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던지는 기자는 어떻게 좌절하는가
질문을 던지는 기자는 어떻게 좌절하는가
  • 하지율
  • 승인 2016.08.31 0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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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트루스], 진실을 지향하는 언론인들의 숙명

언론인은 과연 강자일까. 미디어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분명 영향력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 트루스(감독 밴더빌트)는 이러한 상식이 현실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으며, 질문을 던지는 언론인들이 어떻게 좌절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우선 언론인이 여론에 '일 대 다수'로 공격을 받게 되면 반론을 하기가 무척 불리하며, 특히 기자 보호보다 회사 보호가 우선인 언론사 소속이라면 안팎에서 이중의 압력까지 견뎌야 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생각은 단편적으로 일리가 있지만, 언론인이 받는 그런 압력의 전부 또는 일부가 부당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평소 언론인에게 영향력이 허용될 때는 정당한 문제 제기를 할 경우로만 제한된다. 하지만 정작 언론인이 부당한 '일 대 다수'의 공격을 받았을 때는 그 영향력을 온전하게 행사해 자신을 보호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언론인은 강자'라는 명제에 무조건 동의하기란 힘들다.

영화 <트루스>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소니 픽처스 클래식스

언론, 그리고 여론

물론 언론인의 활동에 전부/일부 부당한 과정이 있었다면 여론의 피드백은 정당하다. 그럴 경우 언론인이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대개의 논란의 경우 언론인이 현재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독립적인 가치와 진실을, 과거 행적이나 사생활 등 자질구레한 가십거리들과 분리시키기란 언론인 혼자 힘으로 불가능하다는데 있다.

대중이 사건과 직접적 상관이 없는 일까지 끄집어내 이미 해당 언론인의 정체성에 대한 단정을 짓고 낙인을 찍는 방향으로 여론이 걷잡을 수 없게 흘러가는 이상. 언론인 개인의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창구를 벗어난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된다는 대안조차 개인의 활동을 제약하는 불평등한 성격을 자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일련의 상황들이 안겨다 주는 고통은 25년의 베테랑 언론인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트루스>는 2004년 조지 부시 대통령 재선 당시 병역비리 보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주인공은 미국 CBS의 시사 고발 프로그램 '60분'의 총괄 프로듀서였던 메리 메이프스(케이트 블란쳇)이다. 부시가 베트남전 참전을 기피할 목적으로 주 방위군에 청탁으로 들어갔었고 그마저 훈련을 기피했다는 논란이 있자 메리는 팀을 꾸려 취재에 나선다.

영화가 보여주는 '60분' 팀의 취재 과정들은 사실 관객에 따라 지루하거나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미 해당 사건의 내막을 잘 아는 입장이면 자칫 지루할 수 있고, 잘 모르는 입장이면(특히 미국 사정에 그다지 밝지 않은 한국인 관객들은)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실화 바탕의 영화들은 별다른 반전이 없어 재미의 굴곡도 느끼지 못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핸디캡들이 <트루스>의 감상을 크게 방해할 정도는 아니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보는 여론 

인터넷에는 메리의 과거 행적, 사생활 등이 공개되며 악플이 달린다.ⓒ 소니 픽처스 클래식스

왜냐하면 <트루스>는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보는' 여론에 의해 메리와 메리의 팀원들이 겪는 고통, 사실과 진실, 이익과 의무 사이의 뜨거운 쟁점들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큰 줄기만 놓치지 않는다면 이러한 메시지들은 티켓값이 아깝지 않은 교훈과 여운을 남긴다.

우선 부시의 병역비리에 관한 논란이 있었고 관련자 대부분이 증언을 기피했지만, 어렵사리 섭외한 제보자가 제시한 문서를 바탕으로 취재는 급물살을 탄다. 해당 문서에는 부시의 군 복무 시절 상관이 부시가 공군 조종사 훈련에 장기간 불참해 평가를 내릴 수 없을 정도라는 내용과 서명이 있었다. '60분' 팀은 우선 문서의 진위를 판별하려고 한다.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자 일부는 진짜가 맞다는 소견을 일부는 문서에 등장한 어깨 글자 'th' 입력 기능이 당시 타자기에 없었다는 소견을 낸다. 하지만 다른 전문가가 당시 타자기 중 일부에 'th' 입력 기능이 있었다는 반론을 하면서 메리는 보도를 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정작 보도 후의 논란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한 유명 블로거가 '60분' 팀이 공개한 문서는 컴퓨터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로도 똑같이 구현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글을 올린 것을 계기로, '부시 병역비리 의혹'이 'CBS 문서 조작 의혹'으로 변질되며 이슈가 산으로 가기 시작한 것이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증언을 하기로 했던 제보자들은 발을 빼거나 말을 바꾸고 불신을 드러내는 등 엎친 데 덮친 격이 된다.

60분 팀은 비슷한 시기 공식 문서들을 뒤져 어깨 글자 'th'가 쓰인 경우까지 찾아내고 전문가 인터뷰 등을 보충하는 등 각고의 노력으로 반론 보도를 내보내 '대통령이 병역 의무를 정말 충실히 이행했느냐'라는 본질에 집중해달라 호소하지만, 여론의 흐름은 이미 60분 팀의 힘만으로 되돌릴 수 없었고 인터넷에는 메리의 과거 행적, 사생활 등이 공개되며 악플이 달린다.

진실을 지향하는 '언론인'의 존재 

사실 조사관들이 그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걸 메리는 알고 있었다. 여론과 마찬가지로 답을 이미 정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니 픽처스 클래식스

회사까지도 '대중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며 진실을 지향하는 언론의 의무는 버리고 이익을 더 중시하는 태도로 60분 팀을 압박한다. 결국 회사 측이 '60분' 간판 앵커이자 메리의 오랜 동료 댄 래더(로버트 레드포드)에게 억지로 사과 보도를 맡게 하고 메리와 팀원들은 내부 감사까지 받는다. 수십 년간 숱한 공격을 버텨왔을 댄과 메리조차 술과 신경안정제로 버티는 모습은 이러한 일들이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부시가 정말 병역비리를 저질렀고 문서가 진짜인지 '사실'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정황들이 그것이 '진실'이라 가리켰다. 주 방위군은 굳이 부시 같은 새 조종사를 양성할 이유가 없었고, 당시 고위층 자제들이 베트남전 참전을 기피할 목적으로 주 방위군에 들어가는 병역비리가 만연했고, 전문가가 문서의 서명이 부시 상관의 서명과 동일하다고 감정을 내렸다.

이 상황에서 메리는 '대통령이 병역 의무를 정말 충실히 이행했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 언론인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메리는 조사 마지막 날 왜 자신에게 다른 팀원들에게 하듯 정치 성향을 묻지 않았냐고 조사관들에게 묻는다. 사실 조사관들이 그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걸 메리는 알고 있었다. 여론과 마찬가지로 답을 이미 정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론은 단지 진실에 대해 알고 싶지 않은 시기에 메리가 질문을 던진 게 못 마땅했고, 그런 메리의 행동을 간단히 기각하고자 '진보좌파'라는 낙인을 찍었다. 메리의 모든 행동은 '진보좌파'이기 때문이라고 해석됐고, 기어이 진실과 진실을 향한 언론의 의무는 없는 개념처럼 무시됐다. 메리의 정치 성향은 언론인 메리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왜 문서가 조작됐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느냐는 추궁에 메리는 끝까지 의무로 반문한다.

해당 문서가 정말 조작됐다면, 조작한 사람은 수십 년 전 군사 용어와 타자기 제원, 부시 주변 인물들의 관계, 또 그들의 심리까지 완벽하게 숙지할 정도여야 한다. 그런 사람이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로 문서를 허술하게 조작했을 것이라고 보고 '대통령이 병역 의무를 정말 충실히 이행했느냐'라는 질문을 포기하는 게 언론인으로서 해야 할 선택이었냐는 것이다.

질문을 남긴 메리는 결국 해고된다(역설적이게도 메리를 해고한 CBS는 후일 메리의 보도로 언론상을 받는다). 또한 영화는 "용기를 내세요"라는 댄의 마지막 방송 멘트를 듣고 메리가 남편과 산책을 나가며 끝이 난다. 댄이 남긴 다음과 같은 말은 진실을 지향하는 '언론인'의 존재 이유를 잘 설명해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질문하는 기자는 계속 대중의 불신을 견뎌야 할 것이라는 숙명도 예고하는 것 같아, 슬프고 두렵다.

"질문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패배한 거야. 계속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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