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아래 못 묻지만... "박숙이 할머니 뜻 잇겠다"
소녀상 아래 못 묻지만... "박숙이 할머니 뜻 잇겠다"
  • 윤성효
  • 승인 2016.12.08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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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박숙이 할머니 추모식... 문재인·박원순·이재명 등 추모글 올려
"할머니께 인권과 명예를, 이 땅에는 정의와 평화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박숙이 할머니를 기리는 추모식이 열렸다. '박숙이 할머니 시민사회장례위원회(위원장 김정화, 남해여성회장)는 7일 저녁 남해병원 장례식장 빈소에서 추모식을 거행했다. 

고 박숙이 할머니는 지난 6일 저녁 눈을 감았다. 1922년 경남 남해군 고현면 관당마을에서 태어났던 박 할머니는 나이 16살에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7년간 고초를 겪은 뒤 돌아왔다. 할머니는 2012년 위안부 피해자로 정부에 등록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남해여성회와 남해군여성협의회, 남해군의회가 시민사회장례위를 구성했다. 추모식에는 박종훈 경남도교육감과 박득주 남해군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박숙이 할머니의 추모식이 7일 저녁 남해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열렸다.ⓒ 윤성효

김정화 남해여성회 회장이 조사를 하고, 유혜란 시인이 조문시를 낭독했으며, 박명엽 남해여성단체협의회 회장이 조사를 했다. 이어 박연수 학생이 "저희는 할머니와 항상 함께 해요"라는 제목으로 편지를 읽었다.

남해여성회 회원들이 박 할머니가 평소에 즐겨 불렀던 <눈물젖은 두만강>을 부르자, 참가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이경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산창원진해시민모임 대표 등이 조사를 하기도 했다.

김정화 위원장 "부디 전쟁 없는 나라에서 살으소서"

김정화 위원장은 조사를 통해 "박숙이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오신 군민들과 시민사회단체 여러분 고맙습니다"라며 "박숙이 할머니를 보내는 오늘은 하루 종일 하늘도 내려앉아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238명 피해 등록자 중 237번째로 우리에게 오신 할머니. 4년의 시간을 함께 했지만, 지금도 할머니를 땅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라며 "원한과 분노의 삶을 가슴에 어찌 두고, 가시렵니까? 중국 상하이에서 고향 산천 찾아 돌아오는, 굽이굽이 험한 길을 어찌 떨치고 가시렵니까"라고 말했다. 

또 그는 "황망하고 허허로운 이 마음을 다 잡으려 입술을 깨물어도 '왔나', '밥 묵고 가거라', '미역국이 얼마나 맛있다'고 하시면서 제 볼을 어루만져 주시던 할머니의 살가운 손길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라며 할머니를 떠올렸다.

김 위원장은 "늘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듯이, '나라 없는 백성이 제일로 불쌍타'는 말씀을 가슴에 새기렵니다. 나라가 없어 지켜주지 못한 식민지의 가난한 딸로, 그 숱한 원한이 학생들에게 홀씨가 되어, 불씨가 되어 흩날리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박숙이 할머니의 추모식이 7일 저녁 남해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열렸다.ⓒ 윤성효

그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박숙이 할머니. 뜨거운 삶의 의지로 지금 이 시간도 귀에 쟁쟁한 할머니 말씀 되새겨 봅니다"라며 "'일본놈들한테 고개 숙이지 마라'거나 '나는 험한 세상 만나서 고생해도 너희들은 당당히 주인으로 살아라'고 하시던 말씀을 기억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김정화 위원장은 "손 잡아 주시던 그 온기와 살가움, 어머니 박숙이 어머니. 부디 전쟁 없는 나라에서, 딸이라서 짓밟히지 않는 세상에서 새처럼 훨훨, 꽃처럼 피고지고 영원히 살으소서"라 말했다.

문재인 추미애 박원순 이재명 등 추모글 올려

정치인들도 고 박숙이 할머니의 명복을 빌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추미애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 추모글을 올렸다.

문재인 전 대표는 "소녀상 아래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숙이 할머니가 어젯밤 돌아가셨습니다. 한일위안부 합의 폐기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습니다"라면서 "박근혜 정권의 역사 훼손을 바로 잡으라는 것도 촛불 민심입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라고 말했다.

추미애 대표는 "어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숙이 할머니가 93세의 연세로 별세하셨습니다. 이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는 39명뿐입니다"라며 "소녀상 아래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신 박숙이 할머니 죄송합니다. 역사를 바로 세우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언급했다.

박원순 시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숙이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최순실 내각이 처리한 굴욕적이고 졸속의 한일 협상 파기를 보지 못하셨습니다"라며 "살아계신 39분의 할머니들과 고 박숙이 할머님이 일본에 고개 숙이지 말라고 했던 말씀을 실천해 가겠습니다. 영면하시길"이라고 전했다.

이재명 시장은 "정권 교체 후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위안부 졸속 합의 무효화입니다"라면서 "일본에 지지 말라던 위안부 피해자 박숙이 할머니가 별세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

▲ 6일 별세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고 박숙이 할머니의 빈소가 남해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다.ⓒ 윤성효

'소녀상 아래 묻어 달라' 유언했지만... 수목장하기로

박숙이 할머니 장례식은 8일 오전 9시 남해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부터 시작된다. 영결식은 '숙이공원'에서 이날 오전 9시 30분에 열린다. 시신은 남해추모누리 영화원에서 화장한 뒤, 자연장지에서 수목장으로 묻힌다.

박 할머니는 생전에 숙이공원에 있는 소녀상 아래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장례위원회는 숙이공원은 규정상 안장할 수 없어 수목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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