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와 부모들, 변혁의 주체가 되기로 다짐하다
성소수자와 부모들, 변혁의 주체가 되기로 다짐하다
  • 경소영
  • 승인 2016.10.26 11: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주 최초 한인 성소수자 세미나 "우리, 함께!", 15일 미국 버지니아에서 열려

[뉴스 M = 경소영 기자] 금요일 저녁, 뉴욕에서 버지니아 주 비엔나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몇 달 전부터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기다린 날이었다. ‘우리 함께!’라는 제목의 미주 최초 한인 성소수자 세미나가 열린다.

개별적 인권 운동이 아닌 미주 한인 성소수자 부모가 연대해 모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연 어떤 모임이 될까.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기대와 떨림으로 오른 버스는 거의 5시간 반을 쉬지 않고 달렸다.

도착하니 밤 11시가 훌쩍 넘었다.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한 심영주 씨가 반갑게 맞아준다. 지난 여름 워싱턴 사드 배치 반대 시위 취재 때 만났었지만, 그땐 성소수자 부모인지 몰랐다. 그 후 SNS를 통해 관계를 이어가다가 다시 만났다.

숙소로 가는 길, 짧게 근황을 나눈 뒤 이번에 모인 성소수자 부모들에 대해 살짝 물었다. 

“본격적인 세미나는 내일인데 오늘 벌써 다 이야기하고 눈물바다 됐어요.” 

미국 전역에서 먼 길을 달려온 성소수자 부모들은 만나자마자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된 사람들, 그들의 사연이 더욱 궁금해졌다.

성소수자, 가족, 지지자들이 함께 손을 잡았다.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 배제가 없어지는 사회를 꿈꾸며, 사회 변혁의 주체가 되기로 다짐했다. ⓒ<뉴스 M> 경소영

내 아이 이야기가 자기소개

아침이 밝았다. 오전 모임은 부모 모임과 성소수자 모임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기자는 부모 모임을 택했다. 부모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어제 저녁에 이미 만난 사람들, 오늘 아침 모임에 막 도착한 사람도 있다. 어머니 열 명, 아버지 다섯 명이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진행을 맡은 미주 한인 무지개 부모모임(Korean American Rainbow Parents/ KARP) 설립자 클라라 윤 씨는 “오늘은 우리 자식 얘기 말고 각자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제안했다. 어제 저녁에 이미 성소수자인 자녀에 대해서는 많이 말했으니, 오늘은 본인을 소개하자는 것이다. 모두 동의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뭐, 그렇지만 역시 부모는 어쩔 수 없었다. ‘부모’로서 아들, 딸 이야기를 더 원했다. 그것이 비록 가슴 아픈 이야기일지라도 말이다.  

워싱턴에서 온 한 부모가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딸처럼 친했던 둘째 아들이 게이라고 ‘커밍아웃’ 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진보 운동을 하면서 살아왔고, 주변에 성소수자가 많았는데도 아들의 이야기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아들은 이러한 엄마의 모습에 아파했다. 그리고 “엄마는 위선자예요. 진보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왜 저를 이해 못 해요?”라고 말했다. 아들의 말을 듣고 통곡했다. 그리고 정신이 번쩍 났다. 그때부터 성소수자를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고, 아들과 성소수자 친구들을 지지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

심영주 씨는 주변에 성소수자가 많이 있었지만, 아들이 커밍아웃을 했을 때는 매우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지금은 고통받는 성소수자들에게 힘을 주고 싶어 성소수자 지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뉴스 M> 경소영

“엄마는 네 편이야”

한국에서도 두 명의 성소수자 부모가 참석했다. 그중 한 엄마 ‘하늘’ 님의 고백은 가슴을 울렸다. 내용은 이렇다. 아들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시기는 '하늘' 님이 인생 중 가장 힘든 날을 보내던 때였다.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아들이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전해 들었다. 심리 상담과 종교를 통해 아주 조금씩 회복하던 ‘하늘’ 님의 마음은 다시 무너졌다.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던 아들은 이미 우울증으로 학교도 나가지 못했다. 일주일 동안 굶고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고민 끝에 성소수자 모임에 찾아갔다. '하늘' 님은 큰 위로를 받고 성소수자는 타고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아들도 엄마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아들에게 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했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엄마는 네 모든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 엄마는 눈치챘어. 괜찮아. 지구가 뒤집혀도 엄마는 네 편이야.”

하늘 님은 성소수자인 아들을 지지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편지를 썼다. 그는 지난 날 많이 힘들었지만, 그 시간은 인생에서 꼭 필요한 은총의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뉴스 M> 경소영

엄마의 편지를 한참 들여다본 아들이 방에서 나와 처음으로 말을 건넸다. “엄마 밥 주세요.” 그 말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리고 다시 예전처럼 아들은 대학교를 잘 다니기 시작했다. 

부모들은 자녀 이야기를 하며 함께 울고 함께 웃었다.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부모에게 순종도 잘하는 착한 아이였다며, 자식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누구보다 마음도 여리고 배려심도 깊은 아들, 딸이었기에 부모에게 커밍아웃하는 과정은 더 처절했으리라. 

캘리포니아 주에서 온 한 엄마는 아들이 커밍아웃한 지 1년이 채 안 됐다고 한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할까 봐 커밍아웃을 미뤄 왔다. 엄마를 보호하고 혼자 해결하기 위해 애쓴 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게 아프다. 

아들이 게이인 것을 알게 된 엄마는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아직 성소수자 차별이 존재하기에 살아가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엄마는 아들이 집에서라도 편히 쉴 수 있도록 안식처를 마련해주고 싶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위스콘신 주에서 온 한 엄마는 1990년에 미국에 이민을 왔다. 미국에서 두 딸을 낳았다. 예쁘고 건강하게 키우려고 남편과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런데 두 아이가 두 달 간격으로 모두 여자에서 남자가 된 트랜스젠더라고 고백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지 못해 외면하고 없던 일로 넘기고 싶었다.

성소수자인 두 자녀를 둔 조앤 씨, 부모가 마음을 다해 커밍아웃을 받아들이지 못해 한 아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들의 죽음은 매우 고통스럽지만, 이제는 성소수자 가족의 역할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성소수자와 가족을 돕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뉴스 M> 경소영

그러던 중 한 아이가 지난 2015년 9월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열여섯 밖에 안 된 소중한 아들이 죽음을 선택했다. 어린 나이에도 성소수자와 인종차별로 고통받는 친구들을 위해 인권 운동을 열심히 했던 아이였다. 

장례식장에서 편안히 누워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엄마는 너무 미안했다. 그렇게 친하게 지냈었는데, 커밍아웃 후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엄마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들이 죽고 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됐다. 가족의 인정과 사랑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지, 그것이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절절히 깨닫게 된 것이다. 

“보수적 기독교 문화에서만 지냈던 전 아이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성소수자를 말로만 사랑하고 받아줘야 한다고 했지, 실제 제 아이가 성소수자임을 알았을 때 사랑하지 못했죠. 이제 성소수자 친구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지 않도록 용기를 주고 싶어요.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훨씬 낫잖아요.”

아들을 눈물로 보낸 엄마의 고백을 듣고 한동안 숨을 쉴 수 없었다. 성소수자를 외면하는 가족과 이 사회의 태도가 한 아이의 생과 사를 갈라놓았다. ‘사회적 타살’이라는 말과 동시에 엄마를 괴롭혔을 지독한 죄책감이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어른들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

비슷한 경험을 한 성소수자 부모들은 말보다 눈물이라는 언어로 소통했다. 각 사람의 이야기는 곧 나의 고백이 되어 마음 깊이 위로가 됐다. ⓒ<뉴스 M> 경소영

'눈물'이라는 공통 언어로 부모들은 마음을 나누었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곧 나의 고백이었다. 자녀가 커밍아웃을 한 후 부모들의 삶은 변했다. 힘든 시간을 거쳐 이제 집 밖으로 나와 ‘우리 아이는 성소수자입니다’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 아이와 같은 성소수자 친구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용기를 주고 싶다. 더 나아가 이제는 세상에 이렇게 외치려고 한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거두세요. 성소수자인 우리 아이들에게는 잘못이 없습니다. 잘못된 종교적 관념과 편견으로 성소수자가 배제된 사회를 만든 어른들의 책임이 가장 무겁고 큽니다.”

연민 없이 희망은 없다

오후 행사는 한국어로 진행했다. 우리말이 서툰 가족을 위해 영어 자막으로 동시통역이 이루어졌다. ⓒ<뉴스 M> 경소영

오후에는 성소수자와 부모, 지지자가 모두 한자리에 모여 행사를 진행했다. 모임 장소인 성공회 성십자가교회에 60여 명의 참가자가 둘러앉았다. 먼저 성소수자 부모 세 명이 대표로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나누었다. 마이크를 잡은 부모들의 손은 떨렸다. 그러나 성소수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도움이 되고자 씩씩하게 발언했다.  

세미나 주 강연자로 강남순 교수(미국 텍사스크리스천 대학 브라이트 신학대학원)가 나섰다. ‘연민 없이 희망은 없다 : 혐오로부터 연대의 정치로’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강 교수는 “성서에는 ‘동성애’라는 개념이 없다. 동성애 혐오는 근대의 산물이다”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이번 강의를 통해 다양한 종류의 억압과 배제가 존재하는 사회 안에서 어떻게 변화하는 것이 좋은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강연 목적을 밝혔다.

세미나 주 강연자로 강남순 교수(미국 텍사스크리스천 대학 브라이트 신학대학원)가 ‘연민 없이 희망은 없다 : 혐오로부터 연대의 정치로’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뉴스 M> 경소영

강 교수도 처음부터 성소수자를 이해하고 받아들지는 못했다고 고백했다. 유학생 시절, 페미니즘 세미나에서 만난 한 게이 학생을 멀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우리가 가진 인식의 한계를 깨닫고 마음을 차츰 열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학문적 설명을 쉽게 풀어갔다. 

“저는 당시 게이라고 밝힌 학우를 통해 ‘이 사람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구나’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근원적인 진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연민이었습니다. 나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느끼는 것은 위계 형성을 전제로 하는 ‘동정’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연민은 타인의 고통을 함께한다는 의미이며,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다양한 소외의 경험이 변화의 씨앗을 뿌리는 하나의 동기가 되길 바랍니다. 나의 경험이 차별과 억압의 경험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변혁의 주체의식으로 승화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자를 혐오하지 말고, 그 사람을 오히려 연민의 눈으로 바라봅시다. 혐오의 이유를 찾아야 해요. 인식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에 대해 악마화 하지 말고, 끊임없이 동료로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희망입니다.

‘신이 모든 존재를 신의 형상으로 만들었다’라는 것은 기독교의 기본 진리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진리는 모든 존재는 평등해야 하고 그 평등을 파괴하는 것이 바로 사회의 ‘불의’며, ‘억압’입니다. 흑인 인권 운동, 여성 참정권 운동 등 사회의 모든 변혁은 짧은 시간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변화를 위해 공동체 안에서 공부하는 모임을 만드는 등 움직임을 멈추지 않으면 결국 성소수자도 평등하게 대우받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강연회에 이어 그룹 토의를 진행했다. 7, 8명씩 모여 구체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 소개할 수 없어 십 년 이상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민하다가 처음으로 모임에 나온 한 남성의 이야기만 다룬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성소수자인 자신을 받아들이기 괴로웠던 지난 시간을 나누며 눈시울을 붉혔다. 

“저는 스스로 성 정체성을 부정했습니다. 신앙 훈련을 받으면 변할 수 있을 거라 믿어, 가장 보수적이라는 선교단체에 들어가 신앙 훈련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렇게 지낸 기간이 벌써 10년이 넘습니다. 하지만 변화는 없었지요. 충격이 클 것 같아 아직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하지 못했습니다. 혼자 고민하는 시간이 참 힘들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가깝게 지내던 친누나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누나는 ‘어떻게 하니, 지옥에 갈 텐데’라고 답하더군요.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사실 이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이 참 부담스러웠습니다. 오랫동안 저를 억눌렀던 죄책감이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까닭입니다. 하지만 이번 세미나를 통해 용기를 얻었고, 성소수자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존재만으로 감동이 되는 사람들

하루를 같이 보낸 사람들은 어느새 가족이 되었다. 저녁엔 첫 번째 미주 한인 성소수자 부모 모임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음식을 함께 나누며 서로를 격려했다. 

이번 모임에 참석한 성소수자 자녀들이 감사의 말을 전했다. 말보다 눈물이 앞선다. 그동안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낸 부모를 바라만 봐도 코끝이 시큰거리는 탓이다. 부모들의 고백처럼 더없이 착한 성소수자 자녀들은 그저 엄마 아빠가 고맙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난 엄마 아빠만 믿고 살아갈게요.”

성소수자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하며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뉴스 M> 경소영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한 부모들은 자녀들의 사랑 고백에 무너졌다. 한 부모는 “이제 안 울려고 화장까지 다 하고 왔는데 망했다”라고 말하며 모두에게 눈물섞인 웃음을 선사했다. 그렇게 이들은 다시 눈물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러나 자신과 부모와의 갈등을 넘어, 사회의 편견과 성소수자에 무지한 사람들, 보수적 종교관에 맞서 나아가기 위해 눈물은 잠시 거두기로 했다. 내년, 내후년에도 계속 이어질 성소수자 부모 모임을 위해 필요한 경제적 후원을 함께 확장해 가고, 성소수자 인권 향상을 위한 사회적 지지를 끌어내자는 의지를 다졌다.

성소수자 부모 하늘, 지인 님, 클라라 윤 씨가 이번 모임에서 받은 감동을 나누고 있다. ⓒ<뉴스 M> 경소영

이번 모임을 주최하고 진행한 클라라 윤 씨는 “아들이 처음 커밍아웃 했을 때 눈앞에 깜깜했던 날이 생각난다. 그땐 이런 기쁜 날이 올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며 감격했다. 한국에서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하고 있는 성소수자 부모 ‘지인’ 님은 다음과 같이 소회를 나누었다.

“미국 전역에서 비행기를 타고 멀리까지 온 부모님들을 보는 순간 이미 감동했어요. 한 분 한 분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디서든 부모 마음은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들의 커밍아웃 후, 한동안 울지 않았는데 오늘 몇 년만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어요.

이처럼 자녀의 행복을 위해 지지하기로 선택한 부모들도 있지만, 다시 이성애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끝까지 자녀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이지 않는 부모도 많거든요. 자녀 사랑의 올바른 길을 택하신 미주 한인 부모들에게 감동했습니다.”

‘하늘’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한국 성소수자 엄마도 지인 님과 함께 미주 한인 성소수자 세미나에 참석했다. 가톨릭 신자인 '하늘' 님도 이번 모임을 통해 마음이 정화되고 생각이 정리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저는 그동안 제가 마음이 굉장히 넓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살았어요. 그러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상처받고 있을 때 비로소 내가 가진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죠. 아들 때문에 나를 깨부수고,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이 생겼어요. 아들이 성소수자 아니었다면 저도 고정관념으로 가득한 사람으로 살다가 죽었을 거에요.

성소수자 문제를 바로 보기 시작하면서 다른 종류의 불의와 차별도 보이기 시작했어요. 아이 덕분에 엄마가 성장하고 있어요. 나이를 먹어도 계속 배워야 해요. 이 세상 사람 모두가 장벽을 쌓지 말고,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함께 연대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면 좋겠어요.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편견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없도록 말이지요. 미국에 있는 성소수자 부모님들이 제게도 좋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