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경험한 반(反) 트럼프 시위와 박근혜 하야 집회
직접 경험한 반(反) 트럼프 시위와 박근혜 하야 집회
  • 이상인
  • 승인 2016.12.03 0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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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나는 뉴욕에 9년째 사는 디자이너이자 사회 운동가이다.  

2016년 우리는 그야말로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아니 적어도 내가 현재 사는 곳과 자라온 곳에서는 적어도 그렇다. 미국은 투표 당일인 11월 8일 아침까지만 해도 여론조사의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힐러리의 승리가 점쳐졌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정반대였다. 광범위하게 차별과 혐오를 설파해 온 역대 최악의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고 만 것이다. 투표가 있었던 다음날인 11월 9일 아침의 뉴욕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붕'이었다.

특히 뉴욕 지역의 특성은 트럼프가 나고 자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반트럼프 도시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뉴욕은 전 세계 모든 인종이 모여있는 도시이고, 자유와 평화의 기치 아래 꿈을 좇아 살아가는 활동적인 도시이기에 억만장자이자 막말을 일삼는 백인 우월주의자를 대통령으로 반길 리 만무했다. 

미국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의 모습.

출근 길 지하철에서 웃는 이들 하나 찾아볼 수 없었고, 회사에서도 침울한 분위기는 이어졌다. 그렇게 트럼프 당선 다음 날이 흘러가는 듯했다. 저녁에 친구와 식사를 하며 '외국인인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러쿵저러쿵 심각한 이야기를 하였다.

식사를 마친 후 길거리에 나왔다. 그런데 난데없이 큰 인파를 맞닥뜨린 게 아닌가. 당황한 나와 친구는 '이게 뭔가' 하고 봤더니 트럼프 반대 시위대였다. 뉴욕 맨해튼의 중심인 5번 가를 중심으로 트럼프가 사는 트럼프 타워까지 행진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제각기 제작해 온 피켓과 깃발들을 들고 목표지점으로 행했다. 에비뉴를 끝도 없이 메운 것으로 봐서 족히 수만 명은 돼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구호는 다음과 같이 다양했다. (아래 영상으로 트럼프 반대 시위 현장을 확인할 수 있다.)

"This is what democracy looks like!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You are not my president! (넌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다)" 

삼십 분 정도를 걸어 트럼프 타워에 도착했다. 나는 운이 좋게도 시위대 맨 앞에서 트럼프 타워를 바로 마주할 수 있었다. 트럼프 타워 앞에는 차 벽과 경찰이 있었지만 사실 분위기 자체는 험악하진 않았다. 경찰들은 그저 정해진 선만 넘지 말라는 분위기였고, 차에 치이지 않게 교통정리를 해가며 시위대를 보호해주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시위대 또한 경찰을 해하려는 분위기는 없었다.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목청을 높인 후 시위대는 자진 해산했다.

다음날 나는 회사에서 동료들과 반 트럼프 시위 관련 이야기를 하다가, 한국의 시국 상황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If you guys are not watching Trump carefully, you will be facing same situation as Korea. (너희가 트럼프를 주시하지 않으면 미국도 한국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Korea is about to face civic revolution. (한국은 지금 시민 혁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세계적 석학인 노엄 촘스키(Noam Chomsky)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End of humanity (인류의 종말)’이 될 것"이라 단언할 정도로 반트럼프 기류가 강하다고는 하나, 이미 당선된 사람을 '이제 와서 바꾸기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미국 대부분의 정치인들 또한 투표의 신성함을 존중하며 새로운 행정부를 맞이할 준비를 시작하였다.

거리로 나온 국민이 곧 희망

한국 사람들은 너무나 현실적이다. 모두 내 집 마련의 꿈 혹은 직장에서의 승진을 위해 정말 쉼 없이 노력한다. 어찌 보면 옳은 일일지 모른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본 2016년 11월의 한국은 적어도 달랐다. 생업에 지쳐 주말이면 휴식을 취하거나 가족들 혹은 친구들과의 시간을 보내야 마땅한 주말을 통째로 헌납한 채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거리로 나온 수백만의 사람들, 난 그들 속에서 엄청난 희망을 보았다.

누구나 알다시피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인 투표를 통해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당시부터 선거 조작 루머 등을 동반하며 순탄치 않은 국정을 예고했었다. 그리고 몇 년 전 정윤회 문건 파동이 한번 불었을 때만 해도 냉정하다 못해 차갑기만 한 대통령의 결단력에 우리는 당연히 비선에 관한 루머는 루머일 뿐이라며 사건을 일축했었다.

그런데 2016년이 된 지금 우리가 목격한 것은 일본강점기와 산업화 시대를 겪으며 쌓아온 적폐의 본산이 바로 현 대통령이라는 경악스러운 사실이었다. 남녀노소 좌우를 막론하고 국민적인 대동단결이 이루어진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음이었다. 국민의 96%가 반대하는 대통령, 그러나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다. 사람들은 매주 끊임없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시국 작품을 들고 한국에 가다

지난 19일 광화문 앞에서 크리에이트 시국 작품을 들고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이상인 씨와 동료. (사진/이상인 페이스북 갈무리)

때마침 회사 출장과 개인적인 일정이 겹쳐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한국에 도착한 11월 19일 아침, 나는 가족과의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뉴욕에서 친구들과 함께 제작한 시국 작품을 챙겨 곧바로 광화문으로, 아니 정확히 말해 광화문 쪽 서촌으로 향했다. 내 뉴욕 친구와 그의 대만인 아내와 만나 함께 집회로 향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그 대만인 친구는 이번에 당선된 개혁적 성향의 여성 대통령 선거 캠프에서도 일했을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많은 친구였기에 당연히 한국의 집회에 참여해 보고자 했다. 그리고 시애틀에서부터 알고 지냈던 동생이 한 명 더 합류해서 그야말로 국제적 시위 참가 팀이 구성된 것이다.

우리는 천천히 서촌 방향에서 광화문을 향해 전진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광장이 보이자 우리는 넓이 2m 정도의 시국 작품을 꺼내 들고 전진해 나가기 시작했다. 5시 정도 된 비교적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사람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재미난 것은 미국의 시위는 모두가 여기저기서 자기가 가지고 온 마이크 등을 사용해 북적북적 시끄럽게 구는 반면, 한국은 단상과 무대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연설 혹은 공연을 하고 다른 이들은 동참 및 호응을 해주는 구조라는 것이다.

미국의 집회 사용 물품들은 스스로 제작한 경우가 많았다면, 한국에서는 주최 측 혹은 어떤 단체에서 물품들을 나누어 주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 보였다. 그래서 우리가 준비해 온 시국 작품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는지도 모른다.

몇 시간을 돌아다니고 난 후에 우리는 다리가 아파,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노끈으로 묶어 전시했다. 한동안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작품을 관람하는 것을 구경했다. 많은 이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재밌다는 듯이 이야기하며 많은 질문도 해주었다.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의 연령대에는 제한이 없었으며, 공감하는 부분들 또한 모두 비슷해 보였다. 

우리 팀은 불과 반나절 전에 14시간 비행 후 귀국한 나를 비롯해 다음날 일찍 뉴욕으로 돌아가야 했던 부부들의 사정상, 가수들의 무대가 절정을 치달을 무렵 슬슬 지하철로 복귀하였다. 가는 길에 효자동 길목에서 우리는 경찰들과 대치하고 있던 시위대 무리를 보았다. 큰 무력 충돌 없이 서로서로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경찰도 분명 이 짓거리를 하고 싶지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위대도 미워해야 할 대상은 경찰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아는 듯했다. 수십만 명이 운집한 시위에서 사상자 없이 마무리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어찌 보면 ‘아랍의 봄’보다 더 아름답고 의미 있는 운동이 아니겠는가' 생각했다. 두 번째로 참가한 11월 26일의 집회에서는 크게 다를 바는 없었지만 사상 최초로 청와대 200m 앞까지 허용된 집회를 눈으로 보면서 '이제 우리의 목소리가 하늘도 울리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버스 위의 의경 (사진/ 이상인 제공)

대통령의 3차 대국민담화를 보며

내가 뉴욕으로 돌아오기 전날인 29일(한국시각),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결정에 따르는 조건부 하야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이들은 이것 또한 엄청난 성과라며 자축했고, 다른 어떤 이들은 다시 한번 국민을 기만하는 처사라며 이번 주 토요일에는 삼백만 명이 모여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박근혜라는 부정부패와 보수의 상징을 조건부 투항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국민의 힘으로. 하지만 현재 사분오열되기 시작한 정국으로는 과연 이 오리무중인 대한민국호를 구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누군가는 변화를 위해 나아가자고 주창할 것이고 누군가는 여기가 최선이라며 최대한 빨리 봉합하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아름다운 사회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동반되어야 할 것인가. 정치인들이 또다시 국민을 기만하게 놓아둘 것인가, 아니면 국민도 여기서 그만 안주할 것인가. 모든 것이 선택의 문제이다. 그리고 적어도 내가 광화문에서 목격한 아빠,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촛불로 어둠을 밝히던 우리 국민이라면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크리에이트의 시국 작품.
필자 이상인은 현재 뉴욕의 Deloitte Digital에서 Studio lead(Associate Creative Diretor)로 일하고 있으며, 미주 지역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비영리 예술가 단체 K/REATE의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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