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 고 백남기 농민이여, 부디 영면하소서
카이로스] 고 백남기 농민이여, 부디 영면하소서
  • 지유석
  • 승인 2016.11.06 0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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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는 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미사가 열렸다. 장례미사를 마친 운구행렬은 을지로, 종로를 거쳐 고인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종로 1가 르메이에르 타워로 향했다. ⓒ지유석

고 백남기 농민이 5일(토) 세상과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숨을 거둔지 41일만이다. 고인이 작별을 고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경찰은 고인이 숨을 거두기 무섭게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고인의 주검에 칼날을 대려했다. 여기에 고인을 담당했던 서울대병원 백선하 신경외과장이 고인의 사망원인을 ‘병사’라고 고잡해 또 다른 논란을 일으켰다. 

돌이켜보면 고인의 생 역시 순탄치 않았다. 1968년 중앙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한 고인은 1973년 유신 철폐 운동을 하다 수배돼 무기정학 처분 받았다. 1980년 이른바 ‘서울의 봄’ 때 민주화운동을 이어나갔으나 5.18 계엄포고령 선포 직전에 학교 기숙사에 있다가 연행됐다. 이때 고인은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 받았으나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이후 고향인 보성으로 내려와 농사를 업으로 삼았다. 아버지 박정희 시절 탄압을 받았던 그가 딸인 박근혜 정권에서 죽음에 내몰렸으니 그야말로 기구한 생이 아닐 수 없다. 

5일 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식이 시민사회장으로 엄수된 가운데, 운구행렬이 고인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던 종로 1가 르메이에르 타워를 향하고 있다. ⓒ지유석
5일 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식이 시민사회장으로 엄수된 가운데, 운구행렬이 고인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던 종로 1가 르메이에르 타워를 향하고 있다. ⓒ지유석

그러나 그는 외롭지 않았다. 시민들은 그의 마지막 길을 지켜줬다. 혹시 모를 침탈을 막기 위해 선잠을 마다하지 않았고, 경찰이 영장집행을 할라치면 서로의 몸을 쇠사슬로 묶어 저들의 발걸음을 막았다. 그리고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고인이 숨을 거둔 지 한 달 뒤, 마침내 이 정권이 무너져 내리는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비록 고인을 죽음으로 내몬 경찰 수뇌부의 사과표시는 없었지만, 사악한 정권이 몰락하는 모습을 보셨기에 다소나마 위안이 되시지는 않았을까? 이제 민중총궐기 당시 시위진압 지휘책임자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아내고 합당한 법적, 도의적 책임을 묻는 일은 남은 자들의 몫이다. 

고 백남기 농민이여, 부디 영면하소서. 

[2016.11.05. 고 백남기 농민 운구행렬] 

5일 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식이 시민사회장으로 엄수된 가운데 한 시민이 고인의 캐리커쳐를 들고 운구행렬에 참여하고 있다. ⓒ지유석
5일 오전 고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던 종로 1가 르메이에르 타워에서는 고인의 넋을 기리는 노제가 열렸다.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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