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친박, 그들이 선택 가능한 두 가지 시나리오
답답한 친박, 그들이 선택 가능한 두 가지 시나리오
  • 신원기
  • 승인 2016.10.29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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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최순실게이트로 정권재창출 위기 봉착... 그들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월 25일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위해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 들어서고 있다. 2016.10.25 ⓒ 연합뉴스

짙어진 가을바람이 무색하게 나라가 뜨겁다. 사상초유의 국정농단 게이트 덕이다. 난국을 타개할 목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불과 한 나절 만에 버려진 노트북에서 발견한 JTBC의 '최순실 파일' 보도에 힘을 잃었다. 그 다음날 형식적으로나마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이 역시 외교, 안보 등 국가 핵심기능 전반에 구체적으로 개입했다는 추가보도에 의해 상당수가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순실의 시대와 대중의 분노

우선 생산되는 뉴스의 양을 보자. 2016년 10월 25~26일 양일간 44개 언론사(연합뉴스·JTBC·KBS 제외)에서 생산한 최순실 관련 보도는 1963건으로 2004년 3월 12~13일 양일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보도 추정치 1734건보다 많다(참고로 2014년의 세월호 참사 당일과 이튿날에 생산된 뉴스의 양은 488건에 불과했다) 여기에 집계에 잡히지 않은 언론사와 카드뉴스, 동영상, 카카오톡 등으로 소비되는 뉴스형태까지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양이 생성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생산되는 뉴스의 양 만큼이나 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국내 검색시장 점유율 78%가량을 차지하는 네이버에서 정치카테고리 상위 10개 기사 모두 최순실 관련 보도가 차지했는데 기사당 평균은 5만3869회 조회, 댓글은 1929개가 달렸다. 댓글은 평소(전체 기준 약 1080건)에 비해 78.6%가 더 달렸다. 

여기에서 유심히 볼 수치는 표시된 공감의 정도다. 통상 정치 분야는 사안의 특성에 따라 다소 격차는 있지만 6~7% 가량이 공감을 표시한다. 이번 사안의 경우 평균 5826건으로 기사를 본 구독자의 약 10.8%가 공감을 표시했다. 댓글의 성향 역시 극히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게 극히 부정적인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극심한 분노표출에 가깝다.

수치 외에도 종일 실시간 검색어를 점령한 '하야'와 '탄핵'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과 쏟아지는 시국선언, 각종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오가되 드러나지는 않는 반응 등을 종합해보면 도래한 순실의 시대를 체감하기엔 부족하지 않다. 심각하다는 표현이 부족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상 자료는 10/26일 17:00기준이며 빅카인즈 데이터베이스 및 상수동전략그룹에서 자체 수집·집계한 자료를 바탕으로 가공)

친박의 답답함과 딜레마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가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대화 나누고 있다. ⓒ 남소연

이미 리더십을 상실했다고 평가받는 박근혜 대통령 못지않게 여당(정확히는 친박) 역시 힘들긴 마찬가지다. 어제 기자회견으로 내각쇄신과 책임자 처벌을 건의하고, 특검 수용의사까지 밝혔지만 마지못해 내놓은 메뉴에 가깝다. 악화되는 여론을 의식한 체면치레 수준으로 의도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라는 의미다. 일각에서 관측하는 대통령의 탈당 역시 이미 상당수 그 권능을 잃은 상황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친박의 입장에서 폭락한 지지율에 사상초유의 국정농단 게이트까지 겹친 현 상황이 답답하겠지만, 정작 주어진 가장 큰 답답함은 그래도 꾸려갈 만했던 차기 정권재창출 작업이 통째로 날아갈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통상 이런 위기가 닥칠 때마다 여당이 선택지는 2004년 탄핵정국을 돌파했던 '박근혜와 천막당사'같은 아이콘을 통한 '과거와의 단절'이었다. 붕괴된 리더십을 수습하고 대선에 내세울 아이콘의 조기등장이 순서겠지만 현 시점에선 쉽지 않아 보인다. 과거의 학습효과와 현재 여당 내부의 역학 관계가 서로 상충되는 탓이다.

총선과 달리 대선에서는 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급락할수록 대척점에 있는 후보가 이득을 보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는 당의 내부와 외부를 가리지 않는다. 정권말기가 되면 대권주자들이 현 정부와 거리를 두는 게 바로 그런 이유다. 

이 공식은 과거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통했다. 지난 대선에서도 정권교체를 원하는 여론이 60%를 넘어 야권에 유리할 것으로 보였지만, 국민들은 MB에게 끊임없이 날을 세운 박근혜 후보를 별개의 세력으로 인식했다. 실제 2011년과 2012년 대선 직전에 미디어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각각 50.1%, 40.6%의 응답자가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정권교체'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학습효과만 놓고 보면 새누리당이 '따뜻한 보수'를 내세워 박근혜 정부와 마찰을 빚었다 최근 복당한 유승민 의원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지극히 현실적인 시나리오다. 동시에 자연스러운 선을 긋는 효과도 된다. 이는 정권탈환이 목표인 야당에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흐름이다.

문제는 당내 권력지형이다. 지금 여당소속 국회의원 129명 중 절반 이상(67명)이 친박으로 분류된다. 19대에 비해 의석수는 20석 넘게 줄었지만 친박 비율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지도부 역시 친박성향이 무척 짙다. 지난 8월의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최고위원 5명 중 4명이 친박으로 당 대표와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대표지명 1인까지 합하면 9명중 8명이 친박이다. 

친박 역시 정권재창출을 원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친박에 의한' 조건이 붙어야 하는 만큼 다른 계파에게 선뜻 힘을 실어줄리 만무하다. 여당내에서도 유승민계로 분류되는 현역의원이 단 3명에 불과한 군소세력이다.

친박의 관점에서는 현 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 중 하나로 지목되는 반 총장을 입성시키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콘크리트 지지층을 중심으로 대통령의 국정운영 만족도와 반기문 총장의 지지율이 같은 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은 일말의 불안감을 안긴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실망감은 유독 60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데, 같은 기간 같은 계층의 반 총장 지지율 역시 두드러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리얼미터 10월 1~3주차 주간동향 데이터)

같은 방식으로 ‘반기문’ 키워드를 재구성함 (좌측이 3년, 우측이 최근 1년) ⓒ 상수동전략그룹

아직 공식적으로 출마를 밝히지도, 새누리당을 선택하지도 않은 상황이지만 유권자들은 사실상 친박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설득력이 힘을 얻는다. 악화되는 여론에 흔들리는 목표와 상충되는 수단, 위기에 처한 친박의 답답함과 대선을 앞둔 딜레마가 교차하는 부분이다.

수립 가능한 시나리오의 절충점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친박은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라지만 가만히 있기에도 머쓱하지 않은가. 가능한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다수의 언론에서 권유하는대로 총사퇴, 그리고 거국내각을 구성하는 것이다. 건국 이래로 거국내각이 한 번도 구성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순순히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경우 현 지도부 역시 사퇴를 피하기 어려우며 친박에 의한 정권재창출은 불가능해진다. 장기적으로 친박 자체가 축소될 위험성도 커진다. 그간 친박이 보여준 충성심(?)까지 고려하면, 일정부분 외부의 요구를 절충하는 형태로 출구를 찾을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의 시나리오는 '현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리더십을 수습할 아이콘을 찾는 작업을 서두르는 방안이다. 반 총장의 경우 큰 범주에서 친박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합류 여부와 시기 모두 유동적이라 지금 당장 사용하기는 어려운 카드다. 

그렇다면 그간 순탄한 건 아니었지만, 계파의 미래가 걸려있는 만큼 연말까지 남은 2~3개월의 기간 동안 적임자를 찾는 작업을 집중적으로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촉박한 일정과 TK와 충청의 지지층이 확고하다는 점에서 반 총장 포섭을 확고히 하는 방향으로 작업이 전개될 여지도 있다.

작업의 전개와는 별개로 '현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은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이 조건은 현 상황의 책임소재와 비난의 화살을 철저하게 다른 곳으로 돌리는 쪽으로 풀어낼 확률이 크다. 친박의 입장에서 문제가 된 비선실세의 핵심인 최순실의 국내송환과 청와대 참모진의 개편은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관철시키되, 사실상 합의된 특검은 매우 제한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특검여부도 민감한 문제지만 어떻게 진행하느냐를 결정하는 문제도 민감한 사안이다. 국정동력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있다지만 어디까지나 시점의 문제다. 다소 당겨졌을 따름이다.

다만 변수가 있다면 최순실의 잠적기간과 박 대통령의 결심 여부인데, 기본적으로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도가 있는 인물인 만큼 잠적기간 자체는 길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박 대통령 역시 회심의 개헌 카드가 막혔던 만큼, 비교적 높은 수준의 협조가 예상된다. 법무부장관의 호언처럼 우리가 예상보다 이르게 포토라인에 선 최순실을 보게 된다면, 향후 전개는 앞서 예상했던 절충된 형태로 흘러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친박의 선택으로 생기는 일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지난 2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대통령과 청와대 여당 모두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건 분명하지만, 어느 정도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이후의 상황을 추가로 종합해보면 친박은 어느 정도 방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벌어지는 이 전대미문의 꼴불견으로 모든 풍문이 진실로 보이는 현실에서 친박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그리고 그 결정은 내년 대선에서 어떤 결과로 나타날까. 답은 곧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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