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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과 행동 일치하는 삶이 운동이다"[인터뷰] 일본군 위안부 문제 알리는 '수요시위' 처음 시작한 뉴욕공립학교 과학교사 김은주 씨

[뉴스 M = 경소영 기자] 매월 첫째 주 수요일 12시, 맨해튼 일본 총영사관 앞에 몇몇 한인들이 모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알리고,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를 촉구하기 위한 ‘수요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한 시간여의 1차 시위가 끝난 뒤, 늦은 오후 2차 시위가 열린다. 이번에는 1인 시위다. 

10월 첫째 주 수요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뉴욕 일본총영사관 앞에서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김은주 씨. ⓒ<뉴스 M> 유영

지난 수요일 일본 총영사관 앞에서는 어김없이 ‘Justice for Statutory Rape Victims(미성년 강간 피해자를 위한 정의)’이라는 팻말을 든 한 사람이 어김없이 서 있다. 이름은 김은주, 뉴욕 공립학교 과학교사다. 수업을 마치고 오느라 12시 집회에 참석할 수 없어, 홀로 팻말을 들고 오후 세 시에 1인 시위를 진행한다. 

그는 2014년 삼일절에 화가 서현숙 씨와 함께 맨해튼 일본 총영사관 앞 시위를 처음 시작했다. 당시 일본 정부가 역사를 왜곡하고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 항의하고, 미국인들에게 이 문제를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특히 이날 그가 들고 있었던 피켓 문구인 ‘Statutory Rape’라는 말은 ‘미성년 강간’을 의미하는 법정 용어로, 미국에서는 무섭고 끔찍한 범죄로 통한다. 위안부 피해자는 대부분 미성년자였고, 그중에는 열셋, 열넷의 어린 소녀들도 있었다. 미국인에게도 이것은 심각한 범죄로 여겨진다. 

2014년 3월 1일 김은주(왼쪽), 서현숙씨가 뉴욕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를 촉구하는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김은주)

한인 1.5세인 김은주 씨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뿐 아니라 사회 정의를 세우기 위해 활동해 왔다. 지난 20여 년간 뉴욕 지역에서 사회 운동에 참여한 잔뼈 굵은 활동가다. 대학생 때부터 흑인 인권 운동에 동참했다. 교사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며, 미국 노동 운동에도 오랫동안 몸담았다.

한인으로 살아가며 한국 사회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뉴욕 뉴저지 세사모의 세월호 집회, 워싱턴 사드 반대 시위, 제주 4.3 항쟁 강연회 등 한국 사회 이슈와 관련된 현장에서는 그를 항상 만날 수 있었다. 교사로 살아가며, 종횡무진 사회 정의를 외치는 자리에 서는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수요 시위 후 일본 총영사관 근처 벤치에 앉았다. 시위 내내 엄숙한 표정이었던 그의 얼굴이 어느새 밝아졌다. 오롯이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미국에 오래 살면서 한국의 정치, 사회, 역사 전반에 관심을 두기 쉽지 않은데, 계기가 있었는가.

미국에 초등학교 4학년 때에 왔다. 당시에는 한인이 거의 없어 우리말을 점차 잊었다. 대학에서는 정치사회학을 공부했다. 그때 유학생들을 만나게 되면서,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과 관련한 정치, 역사 관련 자료는 오히려 미국에 많이 있다. 영어로 쓰여진 자료를 통해 한국 역사를 공부하면서, 유학생 친구들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한국 근현대사를 배우면서 한국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의 이유를 깨달았다. 사실을 알고는 여러 활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 공부하면서 역사에 왜곡된 부분이 많다는 걸 알았다. 유럽인이 미 대륙에 침략하면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미국도 침략해 빼앗은 영토를 '발견했다'는 말로 왜곡해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그래서 미국의 진보적 교육자들은 ‘콜럼버스데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콜럼버스가 신대륙 원주민을 학살, 노예화하거나 천연두 등 전염병을 전파한 사실 등이 알려지며 부정적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미국의 ‘콜럼버스데이’에 한 여성이 시애틀 도심에서 ‘원주민의 날’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다른 시위자들과 함께 행진하고 있다. 현재 시애틀 등 최소 9개 도시에서 이날을 ‘원주민의 날’로 이름을 바꿔 기념하고 있다. (시애틀=AP연합뉴스)

최근 한국에서도 왜곡된 국정 교과서 문제로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반대 운동이 일고 있는데, 미국에서도 역사 바로 잡기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 미국에서도 획기적이고 역사적인 시민 운동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여성 흑인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의 얼굴이 들어간 20달러 지폐가 나올 예정이다. 그동안 백인 대통령 얼굴만 나왔었는데, 노예 해방 운동가의 얼굴이 들어간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10달러와 5달러 지폐 뒷면에도 마틴 루터 킹 등 미국의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았던 인물들의 얼굴이 들어갈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하나의 역사적 흐름이라고 본다. 한국은 1945년 이후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사람들은 공산주의의 반대적 체제가 자유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공산주의의 반대는 자본주의일 뿐이다. 민주주의의 반대는 독재다. 공산주의 국가 북한과 자본주의 국가 남한에서 독재가 만연하다. 한국은 민주화 운동으로 숨진 숱한 희생자들로 민주주의가 발전해 왔지만, 현재는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여러 사회 운동의 현장마다 만날 수 있었다. 현직 교사로서, 두 아이 엄마로서 많이 바쁠 텐데 활동가로 오랜 세월동안 힘을 잃지 않고 있다. 그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역사와 현 사회 현상을 명확히 알고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나는 흑인 인권 운동 시위 때도 항상 함께했다. 넬슨 만델라가 운동할 때, 우리 학교에서도 동맹 시위를 종종 했다. 사회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행동과 지식이 동시에 움직이지 않으면 학자도 아니고 운동가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존경하는 교수나 학자는 모두 실천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진보적인 말을 하고 글을 써도, 실제 생활은 극우적인 경우가 많다. 생각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

사회 활동가 김은주 씨는 지식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뉴스 M> 유영

그 무엇보다도 ‘사람’이 우선이다. 나는 교사로 은퇴하고 싶다. 어떠한 정치적 공명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사회적 약자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을 뿐이다. 

교사로서 노조에 가입되어 있다. 미국 학교에서도 젊은 교사들에게 정규직을 주지 않으려고 부당한 대우를 하는 경우가 많다. 계약직도 아니다. ‘교과 시간이 있는데, 네가 해볼래?’ 이런 식이다. 초, 중, 고등학교 교사를 시간 강사처럼 부린다. 난 정규직 교사로 있었지만, 부당한 고용 형태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쌍둥이 딸들 들쳐 업고 나가서 다른 노조원들과 함께 시위 많이 했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은 기억을 못하겠지만, 그것이 배경이 되었는지 엄마의 활동을 잘 이해한다. 

그러고 보니 지난 달 수요 집회 때 두 자녀도 함께했다. 

엄마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웃음) 학교에서 일어나는 불의한 일들에 많은 질문을 던진다. 이에 반대하는 행동에도 참여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딸의 학교에 성소수자 학생들의 모임이 있다. 그런데 성소수자 학생은 학교에서도 보이지 않는 억압을 당한다. 우리 딸들은 성소수자 친구들을 지지한다. 

교사들도 성소수자 학생을 차별하면 절대 안 되는데, 그러지 못한 교사들이 더러 있다. 그걸 아이들은 고스란히 다 느낀다.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고민하고, 괴롭힘 당하다 자살하는 학생이 많다. 우리 아이들은 성소수자 친구들을 지지하며, 친구들을 위해 활동하며 지낸다. 

이것도 다 자라온 환경에 영향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인권 감수성은 타고나지 않는다. 누구의 자녀이기 때문에 저절로 유전되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하고 배우며 키워야 한다. 어떠한 사회 현상을 볼 때 제대로 이해하고 질문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뉴욕대에서 역사 수업을 청강하고 있는 것도 계속 질문하고 배우기 위한 것인가.  

그렇다. 미국은 나이가 들어도 대학에 들어가 배우는 분위기가 있다. 난 수요일마다 권준희 교수의 ‘한국 현대사(Contemporary Korea)’ 수업을 듣고 있다. ‘배우면서 가르치고,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교육 철학이 있다. 권 교수가 주로 강의를 하지만, 토론도 많이 하기 때문에 질문하고 답할 기회가 많다. 역사 교육은 ‘몇 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역사 공부는 사람들이 살아가던 이야기를 듣고 현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가는 과정이다. 

김은주 씨는 인권 감수성은 타고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하고 배우며 키워야 한다. 그는 계속 배우는 삶을 실천하기 위해 뉴욕대에서 역사 강의를 듣고 있다. ⓒ<뉴스 M> 유영

우리의 역사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다. 지난 수업 시간에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학생들과 같이 배우고 불렀다. 그런데 중국과 대만 학생들이 이 노래를 알고 있었다. 그들 나라에서도 ‘님을 위한 행진곡'을 번역해서 부른다고 학생들이 말했다.(수업에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참여하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 온 학생들도 있다.) 놀랐다. 국적이 달라도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역사적 공감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영어로 ‘님을 위한 행진곡’을 가르쳐 주었는데 학생들이 매우 좋아했다. 

이렇게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과 대화하며, 가르치고 배운다. 필리핀 학생과도 열강들의 침략 역사를 나눈 적이 있는데, 아시아 국가들이 비슷한 아픔을 겪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열정적으로 역사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도전을 받고 희망을 본다.

사회 활동가로 살아가면서 속상한 일도 있었을 것 같은데, 한 가지만 말한다면 무엇이 있나.

한국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라는 말을 쓰는데, 그 말을 매우 좋아한다. 고구마, 감자도 같이 나누어 먹으며 함께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모습이 상상이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상황은 그런 모습이 아니다.

이 시대에 옳은 일을 했던 사람들의 자손이 천대받는 것 같아 안타깝다. 독립 운동가의 많은 자손들이 힘든 삶을 살고 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양심대로 행동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활동가로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한국과 관련된 어떠한 특정 단체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이해 관계가 있는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피해를 당하며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런 나를 정치적 선동꾼으로 몰아갔던 사람들이 있었다. 2년 전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희생자 영정 사진을 들고 영사관에서 UN본부까지 행진을 했다. 거의 300명의 한인들이 함께 했다. 그때 여러 언론 매체에서 현장 사진을 부탁해서 다 보내주었다. 

그 이후에 일베에서 내 사진을 보고 소위 ‘신상 털기’를 자행했다. 온갖 비방과 인격을 모독하는 글과 함께 이름, 직장 주소, 가족 관계, 전화번호까지 일베 사이트에 올랐다. 극우 단체에서 날 고발한다는 협박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알지도 못하는 여러 나라에서 전화가 빗발쳐서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2014년 일간베스트에 게재된 김은주 씨의 세월호 참사 관련 활동 사진. 자세한 신상 정보와 인격 모독의 글이 지금도 삭제되지 않고 있다. 

정신적 피해가 막심했을 텐데, 법적 대응을 고려하지는 않았는가.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쓰리다. 일베 사이트에는 아직 내 신상이 고스란히 남았고, 내 이름을 치면 그 글이 뜬다.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어떻게 대처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법적 대응을 하면 강력하게 하려고 한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지만, 나는 뉴욕주법원에서 학교를 상대로 승소한 첫 소송인이다. 

교사로서 억울한 일을 당한 탓에 소송을 진행했다. 정당한 이유 없이 교사 평가에서 ‘미달(U)’ 평가를 받았다. 학교 측에 허락을 받고 결근한 날들이 ‘공식 결근’으로 처리돼 더 많은 결근일수가 생긴 것이다. 교장의 횡포였다. 교장에게 허락을 받고 교과 과련 세미나에 참여했던 것인데, 이를 결근으로 처리했다. 경력이 많아 고임금을 받는 교사에 대한 명백한 횡포라고 판단해 소송했다. 함께 세미나에 참여했던 교사들이 증인이 되어 주었다. 

뉴욕주법원은 이를 인정해 평가 등급을 ‘만족(S)’으로 정정했다. 실제로 'U' 평가 하나가 나를 어떻게 하지는 못한다. 이긴다고 보상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변호사 비용도 많이 드는 일이다. 하지만 잘못된 일에 맞서야 했다. 3년이 걸린 소송이라 매우 지치고 힘들었지만, 잘못된 일은 꼭 바로잡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겨냈다.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 가고 싶은지 궁금하다.

나는 미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 운동권과 활동가들의 상황은 잘 알지 못한다. 미국에서 흑인 인권 운동, 교사 노조 활동을 20년 이상 한 게 전부다. 다만 난 나의 삶 자체가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NATO 반대 시위에 참여한 김은주 씨의 모습. 평화 추구가 아닌 전쟁만 일으키는 NATO에 반대하는 시위다. 유럽에선 NATO를 테러집단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는 이처럼 다양한 평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뉴스 M> 유영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가난한 아이들이 많이 온다. 그 아이들에게 더 관심을 가진다. 학교에서도 먹고 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 희망을 주고 싶다. 아침 일찍 오는 학생에게는 빵과 주스를 제공하며, 공부도 더 가르쳐주는 ‘Breakfast club(조식 모임)’도 만들어 운영했다.(미국 가난한 지역 학생들은 학교에 오지 않거나 오후에 오는 일이 잦다.) 

그렇게 주변의 사람들과 희망, 평화, 인간 운동을 펼치고 싶다. 세월호 참사 같은 큰 사건이 있다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사람’ 때문에 하는 운동이길 바란다. 오늘 하루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가장 가치있는 것에 힘과 시간을 쏟으며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인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인생은 단 한 번 밖에 없다. 쳇바퀴 돌 듯 단조로운 인생을 살기보다는, 미래를 보았으면 좋겠다. 각자 다양한 생각들을 펼치며 살아가길 원한다. 내 아이, 내 후손들이 좀 더 정의롭고 행복한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한다. 재산을 남겨 주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재산이 없어도 평등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길고 멀리 보았으면 좋겠다. 운전할 때도 멀리 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웃음)

경소영  soyoung@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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