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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세월호 진상 규명 위해 활동하는 이유인터뷰] 뉴욕뉴저지 세사모 김대종 대표

[뉴스 M = 유영 기자]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뉴스를 보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안타까움과 분노가 솟아올랐다. 어떻게든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독일인 룸메이트에게 이야기하자 그도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눈물이 났다. 그리고 이 사실을 큰 종이에 영어로 적기 시작했다. 

글을 다 쓰자마자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외국인 친구들과 시위를 벌였다. "만약 당신이 선장이라면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하겠습니까", '만약 당신이 대통령이라면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구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를 목에 걸었다. 문구가 적힌 종이에 'Yes or No'를 선택하는 스티커를 붙이게 했다. 

“처음에는 시위 신고하는 방법도 몰랐어요. 그래서 역에서 시위하다가 쫓겨났습니다. 이 사실을 알려야 했어요. 그렇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역 밖으로 나가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렇게 4번 정도 나가서 개인적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러다 <뉴욕타임스> 앞에서 ‘뉴욕뉴저지세월호를잊지않는사람들’(세사모) 회원들을 만났습니다. 미씨 USA에서 일어난 전국적인 시위 운동에 저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2014년 9월 정기집회에서 세월호의 진실을 알리고 있는 김대종 씨.

세사모 집행부를 대표해 활동하는 김대종 씨가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했던 첫 행동이었다. 2016년 4월에 열린 세월호 2주기 행사에서 처음 만났을 때도 그는 다르지 않았다. 맨해튼에 있는 한인 타운 앞에서 열린 시위에서 그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리고, 이를 기억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매달 열리는 정기집회에서 보이는 모습도 다르지 않다. 유가족의 아픔을 뉴욕에서도 동참할 수 있다면 못할 것이 없어 보인다. 

활동가로 살아가다

대종 씨의 원래 목표는 네팔의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뉴욕대학교에서 공부해 전문 영어 교사로 활동할 자격을 준비한 이유도 가르치고 싶어서다. 20대부터 세계를 돌며 여행했다. 그러다 만난 일본인 친구와 함께 아이들을 가르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인 친구는 전문 활동가도 아니고, 교사도 아니었다. 그런데 네팔에 6개월 마다 방문해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도왔다. 

대종 씨는 어려운 일을 당한 유가족과 연대하고, 세계에 흩어져 사는 한인들이 세월호 희생자를 잊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바랐다. ⓒ<뉴스 M> 경소영

“네팔은 외국인이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3개월 머물면 6개월은 나가 있어야 합니다. 그 친구는 일본에서 6개월 동안 돈 벌어서 3개월 동안 네팔에서 지내며 아이들과 함께 지냈어요. 저는 전문적으로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있으니까, 교육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무엇보다 중대한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뉴욕 뉴저지에 사는 한인들과 함께 모이기 시작했다. 어려운 일을 당한 유가족과 연대하고, 세계에 흩어져 사는 한인들이 세월호 희생자를 잊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바랐다. 처음에는 이러한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 사실을 알리고, 아픔에 동참하는 일이 전부였다. 인양이 2년 넘도록 이뤄지지 않을 줄 몰랐고, 특볍법이 이토록 허술하게 제정되어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뉴욕 뉴저지 세사모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세월호를 잊지 않는 이들이 모두 비슷한 마음이었다.  

뉴욕 뉴저지 세사모 회원들 단체 사진.

지금 전 세계 세월호 활동 단체들의 연대는 그 어느 시기보다 끈끈하다. 이러한 움직임과 연대를 이루게 한 건 다름 아닌 정부의 불편부당함이었다. 이역만리라고 표현하는 외국에서도 유가족의 슬픔과 고통이 보였다. 대종 씨는 이러한 유가족의 아픔을 지난해 뉴욕 뉴저지에서 진행한 좌담회에서 뼈저리게 공감했다. 

“경빈 어머니, 건우 어머니, 동혁 어머니가 방문했을 때 일입니다. 그동안 멀리서만 보다가 유가족이 느끼는 아픔을 실제로 보니, 충격이 너무 컸어요. 동혁 어머니의 마지막 말은 유가족의 고립감을 더 크게 느끼게 했지요.  펑펑 울면서 이렇게 말씀하더라고요. ‘내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이렇게 사는데, 마지막에 아무도 우리 곁에 남아있지 않으면 어쩌지’라고 생각이 들 때마다 너무 두려워.” 

유가족의 아픔을 공감하는 동포들의 연대감 계속 커졌다. 지금은 처음 활동했을 당시를 주먹구구라고 회상할 만큼 조직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최근 진행한 동조 단식은 물론, 계속해서 진행하는 노란 우산 프로젝트도 이들의 조직적 연대가 있어서 가능했다. 세계에 흩어진 이들을 모아준 건 다름 아닌 메신저 앱, ‘텔레그램’이었다. 

세기토 노란 우산 프로젝트(위), 동조 단식을 시작한다고 알리는 대종 씨의 유투브 영상 갈무리(아래)

대종 씨가 대화하고 있는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만 해도 10여 개에 이른다. 유가족들과 함께 대화하는 방이 있고, 외국에서 활동하는 세사모 리더들 대화방, 미주지역 리더, 뉴욕뉴저지 세사모 리더, 세사모 전체 대화방 등으로 나뉘어 세세하게 대화한다. 세월호 소식은 텔레그램에 있는 ‘news on 세월호’를 받아보면서 빠르게 확인하고 있다. 

노란 우산 프로젝트의 경우, 토론토 세월호 활동 모임인 ‘세기토’에서 시작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노란 우산을 펼치고 세월호를 알리는 퍼포먼스를 열었다. 뉴욕뉴저지 세사모는 오는 10월 1일 맨해튼에서 진행하는 ‘코리안 퍼레이드’에서 노란 우산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시작한 프로젝트가 해외 동포들에게 펴지는 건 긴밀한 연대와 대화로 대표되는 소통이 있기에 가능했다. 

작은 건우 아버지를 모시다

누군가의 아픔에 동참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 고통스러운 일에 오랜 시간 공감하고 동참하면 비슷한 상처가 남는다고 하지 않던가. 상담사와 심리치료사들 역시 타인의 고통에 동참하는 일로 마음에 상처가 남아, 다른 상담사와 심리치료사가 필요하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그래서 대종 씨에게 물었다. 

“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나요?”

“사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하는 것 같아요.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정말 힘들 때가 많아요. 그럴 때면 유가족들의 아픔이 떠올라요. 그럼 ‘그분들은 나보다 더 힘들 텐데, 멈추면 안 되지’라고 다시 마음먹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유가족들과 끝까지 함께하는 것 뿐이니까요.” 

김대종 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활동을 그만두고 싶다'라고 생각할만큼 힘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뉴스 M> 경소영

세사모 활동가들도 주저앉고 싶을 때가 많은데 유가족은 오죽할까. 한 세사모 회원이 심리학 박사가 올린 트라우마 극복과 관련한 기본적인 글을 단체 대화방에 올렸다. 대종 씨는 그 글에 크게 공감했다.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간략하게 요약해 올린다. 

‘가족을 잃은 아픔은 가장 큰 고통과 트라우마를 안겨 준다. 아픔과 트라우마 극복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걸 받아드리고 이해할 사회적 맥락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심리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상태로 사람을 대한다. 아픔을 치유할 시간도 주지 않고, 그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그러니 더 병들어 간다.’ 

세월호의 진실은 점차 희미해지는 것 같다. 특조위 활동은 요원해 지고, 청문회에는 중요 참고인들이 참석하지 않는다. 세월호 인양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더뎌지고, 구멍을 뚫는 것도 모자라 배를 자른다고 한다.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강요한다. 유가족들은 지쳐 간다. 동혁 어머니 말처럼 혼자 남을까 두려워한다. 

이 시기 작은 건우 아버지에게 연락이 왔다. 건축 일을 하는데, 출장차 미국에 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뉴욕 뉴저지 세사모 회원들은 건우 아버지를 초청해 간담회를 열기로 했다. 지친 건우 아버지를 위로하기도 하고, 함께 대화하며 마음을 나누고 싶었다. 오는 17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행사를 진행한다. 장소는 펠리사이드 파크 공공도서관, 세사모가 계속 진행해 온 세월호 전시회와 함께 진행한다.  

대종 씨는 세사모 활동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진실이 드러나고, 유가족의 아픔과 슬픔이 그칠 때까지 계속 연대해 가고 싶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큰 변화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미국에서 소리친다고 한국 정부가 꿈쩍할까요. 그래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으면 한 명이라도 듣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투표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한국에서 세월호 가족이 아무리 외쳐도 정치인들 전혀 변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단 한 번 이들이 굽신거리는 시기가 있어요. 바로 선거할 때입니다. 

우리는 보다 많은 사람에게 세월호 운동을 알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주고 싶습니다. 저는 지난 총선 때 이 문제로 더민주당이 득표했다고 봅니다. 솔직히 이번에 제대로 해결할까를 두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했다면 유가족과 동포들이 단식투쟁하지 않았겠지요. 박주민 의원과 초선의원들이 힘써주지만, 힘에 부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대선에서 기대하고 있어요. 유가족과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계속해서 외칠 것입니다.”

유영  young2@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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