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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드러난 '간첩 공장'의 진실[신간] 대한민국의 간첩조작사를 폭로한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지난 달 잇달아 개봉한 영화 <그물>과 <자백>은 모두 '간첩 조작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다. 픽션과 실화라는 차이가 있지만, 두 작품 모두 국가의 폭력 앞에서 한 개인이 얼마나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지 관객들에게 묻고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얼마 전, 두 작품을 연달아 감상했다. 배신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과거 독재정권에서나 자행했을 법한 간첩 조작 사건이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는 현실이 기가 막혔다. 정부기관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남아있었기에 실망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영화 <자백>의 엔딩 크레디트에서는 그동안 국가가 자행해온 간첩 조작 사건들이 재심 청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음을 언급하고 있었다. 소름 돋는 현실에, 어렴풋이 알고만 있던 조작극의 실체를 더 파헤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자백> 엔딩 크레딧. 그동안 벌어진 간첩 사건들이 재심 청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음으로써 정부에 의한 조작극으로 드러났다. ⓒ (주)시네마달

영화 개봉 즈음 때마침 한 권의 책이 출간됐다. 대한민국 간첩 조작사를 폭로하고 있는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다. 영화 <자백>의 최승호 감독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함께 봤으면 좋겠다"고 적극 추천한 책이기도 하다. 현직 <프레시안> 서어리 기자가 2015년부터 온라인에 연재한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시리즈를 한 권으로 엮어냈다.

겁부터 났던 첫 만남

'탈북자 출신 간첩'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씨. ⓒ 이종호

입사 2년 차 막내 기자였던 저자가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간첩 조작 사건을 파고들게 된 계기도 흥미롭다.

2013년 12월, 저자는 '재밌는 소재가 없나' 하며 신문을 들추다가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고 한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피의자 유우성씨였다.

저자와 유씨는 2009년 같은 어학원에서 함께 수업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설마 그럴 사람이 아닌데...' 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전화를 건 것이 '간첩 조작 사건'에 발은 담그게 된 시작이었다.

당시 언론들은 이미 유씨를 남파간첩인 것처럼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믿기지 않아 먼저 전화를 걸었음에도 막상 "만나서 얘기하자"는 그의 말에 겁부터 났다고 고백한다.

"실은 무서웠다. 정말 간첩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나한테 해코지하는 건 아닐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덮쳤다. 1심 재판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기사들을 읽었지만, 나는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 p.7 

몇 번의 만남 끝에 그녀는 비로소 유씨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있었다. 의심이 걷히자 자연스럽게 그를 간첩으로 몰아간 정보기관에 배신감이 들었다.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넣고도 무죄임이 밝혀지자 '나 몰라라' 발뺌하는 행태에 분노를 느낀 것이다. 마침내 특유의 '기자 정신'이 발동됐다.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정말 간첩이라면 일말의 안타까움을 거두고 당장 법의 단죄를 받게 해야 했다. 그런데 만약 그가 간첩이 아니라면 누명을 벗겨주고 원래 삶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줘야 했다. 그게 기자의 도리였고, 가까웠든 멀었든 잠시나마 함께 알고 지냈던 사람으로서 할 일이었다" - p.8

드러난 간첩 조작극의 실체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 책 표지 ⓒ 한울엠플러스 (주)

모든 것은 유씨의 말대로였다. 2014년 2월, 검찰 쪽 핵심 증거였던 중국 공문서가 위조로 밝혀졌다. 문서 위조 협조자인 조선족 김아무개씨는 국정원으로부터 위조를 사실상 지시받았다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했다. 3월 9일, 국정원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국민들에게 안긴 충격도 컸다. 하기야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었을 법한 정보기관의 조작극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사과문을 발표한 바로 다음 날, 검찰은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 사건'을 발표했다. 조작 논란으로부터 국민들의 이목을 돌리기 위한 꼼수임이 분명했다. 뒷 얘기지만 이 사건 역시 허위 자백에 의한 가짜 간첩 사건으로 밝혀졌다.

검찰과 국정원의 반성 없는 행태에 저자는 분노했다. 그는 "반성 없는 국가와 국가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한 인간을 지켜보면서 어지러움을 느꼈다"며 "반성하지 않는다는 것은 앞으로도 똑같은 일을 반복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국정원은 지금도 또다시 어디에선가 조작 간첩을 찍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는 "유우성 사건을 통해 알려진 검찰과 국정원의 만행이 이대로 묻혀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며 온라인에 간첩 조작사를 연재하기 시작한 경위를 밝혔다. 그렇게 총 10회에 걸친 연재물의 결과가 바로 이 책이다.

물고문·전기고문 세례... 허위자백 하게 만들어

영화 <그물> 스틸컷. 국정원 수사관(김영민 분)이 북한 어부 남철우(류승범 분)에게 자백을 강요하고 있는 장면이다.ⓒ NEW

영화 <그물>의 한 장면. 물살에 휩쓸려 남쪽으로 내려온 북한 어부 남철우(류승범 분)는 국정원 조사실에 갇힌 채 '간첩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끝까지 간첩임을 부정하는 철우에게 조사관(김영민 분)은 말한다.

"빨리 자백해. 적당하게 꾸며줄 테니까. 몇 년 살고 나와서 안보교육이나 하면서 대한민국에서 주는 돈으로 편하게 먹고 살면 좋잖아?"

분노에 찬 눈빛으로 조사관을 바라보던 철우가 절규하듯 내뱉는다.

"네레 그렇게 간첩이 필요하네? 이딴 식으로 대체 간첩을 몇 명이나 만들었네!"

영화니까 과장된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보다 더 가혹했다.

1부 '간첩 공장의 진실'에서는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국정원에 이르기까지 탈북자 신문 과정에서 정보기관들이 자행한 인권 침해 사례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여기서 드러나는 단편적인 사례들만 봐도 영화 속 장면은 매우 점잖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탈북자들에 대한 신문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 바로 '대성공사'다. 2008년 중앙합동신문센터(현재는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가 개관하기 전까지 탈북자들에 대한 신문이 이루어졌던 시설이다.

피해 사례로 등장하는 탈북자들은 대성공사에서 불법 구금과 폭력 등 가혹행위가 빈번하게 이루어졌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악명 높은 중앙정보부 시절에는 물고문, 간지럼 고문, 전기고문 등이 빈번하게 이뤄졌다. 3년 6개월 동안 대성공사에 불법 구금당했던 김관섭씨 역시 그 당시의 끔찍했던 기억을 이렇게 회고했다.

"'남한에 살러 왔다'고 누차 설명해도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헌병들은 포승줄로 상반신을 묶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입과 콧구멍에 수건을 덮고 고춧가루 탄 물을 주전자로 들이부었다. 까무룩 정신을 놓으면 다시 물을 끼얹고 '왜 남한에 왔느냐'라고 물었다. 공포에 질린 그는 결국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박정희를 암살하러 왔습니다'" - p.23

얼마나 웃긴 나라입니까, 여기가

2부 '조작 간첩으로 살기'에서는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영문도 모른 채 간첩으로 몰린 이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일본에 사는 사촌 형을 만나고 왔다는 이유만으로 간첩으로 몰린 제주도 간첩 사건 피해자 고 김인봉씨부터 온 가족이 간첩으로 몰린 '삼척 고정 간첩단' 사건까지.

집안의 성실한 가장이자, 착한 아들이었던 평범한 시민도 국가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간첩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들은 2010년 이후 재심 청구를 통해 무죄를 선고 받았거나, 지금도 계속 재판을 준비 중이다.

초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했지만 '북괴의 지령에 따라 군사기밀을 탐지 보고하고 소요를 배후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옥살이를 한 김순자씨. 어릴 적 살던 마을을 돌아보며 그녀는 혀를 찼다.

"여기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간첩 누명을 썼을꼬. 우리나라처럼 가짜 간첩 많은 나라가 없다 하대요. 얼마나 웃긴 나라입니까, 여기가" - p.173

책은 실제 피해자들에 대한 인터뷰 형식으로 전개된다. "인터뷰만큼 사건의 실체와 피해 정도를 명징하게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당사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에 콕 박혀왔다. 

나중엔 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어온 이들에게 대한민국이 가했던 폭력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신 사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권교체가 해답? 그보다 더 큰 구조의 문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간첩 날조 사건들을 보면서 새삼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두 대통령은 국정원 개혁을 위해 얼마나 절치부심했던가. 김대중 대통령은 그 스스로 정보기관이 조작한 내란 음모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민주정부가 집권하는 동안 인권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등이 설치됐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악몽은 그저 역사교과서에서나 접할 수 있는 과거의 일로 치부됐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조작극으로 드러났을 때, 국민들이 받았던 충격이 유난히 컸던 이유다. 분노한 국민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정권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책은 정권교체가 근본적인 해답이 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담당했던 장경욱 변호사는 "조작 간첩은 순식간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정교하게 기획된다"며 "비단 한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더 큰 구조의 문제"라고 꼬집는다. 민주정부 10년 동안에도 정보기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밀하게 공작을 꾸미고 있었을 거란 얘기다.

검찰·국정원 개혁 그리고 국가보안법

'그보다 더 큰 구조'를 무너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지막 장인 3부에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결론은 조작극의 주체인 검찰과 국정원을 개혁해야한다는 것이다. 개혁을 위해 어떤 조치들이 취해져야 하는지까지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를 들 수 있다. 영장주의나 증거 재판주의와 같은 개념이 없는 상태로 독자적인 수사권을 휘두르다보니 국정원의 몸집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최병모 변호사는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갖고 있는 나라가 우리밖에 없다. 미국 CIA나 이스라엘 모사드 같은 정보기관은 숨어서 활동하지, 대놓고 수사권을 갖고 있지 않다"며 대공수사권 폐지만이 국정원의 날조와 인권침해 등을 방지할 수 있는 길이라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도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책은 문제 해결의 열쇠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들고 있다.

실제로 헌법 위에 국가보안법이 군림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가보안법은 우리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왔던 족쇄였다. 이 족쇄는 통치자들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꾸준히 활용됐다. 법을 악용한 통치자들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간첩으로 몰려야만 했던가. 선거 때만 되면 슬며시 고개를 드는 북풍(北風) 뒤에도 국가보안법이 있었다.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들은 "국가 안보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와 관련된 처벌 조항은 이미 형법에도 다 나와 있다"며 "국가보안법이란 것 자체가 한국밖에 없는 데다, 적용 기준도 모호해 문제가 많다"며 철폐를 주장한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과거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도 함부로 건드리기 어려울 정도로 무시무시한 괴물이 되어버린 상태다. 야당도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함부로 폐지를 말하지 못한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경욱 변호사는 우리 사회가 '분단 공포증'을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국가보안법이 없으면 마치 이 사회가 유지되지 못하고 나라가 북한에 의해 먹혀버릴 것 같은 허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싸워서 극복해야 하는데 허위의식에 갇혀 순응해버리는 거다. 그래서 사람들은 싸우면 죽을 것 같고, 그래도 지금보다는 숨통이 트일 수 있는 환경으로 가는 방향을 택한다. 그게 바로 정권 교체 주장이다." - p.228~229

재조산하,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할 때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전국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휩싸인 상태다. 비선 실세가 대통령의 연설문부터 국가의 안보·경제·문화 등 개입하지 않은 국정 분야가 없다는 사실에 모두가 경악했다. 캐면 캘수록 줄줄이 쏟아지는 박근혜 정권의 부정부패 스캔들에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 황당함을 느낄 지경이다. 분노한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검찰은 여전히 미온적인 수사로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수사대상인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방식을 놓고도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고 있다. 비리 혐의로 수사 중인 피의자 앞에서 수사관이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있는 사진 한 장은 여전히 권력의 시녀를 자처하는 검찰의 현 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기회일는지도 모른다.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유우성씨를 변호했던 장경욱 변호사가 한 '예언'을 들어보자.

"유우성 사건 하나 밝혀진 것만으로도 분단 이후 이어진 국가 지배체제가 근본부터 흔들린 거라고 본다. 거대하고 튼튼해 보이지만, 사실은 허위로 지어진 구조이기 때문에 결정적인 사건 몇 번이면 쉽게 깨질 거라고 본다. …(중략)… 유우성 사건 같은 일이 한 번만 더 일어나면 그때는 정말 끝장일 것이다." - p.229~230

마치 이번 논란이 일어날 거라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다. 장 변호사의 말대로 국정원과 검찰의 간첩 조작극은 분단 이후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진 친일독재정권의 뿌리를 흔드는 계기가 됐다. 이번에 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사실상 그에 대한 사형선고인 셈이다.

재조산하(再造山河). 나라를 다시 만든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산통을 겪는 중이다. 그러나 오늘도 촛불을 들기 위해 광장으로 향하는 시민들을 보면서 내일의 희망을 본다. 새롭게 태어날 대한민국에서는 더 이상 정부기관의 조작 따위에 피해를 입는 이들이 없으면 하는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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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newsm@new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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