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진실 알리는 영화 [귀향]에 감동한 미주 동포들
일본군 위안부 진실 알리는 영화 [귀향]에 감동한 미주 동포들
  • 경소영
  • 승인 2016.10.05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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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동부 지역에서 영화 [귀향] 상영회 및 조정래 감독과의 간담회 열려

[뉴스 M = 경소영 기자] 영화 ‘귀향’이 미국 동부 지역에 또 한 번의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9월 29일 뉴욕 퀸즈 칼리지 상영을 시작으로 10월 9일까지 뉴욕, 뉴저지, 필라델피아 지역에서 소규모로 계속 상영회가 진행된다. 

지난 10월 1일 저녁 7시, 뉴욕 플러싱 GLF 센터에서도 영화 ‘귀향’ 상영회가 열렸다. ‘뉴욕 희망세상’ 주관으로 열린 이 날 상영회에는 약 50여 명의 한인이 모였다. 상영회에는 조정래 감독과 임원철 미술감독이 참석했다.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과 임원철 미술감독이 영화 상영 전, 단에 올라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뉴스 M> 유영

상영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두 감독은 무대에 올라 영화를 보기 위해 찾은 관객에게 인사했다. 조정래 감독은 “지난 2월 시사회가 미국에서도 있었지만, 그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증언회 중심이어서 영화 자체에 집중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영화 상영회에 집중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쁘고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임원철 미술감독은 “진심을 다해 영화를 만들었다. 어린 소녀들이 어떤 끔찍한 일을 당했는지 영화를 통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라며, ‘귀향’을 소개했다.

두 감독의 인사가 끝나고 영화 상영을 시작했다. 약 2시간가량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펼쳐졌다. ‘귀향’은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의 실화를 바탕을 만들어진 영화다. 1943년 강제로 위안부에 끌려간 열네 살 정민과 소녀들의 이야기가 영화의 중심을 이룬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와 과거에 세상을 떠난 이들이 현대를 사는 무녀 은경을 통해 다시 만나고, 수많은 희생자를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아름답고 슬프게 그려진 영화이다.

영화 상영 내내,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참혹한 역사적 진실을 마주한 관객들의 입에서 탄식이 쏟아졌다. 위안부 소녀들이 살해당하고 구덩이에서 태워지고, 주인공 두 소녀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이별하는 장면에서는 모든 관객이 눈물을 쏟았다. 

일본군 위안부 소녀들이 죽임을 당하고 불에 태워지는 영화 속 장면 (사진/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의 마지막에는 나비가 된 소녀들이 고향으로 날아간다. 살아생전 돌아가지 못한 고향 땅에 소녀들을 보내고픈 감독의 마음이 잘 전달되었다. 이후 엔딩 타이틀은 12분간 지속되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름이 한 명 한 명 올라갔다. 그리고 할머니들이 미술 심리치료를 받으며 그린 그림들이 소개되었다. ‘태워지는 처녀들’이라는 그림은 영화에서 철저히 재현되어 소녀들이 느낀 두려움, 전쟁에 혈안이 되어있던 일본군의 잔인함을 여지없이 증언한다. 

영화가 끝난 후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이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 이리도 끔찍할 수 있지’라며, 놀라움과 슬픔을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사회자가 올라와 조정래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알렸다. 관객들은 30여 분 동안 속에 질문을 쏟아냈다. 다음은 관객들과 조 감독의 질의 응답을 정리한 것이다.

영화가 제작, 상영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14년간 준비했습니다. ‘나눔의집’ 봉사자로 활동하며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죠. 강일출 할머니가 16세에 끌려가서 당한 일을 그림을 그리셨어요. ‘태워지는 처녀들’이라는 그림이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투자 배급이 쉽지 않았어요. 결국 시민들의 힘으로 이 영화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2002년 나눔의 집에서 봉사활동 중에 만난 강일출 할머니의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보고 처참하게 불에 태워지는 등 집단 학살 당하는 소녀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아 조정래 감독은 시나리오를 하루만에 써내려갔다고 한다. (사진/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에 신인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배우 섭외는 어떻게 진행했나요. 

주인공 강하나 양(정민 역)은 재일교포 4세에요. 그리고 일본군 역할을 한 많은 연기자가 재일교포입니다. 정확한 일본어 구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일본어 연기자를 찾았는데, 매우 힘들었어요. 그래서 영화에 나오는 많은 일본인 연기자는 프로 배우가 아니예요. 마지막에 정민을 총으로 쏘는 일본군 역할을 맡은 분은 재일교포 2세로, 배우가 아닌 사업가입니다. 위안부 소녀에게 채찍질을 하는 일본군은 그 사업가가 운영하는 회사의 직원입니다. (웃음)

촬영은 주로 어디에서 이루어졌나요.

다행히 한국에 버려진 군부대가 있어서 그곳에서 촬영을 했습니다. 실제 중국에서도 촬영을 하고 싶었는데 예산 부족과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CG를 사용한 장면이 더러 있습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영화에 나오는 위안소는 실제로도 가장 끔찍한 위안소였다고 해요. 약 40명의 위안부가 항상 상주하면서 타부대 군인들도 많이 왔다고 합니다. 군부대 안에서 운영되는 규모가 상당한 위안소였죠. 강일출 할머니도 그곳에 있었는데,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독립군 교전 상황 때문이었다고 해요. 그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사신거죠. 실제 대부분 위안부 소녀들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조정래 감독은 한 번의 영화 상영이 있을 때마다 한 분의 위안부 소녀의 영혼이 고향 땅으로 돌아간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뉴스 M> 유영

감독님이 꼭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영화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죠. 저야말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주 무지한 사람이었어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니 충격도 굉장히 컸어요. 제 자신이 용서가 안돼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몰랐던 것도, 제가 가해자와 같은 남성이라는 것조차 부끄러웠어요. 영화 제작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속죄의 과정이었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이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어요.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 일본 제국주의 하에서 발생한 국가적 폭력은 과거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도 비슷한 폭력이 테러 집단에 의해 존재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영화는 반일이 아닌 반전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었어요. 전쟁은 다시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14년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이 영화가 한 번 상영될 때마다 한 명의 위안부 피해자 소녀가 고향으로 돌아올거라는 믿음이었어요. 사실 생존한 위안부 피해자들은 소수입니다. 거의 모든 위안부 소녀들은 갖가지 이유로 죽임을 당했어요. 평균나이 16세였던 소녀들이 부모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었어요. 영화에서나마 그 소녀들을 고향으로 모셔와서 따뜻한 밥 한 끼 올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어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위안부는 1931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만주사변이 있었을 당시, 일본군 병사들의 성병이 가장 문제였다고 해요. 대규모 강간이 여기저기서 발생하여 성병에 걸린 병사들이 많이 죽게 돼죠. 그래서 군사력 보존을 위해 위안소를 설치하고 위생관리를 철저히 한 거예요.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강제로 여성을 납치하여 감금하고 위안소라는 이름으로 운영을 했죠. 영화에도 나오지만 얼마나 많은 소녀들이 죽어나갔는지 몰라요. 홀로코스트를 능가하는 전쟁 범죄입니다. 현재 살아 계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지금도 목놓아 울부짖습니다. 젊은 시절 그분들이 당한 고통의 세월에는 진정한 사과가 필요합니다. 돈이 아니고요. 한국 정부는 10억 엔을 받으라고 강요하고 있죠.  

영화 '귀향'을 보고 많은 한인들이 분노하며 눈물을 흘렸다.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몇몇 한인들이 조 감독에게 질문을 하는 모습. ⓒ<뉴스 M> 유영

일본에도 많이 가셨을 것 같은데, 일본 국민들은 위안부의 존재와 역사를 알고 있던가요.

제가 미국에 오기 전 일본 히로시마에서 상영회가 있었습니다. 100명 가까운 일본인이 영화를 보고 펑펑 울면서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두고 일본 정부와 싸우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일본인인데도요. 대부분 많이 아파하고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전쟁 당시 일본군이었던 몇몇 생존자들은 양심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정부와 우익 세력만 이 문제를 날조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정치, 사회 문제를 다룬 영화를 제작할 계획인가요.

이런 질문은 처음 받아봅니다. (웃음)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저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고등학생 때까지 열심히 교회를 다녔습니다. 물론 지금도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녔던 교회 목사님은 대구 지역의 대표적 반공주의자였어요. 저도 그분을 따라 반공 청년회까지 다녔어요. 리더를 맡기도 했죠. 그러다가 대학에 가서 광주 민주화 항쟁을 알게 되고, 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영화 제작의 ‘진짜 이유’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시대의 아픔’을 영화로 만들고 싶습니다. ‘귀향’은 ‘수요집회’에 참여하는 대중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제작한 것입니다. 영화라는 매체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화 제작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지요. 

많은 분들이 귀향 2탄을 제작하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웃음) 실제로 ‘귀향 14년의 기록’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입니다. 영화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를 하고 싶고, 내년 3.1절 개봉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극영화로는 조선시대 천민이었던 ‘광대’라는 직업을 다루는 영화를 계획하고 있어요. 광대가 시대에 맞서 수많은 무시와 천대를 받으면서도 민족 예술을 어떻게 창작하고 지켜낼 수 있었는지 영화에 담고 싶어요.

조정래 감독은 영화 '귀향'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부 문제를 인식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하며, 부디 주변에 많이 영화를 알려줄 것을 당부했다. 조 감독은 미국 동부 지역 상영을 마친 후 프랑스, 영국에서도 '귀향' 상영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뉴스 M> 유영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미주 동포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널리 전파시켜달라는 것입니다. 현재 생존해 계신 할머니들이 매우 고통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만이 그분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는 방법이 될 수 있어요. 그것이 일본에게도 좋습니다. 일본의 후손들도 이 일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 영화도 많이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부 문제를 실감하게 될 수 있으니까요. 국제 사회에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미주 동포 여러분도 힘을 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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