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모든 노동의 본질은 ‘대리’다
어차피 모든 노동의 본질은 ‘대리’다
  • 백야
  • 승인 2016.12.14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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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대리사회’ 저자 김민섭

철노자(이하 철): 소개를 부탁드린다.  

김민섭(이하 김):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쓰고 작년 겨울에 대학에서 나왔다. 지금은 거리의 언어를 기록하는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

이 때만 해도 “309동1201호”라는 괴상한 가명을 써서 책을 냈다

철: 필명을 버리고 본명으로 데뷔했는데.

김: 대학에 있는 동안에는 나를 드러낼 수가 없으니까 집주소를 이름으로 썼다.

철: 무슨 얼굴 없는 가수 김범수도 아니고…

김: 내 존재의의는 분명 대학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대학을 그만두면서 자연스럽게 이름을 찾았다.

유령의 시간, 대학을 떠나다

철: 대학에서 전공은 뭐였나.

김: 국문학, 현대소설이었다.

철: 저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보니 희귀한 책을 구해 논문 쓴 얘기가 흥미로웠다.

<기독잡지>는 이렇게 생겼다. (출처: cportal)

김: 1917년에 나온 <기독청년>이라는 잡지가 있는데, 이게 그동안 연구에서 거의 다뤄진 적이 없었다. 이광수, 전영택 등에 대한 평론이 실려있던 잡지였다.

어렵게 어렵게 잡지를 구해서 보는 순간, 너무 좋았다. 내가 속한 연구사에서 적어도 한 줄 정도는 보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 연구한 게 아깝지는 않았나.

김: 많은 석사논문이 그렇듯 그렇게 훌륭한 논문은 아니었다. 학계에서 두세 번 인용된 정도다.

철: 뭔가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것 같다.

김: 사실 논문이 문제가 아니다. 8년간 대학에 있다 보니 대학 사람들이 인간관계의 거의 전부였다. 교직원과 보직 교수들은 무섭지 않았지만 '동료들에게 공감과 응원을 받을 수 있다면…' 하고 생각했다.

책 소식이 퍼졌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온 게 동료들이었고, 그래서 여기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은 아직 아프다.

철: 인터넷 상에서는 비슷한 처지의 연구자들이 많이 지지해주지 않았나.

김: 처음에 글을 연재하는 사람이 나인걸 몰랐을 때는, 동료들이 완전히 공감간다는 얘기를 하더라. 읽어보라며 추천을 해준 사람도 있었다. 필자가 나인 게 밝혀지면서부터는 그게 모욕으로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학교와 연구성과 전체가 폄훼당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지 않았을까.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내가 스스로 나온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철: 제 발로 걸어나온 결정적 계기는 뭔가?

김: 아이가 태어나니 더 이상 부모님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신세를 질 수 없었다. 강의를 하는데도 건강보험이 안 되니까 대학 바깥에서 노동을 계속 했다. 대표적인 게 맥도날드다. 그 때 한 발 물러서서 보는 대학이 상식 밖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 꺾기 논란 등을 보면 맥도날드도 딱히 상식적인 것 같지는 않던데.

김: 적어도 그 곳은 나를 노동자로 취급했다. 다치면 병원비를 대주었고, 고작 월 60시간 노동하는데도 건강보험을 가입해 주었다. 반면 대학에서의 나는 연구실 이사를 돕다가 뼈가 보일 정도로 다쳤지만 자비로 해결했고, 건강보험 못 드니까 가족을 부양할 수 없었고, 강연이 없는 방학에는 생계 대책이 없었다.

시간강사의 월급은 50만원이 채 되지 않지만 이들은 전체 교양수업의 65%를 담당하고 있다

철: 그런 여건을 견디면서 대체 어떻게 일했던 건가.

김: 환상 때문이다.

철: 환상?

김: 그렇다. 내가 주체라는 환상.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나도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 환상은 과연 어디서 온 걸까. 나에게 주체라는 환상을 가지고 그 공간에서 존재하게 한 실체는 무엇일까 고민했다. 결국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이하 지방시)>를 썼고, 대학에서의 시간을 유령의 시간으로 규정하게 됐다.

책 매출 부진으로 대리운전에 뛰어들다

철: 대학을 나오면서 1년 동안 그냥 글을 쓰기로 했다고 들었다. 생계 대책이 있었던 건가.

김: <지방시>를 내기 위해 스토리 펀딩을 했다. 목표는 500만 원이었는데 1,600만 원에 가까운 돈이 모였다. 이 돈이면 적어도 1년 동안 우리 가족이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 글을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았고. 책이 나오면서 인세, 잡지 등 고료까지 더해서 살기로 했는데…

철: 역시 망한 건가.

김: 화제는 많이 됐는데, 안 팔렸다. 지인한테 ‘책 샀지?’ 하면 ‘인터넷에서 읽었어’ 하더라. 인세로 먹고 살겠다는 생각이 굉장히 오만했다는 걸 곧 알게 됐다. 신문이나 잡지 원고 청탁이 상시적인 것도 아니고 걱정이 되더라. 결국 버티지 못하고 반 년만에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철: 왜 하필이면 대리운전이었나.

김: 대학에 있을 때 많은 선후배나 친구들이 ‘대리운전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이건 어떻게 보면 주체성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다. 사실 할 수 있는 노동은 그것 말고도 많았다. 다시 맥도날드로 갈 수도 있는 거고. 그냥 ‘대리’라는 단어에 꽂힌 거다. 대리운전이라는 노동을 통해 대학에서의 나와 그 주변을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철: 대리운전을 하면서도 여전히 대학이 화두였다니, 뭔가 징글징글하다.

김: 대학에서의 시간을 유령의 시간으로 규정했다고 했지 않나. 그런데 대리운전을 하다 보니 왠지 유령의 시간이 아니라 ‘대리의 시간’인 것 같더라. 이 가설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철: 뭔가 깔때기 느낌인데(….)

김: 처음에는 특별히 대리운전을 가지고 이야기를 엮을 생각은 없었다. 그냥 글을 쓰던 사람인지라 일하면서 계속 기록을 했다. 기록이 누적되면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대리인간이며,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 뭔가 어디서 뭘 하든지 기필코 책을 써낼 사람인 것 같다.

김: 연구실에 앉아있을 때, 그 크기만큼 세상이 줄어드는 경험을 했다. 어떤 후배가 나한테 했던 얘기가, 연구자들은 100년 전, 혹은 그보다 더 이전의 것을 연구 대상으로 다루면서, 왜 이 시간은 안 다루냐고 하더라. 예를 들어 위안부 문제를 논문으로 쓸 때도 지금의 소녀상이라든지 한일 합의라든지 하는 것은 논문으로 잘 안 다루지 않나. 이건 하나의 예일 뿐이지만, 연구를 한다는 것이 연구실로 국한돼버리면, 너무 좁아진 세계에서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철: 본격 학계 디스인가.

김: 그건 절대 아닌 게, 내가 쓴 글의 절반은 그동안 공부해 온 인문학이 쓴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책상에서 머리로 쓴 한 편의 글보다 거리에서 몸으로 쓴 한 줄의 문장이 더 힘이 있더라, 나의 경우에는. 여기에 8년 넘게 공부한 인문학이 레퍼런스가 돼줬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철: 대리운전을 끝내고 막 기억나는 문장들을 휴대폰으로 메모했다고 했다. 그 때의 희열이 있었을 것 같다.

김: 맞다. 마치 <기독청년>이라는 귀한 자료를 막 찾았을 때처럼, 밤거리에서 무언가 온 몸을 감싸는 느낌이었다. 빨리 이걸 쓰고 싶다는 감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글을 쓰고 싶어서, 집까지 뛰어와서 얼른 글을 쓰기도 했다.

철: 그래서 그런지 문장들을 읽으면서 그 감정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편이었다. 글쓰는 데 있어서만큼은 탁월한 재능이 있는 건가.

김: 글을 안 썼으면 굶어 죽긴 했을 거다. 그나마 제일 잘 하는 게 글쓰기이기도 하다. 다만 나는 모두가 <지방시>와 <대리사회>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평범한 일상들은 뒤돌아보면 다 글쓰기다. 자신을 뒤돌아보고 성찰할 때 누구나 글이 쓰고 싶어지는 것 같다.

대리기사로 뛰며 세 가지의 통제를 겪다

철: 어찌됐든 공부만 한 백면서생이었다. 대리운전 기사가 되니 어떻던가.

김: 일단은 모든 게 즐거웠다. 하나하나가 다 공부 같았다.

철: 마음 편히 즐길 상황은 아니었을 것 같다.

김: 물론 생계가 급했다. 달랑 3만원 벌고 들어오는 날은 화가 나기도 했다. 그래도 크게 보면, 하루 공치더라도 다음 날 조금 더 벌면 된다고 생각했다.

철: 그런 정신자세로라면 뭘 해도 이겨낼 수 있을 듯 하다.

김: 그래도 몸이 힘든 건 어쩔 수 없더라. 요령 없이 걷고 뛰고 하다 보니 살이 쭉쭉 빠졌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일할 때 아무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였다.

철: 예를 들자면?

김: 대리기사 되고 첫 손님이 콜을 불렀는데, 1.5키로 정도 거리였다. 콜을 승낙하고 열심히 뛰어가는데 5분 후에 전화가 왔다. “아저씨, 왜 안 와요?” 하는데 정신이 확 들더라. 10년 가까이 대학서 '선생님' 소리를 들었다. 뭔가 아직 대학에 걸쳐져있던 내 몸을, 멱살을 잡아 내리끄는 느낌이었다. '타인이 나를 부르는 호칭조차 이제 나의 것이 아니구나, 나는 거기에 권리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내가 그를 부르는 호칭은 ‘사장님’이었다. 서로 합의한 적도 없고 부탁한 적도 없지만, 그렇게 된 거다. 그 날 달려가면서 평생 한 무단 횡단보다 더 많은 무단 횡단을 했다.

철: 도착해서 갑질까지 당했으면 왠지 더 흥미진진했을 것 같다.

김: 그건 아닌데, 대리운전할 차에 타자마자 공간이 너무 이질적이었다. 이 손님이 나보다 키가 작은데도 누워서 운전을 하는지 의자가 너무 뒤로 제껴져있었다. 의자를 조절하고 싶었지만 본능적으로 이걸 건드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불편하더라도 내 몸을 조금 더 앞으로 빼는 걸 택했다. 백미러, 사이드미러도 마찬가지다.

이 차의 주인이 자신에 맞춰 정해둔 것을 잠시 침투한 내가 건드리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더웠는데, 에어컨을 틀 수 없없다. 나는 그 차 안의 온도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철: 그게 ‘대리사회’에서 말한 신체의 통제였나.

김: 그렇다. 손님들은 술에 취해 트름을 많이 한다. 이 분이 안주로 뭘 드셨구나 하는 걸 다 알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창문을 열면 불쾌감의 표시가 되니까 열 수가 없다. 방구를 뀌어도 열 수 없다. 그냥 숨을 옅게 들이쉬며 버텼다. 어떤 손님은 음악 볼륨을 25까지 올리고 태국 랩을 듣더라. 평소에 튜닝해서 막 번쩍번쩍하고 시끄러운 차를 혐오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내가 그걸 운전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내 코의 주인도, 내 귀의 주인도 아니었다.

철: ‘언어의 통제’는 어떤 걸 말한 건가.

김: 택시를 타면 택시기사분들은 자기 얘기를 많이 한다. 정치, 종교, 살아온 얘기, 어떤 경우에는 훈육까지 한다. 그런데 대리기사들은 거의 말이 없다. 손님이 먼저 화제를 던지지 않으면 한 마디도 안 하고 목적지까지 간다. 왜 그럴까 고민해 봤는데, 그건 주체성의 문제다. 택시 기사들은 그 공간의 주인이 자신이니까 손님을 환대해야 한다 생각한다. 대화를 거는 게 주체가 보내는 환대의 방식인 거다. 그러나 대리운전을 맡긴 차 속에서는 손님이 될 사람이 주체에 있고, 주체의 자리에 손님이 있으니 둘 다 말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철: 뭔가 숨막히는 분위기일 것 같다.

김: 그렇다. 손님이 먼저 (어렵게) 말을 걸어주지 않으면, 나도 입을 다무는 게 낫다. 그래서 운전하는 동안은 대부분 아예 말을 하지 않았다.

철: 아무 말 안 하고 가면 오히려 편하지 않나.

김: 말이 통제되면 대부분 생각도 함께 통제된다. 언젠가 30분 정도 운전하고 가는데 나에게 아주 적극적으로 전도를 하는 분이 있었다. 또는 정치적인 얘기… 나는 박근혜가 좋은데 자네는 문재인 지지하나, 박근혜가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때 하는 식으로… 보통같으면 편안하게 내 생각을 얘기했겠지만, 타인의 운전석에서는 ‘뭐라고 대답해야 이 사람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까’ 먼저 고민한다. 그래서 세 가지 말을 많이 하게 되더라. ‘아, 네네’, ‘맞습니다’ 그리고 ‘대단하시네요’다.

철: 뭔가 사회생활 꿀팁에 나올 것 같은 내용이다.

김: 기적의 삼단화법이다. ‘네네/맞습니다/대단하시네요’다. 나중엔 거의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게 얼마나 간편한 삶의 방식인가. 자꾸 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그렇게 순응하는 것이 얼마나 편한 일인지도 알게 됐다.

이런 표정으로 영혼 없는 리액션을 하게 된다

철: 그렇게 '프로 대리기사'의 길로 간 것인가.

김: 좀 있다가 돌이켜보니 사실 그런 통제는 모든 곳에서 다 겪어왔더라. 학교에서든, 군대에서든, 직장에서든. '나는 얼마나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왔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에는 차에서 내리면 해방감이 되게 좋았는데, 나중에는 차에서 내렸는데도 통제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철: 이런 ‘통제의 경험’을 동종업계 분들에게 공유할 기회가 있었다고 들었다.

김: 대리기사님들 야유회였다. 설악산에 놀러가는데 인문학 강연을 해달라고 하더라. 야유회 출발이 새벽 다섯시라고 해서 당황했다. 그도 그런게, 대리운전 마치는 게 다들 그 시간인 탓이다. 서른 명 정도가 모여서 속초로 가는 동안 버스에서 주무시더라. 알록달록한 등산복 사이에서 허름한 양복 입고 구두 신은 아저씨들 한 무리가 등산을 하니 참 가관이었다. 거기서 사진 찍고, 점심 먹고, 막걸리도 한 잔씩 하시고 강의를 들으셨다.

철: 강연 반응은 어땠나?

김: 사실 기사님들한테 혼날 줄 알았다. 니가 몇 개월 하고 뭘 아냐고 말이다. '차라리 내가 강의를 하는 게 낫겠다, 그거 거짓말 아니냐' 하실 줄 알았는데, 다들 너무나 자기 얘기처럼 받아들이시더라.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분들도 있었고,  맞아맞아 끄덕끄덕 하는 분도 있었다.

철: 그 분들도 사실 숙련된 3단화법의 소유자였다던가.

김: 뭐 그랬을 수도 있는데, 강의가 끝나니 다들 나에게 다가오시더라. 잘 들었다고. 어떤 분은 내 얘기가 안타까웠는지 대리 마쳤을 때 이용할 수 있는 동글이라는 이동 수단을 알려주셨고, 또 어떤 분은 손님이 ‘야, 라이터 좀 줘봐’ 해서 없다고 했더니 ‘대리기사가 라이터도 안 갖고 다니냐, 손님 생각해서 갖고 다녀야지’라고 했다는 얘길 들려주셨다. 20년 넘은 베테랑 기사들이 내 얘길 듣고 공감해주시니 그 분들한테 인증 받은 기분이라 자신감을 얻었다.

철: 역시 남의 돈 받아먹고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내공이란 엄청난 것 같다.

김: 대리운전이라는 노동을 하면서 모두가 존중할 만한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더라는, 전에 없던 자각이 생겼다. 정말 모두가 자기의 자리에서 분투하고 있더라. 그런 모두에게는 가르칠 것보다 배울 게 더 많다.

밤의 동류들과 대리운전의 생태계

철: 일하면서 친해진 동료들도 있나.

김: 대리기사들은 뭉쳤다가 흩어진다. 어느 시골에서 만나면 누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아도 다가가서 동료가 되고, 다시 번화가로 나오면 열심히 법시다 하고 또 흩어지고, 또 뭉치고. 어디서든 ‘동료’가 되는 ‘동류’들이다. 그런 식으로 만난 대리기사들이 되게 많다.

철: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김: 대리운전 첫 날, 엄청 시골로 갔다. 버스도 끊기고 지하철도 없고 뒤에는 산업단지가 있었다. 집이 너무 그리웠다. 그 때 한 50대 여성이 ‘대리기사 맞죠?’ 하면서 다가왔다.

철: 과… 관심법?!

김: 엄청 놀랐다. 대리기사 된 지 몇 시간도 안 지났는데, 알고 보니 대리기사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대리기사의 인상착의가 있더라. 몸에 꼭 맞는 편한 옷, 물병과 보조배터리가 들어갈 만 한 작은가방, 그리고 손에 꼭 쥔 핸드폰.

철: 그래서 '그 분'과는 어떻게 됐나.

김: 택시 하나를 불러 세우더라. 왜 저러나, 번 돈을 택시비로 다 쓰려나 싶어 주저하고 있는데, 그 분이 택시기사에게 아주 정중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딱 한 마디를 했다. “기사님, 대리기사 두 사람, 시내까지 혹시 오천원씩 드리고 나갈 수 있을까요?”. 그랬더니 택시기사가 엄청 흔쾌히 웃으면서 얼른 타라고 했다. 눈 앞에서 마법을 보는 기분이었다.

철: 택시기사와 대리기사의 연대인가.

김: 공생관계다. 이른바 ‘택틀(택시셔틀)’이라는… 대리기사든 택시기사든 일을 하다 보면 서울에서 경기도로 많이 가게 된다. 그런데 경기도에서 서울로 가는 손님은 거의 없다. 택시기사들은 빈 택시로 돌아가야 하고, 대리기사들은 돌아갈 차가 없으니 택시기사들이 대리기사를 싣고 강남으로 합정으로 돌아가는 거다.

철: 뭔가 악어와 악어새 이후 최고의 상생 모델인 듯 하다.

김: 그렇다. 그 당시에 택시기사님에게도 너무 고맙더라. 어떻게 보면 택시기사들 입장에서도 이익이다. 서울 택시가 경기도에서 손님을 태우는 건 불법이니까. 어차피 빈 차로 돌아올 거, 대리기사들 태워 걷은 돈으로 돌아오는 길 톨비와 기름값을 충당한다.

철: 재미있는 생태계다. 다른 지역에서 택시영업 하는 게 그렇게 위험부담이 큰가.

김: 그렇다. 적발되면 벌금이 150만 원 정도인데, 그 벌금 물기 전에 동료 택시기사들한테 맞아 죽을 거라고 하더라. 딱 하나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경우가 택틀이다. 대리운전이라는 노동은 되게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타는 노동이다. 그들의 이동수단 역시 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타넘고 있다.

철: 대리운전을 해보니 가장 큰 문제는 뭐인 것 같던가.

김: 두 가지 정도가 있다. 먼저 손님들. 이건 뭐 잘못됐다기보다,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좋은 손님들은 간혹 있다. 수서역에서 12시에 만난 여성 손님이었는데, 대리콜을 수락하니 바로 문자가 하나 왔다. ‘저는 OO 건물 지하 3층 주차장에 있습니다. 뛰지 말고 천천히 오세요.’ 그런 문자를 보낸 손님은 처음이었다. 너무 고마웠다. 도착했더니 정말로 지하 3층에 비상등을 켠 차가 하나 있더라.

철: 배려 끝판왕의 기운이…

김: 보통 사람들은 어디 숨어있으면서 왜 이렇게 안 오냐고 화를 내는데, 그 분은 대번에 나에게 목이 마르지 않느냐고 하더라. 편의점 앞에서는 차를 세워달라 하더니 꿀물을 두 개 사오셨다. 나를 하나의 주체로 대해주시는 거였다. 결국 가장 대리기사와 가까운 건 손님이다. 그들이 조금 더 이들을 주체로써 끌어올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철: 두 번째 문제는 뭔가.

김: 아까 말했듯 대리운전이 되게 아슬아슬한 노동이다.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다. 제도와 매뉴얼을 정비해 그들을 노동자로 호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4대 보험 중에 건강보험이 가장 핵심인데, 법적으로 월 60시간 이상 일하는 대한민국 근로자는 다 받게 되어있다. 대리기사들 지금 다 월 60시간 이상 일한다. 대리운전 기사용 앱을 보면 누구보다 일하는 시간이 정확하게 찍혀 나오는데, 대체 못해줄 이유가 뭐가 있나.

정확히 찍혀나온다.

철: 그럼 지금 카카오 드라이버 기사는 다 자영업자인 건가. 

김: 단 하나 확실한 건 근로계약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카카오 드라이버 측에 서류 내고 면접을 보고 통과하면 일을 시작한다. 일하는 시간엔 제약이 없고, 자신이 대리운전으로 버는 돈의 20%만 수수료로 내면 된다.

철: 뭔가 전통적인 고용관계로 보기엔 힘들 것 같기도 하다.

김: 나는 노동의 본질이 ‘대리’라고 생각한다. 할 수 없거나 하기 번거로운 일들을 비용을 지출하고 타인에게 하게 하는 게 거의 모든 노동의 본질이지 않나. 대리운전이라는 노동 자체가 그 본질을 집약시켜놓은 것이다. 그리고 현대의 노동이라는 게 점점 보이지 않게 되는 경향이 있다.

전형적인 고용관계에 포섭되는 노동보다 특수한 형태의 다양한 노동이 많아졌기도 하고. 대표적인 게 또 대리운전이다. 그들을 노동자로 호출해주면 좋겠다는 게 내 바람이다.

철: 대리사회라는 르포르타주를 통해 업계에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건가.

김: 대리기사 업계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딱히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기사들은 이미 무언가 잘못됐다는 감각을 가지고 있다. 카카오가 들어올 때 많은 기사들이 기대를 가졌던 건, 기존에 대리운전이라는 노동의 구조가 굉장히 왜곡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카오가 가지고 온 수수료 20%는 상당히 매력적이고 획기적인 안이었다. 다른 일체의 비용을 청구하지 않기 때문에 대리운전 지형도가 상당히 바뀌었다.

철: 기존의 대리업계는 대체 어땠길래.

김: 예전에는 보통 지역 업체를 위주로 업계가 돌아갔다. 나도 한 번 면접을 본 적 있는데, 수수료가 대략 30%, 보험비 하루에 2,000원, 프로그램 사용비 월 15,000원, 다음날 돈 입금해줄 때 이체 수수료도 떼고, 출근할 때마다 1,000원씩 출근비라는 것도 내고, 유니폼비도 내야 했다. 심지어 어떤 업체는 핸드폰 개통까지 해준다더라. 이건 내가 하는 노동도, 이제껏 배워왔던 노동도 아니었다. 노동에 필요한 물품을 노동자들이 직접 대는 게 말이 되나.

카카오드라이버에 합격하면 제공되는 명찰, 뱃지, 수첩 구성의 웰컴 키트. 출처: 빛과사람그리고나

철: 카카오가 업계의 구세주라니, 뭔가 기분이 묘하다.

김: 제도들이 마련될 필요는 확실히 있다. 카카오가 대리운전 진출하는 걸 골목상권 침해라고 하는데, 그동안 업체들이 얼마나 가혹한 노동환경을 만들어왔는지를 보면 이건 갑과 을의 싸움이 아니라 갑과 갑의 싸움이다. 우리가 대기업을 비난하지만, 그래서 '대기업이 아닌 기업들은 모두 선하냐'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이지 않나.

철: 적의 적이 반드시 내 동지인 건 아니라더니.

김: 맞다. 이건 갑을 욕하는 우리가 직접 갑이 됐을 때에도 진정 선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대리 대통령은 퇴진하고 대리사회를 읽어라

철: 시간강사로 맥도날드 알바로 생계가 힘들었을 것은 충분히 예상이 간다. 대체 어떤 깡으로 결혼을 하고 애까지 낳으신 건가.

김: 가족은 건드리지 맙시다. (웃음)

철: 곧 세상에 나올 둘째가 '딸이었으면' 한다는 얘길 들었다.

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삶이 힘들다고들 하지 않나. 딸이 생긴다면 나에게 더 성찰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상대방을 주체로 상상한다는 건 그 사람의 처지에서 사유해 본다는 거다. 그제서야 우리가 대리인간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근데 그걸 가장 못하는 게 우리 대통령 같다. 이번에 광화문에 가서 “대리인간은 하야하라”를 외쳤다.

철: 딸 얘기 하는데 왜 갑자기 박근혜가 나오나.

김: <대리사회> 출간을 막 앞두고 있을 때 그가 누군가의 '대리'였음이 밝혀졌다. 책으로 우주의 기운이 몰려오고 있음을 느낀다.

철: 진정한 대리인간에게 감사의 한 마디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김: 한 발 물러선 사람에게는 경계에서 균열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 균열은 시스템의 균열이다. 그 균열을 응시하면 그 바깥에 그 욕망을 대리시켜 온 괴물이 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이 사회의 크고 작은 욕망을 대리하며 살아간다. 우리 사회에 어떤 욕망이 있지 않나. 경쟁이라거나 자본이라거나.

철: 차라리 박근혜를 욕하는 게 낫지, 이건 오천만 국민을 적으로 만드는 게 아닌가.

김: 아니다. 광장에 시민들이 수백만 명씩 모이는 건, 더 이상 그런 천박한 욕망의 대리인간으로 살 수 없다는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언어와 신체의 주인으로, 그리고 사유하는 주체로서 대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철: 뭔가 대단한 와꾸다.

김: 팔려야 한다.

철: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달라.  

김: 경계인으로 살아가고 싶다. 대학에서 공부한 걸 들고 거리로 나왔다. 우리 사회 균열을 계속 바라볼 것이다.

철: 아까부터 묻고 싶었는데, 혹시 롤모델이 홍세화인가.

김: 그건 아니다. 그런데 대리운전 대기하는 시간에 책이나 읽자 싶어 책장을 봤을 때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빛이 나고 있긴 했다. 그렇게 그 책을 다시 한 번 읽었다. 솔직히 닮았다는 생각은 좀 한다.

그렇게 빅매치는 성사되고. (출처: 김민섭 님의 페이스북 갈무리)

철: 그러다 추천사도 써주시고.

김: 흔쾌히 써주셨다. 너무 좋았다. 제 친구가 농담처럼 분명 안 써줄 거라고 했다. 어디 고작 한국에서 대리운전 하며 빠리의 택시운전사에 갖다대냐며. (웃음) 어쨌든 올해는 <대리사회>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읽히고 소비되는지 지켜보고 싶다.

철: 수고하셨다. 셀프 책 광고로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자.

김: <대리사회>는 제발 <지방시>보다 잘 팔려서 새로운 책을 쓰는 근거가 되면 좋겠다. 홍세화가 추천한 <대리사회>. 대리대통령 박근혜가 읽어야 할 대리사회, 대리님도 부장님도 <대리사회>를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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