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복음주의자 81%를 보며 내 안에 무언가가 부서졌다
백인 복음주의자 81%를 보며 내 안에 무언가가 부서졌다
  • 경소영
  • 승인 2016.11.17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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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기사는 미국 기독교 언론매체 <Religion Dispatches>에 실린 욜란다 피어스(YOLANDA PIERCE)의 칼럼을 번역한 글이다. 욜란다 피어스는 프린스턴 신학교 아프리카계 미국인 종교 및 문학을 강의하는 부교수이자 흑인 교회 책임 연구원이다. 코넬 대학에서 M.A. 박사학위를, 프린스턴 대학에서는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종교 역사와 문학, 여성주의 신학, 인종과 종교 등의 분야에서 전문 연구를 하고 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미국 복음주의자 81%가 도널드 트럼프에게 투표했다는 통계 결과가 나왔다. 이를 두고 욜란다 피어스 박사는 이 글을 통해 기독교인으로서, 인종차별과 성 평등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위기감과 절망감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원문 바로 가기) - 기자 주

인종, 인종 차별, 종교에 중점을 둔 주립대학에서 수년 동안 가르친 나는 신학대학에 입학했다. 개인적인 사명감에 따른 결정이었다. 약 10년 전,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삼으십시오”라고 한 기도에 하나님은 새로운 임무를 주는 것으로 응답했다.

나는 유색인종들이 그들의 역사와 백인 인종차별을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기독교계에서 어떻게 인종차별을 했는지 역사적, 신학적 연구를 게을리한다면, 이들이 반항적인 교수와 교인으로 교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오래도록 주장했다. 유색인종이 더 많은 짐을 지더라도, 서로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고 외쳤다.

이 칼럼을 쓴 욜란다 피어스(YOLANDA PIERCE)는 프린스턴 신학교 아프리카계 미국인 종교 및 문학을 강의하는 부교수이자 흑인 교회 책임 연구원이다

나는 백인들이 지배적인 곳에서 주로 가르치려고 한다. 교수이자 멘토로서 인종, 젠더, 성 정체성 등 어려운 문제를 논의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것이다. 물론 성공하는 날도 있고, 실패하는 날도 있다. 그래도 계속 노력한다. 이뿐 아니다. 나를 초청한 모든 백인 교회와 학교에서 이 문제를 이야기했다. 대중 매체에 기고했고, 워크숍을 열었다. 설교와 강연을 했고, 텔레비전과 라디오에도 출연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다리 역할을 수행하려는 노력이었다.

나는 신앙으로 살면서 방관자로 살 수 없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호의적이지 않은 곳에도 방문했다. 나는 안수받은 여성 목회자지만,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주지 않는 교회에서 설교했다. 성소수자 권리를 지지하지 않는 교회에서 성소수자 지지자로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을 이야기하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기독교인들이 모인 곳에서도 초청받아 강연했다.

어떤 이들은 나를 그리스도 안에서 한 자매로 받아들였고, 다른 이들은 이단으로 여겼다. 그러나 난 소명을 받은대로 일을 해오고 있다. 그 길을 따라 나를 돕는 학생, 동료,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나의 모든 삶을 지탱해준 흑인 교회에서 환영해주는 것도 감사하다. 이 일은 쉽지 않다. 때로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메모를 우편함에서 발견할 때 사무실에서 남몰래 울곤 한다.

개신교인들 중 소위 '거듭났다고 하는' 백인 복음주의 신자들만 따로 뽑아 보면, 81%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트럼프 대통령 현상의 절대적인 공헌자가 된 것이다.

이렇듯 평생 신학교육에 모든 것을 쏟은 내 마음은 역사적인 2016년 대선 결과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려고 투쟁하고 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복음주의자 81%가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투표했다는 결과 앞에서 말이다. 

장애인 기자를 조롱하고, 기자를 조롱하지 않았다고 거짓말한 사람에게 복음주의자 81%가 투표한 것을 지켜보았다. 여성을 성폭행하고 그렇게 해도 별문제 없을 거라고 확신하고 인정하는 사람에게 복음주의자 81%가 표를 던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81%의 복음주의자들이 불륜, 이혼, 중복 결혼, 포르노 산업 참여, 세금 환급 내역 공개 거부, 자선 단체에 약속한 기부금 납부 미납, 자신을 지지한 사람들(아내와 부모 포함)을 향한 조롱,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멕시코계 미국인, 무슬림을 향한 인종차별 발언을 모두 하찮게 여기고 결국 그에게 투표한 것을 보았다.

유권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칭 기독교인이라고 말하지만, 어떠한 신앙이 있는지 묻는 기초적인 질문에도 답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들은 투표했다.

그들이 뽑은 당선인은 대통령 수락 연설에서 하나님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에게 투표하는 것을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한 번만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다’거나 ‘하나님이시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od bless America)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내 형제자매들 (그들 중 몇몇은 인종 차별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과 흑인과 유색인종, 무슬림, 이민자 등 많은 소수자의 진짜 삶과 경험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척 애석하다. 가장 중요한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데 말이다.

거짓말과 인종차별주의, 조롱의 반대편에는 ‘진짜’ 사람이 있다. 그들은 이슬람 혐오에 시달리며 폭행당하는 무슬림이다. 미국이 환영하며 받아준 이들이다. 성폭력이 단순히 ‘라커룸’ 장난으로 그 의미가 퇴색된 탓에 강간당하고 성폭력을 당하고도 정의를 찾을 수 없는 여성들 말이다.

2005년 도널드 트럼프가 여배우 아리안 저커 등을 대상으로 심한 음담패설을 했다. 그는 자신의 과거 성폭행 시도 관련 파문에 대해 “그것은 ‘락커룸 대화(locker room talk)’였을 뿐”이라며 논란을 피해가려고 했다. 남자 운동선수들이 탈의실에서 옷 갈아 입으며 나눌 법한 대화로서 남자들끼리만 있을 때 그런 음담패설을 주고 받는 것이 뭐가 그리 대수냐는 의미였다.

그들은 차별받는 사람을 괴롭히고 폄하하는 대통령 당선인의 공개적 행동 때문에 왕따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고려할 아이들이다. 그리고 대통령 당선 수락 연설 중 누군가가 “오바마를 죽여라”라고 소리쳤을 때 누구도 이를 막지 못할 거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흑인들은 본인들이 대통령에 대한 인종차별적 분노를 대신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선거일 밤에 트위터에 썼던 것처럼 나는 지금 위기에 처했다. 난 어떻게 인종차별을 넘어설 다리를 계속 만들어내야 할까. 인종차별주의 단체인 KKK를 지지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말이다. 아니면, 8년 후에도 현재 대통령은 시민이 아니므로 불법적으로 대통령에 취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과 함께해야 하는 걸까.

욜란다 피어스가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백인 복음 주의자들 : 당신은 그리스도의 흑인 형제와 자매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당신이 백인을 사랑한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입증했습니다."

피부색 때문에 범죄자로 몰렸다가 무죄로 풀려난 5명의 무고한 흑인 남성의 죽음을 요구하는 사람을 포용하는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과 계속 교제할 수 있을까. 흑인과 유색인종 청소년이 지속적인 감시를 받아 마땅한 범죄자라고 주장하는 동시에, 대통령 당선인의 악명 높은 도덕적 타락을 용서하는 일에는 거침없는 사람들과 인종차별을 넘어서 정의를 이룰 수 있다고 어떻게 믿어야 할까.

노예로 살았던 자들의 후손으로서, 나의 조상들은 미국에서 인디언을 제외하고 다른 어떤 종류의 사람들보다 가장 오래 미국에서 살아왔다. 난 우리 조상의 피와 보상받지 못한 노동으로 건립된 이 나라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프리카 요람에서 탄생한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이다. 나는 조상들의 유산인 신앙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항상 아프리카 미국인으로서 이 나라에 살면서 경험한 진실을 이야기할 것이다. 미국은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 다른 형태의 여러 구조적인 잘못을 분명하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도 드러낸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내 경력을 지속해 나갈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내가 평화운동가가 되는 비용을 계속 지불할 수 있을지, 사회적 소수자 공동체에 심한 상처를 입히는 사람들과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역시 잘 모른다. 내 안에서 무엇인가 깨졌다. 깨진 것은 희망이다. 인종과 성 평등을 위한 사역을 교회에서 껴안을 수 있을 거라는 덧없는 희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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