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 단상(斷想)
'촛불시위' 단상(斷想)
  • 김은주
  • 승인 2016.11.30 0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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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3차 '박근혜 퇴진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뉴욕 시위 참석 후기

날씨가 몹시 흐린 날이었다. 아침에 잠을 깼는데 몸이 개운치 않았다. 아주 오랜만에 늦잠을 잤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아이들과 피자를 먹으러 맨해튼에 가기로 한 약속 때문에 난 뉴저지에서 뉴욕시로 달려야만 했다. 긴 연휴를 맞이하여 아이들과 재미있고 뜻깊은 시간들을 가지고 싶었다. 어제는 친정 식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영화까지 보았는데, 오늘은 애들이 좋아하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물주가 된 엄마로서 쇼핑을 좋아하는 딸들을 따라 다녔다. 

그리고 이 바쁜 틈을 내서 친구에게 전화했다. 의미있는 시간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만나기로 했다. 친구가 꽃단장을 할 수 있도록 미용실에 데려다 주고, 아이들 손에는 저녁 거리를 들려 집에 데려다 준 후 난 다시 친구를 데리러 미용실로 달려갔다. 저녁 6시 반이 다가온다. 서둘러 친구 집에 들러 주차를 하고, UBER 택시를 타고 플러싱에 갔다. 바쁜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드디어 3차 "박근혜 퇴진 뉴욕 시민들의 시위" 장소에 도착했다.

3차 박근혜 퇴진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위에 참석한 한인들의 모습.ⓒ<뉴스 M> 유영

사람들이 이미 많이 모여 있었다. 반가운 얼굴이 사회를 보고 있었다. 그는 멀리 코네티컷 주에서 수 시간 달려왔다. 사회를 보고 뉴욕 시위에 동참하기 위해 이곳에 온 동지의 모습을 보는 순간, 몹시 반가웠다.

바람이 매우 쌀쌀했다. 모자를 썼는데도 목과 머리가 추웠다. 이 때 심한 두통이 왔다. 두통 때문에 이날 시위를 망칠 수 없다는 생각에, 친정 엄마와 즐겨가던 '장가네'라는 식당에 가서 잠시 안정을 취했다. 그리고 뜨끈뜨끈한 해장국 한 그릇을 포장해 나왔다. 열심히 사회를 보고 코네티컷으로 먼 길을 다시 올라 갈 동지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가 조금이나마 따스한 마음으로 돌아 갈 수 있도록 해장국을 건넸다. 비록 해장국 한 그릇이지만 내 마음은 흐뭇했다. 

한편, 이번 시위는 아주 새롭고 신선했다. 소위 말하는 '전문가 데모꾼'의 시위가 아니었다. 매우 소박한 사람들이 나와서 자유 발언을 하고,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노래도 우렁차게 같이 불렀다. 새로운 분위기에 나도 무언가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아주 신선했다. 

전문적으로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좋았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다시 하면 되었고,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성원해 주었다. 이웃이 함께 하는 모인 것에 의미가 있었다. 

디자이너 김성미 씨는 박근혜 퇴진을 염원하며 만든 작품을 소개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사진/ Dami choi)

어떤 디자이너는 정성스럽게 그림을 그리고 작품도 만들어 소개했다. '박근혜가 있어야 할 곳은 감옥'이라는 작품은 매우 인기가 있었다. 이 작품을 보고 나니, 심했던 두통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촛불 민심의 따뜻한 열기 속으로 두통이 없어져 버렸다.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민중의, 평범한 사람의 혁명이로구나! 민초의 사랑과 염원을 뜨거운 가슴으로 뿜어낸 혁명!'

'아... 코네티컷에서 온 그 동지도 해장국이 뜨거웠을 때 먹었으면 좋았을텐데...'

집회가 끝난 후, 친구 집 동네에 주차해 놓은 차를 다시 타고 집으로 향했다. 이번 '박근혜 퇴진 뉴욕 시위'에서는 따스한 감동을 느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집에 도착하자 마침 그때 "따르릉!" 전화가 왔다.

"엄마! 언제 집에 와요?"

내 예쁜 쌍둥이 딸들이 엄마를 애타게 기다린다. 반가운 내 아이들의 전화, 이것도 '사랑의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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