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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이대로 두면 국민 생명 위험해져”리뷰] 국정원 간첩조작 파헤친 다큐영화 <자백>

“지금 공영방송은 언론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상태가 됐다. 공영방송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자백>을 굳이 영화로 만들 필요도 없었다.”

<자백>을 감독한 최승호 뉴스타파 앵커가 지난 5일 오후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있었던 기자간담회 석상에서 밝힌 연출의 변이다. 최 감독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자백>은 지난 2012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우성 씨 사건을 중심으로 국가정보원(국정원)의 간첩조작 행위를 고발한다. 영화를 통해 드러난 국정원의 조작 행위는 경악 그 자체다. 1970년대 군사독재 시절처럼 무조건 붙잡아다 패고 두드리고, 성폭행을 가하는 일은 없어졌다. 그러나 국정원의 심문 기법은 더 교묘해지고, 더 악랄해졌다. 

간첩 조작 사건을 취재하며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질문하는 최승호 감독.

그런데 이 지점에서 문득 언론의 역할을 떠올려 보게 된다. 국정원의 간첩조작 행위를 고발하는 일은 신문, 방송의 몫이라고 본다. 비단 이 주제들뿐만 아니라 천안함 폭침을 둘러싼 의혹이나, 물신주의에 찌든 한국교회의 현실을 고발하는 일 역시 저널리즘이 감당해야할 주제들이었다. 그러나 최 감독의 변대로 지금은 공영방송이 공영방송이 아니다. 그래서 이들 주제들은 각각 <천안함 프로젝트>, <쿼바디스> 등 다큐멘터리로 세상에 나왔다. <자백>은 그 연장선이다. 

극 전개는 무척 긴박하다. 극중 최 감독은 뛰고 또 뛴다. 동행하던 카메라 기자의 발걸음도 더불어 분주하게 움직인다. 최 감독의 분주한 발걸음은 중국, 일본 등 국경까지 넘나든다. 반면 사건 담당 검사는 앵무새처럼 ‘재판에서 이야기하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한다. 국정원 수사관들은 카메라가 자신을 비추자 얼굴을 가리고 줄행랑치기 일쑤다. 일국의 정보기관 수장을 지낸 원세훈도,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모습이 비루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영화는 끝까지 냉철함을 잃지 않는다. <다이빙벨> 처럼 감정의 과잉도 없고, <쿼바디스> 같은 유머도 없다. 흡사 피가 뚝뚝 묻어나는 듯하다. 

정보기관의 존재의미는 국민의 안위 

영화를 보면서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보고난 뒤엔 슬픈 감정이 몰려왔다. 그 이유는 이렇다. 정보기관의 존재의미는 국민의 안위다. 지난 1979년 이란 주재 미 대사관에서는 인질극이 벌어졌다. 그런데 인질극이 벌어지기 앞서 여섯 명의 미국인 직원은 극적으로 대사관을 빠져 나와 이란 주재 캐나다 대사관저에 몸을 숨겼다. 미 중앙정보부(CIA)의 토니 멘데즈 요원은 이들을 무사히 미국으로 데려왔다. 멘데즈 요원은 대담하게도 영화 제작자로 위장하고 혁명으로 뒤숭숭한 이란에 잠입해 구출 작전을 벌였다. 

이스라엘 모사드는 어떤가? 1950년 모사드 요원들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아르헨티나로 도주한 홀로코스트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붙잡아와 법정에 세웠다. 그뿐만 아니다. 1976년 이슬람 급진단체 와디 하다디파 소속 테러리스트들은 유대인 승객이 다수 탑승한 에어 프랑스기를 납치해 우간다 엔테베 공항으로 향했다. 모사드 요원들은 케냐에 본부를 차린 다음 끈질긴 추적 끝에 테러범들의 소재를 알아냈다. 이후 이스라엘군 특수요원들이 출동해 단 5분 만에 인질들을 구출해 냈다. 모사드의 정확한 정보력은 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일등공신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권 첫 국정원장에 남재준을 임명하면서 국정원을 모사드와 같은 정예 부대로 만들라고 주문했다. 이 같은 주문이 무색하게 국정원은 간첩조작이 들통나 망신을 당했고, 남재준 원장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국제분쟁 전문기관인 국제위기그룹(ICG)이 보고서를 통해 “정보의 정치화, 정치개입이라는 고질병을 앓고 있다”고 지적했을 정도로 국정원은 외국에서도 골칫거리다. 

MBC 해직 언론인이자 현 <뉴스타파> 앵커 최승호 감독. ⓒ지유석

이렇듯 우리에겐 정보기관이 국민에게 감동을 준 기억이 별로 없다. 그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그림자 정부로 국민 위에 군림했을 뿐이다. 사실 이 같은 행태는 심각하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미·일·중·러 등 4대 강국의 이해가 교차하는 민감한 지역이다. 이 같은 열악한 안보환경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려면 강력한 정보기관의 존재는 필수다. 이스라엘이 모사드라는 정예 정보기관을 구축한 이유도 이스라엘이 처한 열악한 안보상황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정원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간첩조작이라는 못된 버릇을 버릴 줄 모른다. 그런데 현 박근혜 정권은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켜 국정원에게 더 큰 권력을 줬다. 참으로 무섭고도 슬픈 일이다. 

과연 국정원이 환골탈태할 수 있을까? 최승호 감독은 ‘국정원 스스로 변할 일은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정원이 남북간 중요한 쟁점에 거짓정보를 흘려 큰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 생명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이라크 전쟁은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거짓 정보로 일어났다. 이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었나? 남북관계는 이보다 더한 화약고다. 불꽃만 하나 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국정원에 일상적으로 거짓말을 사살상 허용하는 상황이라면 미래세대 현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국민이 국정원을 바꿔야 한다.”

국민이 국정원을 바꿔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그런데 세월호 진상규명도 해야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도입도 막아야지, 위안부 문제도 정의롭게 풀어야지, 이 시대 국민들이 짊어져야 할 짐이 너무 많다. 결국 국민들의 안위를 지켜줄 정보기관을 갖는 일은 남의 나라 이야기인 것만 같아 더더욱 슬프다. 

지유석  luke.wyclif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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