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사태,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박근혜 사태,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 경소영
  • 승인 2016.12.24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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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시국간담회...고 장준하 선생의 삼남 장호준 목사 강연

보스턴에서 첫 박근혜 퇴진 집회가 열린 지난 10일 오후, 보스턴 한인교회에서 장호준 목사와 함께 하는 시국 간담회가 있었다. 고 장준하 선생의 삼남인 장호준 목사는 ‘박근혜 사태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장 목사는 지난 4월 주미 보스턴 영사관 인근에서 ‘박근혜 정권을 투표로 심판하자’는 취지의 피켓 시위 등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고발당해 여권을 빼앗긴 상황이다. 그에게 보스턴은 가슴 쓰린 기억으로 남을 법한 곳이지만 그만큼 더 의미가 있는 도시다.

그는 이번 시국 간담회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소개하며 작금의 사태가 어떻게 일어나게 됐는지 그 뿌리부터 이야기했다. 내용을 본 기사를 통해 공유하고자 한다. - 기자 말

[뉴스 M (뉴욕) = 경소영] 장호준 목사는 “저는 스쿨버스 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새벽 5시 반에 집에서 나가야 하는데 새벽 2시부터 문자 메시지가 들어오기 시작했단다. “목사님, 축하드려요”라는 내용이었다. 박근혜의 탄핵이 가결된 후 기쁜 마음에 시차를 잊은 한국에 있는 지인들이 소식을 보낸 것이다. “탄핵이 가결되었는데 왜 내가 축하를 받아야 하나”라는 장 목사의 말에 참석자 모두 웃었다. 

스쿨버스 운전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장호준 목사. 박근혜 탄핵 가결 일, 그는 지인들에게 새벽부터 축하 문자를 받았다고 한다. ⓒ<뉴스 M> 유영

이어 탄핵 가결을 선포하는 정세균 의장,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탄핵을 기뻐하며 날뛰는 남학생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함께 보았다. 모든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촛불 민심이 승리한 것은 뜻깊은 일이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장 목사의 말에 모든 참석자가 집중하기 시작했다.

“빙산의 일각이 아닌 밑동까지 보라”

“사과와 딸기는 비슷하지만, 명백히 다른 과일이죠. 박근혜와 최순실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인물에 이번 사건은 박근혜 사태이지, 최순실 사태가 아닙니다. 집중해야 할 건 최순실이 아닌 박근혜입니다.”

그는 바다에 떠 있는 빙산 그림을 보여주었다. 지금 나타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었는지 드러나고 있는 지금, 거대한 빙산의 밑동을 잘라내지 않으면 빙산은 조금씩 계속 올라와 국민을 분노케 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들, 그들은 독립운동가들에게 말했다. 어리석다고, 독립에 전혀 도움 안 되니까 그만하라고 말이다. 바로 이승만 1세대를 이룬 사람들이다. 빙산의 밑둥이다.

장호준 목사는 한국 근현대사를 제대로 봐야 작금의 세태를 바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뉴스 M> 유영

1958년 함석헌 선생은 <사상계>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는 이 글을 통해 38선이 국민의 동의에 의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나라를 가르고 남한 정부를 수립했다. 김구는 암살되었고 안두희는 잘 먹고 잘살았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근현대사 밑에 깔린 기본적인 진실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것을 지금 이 시점에서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다. 뒤틀린 역사가 바로 ‘박근혜’라는 빙산의 일각 그 밑둥이를 차지하고 있는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같은 시기 다른 선택을 했던 두 인물이 있다. 1944년 한 사람은 일본 천황에게 혈서를 쓰고 그에게 충성하겠다고 하고, 한 사람은 조국에 충성하기 위해 일본을 탈출해 광복군에 들어갔다. 몇 년 후, 한 사람은 남로당 공산당에 있다가 잡혀 동료들을 밀고해 혼자만 살아남았고, 한 사람은 조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사상계>를 창간하고 반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세 번이나 옥고를 치렀다. 박정희와 장준하, 대척점에 섰던 두 사람이다. ‘유신체제 폐지’를 주장한 장준하 선생은 결국 1975년 의문사로 숨졌다.

광복군 장교 시절의 장준하(오른쪽)와 일본 황군 장교 시절의 박정희(왼쪽). 동시대를 산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은 정반대였다. (사진/오마이뉴스 갈무리)

장준하 선생이 숨질 당시 장호준 목사는 열일곱이었다. 파란만장한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아버지를 잃은 장 목사에게 작금의 사태가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사건 하나로 단순하게 읽힐 리 없다.

“제가 58년 개띠에요. 초등학교 들어가서 대학교 1, 2학년까지 쭉 박정희 시대였죠. 너무 자연스럽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이 머리에 있었어요. 북한은 머리에 뿔 달린 도깨비였던 거에요. 마찬가지로 그 시대를 살아간 분들에게 박근혜는 그냥 박정희 딸이에요. 그래서 자동으로 찍은 거죠.”

다양성? 다름과 틀림 잘 구분해야

장 목사는 ‘박근혜는 그냥 좀 다른가 보다’라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틀렸다’라고 정확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뉴스 M> 유영

독재에 눈이 먼 아버지를 보며 자란 박근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장 목사는 질문한다. 자신보다 어린 여자와 있다가 측근에게 총을 맞아 죽은 아버지를 본 박근혜는 정상적인 사고가 어려웠을 거라 그는 단언했다. 

다행히 그의 독재는 멈춰졌다. 반헌법적인 유신을 없애기 위해 당시 국민 백만 서명 운동이 있었다고 한다. 2주간 40만 명이 서명했다. 그러나 국민의 염원과 다르게 정권은 또다시 전두환, 노태우라는 군부에 또 넘어갔다. 역사에서 이것은 또 하나의 빙산의 밑바닥이 되었고,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 된 것이다.

우리가 늘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 진보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개념인데 여기서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 못 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영어로는 ‘different’, ‘wrong’으로 확연히 구분해 사용한다.  

고양이와 개는 종이 ‘다르다’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역사를 이야기할 때, 박정희와 독립투사는 반드시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건 다름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인 것이다. 이승만, 삼선개헌과 4.19혁명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전자가 틀린 것이다. ‘박근혜는 그냥 좀 다른가 보다’라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틀렸다’라고 정확히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탄핵 가결,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국제 정세 속에서 어떻게 정국을 이끌어나갈 것인가. 장 목사는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누군가 권력 다툼에서 올라오려고 할 것은 분명해요. 부정한 권력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촛불입니다. 잊지 맙시다.

마틴 루터 킹은 이렇게 말합니다. ‘역사는 이렇게 기록할 것이다. 사회적 전환기에서 최대의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었다’고 말입니다.

아인슈타인도 ‘세상은 악한 일을 행하는 자들에 의해 멸망하는 게 아니고, 아무 것도 안 하며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에 의해 멸망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죠. 빙산 꼭대기만 자르고 ‘끝’이라고 하지 말고, 계속해서 악의 뿌리를 밀어냅시다. 자각된 시민의 힘이 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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