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는 교회와 담을 쌓을 수밖에 없는가?
진보는 교회와 담을 쌓을 수밖에 없는가?
  • 김기대
  • 승인 2008.03.17 2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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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미국 교회와 정치 이야기…에이미 설리번의 [신실한 정당]을 읽고

“우리는 우리 문화 속에 만연해 있는 물질주의와 공정하지 못한 분배를 배격해야 한다. 우리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이 나라를 견제해야 한다. 그들은 전쟁과 폭력을 병적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남성들에게는 교만한 지배의식을 여성들에게는 무책임한 수동적 성격을 가지도록 독려해왔음을 인정한다. 이제 우리는 모든 남자와 여자는 서로 섬기는 관계여야 함을 주장한다. 이 선언을 계기로 우리는 어떠한 정파도 후원하지 않는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 국가 지도자들에게 정의로 나라를 고양시킬 것을 요구한다.” (시카고 복음주의 선언문 중에서)

1973년 가을 시카고에 모인 복음주의자들이 발표한 “사회 문제에 대한 시카고 복음주의 선언(the Chicago Declaration on Evangelical Social Concern)”의 일부이다. 이 선언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자 이 선언문에 서명하지 않았던 복음주의자들이 뒤늦게 서명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복음주의 진영 반대편에 있던 교회협의회(NCC)도 축하 편지를 보낼 정도였다. 미국 복음주의자들이 이렇게 좌파(?)적 발언을 할 때도 있었나 싶기도 했던 35년 전 이 선언문은 마치 오늘 한국 교회의 보수적 지도자들을 향하는 것 같다.

▲ <타임>에서 종교와 정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에이미 설리번(Amy Sullivan)기자가 지난 2월 펴낸 <신실한 정당(the Party Faithful)>.
<타임>에서 종교와 정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에이미 설리번(Amy Sullivan) 기자는 지난 2월 <신실한 정당(the Party Faithful)>을 출판했다. 이 책은 최근 미국 민주당이 보여주고 있는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한 구애 전략을 다루고 있지만,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미국 교회사로도 손색이 없는 책이다.

미 복음주의자들에게 민주당은 생명권(pro-life)보다 여성의 선택권(pro-choice)을 우선하는 낙태 ‘권장’ 정당으로 비친다. 그래서 “좋은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과 민주당원이 된다는 것은 양립할 수 없다(it is not possible to be a good Christian and a Democrat)"고 주장한다. 70년대의 복음주의 선언이 무색하리만큼 우파 정치 세력이 되어버린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교인들에게 끊임없이 이런 주장들을 전파한다.

따라서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진보 세력들은 교회를 설득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 부시 진영은 기독교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반면 케리 진영은 종교 분야에는 인턴급 참모 하나만을 두었을 뿐이고 결과는 케리의 예상 밖 대패였다. 

이런 쓰라린 기억을 가진 민주당은 이제야 기독교인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전에 없었던 일이다. 오마바는 연설에 앞서 그의 참모들과 기도하는 사진을 배포하기도 하며(<Time> 2월 14일자 참조), 힐러리는 기도의 전사(prayer warrior)라는 용어를 쓰면서 그녀 뒤에 막강한 기도부대가 있음을 자랑한다.

낙태와 동성애 등 때문에 민주당이 전통 보수 기독교인들에게 불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독교 유권자가 반드시 이런 문제로만 투표하지는 않는다고 에이미 설리번은 충고한다. 민주당이 기독교 유권자의 마음을 읽는 정책을 내놓는다면 떠나간 표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주요 기독교단은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황금기였다. 사회는 계속 진보적 의제를 생산해내었고, 주요 교단들은 그 정책을 지원했다. 미국 내 진보 세력과 교회의 밀월 관계 속에서 반전 평화 운동, 여성 권익 운동, 인종차별 반대 운동 등이 자리잡았다. 보수적 입장을 버리지 못하던 미국 공화당은 닉슨 이전까지는 만년 야당을 벗어나지 못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정당이었다.

비록 지금 미국장로교(PCUSA), 감리교(UMC) 등 주요 교단들이 교인 감소를 겪고 있고, 새로운 ‘구도자’들이 비교파 교회들을 찾고 있지만 미국의 주요 교단들이 미국 사회 진보에 기여한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앞에 소개한 복음주의 선언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부응하던 복음주의자들의 자기 고백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소외 계층은 있는 법이다. 진보 교단들이 거대 담론에 치중하는 동안 생활의 문제, 개인의 영성 문제에 파고드는 새로운 복음주의자 그룹이 활동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빌리 그래함이다. 이들은 진보주의자에게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을 신복음주의자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들은 선배 복음주의자들처럼 ‘무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배 복음주의자들이 세속 문화를 적대시했다면 신세대들은 문화 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풀러신학교를 모함(母艦)으로 해서 학교를 세우고 매체를 만들어갔다. 진보적 담론이 이제 더 이상 진보가 아니고 일반적 사회 현상으로 자리잡게 되었을 때 진보는 새로운 진보의 문제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진보 교단들이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았을 때 이미 때는 늦었다. 교회의 주도권은 신복음주의자들에게로 넘어가고 있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을 끝으로 민주당과 미국 주요 교단의 밀월도 끝이 났다. 카터 이후 레이건은 그렇게 종교적인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교회 지도자를 향하여 유명한 말을 남긴다. “여러분이 저를 지원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을 지원할 것입니다.”

이 책은 반면교사로서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미국처럼 대부분 한국 교회는 우파적 담론의 생산기지다. 그러나 대중만 탓할 수 없다. 필자를 비롯한 이른바 진보적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주류가 되어갈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자문해야 한다. 야학에서 노동 현장에서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서 교회의 역할은 지대했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는 개인의 영성의 문제는 사치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심지어는 영성조차도 사회과학적 용어로 풀어나가던 우리가 아니던가? 

이제 진보적 기독교인들은 사회의 진보적 담론을 계속해서 생산해나가되 대중들의 텅 빈 가슴도 달래줄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옳으니까 무조건 따라와”는 노무현 전 대통령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우리 또한 그랬음을 고백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민주당과 기독교의 관계라기보다는 현대 미국 교회를 이해하는 데 좋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단어는 가끔 생소한 단어가 나오지만 문장은 전체적으로 어렵지 않다.

끝으로 이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 하나만 소개하겠다. 

1996년 4월 3일, 클린턴 정부의 상무장관 론 브라운(Ron Brown)이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 이때 클린턴이 조사를 낭독하기로 되어 있었다. 참모들이 조사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론 브라운이 평소 자주 인용하던 성경구절을 원고에 첨부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구절은 원고에 첨부했는데 그 구절이 도대체 성경 어디에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연설 직전 클린턴에게 연설 중에 읽을 구절만 인용하고 출처는 찾지 못했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때 클린턴이 원고를 힐끔 보더니 “이거 이사야 40장 31절이구먼” 하고 답해 참모들을 놀라게 했다.

“오직 주를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표준새번역)

이 책의 저자는 클린턴이 민주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성경 지식이 상당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 에피소드를 소개한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참모들의 무지가 먼저 보인다. 이 책에 따르면 참모들이 인터넷을 검색해도  찾지 못했다고 나와 있는데, 그 이유가 NIV와 King James의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eagles만 쳤어도 쉽게 발견했을 터인데 말이다. 하여튼 조금 이상하지만 흥미로운 에피소드다. 책에 대한 더 상세한 정보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ww.amazon.com/Party-Faithful-How-Democrats-Closing/dp/0743297865)

김기대 / 기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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