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스스로를 위해 하야하시길
대통령님, 스스로를 위해 하야하시길
  • 이원영
  • 승인 2016.10.26 07: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사과문을 본 한 시민의 대통령께 드리는 고언
박근혜 "최순실 도움 받았다" 시인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사과를 하는 모습을 여의도 정치권에서 지켜보고 있다. ⓒ 남소연

대통령의 사과문 발표를 들은 한 시민입니다. 사과문 발표가 이렇게 빨리 있으리라고는,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사과문 발표를 할 거라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25일) 사과문 발표라는 속보 제목만 보고 "어, 이제 사안의 심각성을 받아들이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과문 전문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사과문 전문을 보고 "이거 정말 나라가 큰일이구나. 도대체 어떻게 이런 사과문이 나올 수가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통령께서 오늘 발표하신 사과문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최근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제 입장을 진솔하게 말씀드리기 위해 이자리에 섰습니다. 아시다시피 선거 때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듣습니다. 최순실 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 홍보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개인적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에는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 및 보좌체제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습니다. 저로서는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진정 이런 사과로 국민들이 대통령이 진실하게 사과했다고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게다가 대통령님은 최순실씨 의혹에 대한 문제점을 잘못 짚으셨습니다. 

어제(24일) JTBC의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연설문을 포함하여 국정에 관련된 자료들을 사전에 받아보았습니다. 오늘 대통령님은 최순실씨에게 연설문을 검토를 받았다는 것을 시인하고 사과했습니다. 대통령님은 국정 자료들 또한 함께 넘어갔다는 것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일 이를 몰랐다고 하더라도, 보도가 전해졌으니 이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해야지요. 하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 명확히 밝히고,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최순실씨 문제가 단지 비선실세의 부정부패 문제라면 최순실씨를 엄벌하여 권력 주변의 사람들이 타산지석으로 삼도록 하면 됩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정이 최순실이라는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국가적 문제'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최순실 게이트는 단순한 '연설문 수정'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국정이 한 개인에 의해 결정지어진 것인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 대통령도 책임을 피해갈 수 없을 것입니다. 대통령 스스로 언급한 바 있는 '국기 문란'을 자행한 것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언론에서는 '최순실이 대통령에게 지시하는 관계'였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늘 사과문을 듣고 "도대체 최순실과 대통령이 어떤 관계이길래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이 사람을 방어하려고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은 몰랐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호가호위하고 다닌 것이다. 검찰 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혐의가 드러나면 엄정하게 처리하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대통령의 사과문은 대통령 본인이 부탁했다는 것을 시인하면서 '내 잘못이지, 최순실씨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뉘앙스를 담은 것 같았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사과문이 나오게 된 것입니까?

게다가 대통령은 어제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개헌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리서치뷰의 긴급 여론조사(24일 리서치뷰 실시, 전국 만19세 이상 휴대전화가입자 1061명 대상, 컴퓨터자동응답시스템 이용한 임의걸기 방식,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p(응답률 6.6%), 자세한 내용은 리서치뷰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이번 개헌 언급은 '측근비리 물타기와 정권연장을 위한 정략적 제안'이라는 의견이 57.1%에 이르렀습니다. 

또 '측근비리 진상 규명이 먼저'라는 의견은 71.7%나 됐습니다.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는 23.0%로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였습니다. 여론에 민감한 청와대에서 이를 몰랐을 리는 없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대통령 자신이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이런 사과문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감당할 수 없는 짐, 직접 내려놓으십시오 

25일 밤, JTBC 뉴스룸이 최순실 문건 의혹을 전하고 있다. ⓒ JTBC

대통령이 눈앞에서 있는 문제들에 대해 전혀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최근 대통령께서 경제가 어렵고 북한의 핵 문제로 안보가 어려워서 비상시국이라고 하셨는데, 오늘의 사과문을 보면서 저는 판단력을 상실한 대통령 때문에 비상시국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정 러시아 말기의 라스푸틴이나 중국 진나라에서 '지록위마'로 유명한 환관 조고와 같은 자들이 국정을 농단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그들을 총애한 황제 때문이었습니다. 이 시기는 하나같이 국가의 '비상시국'이었음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약 이제까지 국정에 대한 상의를 최순실씨와 했다면, 현재 최순실씨는 도피 중이므로 대통령은 국정에 대해 상의할 사람이 없을테니 그야말로 비상시국 아니겠습니까? 이런 판단력으로 이제까지 대한민국을 이끌어 왔다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습니다. 해외 정상들과 대면하며 이런 판단력으로 외교를 해왔다고 상상하니 대한민국 국민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이제 그 감당할 수 없었던 무거운 짐을 직접 내려놓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대한민국을 위해서, 그리고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미 대통령에 대해 보수 언론들조차도 슬슬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최순실씨 문제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고, 특검으로 이 문제를 풀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 더 하면 더하지 덜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기에 임기가 1년 조금 더 남은 상황은 레임덕을 더욱 가속화시키겠지요. 그러면 권력 내에서 조차도 또 다른 폭로가 있을 것이고, 차기 권력에 대한 줄서기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가장 싫어하는 '배신의 정치'가 임기 말에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요. 대통령이 좋아하는 '진실한 사람들'은 갈수록 줄어들겠지요. 그렇다면 다시 '동물의 왕국'을 지켜보면서 분을 삭이시겠습니까? 

단언컨대 향후 국정 장악력은 급격하게 떨어질 것이고, 무언가 해보려고 하면 엄청난 반대에 시달릴 것입니다. 새로운 시도는 고사하고, 이제까지 해왔던 것조차 재평가 받으면서 원점으로 돌려야 할지 모릅니다. 어제의 보도로 이미 전 세계가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를 알게 되었을 테니 정상회담과 같은 외교 행사가 제대로 진행되겠습니까? 

이런 식의 문제가 더 불거지면 그때에는 당연히 '대통령 탄핵' 주장이 나오게 되겠지요. 만에 하나 이 탄핵 주장이 여론의 지지를 얻게 된다면, 새누리당 당 의원들조차도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대통령 탄핵에 동의하는 초유의 사태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쉬는 것이 대한민국을 위해서나, 본인을 위해서나 좋지 않겠습니까? 

물러난 뒤의 일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물러나신다면 현 내각도 당연히 총사퇴하는 것이 맞겠지요. 우리나라는 4.19 혁명 직후에 임시과도정부를 구성했던 역사적 경험이 있습니다. 임시 과도 정부에서 지난 시기의 문제점을 정리하는 한편,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논의하고 해결의 방향을 잡으면 됩니다. 그에 입각하여 어제 제안하신 것처럼 개헌안을 마련하고 새로운 정부를 발족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대통령과 대통령의 아버지가 그렇게 사랑해 마지 않던 대한민국을 위해서 이제 물러나 쉬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 길은 또한 대통령 자신을 위한 길이기도 할 것입니다. 만일 도저히 물러날 수 없다면 적어도 국정에서 손을 떼고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서 지난 시기의 문제들을 정리하고, 개헌 등 미래를 위한 준비에 만전을 기해달라는 선언이라도 하실 수 없겠습니까? 부디 대한민국과 자신을 위한 현명한 선택을 해 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p.s. 다만, 물러나기 전에 최순실씨 등의 귀국 및 수사, 우병우 수석 사퇴 및 수사, 백남기 농민 사망 책임자 처벌 등과 같은 긴급한 일들은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국민들의 대통령에 대한 여론을 조금이나마 돌려놓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본지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