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헌법을 읽어야 하는 이유
지금 다시, 헌법을 읽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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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2.01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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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의 국정 농단은 대한민국을 수렁으로 빠트렸다. 진보·보수할 것 없이 각 매체는 연일 단독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오죽하면 한 작가는 작금의 상황이 상상 그 이상의 소설적 경험을 보여준다며, 자신 같은 소설가들은 더는 할 일이 없다고 한탄했을까.

그 작가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헌법’을 읽어야만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로고폴리스에서 펴낸 <지금 다시, 헌법>은 더없이 반가운 책이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헌법을 쉽게 풀어냈다. 현 시국에서 살펴봐야 할 조항을 하나하나 짚어보자.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 대한민국 헌법 제69조 [대통령의 취임선서]

2013년 2월 25일,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위와 같은 취임 선서를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선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임기를 1년여 남긴 지금의 대한민국은 국정농단 게이트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이제 뭐가 더 남아있는지 모르겠지만, 4차에 걸쳐 집회를 가진 시민들의 요구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태도를 보면 제 발로 청와대를 걸어 나올 것 같지 않다. 결국, 탄핵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 제65조 1항 [탄핵소추권과 그 결정의 효력]

국회에서 탄핵을 의결하면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가게 된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의결서가 접수되면 180일 이내에 탄핵을 결정해야 한다. 탄핵이 결정되려면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이 찬성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의 임기가 내년 1월 31일까지이며,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도 내년 3월 14일이면 끝난다. 즉, 임기가 만료되는 두 재판관을 제외한 7명의 재판관 모두가 찬성해야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버티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며,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재판관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한다. 헌법재판소의 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재판관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 제111조 2,3,4항 [관장과 구성등]

헌법재판관은 사실상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각 3분의 1씩 지명한다고 보면 된다. 대법원장이 3명을 지명한다는 것은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하위에 있다는 것과 같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제도를 최초로 만든 오스트리아나 이 제도를 정착시켜 세계 각국으로 수출한 독일은 헌법재판소가 사법부의 정점에 있지 않다. <지금 다시, 헌법>의 저자들도 ‘어차피 정치성을 갖는 것이 헌법재판소라면, 재판관의 임명도 국회라는 정치의 투쟁에 맡기는 것이 정도’라고 강조한다.

헌법재판관의 자격도 논란이다. 헌법상으로는 법관의 자격이 있는 법률가만 헌법재판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 판단이 대부분인 헌법재판을 법률가들에게만 맡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의 기본권과 국정의 기초가 되는 다양한 지식과 세계관을 가진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헌법재판이 필요하다. 이 조항은 개정해서 철학자, 사회학자, 정치학자, 경제학자, 여성학자 등에게도 헌법재판관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제1조 1,2항 [국호·정체·주권]

현재의 헌법은 1987년 10월 항쟁의 결과로 개정된 것이다. 전문(全文)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나와 있다. 개정되기 전의 헌법은 인권유린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부녀간 대물림의 암울한 결과이기도 하다. 1972년 7차 개헌으로 박정희 대통령은 국회해산권, 긴급조치권 등 개악을 서슴지 않았다. 이른바 유신헌법으로 평생집권을 획책했던 것이다. 이때의 헌법은 박씨 가문의 가훈에 다름없었다.

1974년 4월 9일, 유신정권은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 피고인 8명의 사형을 집행했다. 대법원 선고 바로 다음 날이었다. 심지어 유신정권은 사형당한 8명의 시신을 유족의 동의 없이 탈취해 화장해 버렸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2007년 1월 23일 재심을 통해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훗날 대선에 나선 박근혜 후보는 이 사건을 두고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며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유신 공주로 착각하며 사는 건 아닐까.

대한민국의 인민은 종교,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집회, 통신, 주소 이전, 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가진다.

–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4조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집회·결사의 자유는 이미 임시정부의 헌장에 명시돼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개악 외에는 대부분 임시헌장의 조항들은 시대에 맞게 개정됐을 뿐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과 부칙을 제외하고 모두 130개의 조문으로 이뤄져 있다. 조문은 다시 항목에 따라 10개의 장으로 나뉜다. 천천히 정독해도 30분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헌법을 제대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플라톤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벌 중 하나는 자신보다 하등한 존재의 지배를 당한다”고 했다. 우리 모두 헌법을 정독해서 우리의 권리를 찾자. 이제 며칠 뒤면 농민들이 트랙터를 타고, 제주도의 주민들은 비행기를 타고, 모든 국민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일 것이다. 우리는 외쳐야 한다. 지금 다시 헌법을, 4·19와 6·10의 승리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을.

손석희도 말했다. “헌법은 시민을 위한 ‘교양 필수’”라고.

출처/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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