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주민 "물의 수호자들" 마침내 승리하다
미국 원주민 "물의 수호자들" 마침내 승리하다
  • 경소영
  • 승인 2016.12.08 0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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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 노스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건설 중단·우회로 검토 결정
송유관 건설 사업 중단 결정에 환호하는 원주민들. 송유관 건설에 반대해온 원주민들이 식수원과 부족의 신성한 땅이 안전하게 되었다며 기뻐하고 있다. (사진/ CNN 갈무리)

[뉴스 M (뉴욕) = 경소영 기자] 천막 농성 9개월 만에 미국 원주민과 환경운동이 승리를 거두었다. 지난 4일 미 육군은 노스다코타(North Dakota) 액세스 송유관 건설 사업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미국 원주민 보호구역인 ‘스탠딩 락’ 인근에서 송유관 건설 사업을 반대해왔던 원주민들과 환경운동가들, 그들을 지지하는 200여 명의 예비역 군인들은 함께 북을 치고 승리의 축제를 벌였다.

노스다코타 스탠딩 락(Standing rock) 원주민 보호구역에서는 지난 4월부터 아메리카 원주민 수(Sioux) 부족을 중심으로 물을 지키기 위한 송유관 건설 반대 시위가 있었다. 다코타 엑세스 송유관 프로젝트(Dakota Access Pipeline Project)는 4개 주를 약 1,900km에 걸쳐 남북으로 잇는 대규모 공사로 거대 에너지 기업인 ETP(Energy Transfer Partners)가 추진했다.

원주민들은 이에 저항해 ‘성스러운 돌(Sacred Stone)이라는 캠프를 세우고 저지 투쟁을 해오고 있었다. 송유관 공사는 원주민의 저항에 맞닥뜨리게 되었지만 굴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무자비한 탄압을 가하며 공사를 진행했고, 캠프 철거를 위해 대대적인 진압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12월 5일까지 캠프를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 해산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노스다코타 송유관 건설 반대 투쟁에 연대하는 사람들의 모습. (사진/ fibonacci blue)

그러나 스탠딩 락 투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미국 전역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다른 원주민 부족뿐 아니라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시위대, 환경 운동가, 농민, 저널리스트, 녹색당 질 스타인 후보 등 많은 미국인이 연대해 투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송유관 건설 사업을 담당하는 미 육군은 “송유관 완공에 필요한 ‘지역권’(토지이용권)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송유관 건설 지역에 환경평가를 시행하고, 원주민의 식수원인 오하헤 호 주변에 우회로를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송유관 건설을 진행했던 기업 ETP는 송유관 경로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원주민들은 지역 수자원의 오염과 원주민 성지 파괴를 우려해 송유관 우회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 이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송유관 공사가 원래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심각한 물의 오염이 발생할 것으로 원주민들은 예상했다. 송유관은 그들의 유일한 식수원인 미주리 강을 포함해 약 209개의 물길을 지날 계획이었다. 성지와 문화유적 훼손, 식수원 오염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실제 송유관 사고는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2016년 한 해에만 200건이 넘는 송유관 사고가 있었고, 이로 인해 땅과 물이 오염되고 파괴되었다. 한 번 오염되면 수십 년, 수백 년의 세월이 흘러야 복구할 수 있다. 

공사 초기에는 송유관이 노스 다코타 주도인 비즈마크를 지나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비즈마크는 인구의 90%가 백인인 도시다. 환경 오염에 대한 반발을 우려해 송유관 라인이 비즈마크에서 스탠딩 락으로 변경된 것이다. 힘없고 가난한 원주민 지역에는 해로운 물질이 누설될 위험이 있는 송유관이 지나가도 된다는 논리, 약육강식과 환경 인종주의가 여지없이 적용되었다.

미국 원주민과 환경운동의 승리인 이번 결정에 손을 맞잡고 환호하는 사람들. 스탠딩 락 활동가들은 원주민들과 함께 손을 잡고 원을 그리고 감사의 기도를 했다. (사진/ CNN 갈무리)

이번 미 육군의 결정으로 일단 원주민들은 승리를 맛보았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송유관 건설을 지지하는 입장이라, 내년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 결정이 뒤집힐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송유관 건설사인 ‘에너지 트랜스퍼 파트너스’의 켈시 워런 최고 경영자는 공화당과 트럼프 선거캠프의 주요 기부자였으며, 트럼프도 이 회사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 퇴역군인(Veterans) 10여 명이 노스다코타 스탠딩 락의 원주민 보호구역을 방문해, 과거 원주민을 탄압했던 일들에 대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고 있다. (사진/ 스탠딩 락 라이징 페이스북 갈무리)

한편, 지난 5일 미국 퇴역군인 10여 명이 아메리카 원주민 앞에 무릎을 꿇었다. 미 육군의 송유관 건설 계획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결정이 있던 다음 날이었다. 저널리스트 ‘스탠딩 락 라이징’은 SNS에 원주민 앞에서 무릎을 꿇은 군인들의 사진을 올리고, ‘미국 퇴역군인(veterans)들이 미군의 이름으로 원주민에게 자행해온 범죄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고 밝혔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미국 땅에 들어와 당신들과 싸우고 땅을 빼앗았으며, 원주민들과 맺은 약속들을 스스로 저버렸다.

원주민 수 부족의 언덕에 묻힌 광물자원을 약탈했고, 신성한 러시모어 산에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새겨넣었다. 원주민 삶의 터전을 망가뜨렸고, 언어도 말살시키려 했다. 깊이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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