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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권력은 망하는 지점에 왔다"인터뷰] 안식년 맞아 미국 찾은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

[뉴스 M (뉴욕) = 유영 기자] 워싱턴D.C.에서 열린 한인들의 민주, 통일, 평화 집회마다 낯익은 얼굴을 만났다.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주도한 ‘사드’ 배치가 한창 추진되던 지난 8월에서도 무더위 속에 열린 백악관 앞 반대 집회에서도 그를 보았다. 한국에서 목회하며 여러 사회적 활동을 했던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를 워싱턴에서 만난 게 신기했다. 

백악관 앞에서 열린 사드 배치 반대 시위에서 발언하는 조헌정 목사. ⓒ<뉴스 M> 경소영

한국에서 보았던 조 목사는 별난 목회자였다. 개인적으로는 마치 산에서 막 내려온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선 외모가 그렇다. 하얗게 수염을 길렀고, 개량 한복을 입었다. 예배에 찾아갔을 때도 그런 분위기를 느낀다. 국악 찬양 등 한국 전통문화와 예전을 잘 접목했다. 어지간한 노력이 없다면 어려운 일일 테다. 너무 한국적이라 이질감을 느낀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산이 아니라 미국에서 지낸 인물이다. 1980년대를 미국 신학교에서 공부하며 지냈다. 그것도 가장 진보적이라고 알려진 신학교에서 말이다. 뉴욕 유니온신학대학교에서 석사를 마쳤고, 버지니아 유니온신학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물론 미국에서도 한국의 신학 발전을 위해 연구했다. 석박사 논문은 모두 성서의 민중신학적 해석을 연구해 학위를 받았다. 

미국장로교단(PCUSA)에서 한인 교회 역량 발전을 위한 노력에도 힘썼다. 이민 교회 목회자로 지내며, 사역하기도 했다. 2003년 향린교회로 오기 전까지 15년간 메릴랜드에 있는 한인 교회 담임으로 사역했다. 이 기간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장로교 수도노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미국교회와 담임하던 한인 교회의 통합도 잘 이뤄냈다. 

14년 전 한국으로 돌아가 향린교회를 담임했던 그가 은퇴를 앞두고 안식년을 보내기 위해 다시 미국을 찾았다. 학생 시절부터 인생의 절반을 보냈던 곳에서 새로운 신학 흐름을 확인하고, 은퇴 후 이어갈 하나님 나라 운동을 고민하기 위해서다. 돌아봐야 할 게 많은 건 확실하다. 향린교회에서 보낸 목회 기간은 확실히 남다른 탓이다. 

교회 성장과 해외 선교 등에 열을 올리는 기존 한국 목회자와 달리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나라에 임하도록 현장에서 투쟁하며 사회 선교에 힘썼다. 실제 그의 활동은 한국 사회 운동에 많은 위로와 영향을 주었다.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들이 자본의 횡포에 저항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함께했다. 통일을 위해 북한의 교회 지도자들과도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논의한다. 기울어진 언론 지형을 바꾸기 위해 지난 5월에는 현장 언론을 추구하는 <민플러스> 이사장으로 창간에 앞장서기도 했다. 

목회 인생의 새로운 매듭을 지으려는 조헌정 목사를 만나보았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이민 교회 목회자가 한국교회로 돌아가는 일은 흔하지만, 진보적 목회자가 향린교회 목회자로 사역한 것은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먼저, 목회자로 꿈꾸고 추구했던 방향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하면 좋겠다.

한신대, 유니온신학교 등에서 민중신학, 해방신학을 공부했다. 사람들은 거창하게 진보라고 말하는데, 실제로는 예수의 갈릴리 운동을 공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영혼 구원이나 개인 해방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정치적 해방까지 나가야 진정한 해방을 맞는다는 의미다. 

미국의 노예를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노예 생활하면서 영혼 구원만 생각하도록 농장주와 교회가 강조했다. 그들이 죽어서 천국에 간다고 해방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노예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유민이 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필요한 개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실질적인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한 심리적 해방 아니고 사회 부조리, 억압 구조를 깨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평등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사회 구조 변혁을 이루는 목회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고 싶었다.

하나님 안에서 평등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사회 구조 변혁을 이루는 목회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살고 싶었다. ⓒ<뉴스 M> 경소영

이민 교회가 추구하기 쉽지 않은 개념일 수 있을 것 같다.  

이민자들의 삶이 제한되어 있으니 그렇게 볼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위로받고 싶지만, 이민자들은 그러한 마음이 더욱 크다. 이민자의 삶은 상상 이상으로 고단하다. 이런 상태에 계속 머물다 보니 신학이 자라지 못한다. 아쉬운 점이다. 

교회에서도 교인을 신앙의 노예로 교회에 가두어 두려고 한다. 이건 목회자의 문제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간다는 게 높은 학문을 한다는 의미를 말하는 건 아니다. 지성과 삶에 독립을 이루기 위한다는 의미도 있다. 신앙 성장도 다르지 않다. 단순히 장로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민 교회에서 목회할 때 이러한 부분에서 갈등이 있었다. 학교에서 배웠던 신앙을 그대로 가르치진 못해도 잘 이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교인들이 원치 않아 벽에 부딪혔다. 삶이 복잡하니, 신앙생활은 단순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 잘하고, 구원받고, 부자 된다는 논리에 이민 교회가 쉽게 빠지는 이유다. 

향린교회에서의 14년을 돌아본다면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나.

굉장히 만족스럽다. 전통적 교회 목회자의 틀을 떠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교인들이 격려해주었다. 그래서 한국 사회의 모든 부조리한 현장, 고통 받는 모든 현장에 함께할 수 있었다. 용산 참사, 이명박 퇴진 운동, 노동 현장 등 가지 않은 현장이 없다. 노동자들의 고공 농성장에도 두 번 올랐다. 목사로서 유일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향린교회 목사였기 때문에 그들도 받아주었다.

공관복음에는 예수의 공생애 가장 마지막에 성전 정화 사건이 나온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맨 앞에 기술한다. 가장 마지막으로 복음서를 기록한 요한은 이 사건을 가장 결정적인 것으로 보았다.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 이 말씀으로 눈 앞에 성전을 부정한 것이다. 

눈에 보이는 예배당과 건물이 전부가 아니라고 예수가 선포했다. 당시 성전 체제는 정교 합치 시대를 상징한다. 모든 힘의 근거는 성전이었다. 율법이 사회법이었다. 그러한 법 체제의 핵심을 예수께서 공격했다. 안타까운 건 한국교회가 이러한 사실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부정한다는 사실이다. 과연 예수께서 오늘날 교회가 고통 받는 민중의 현장을 외면하고 자기들끼리 좋다고 모이는 걸 원할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수는 눈에 보이는 예배당과 건물이 전부가 아니라고 선포했다. 과연 예수께서 오늘날 교회가 고통 받는 민중의 현장을 외면하고 자기들끼리 좋다고 모이는 걸 원할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뉴스 M> 경소영

교회의 사회 참여와 정치 참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극우적 목사는 극우 정당 창당으로 정치 참여를 주도한다. 기독교인들은 목사, 교회의 정치 참여를 바라보아야 할까.

성서의 본문이 기록된 시기의 사회 정치적 맥락을 읽어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잘 생각해 보라. 오늘날 말하는 ‘복음’은 원래 로마 황제가 전쟁 승리의 소식을 알리는 말이었다. 잠시 후면 수만 명의 노예가 들어오고, 착취당할 여성이 끌려오며, 패배한 국가의 보물이 로마로 쏟아진다. 그게 복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복음서는 예수의 생애와 하나님 나라 선포, 십자가 사건이 ‘복음’이라고 썼다. 당시 사람들에게 복음이 얼마나 역설적으로 들렸을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성서를 볼 때 시대 배경을 함께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 시대를 살면서 어떤 것이 진짜 복음인지 해석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는 현실적으로 살필 수 있다. 헌법이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게 했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 선서할 때 성경에 손을 얹는다. 정교 분리 맞는가. 뭔가 이상하다. 그러니까 정치와 종교 분리 의미를 정확히 해석해야 한다. 정교분리가 단순한 정치 참여 금지를 의미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정치의 한자는 다스릴 정이 쓰이지만, 바를 정을 쓰기도 한다. 올바른 ‘치’, 다스림이 필요하다. 권력을 잡고 정당 정치에 참여하는 종교인이 아니고, 바른 정치로 가도록 도와야 한다는 의미다. 예언서에 나오는 예언자들을  보라. 당시 왕과 권력, 부자를 비판한다. 정치 활동 아닌가.

제사장 역할은 백성 대신 복을 빌어주고. 백성 편에 서서 기도했다. 예언자는 개인이 아닌 사회 구조를 비판한다. 정치 권력을 비판하는 것이다. 정치 세력을 얻기 위한 활동이 아니었다. 그저 외치는 소리였다. 정치 혜택 바라는 것이 아닌 제3자의 역할을 했다. 

정치 참여 금지한다면 목사는 선거하지 말고 투표말아야 한다. 사회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데, 목사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인가. 소금은 썩어가는 부분에 들어가 썩지 않도록 한다. 소금이 사라져야 부패가 사라진다. 당시 빛은 촛대와 같다. 몸을 태워야 빛이 난다. 그렇게 외치는 소리로, 사라지는 빛과 소금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게 목회자의 역할이다.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이 보낸 축하 메시지. 조 목사는 이러한 고통의 현장에 늘 함께한다.

기득권을 비판하는 예언자 역할을 언론이 감당하는 시대다. 현장 언론 <민플러스>를 창간하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어떤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는가.

언론은 국민을 대상으로 설교하는 것이다. 성서 말씀을 인용하지 않을 뿐이다. 언론과 종교의 기능이 비슷하다고 본다. 언론도 커지면 기업이 된다. 교회처럼 말이다. 많은 직원과 기자, 건물 등 스스로 유지하기 위해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과 맞물린다. 미국 언론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권력과 자본에 언론이 붙어 있다.

인터넷 언론이 1인 언론도 가능한 시대가 됐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언론이 금권에 얽매여서 목소리 못 내는 걸 보며, 꼭 새로운 길을 열고 싶었다. 지금 <민플러스>는 광고가 없다. 담쟁이협동조합을 만들어 함께 운영한다. 조합비를 내는 사람을 통해 운영된다. 기자가 운영자 눈치볼 필요가 없다. 

‘언론’이라고 하면 주로 배운 사람, 기자가 기사를 쓰게 된다. 결국 기득권인 그 사람 관점에서 글을 쓴다. 우리가 말하는 현장 언론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쓰는 기사를 의미한다. 노동자, 농민, 약자가 쓰는 기사를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진보적 색깔을 담으려 한다. 화해와 통일, 관계, 사회 진보운동, 국제 네트워크를 통해폭넓은 진보 언론으로 나가려고 한다.

미국 진보 운동가들과 접촉하면서 그런 한인들을 어떻게 보는가.

30년 전, 미국에서 통일과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 전두환 군사 정권을 반대하면서 민주화 운동이 많은 힘을 냈다. 그런데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미주 사회의 동력이 크게 필요 없어졌다. 자연스럽게 이전에 비해 운동 세력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다 이명박정부부터 민주화 운동이 다시 등장했다. 그래서 수가 적고. 분파도 생긴 것 같다.

미국 동부에서 몇 개월 정도 지내는데, 미국의 변화가 많이 느껴지는가.

미국은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너무 심각한 상황이다. 개인의 삶 구석구석에 파고들었다. 정신적 공허가 점점 심해지고, 갈 바를 모르고 있다. 한인 사회라고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와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어떻게 이들을 깨우치고 건강한 길로 함께 나아가게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대형 교회와 목사의 신뢰도는 바닥이다. 누가 정신적 리더십을 발휘해서 일으킬까 염려한다.

워싱턴에서도 카지노에 출입하는 한국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카지노 가면 한국 사람 천지라는 것이다. 패가망신 이야기가 너무 많다. 뉴욕 워싱턴 대도시 마다 공허한 한인들이 많아졌다는 의미다. 예전에는 성실하게 일면 전망이 있었다. 답이 나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 전망이 없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한계가 명확하다. 한국에서 부자들이 돈 가지고 이민 많이 왔다. 여기서 열심히 벌어도 차이가 너무 난다. 허무해 진 것이다.

점차 관계가 단절되는 경험도 공허함이 커지는 이유다. 이전에는 물건을 구입하는 광고를 주로 TV로 접했다. 그런데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너무나 쉽게, 언제든 접한다. 공동체의 협력과 연대보다 인간 개인의 욕망을 부추긴다. 이면에 있는 아픈 사람들은 더욱 감춘다. 단편적으로 지하철 타면 옆 사람 보지 않는다. 손 안에 스마트폰만 본다.

미국인들은 부자 되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그 길에 편승하지 못하면 허무함에 빠져 다른 일에 몰두한다. 삶을 어떻게 값지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지 못한다. ⓒ<뉴스 M> 경소영

뉴욕 등 동부 지역 대도시에 노숙자가 엄청 늘었다. 흔히 말하는 거지가 아니다. 갈 데가 없는 이들이다. 자동차는 가지고 있지만, 집을 뺏겨서 자동차에서 자는 이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만 모이는 장소가 늘어나고 있다고 들었다. 전에는 없던 노숙자가 생긴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 속에서 사업 망하거나 가정이 파괴되면 갈 데가 없다.

미국인들은 부자 되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그 길에 편승하지 못하면 허무함에 빠져 다른 일에 몰두한다. 젊은이들은 게임에 몰두하고, 나이든 사람은 스포츠에 목숨을 건다. 자신을 모두 내던진다. 삶을 어떻게 값지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지 못한다. 

실제 미국에 산다는 것 자체가 부자라는 시각이 없다.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며, 말도 안 되는 부를 쌓은 사람만 쳐다본다. 세계적 시각으로, 욕망을 줄이고 인문학적 자기계발을 해야 하는데, 그러한 일이 쉽지 않다. 교회도 단순히 선교라는 종교적 차원의 이야기만 하지 말고, 이 땅에서 고통받는 계층의 사람을 돕고 위로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게 복된 삶이 아닌가.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미국과 한국 사이에서 혼란할 것 같다. 

한인들의 입장은 글로컬(glocal)로 요약할 수 있다. 단순히 미국과 한국이 다르다는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세계 시민의 시각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예를 들면, 최근 일어났던 중동 전쟁을 생각해 보자.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에서 전쟁이 계속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뿌리를 들어가보면 이스라엘에 위협적인 존재라는 공통점이 있다. 힐러리가 비밀리에  ISIS를 키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지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유대인이 미국의 힘을 이용하고 있다. 시리아에서 전쟁하는데 둘다 미제 무기를 사용한다. 

이렇듯 전쟁을 통해 군수 무기 팔아먹고 사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수출 계산할 때 무기는 빠진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미국 수출의 30%는 군수 산업이다. 미국 산업 자체가 군수 공장이라고 볼 수 있다. 끊임없이 무기 생산해야 한다.

남한은 가장 많은 무기를 수입한다. 한국도 미국의 전쟁 무기 이권에 휘둘린다. 북쪽은 악마화 되어 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핵개발로 저항하려고 한다. 남쪽은 군사작전권을 모두 미국에 주었다. 대통령이 군통수권자라는 이야기는 거짓말이다. 주권이 없다. 남한 정권에는 미국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동한다. 

사실 넓게 보면 동아시아 전체가 그렇다. 일본은 중국과 대립하며 무기를 늘린다. 남한과 일본이 계속 군사적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미국의 군수 산업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평화가 요원한 이유다.

태국 민중의 시위 진압에 참여하지 않고, 진압도구를 바닥에 내려놓은 태국 경찰들의 모습. 이날 경찰들은 시위대와 함께했다. 사진을 누르면 보도된 기사 원문을 볼 수 있다.

무기 이야기가 나오니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권력은 망하는 지점에 섰다. 박근혜 정부가 너무 많은 실수를 했다. 드러난 사실만 봐도 그냥 넘어갈 수위가 아니다. 백남기 농민 사태로 대표되는 힘으로 진실을 감추려고 하는 것만으로도……

강압적으로 모든 문제를 덮으려 했던 탓에 정권은 이제 막바지에 왔다. 한계 상황이다. 얼마 전에 태국에서 반정부 시위가 있었다. 탁신의 여동생이 수장인데, 경찰에 시위를 막으라고 했다. 그런데 경찰들이 진압장비 다 벗고, 평화 시위에 함께 했다. 이런 사진은 한국 언론에서 취급하지 않으려 한다. 한국도 곧 그렇게 될 것이다. 

마무리는 어떻게 할 계획인가. 

홍콩에서 11월 남북 교계 지도자 만남이 열린다. 세계교회협의회에서 동아시아 문제 중 가장 심각하게 다루는 주제다. 지금까지 계속 만나왔는데, 현재 남북관계가 워낙 막혀 있어서 남한 정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다. 이번 모임을 통해 돌파구가 생기길 바라고 있다.

지금 미국에서 지내는 이유 중 하나인 세계의 신학 흐름을 보는 일도 이어갈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볼 수 만날 수 없는 신학적 논쟁의 흐름을 공부해서 한국교회와 나누고 싶다. 앞으로 이러한 역할로도 한국교회와 사회를 섬기고 싶다. 

유영  young2@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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