 답할 수 없다면 허무함을 느끼기 쉽다. 혹은 사회구조를 바꾸면서 생길 막대한 희생이 두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설국열차>는 '열린 결말'을 연출하고자 애쓴 티가 역력한 영화다.

사회구조를 바꿀 때 막대한 희생이 필연적이라면 시체라도 나뒹구는 걸 보여줘야 했는데 이 영화는 그런 장면을 다 빼버렸다. 오직 열차만이 처참하게 박살 난 장면만 보여준다. 종말영화는 세대교체가 중요한 이슈다. 따라서 이들의 (예상된) 죽음은 인류의 희생이라기보다는 구체제의 종말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현실적인 문제, 즉 어떻게 새 세상의 문을 열 것이냐다. 누차 강조하지만 크로놀은 '철학'을 상징하고 불은 인간의 '에너지'를 상징한다. 사람은 자신의 철학을 가질 수 있을 때,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나는 이 영화의 중반 중요한 장면을 발견했다. 바로 교실 칸 장면이다.

교실 칸에서는 교사와 지식인(egg-head)이 아이들에게 열차의 질서를 신성시하도록 세뇌교육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 직후 교사와 지식인이 숨겨뒀던 총을 꺼내 꼬리칸 사람들을 가장 많이 학살한다. 교육의 무서움이다. 결국 우리가 남궁민수나 커티스 같은 메시아가 도래하기를 기다리지 않는 이상, 미래 세대에게 크로놀과 불을 분배해 그들이 메시아'들'이 될 기회를 주는 수밖에 없다. 우리 인류는 철학자가, 혁명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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