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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거라" 아버지의 편지[서평] <세상과 나 사이>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사람에게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부여했다."

이는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데 기초가 된 선언이다. 1776년 7월 4일 미국의 13개주 대표들은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치열한 전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하였다. 하지만 이 때에도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대우받지는 못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식민지 독립을 이룬 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노예였다.

독립 후 90년 정도가 지난 1865년에 이르러서야 미국 수정 헌법 제 13조가 비준됨으로써 노예 해방이 제도적으로 실현되었다. 그러나 단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왔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투쟁은 노예 해방 후 150여 년이 지난 현재의 미국에서도 여전히 진행 중이란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타네하시 코츠라는 한 흑인 저널리스트는 <세상과 나 사이>(열린책들 펴냄)라는 책에서 미국에 여전히 존재하는 인종차별의 실상을 적나라하지만 담담하게 고발한다. 저자는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미국이란 나라에서 검은 피부를 가지고 살아왔던 자신의 삶이 국가가 주창하는 이상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잔인한 인종차별의 나라, 미국

<세상과 나 사이> 겉표지. ⓒ 열린책들

코츠가 젊었던 시절 프린스 존스라는 대학생이 경찰관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가해자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풀려나 버렸다. 코츠는 미국에 만연해 있는, 흑인에 대한 폭력에 절망했고 동시에 그 폭력의 대상이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왔다.

2014년 미주리 주 퍼거슨에서 벌어졌던 18세 흑인 소년의 사망사건과 그로 인해 번진 차별 반대 시위는 국내 언론에도 다뤄졌기에 필자의 기억에도 남아 있다. 이는 저자의 세대에 이어 그의 아들 세대에도 미국의 흑인들이 겪어야 하는 엄혹한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사건 중의 하나였다.

흑인이기 때문에 평생 겪어왔던 두려움이 자신의 아들에게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아들 앞에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흑인 아빠 코츠. 자신이 부모님들로부터 항상 들었던 "이것이 너의 나라다. 이것이 네가 사는 세상이다. 이것이 너의 몸이다. 너는 이 모든 것 안에서 살아 나갈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는 말을 아들에게도 똑같이 해야 하는 현실을 대하는 저자의 마음은 얼마나 참담할 것인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현실에 저자는 심히 괴로워했지만, 괴로움과 원통함에 머물러 있지만은 않았다.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공포 속에서도 흑인이 처한 가혹한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맬컴 X라는 흑인 해방 운동의 상징적 존재로부터, 하워드 대학교라는 흑인의 성지와도 같은 곳에서, 그리고 수 많은 책으로부터 코츠는 '자신의 몸을 온전히 소유'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투쟁해 왔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 사모리에게 흑인들이 처한 현실을 솔직하게 말해준다. 미국에서 버젓이 자행되어 오는 흑인에 대한 폭력은 전통과도 같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을 아들에게 담담히 전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아들이 '짧고 밝은 삶의 하루하루에 덤벼들기를, 끔찍하고도 아름다운 세계에서 의식있는 시민으로 성장하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저자는 아들에게 막연한 희망을 말하지는 않는다. 어찌보면 잔인하리만치 냉정하게 현실을 알려준다. 코츠는 말한다. "무시무시한 진실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우리가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너에게 투쟁하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투쟁이 너에게 승리를 안겨주기 때문이 아니라, 명예롭고 건강한 삶을 보장하기 때문이야"라고.

코츠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필자가 막연히 가지고 있었던 미국 사회와 그 문화에 대한 선망은 매우 피상적인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미국을 완전한 사회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이지 않은가. 하지만 박근혜가 여성 대통령이라고 해서 우리 사회에 여성 차별이 없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똑같은 인간으로 여기지 않기에...

인종이라는 개념을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피부색이 다르다는 것은 다른 옷을 입고 있는 것일 뿐인데, 단지 그것만으로 인간의 가치에 우열을 부여하고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다니. 인간을 인종이란 실체가 없는 개념으로 대체한 것이 인종차별의 뿌리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저자가 고발한 미국사회의 평범한 인종차별은 인간을 차별하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차별은 인종을 넘어서 다양한 범주에 걸쳐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끔씩 경기도에 있는 공단 밀집 지역을 지나다 보면 외국인 노동자라 통칭되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눈길에 미국의 인종주의자들이 흑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난한 외국인이라는 인식이 인간의 가치보다 앞서자 그들을 나보다 못한 존재로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미국 인종주의자들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행하는 무자비한 폭력에 입을 다물지 못하던 필자 역시 차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성소수자라 규정되는 LGBT인들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돌아보게도 되었다. 성적인 취향 혹은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성 인식의 차이를 가졌을 뿐인데 필자는 이들을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여겼다. 자신들이 선택한 결과로 인한 차별 혹은 혐오는 그들의 책임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퀴어축제에 참석해 이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인간'이란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이들을 바라보던 폭력적인 시선을 거둘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 공기처럼 퍼져있는 여성 비하 혹은 혐오 역시 인종, 사회적 상황, 성적 취향 등에 의한 차별과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이재명 성남 시장이 최순실을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라고 했던 발언을 두고 아내와 언쟁이 있었다. 필자는 이 표현에 내재된 계층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를 비판한 강남순 교수의 글을 읽고서도 이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내와의 대화를 통해 필자의 가치체계도 한국 사회의 차별적 의식에 심히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타네하시 코츠가 말하는 미국의 인종차별이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해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필자가 가지고 있었던 혹은 여전히 가지고 있는 차별적 인식을 확인하게 되어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인종차별에 더해 인간 사회 전반에 너무나도 평범하게 퍼져 있는 차별적 요소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인간에 대한 차별 문제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만연한 폭력에 노출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문제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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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희  newsm@new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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