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모두를 댄서로 만들어 드립니다"
"제가 모두를 댄서로 만들어 드립니다"
  • 유영
  • 승인 2016.09.28 0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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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트 파크'에서 만난 흥겨운 댄서들

청소를 마치고 쓰레기를 버리러 잠시 나갔다. 집에만 있을 때는 몰랐는데, 호흡하는 게 즐거울 정도로 날이 상쾌하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그야말로 청명했다. 반가운 마음에 아내를 불렀다. 이 날씨를 혼자 즐긴다면 범죄 아닌가. 청소 중간 잠시 밖으로 나온 아내는 두 손을 머리에 올리고 눈을 감으며 뉴욕에서 맞은 첫 가을을 만끽한다. 

마침 토요일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펜실베이니아 스테이션 행 Long Island Rail Road(LIRR)도 City Tour 요금을 받는다. 절반 가격이면 맨해튼에 나갈 수 있다. 거기에 아내는 월정 기차표가 있어 공짜다.  

차량이 많은 맨해튼 하늘도 정말 청명했다. ⓒ<뉴스 M> 경소영

청소도 힘들었던 차였다. 청소에 열심인 아내마저 흔들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다. 맨해튼 브라이언트 파크 근처에 있는 블루 보틀 커피를 마시며, 공원에 앉아 일광욕도 하고 책도 보자고 말이다. 블루 보틀 커피와 공원에서 하는 독서, 생각만 해도 뉴요커스러운 일을 어떻게 거부할까. 아내와 뉴욕에서 지낸 반년, 아직 이런 경험으로 맨해튼을 즐긴 적이 없었다. 

기차로 30분을 달려 펜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스타벅스 텀블러를 입에 가져가 물을 홀짝홀짝 마시며 역을 빠져나와 목적지로 향한다. 역을 나오면 7th ave. 우리 목적지는 그 유명한 타임스퀘어에서 한 블록만 가면 된다. 하지만 타임스퀘어로 가면 별로 볼 게 없다. 그리고 브라이언트 파크는 뉴욕 공공도서관 바로 옆에 있다. 볼 것도 많고, 쇼핑하기도 좋은 5th ave로 가도 된다는 뜻이다. 결국, 허세 부리기 좋은 길을 선택했다. 7th ave에서 6th ave로 가는 길에 있는 백화점도 볼만하니 어쩔 수 없다. 

주린 배를 채우다

15분 정도 걸어 브라이언트 파크에 도착했다. 뉴욕의 오아시스라고 누가 표현한 걸 봤는데, 고층 빌딩 사이에 마련된 장소를 잘 설명한 좋은 표현이다. 가운데 넓은 잔디밭에서는 일광욕하는 사람이 많다. 공원 가장자리를 따라서는 사람들이 쉬면서 즐길 거리도 많다. 골프 퍼팅 연습장, 회전목마, 분수대, 체스를 둘 의자와 탁자, 뉴욕의 대표 명소인 공공 도서관까지.(물론 이 공원도 명소 중 명소라고 한다.)

날이 선선해 진 탓에 정말 많은 사람이 브라이언트 파크를 찾았다. ⓒ<뉴스 M> 경소영
이번 페스티벌에 참여할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밀짚모자. ⓒ<뉴스 M> 경소영

우리 부부는 편히 앉아 책을 볼 수 있는 의자를 먼저 찾았다. 앉을 의자가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 시원한 날씨에 일광욕하러 나온 남녀노소로 잔디밭은 가득했다. 그런데 공원 분위기가 이전과 조금 다르다. 공원 광장에 서부 영화에서 보던 짚더미가 쌓였다. 공원 입구에 마련된 부스에서는 무료로 밀짚모자를 나눠준다. 부스 옆에서는 통기타, 바이올린, 콘서티나로 이뤄진 포크 밴드가 흥겹게 연주했다. 뭔가 있나 보다. 

우선 겨우 찾은 자리에 앉았다. 두 시가 넘어 배가 고파서 그런지 날아오는 바비큐 냄새가 코를 찌른다. 자세히 보니, 옆자리 20대 남녀들은 생맥주까지 손에 들었다. 경찰도 단속하지 않는다. 이게 어쩐 일인가. 알아보니, 오늘은 허가받은 야외 음식점에서 파는 술과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단다. 집에서 싸온 냉동만두와 같이 먹을 음식을 서둘러 사 왔다. 맥주와 함께. 정말 뭔가 얻어 걸렸다는 표현이 딱 맞는 날이다.

먹거리를 판매하는 야외 음식점. 이곳에서 파는 맥주만 마실 수 있다. ⓒ<뉴스 M> 경소영

"제가 댄서로 만들어 드려요"

3시가 되자 사회자가 나와 인사한다. 아쉽게도 영어가 짧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몇 경찰이 주 무대로 사용할 풀밭에서 조금 물러나 달라고 부탁하는 것으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무대가 마련되자 한 남성이 나와서 마이크를 잡는다. 

"춤을 추고 싶은 사람은 다 앞으로 나오세요.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나온 분들은 짝을 지어서 서주세요. 제가 모든 분을 댄서로 만들어 드립니다." 

짚더미로 꾸며진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포크 밴드. 이들의 음악은 절로 춤추게 하는 흥겨움이 가득했다.  밴드 왼쪽에서 연주자가 연주하는 악기가 콘서티나다.ⓒ<뉴스 M> 경소영

떼 춤을 추겠다는 건가. 한국인 특유의 시니컬함이 있는지 속으로 '대낮에 춤판을 벌이는데 누가 나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흥이 많기는 하지만, 늘 감추고 살았던 터다. 내 흥을 아는 아내는 내게 나가보라고 권한다. 나는 "저분들의 음악이 날 춤추게 하면 바로 나갈게"라고 넘겼다. 

사람들이 쭉 원으로 둘러서자 댄스 강습소가 열렸다. 미국 포크 댄스를 배우는 자리였다. 설명은 간단했고, 춤도 쉬웠다. 댄스 강습소는 몇 분 만에 문을 닫혔고, 바로 춤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엄마와 함께 나온 어린 딸은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옆에 있는 할머니와 정답게 손을 잡았다. 모두 그러했다. 손을 잡고 함께 빙 돌고, 박자에 맞춰 짝꿍과는 팔을 끼고 돌았다. 

남녀노소, 인종 구분하지 않고 모두 댄서가 되는 시간. ⓒ<뉴스 M> 경소영

나는 왜...그리고 우리는 왜?!

자세히 보니, 어린아이와 할머니만 손잡고 웃는 게 아니다. 장애가 있는 딸과 함께 나온 아버지는 신나게 웃으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흑인과 백인도 손을 맞잡고 웃으며 춤을 춘다. 사이사이 아시아인과 스패니쉬 등 각양 전통춤이 있는 나라에소 온 이들도 함께 어울린다. 모두 같은 밀짚모자를 쓰고, 처음 추는 춤을 즐겁게 춘다. 거기에 신나는 음악은 결국 나도 춤추게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함께 행사 처음부터 어우러져 춤추는 걸 꺼렸을까. 어린 시절 유치원에서 추던 포크 댄스는 정말 재미있게 추었는데 말이다. 어쩌면 너무 흥을 감추고, 내려놓고 산 건 아닐까. 음악과 춤이 모르는 사람들과 어우러질 기회를 주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음악과 춤, 사람과 가까이 해야겠다. 그리고 모르는 이들과 손잡고 웃으며 춤출 수 있었던 평화가 잠시 그 자리에 있음을 느꼈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 정도 아닐까. 모르는 사람, 다른 인종과 문화에 상관없이 어우러질 수 있는 평화가 우리 안에 있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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