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 백남기 농민, 끝내 숨을 거두다
카이로스] 백남기 농민, 끝내 숨을 거두다
  • 지유석
  • 승인 2016.09.26 0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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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농민이 25일 숨을 거뒀다. ⓒ지유석

고 백남기 농민이 25일(일) 오후 끝내 숨을 거뒀다.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지 317일만이다. 

24일(토) 저녁부터 고인이 입원해있던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주말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는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가족과 그를 돌보던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상황을 주시했다. 더구나 그날 밤부터 경찰이 성균관대 앞, 창경궁 앞, 이화사거리 등 병원 주변에 병력을 집결시키면서 긴장감은 고조됐다. 

한 시민이 고 백남기 농민의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지유석

그렇게 날이 밝았다. 시민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상황을 전해 받으면서 속속 서울대병원으로 달려갔다. 바로 이날 오후 두 시가 가까워올 무렵, 백남기 농민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그러나 고인의 마지막길은 순탄치 않았다. 경찰은 3600명이란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병원 주변을 봉쇄하고, 시민들의 조문을 막았다. 곳곳에서 실랑이가 벌어졌고, 경찰 투입을 규탄하는 즉석 시위가 벌어졌다. 

경찰은 서울대학교병원 인근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고 시민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농민이 25일 숨을 거뒀다. ⓒ지유석

경찰, 그리고 검찰은 사인 규명을 위해 부검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에 대해 백남기대책위 측은 사인을 조작하기 위한 꼼수라고 반박했다. 한편 시민들은 혹시 모를 경찰의 시신탈취에 대비해 장례식장으로 옮겨지는 동안 주변을 호위했다. 

한 생명이 국가 공권력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이에 고인을 죽음으로 내몬 책임자들은 마지막 가는 길에라도 최대한의 예의를 표시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강신명 전 경찰청장을 비롯한 책임자들은 한사코 사과를 거부한다. 그리고 수천의 병력을 병원에 투입해 고인의 마지막 길마저 분탕질을 쳤다. 

어쩌다 이런 인면수심의 인격파탄자들이 국정을 이끌게 됐는지 그저 통탄할 뿐이다. 

덧붙이는 말] 

백남기대책위는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이 없는 가운데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 녹색당원이 서울대병원 앞에서 경찰의 봉쇄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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