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섬에는 슬픈 진실이 여전히 잠들어 있다
평화로운 섬에는 슬픈 진실이 여전히 잠들어 있다
  • 유영
  • 승인 2016.09.10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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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수 교수 뉴욕대 강연회, "미군정 잘못 인정하도록 미국 학계와 연대해 나갈 것"
<4·3과 미군>을 출간한 허상수 교수가 뉴욕대학교에서 강연회를 열었다. ⓒ<뉴스 M> 경소영

제주4·3은 여전히 마무리 짓지 못한 사건이다. 그렇다고 미제 사건으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범인이 누구인지 몰라서가 아니다. 지난 2003년 10월 31일 고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권력을 대신해 사과했다. 하지만 이후로 진척된 일은 없다. 책임자 처벌도, 관련자가 재판에 서는 일도 없었다. 역사 교과서에 제대로 기록되지도 않았다. 미제 사건 아닌 미제 사건으로, 왜곡된 역사로 남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제주4·3 진실 규명을 위해 연구하고 활동한 이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허상수 교수(성공회대)가 꼽힌다. 반평생 이 사건을 연구해 왔다. 지난 4월에는 제주4·3에 미군정이 연관되어 있다는 연구서인 <4·3과 미국>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미국의 성찰과 반성을 끌어내기 위해 워싱턴과 뉴욕 등 미국 동부를 찾았다. 미국 학자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미국의 실제적 사과를 촉구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교민들의 노력으로 뉴욕에서 제주4·3을 알리는 강연도 진행했다. 

허 교수의 강연은 지난 9일 뉴욕대학교(NYU) 열렸다. 강연이 확정된 건 며칠 전 일이다. 평소 한국 현대사와 제주4·3 등에 관심이 많던 NYU 권준희 교수와 과학 교사 김은주 박사가 허 교수 미국 방문 소식을 듣고 긴급히 자리를 마련했다. 짧은 홍보 기간이었지만, 15명의 한인과 미국인이 자리를 찾았다. 

뉴욕대학교에서 진행된 이번 강연회에는 미국인 참석자와 한인 15명이 강연에 참석했다. ⓒ<뉴스 M> 경소영

미국의 대표적 대학 중 하나인 NYU에서 이뤄진 허 교수의 강연은 진실을 알리는 데 초점을 두었다. 최근 출판한 <4·3과 미국>에 담긴 내용이 골자였다. 제주4·3을 모르는 이들을 위한 사건 소개와 제주4·3평화재단 의뢰로 미국 기록문서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사료들을 보이며 미국의 연계 지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미국과 소련 때문에 한반도가 분단되었다. 남한은 3년간 미군 군사정부의 철권통치를 받았다. 미군의 가장 큰 잘못은 조기에 수습할 수 있었던 일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강경하게 대응한 데 있다. 

제주4·3이 일어난 배경은 이렇다. 1947년 3·1 기념식을 치르고 나온 행렬과 구경하던 인파에게 미군정 휘하 경찰이 총격을 가했다. 맥아더의 지시로 일본 경찰 출신들을 미군이 재사용하던 이들이었다. 

6명이 죽고, 8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 사건이 4·3이라는 비극의 발단이 되었다. 미군정이나 경찰이 사과하고 잘 수습했더라면 4·3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흐르지 않았다. 

경찰의 비인간적 처사에 항의하려고 3·10 민관총파업이 일어났다. 미군정과 경찰은 이들을 검거하기 바빴다. 강제 연행과 구속 등 강경 대응은 1년 내내 계속됐다. 서북청년회라는 테러 단체도 이때 들어와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 총선거에 반대해 4·3이 일어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민족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정부 수립을 두고 여러 역사적 선택지가 있었다. 실제 가능성 있는 것만 7가지나 되었다. 제주 주민들은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했다. 

미군정은 평화 협상을 통해 조기 수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강경하게 대응했다. 강력한 진압 작전을 지휘했다. 당시 미군이 쥐고 있던 군사 작전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 비극적 결말을 이끈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허 교수는 미군정이 통치하던 1945년부터 1948년 8월까지 발생한 희생자가 많다는 사실을 예로 들었다. 

"서북청년회가 만행을 저지른 시기도 이와 맞물린다. 더불어 미군은 제주도민들이 주장하던 통일된 조국 요구를 왜곡했다. 3·1 기념식 직전까지 제주 인민위원회와 제주 주둔 미군은 관계가 아주 좋았다. 4·3은 미군정 하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이다. 미국도 이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다큐멘터리 '제주의 영혼들' 레지스 감독과 스카이프 화상 대화를 나누는 허 교수와 참석자들. ⓒ<뉴스 M> 경소영

강연을 마치고 참석자들은 다큐멘터리 '제주의 영혼들'을 제작한 레지스 트렘블레이 감독과 화상 대화를 나누었다. 레지스 감독은 지난 2014년 시카고 세계평화영화제에서 '제주의 영혼들'로 발굴특별상을 수상했다. 그는 먼저 자신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을 짧게 소개했다. 

"강정마을 이야기를 듣고, 짧은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제주도에 갔다. 강정마을에서 머무르면서 제주의 역사를 들었고, 강정에서 이뤄지는 평화적 저항 운동에 감동했다. 그래서 모든 과정과 역사를 담은 8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정부가 국민을 억압한다. 목소리를 내고 저항해야 한다. 제주는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세계 모든 사람이 제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한다. 미국과 한국 정부가 사과하고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 

국가 폭력에 희생양이 된 지역은 많다. 그중에서도 제주는 국가 폭력으로 많은 사람이 희생당한 대표적 지역이다. 레지스 감독의 말처럼 현재도 해군 기지가 건설 중인 강정마을 주민들은 터전을 지키고자 하는 이유로 죄인 취급받는다. 

이러한 국가 권력에 희생된 제주의 역사는 해방 이후 4·3에서 이어진 슬픈 현실이다. 국가 폭력의 책임은 희생자가 억울함과 죽음으로 온전히 받아야 하는 몫으로 전가되었고, 반세기가 지나도록 어떠한 해결도 보지 못했다. 이날 강연에 참석한 미국인 여성은 한국을 조금 알지만, 제주도에서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멋진 섬이라는 이야기만 알았지, 이러한 슬픈 역사가 숨겨졌는지 몰랐다. 오늘 강연은 너무 가치 있는 프리젠테이션이었다. 이 사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실을 알리는 일에 우리도 함께하겠다." 

강연에 참석한 이들과 허 교수의 기념 촬영. 참석자들은 4.3항쟁에 관한 책임을 미국이 인정하도록 지속해서 관심을 두겠다고 말했다. ⓒ<뉴스 M> 경소영

허상수 박사는 이러한 제주의 억울한 역사를 세상에 드러내고 치유하기 위해 미국 동포들과 한국을 사랑하는 미국인들의 동참이 필요하다고 했다. 더불어 현재 일어나는 역사 왜곡을 멈추고, 진실을 직시하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허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이번 방문을 통해 무엇을 알리고 싶었나? 

이 사건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비극의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 어제 워싱턴에서 제주4·3을 알리기 위한 회의를 할 때 영어로 된 4·3 관련 연구서가 처음으로 발간됐다. 미국 학계와 미국인들에게도 이 사실이 알려지길 바란다. 

미군정이 개입하고 방치했다는 자료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사회 안에서도 제주4·3의 진상과 해결을 위한 일들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길 바란다. 미국이 감추거나 없다고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인정하고 해결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국가 권력을 대신해 사과했다. 미국에서도 그런 운동이 시작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새로운 미국이 되기를 바란다. 미주동포와 한국을 사랑하는 미국인이 함께해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허 교수는 "미국 사회 안에서도 4·3 사건의 진상과 해결을 위한 일들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길 바란다. 미국이 감추거나 없다고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인정하고 해결하는 방향으로 말이다"고 말했다. ⓒ<뉴스 M> 경소영

한국에도 역사 왜곡 문제가 계속 거론된다. 

지난 참여정부가 진상 조사를 했을 때. 미군정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라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게 후속 조치, 진상조사, 질문, 이런 것을 해야 했다. 그런데 이후 집권한 정부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사 왜곡을 밀어붙인다. 사실 현대사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왜곡된 역사가 제주4·3이다. 역사 교과서를 정부에서 만들려고 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가 4·3을 양민 학살이 아닌 남로당과 공산당이 일으킨 반란으로 만들고 싶어서다. 학살하고 처벌한 게 정당하다는 주장을 하려고 한다. 역사를 후퇴시키고 왜곡하는 행위다.

날조하기 위한 작업이 계속 진행 중이다. 그래서 미국의 실책과 잘못을 알리고 인정하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럼 날조할 수 없다.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적은 숫자이지만 미국 학자들과 연대하기로 했다. 사회학, 철학, 법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함께해 나갈 예정이다. 미국 정치계, 언론계, 주류 사회에서 한국 문제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바꾸어 가야 한다. 그렇게 될 때까지 움직일 것이다. 유엔, 국제형사재판소 등에 지속해서 문제 제기하는 외교적인 노력도 이어 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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