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는 평화, 사람들에겐 선의
땅에는 평화, 사람들에겐 선의
  • 신순규
  • 승인 2016.12.24 0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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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규 칼럼] 세상사는 이야기
신순규 월가 애널리스트 ⓒ 뉴스 M

매년 12월이면 빠뜨리지 않고 꼭 하는 것이 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하는 성탄절 음악회에 가는 것이다. 밴드와 오케스트라의 연주, 합창단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러 간다. 사실, 이런 그룹은 음악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이나 뛰어난 음악 소질이 있는 아이들만을 뽑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가끔은 삑삑 소리도 나고, 틀린 박자나 불안한 화음이 귀에 거슬릴 때도 많다. 하지만 음악회를 위해 2~3개월 동안 준비해 온 아이들의 부모,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형제자매들이 모여서 1시간 동안 그들의 음악을 듣고 박수를 친다.

작년까지는 합창단 멤버인 딸 예진이 때문에 음악회에 갔다. 올해는 처음으로 아들 데이비드가 알토색소폰으로 밴드 멤버가 됐다. 그래서 밴드 연주에도 박수를 크게 쳐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난 8일 1시간 일찍 퇴근을 했다.

그런데 올해는 아이들의 노래와 연주가 작년보다는 훨씬 더 나아졌다. 곡 선택도 너무 잘해서 감동과 웃음까지 선사한 시간이었다. 이번 음악회에서 들은 노래 중 한 곡은 내가 꼭 들어야 할 가사와 스토리로 내 마음을 만져주었다.

학교 음악회라 선생님 한 분이 노래나 연주곡에 대해서 설명을 할 때가 있다. '크리스마스 종소리'란 시에서 비롯된 '성탄절에 종소리를 들었다'라는 노래를 합창단이 부르기 전에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가 이 시를 썼던 배경 이야기를 해주기 위해서였다.

롱펠로에게는 1863년 성탄절이 특별히 괴로운 날이었다. 얼마 전, 그의 아내는 입고 있던 드레스에 갑자기 붙은 불에 타 세상을 떠났다. 불을 끄려고 급하게 움직였던 그도 몸 여러 군데에 화상을 입었다. 게다가 그해 12월 1일엔 그의 아들이 남북전쟁에서 총에 맞아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무거운 마음의 짐을 안고 있던 그의 귀에 성탄절 종소리가 들렸다.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땅에는 평화, 사람에겐 선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성탄절 종소리가 아직도 세상엔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의 죽음, 화상으로 얼룩져버린 자신의 얼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아들…. 그의 마음에 평화가 있었을 리 없고, 그 누구의 선의도 받아들일 자리가 없었으리라. 그런데 "땅에는 평화가 없다"라고 중얼거리던 그에게 성탄절 종소리가 더 크게 그리고 깊게 들려왔다. 그가 그때 쓴 시는 이렇게 끝이 난다.

"하나님은 죽지 않았으며 잠들지도 않았다. 부정을 추구하는 자들은 멸망할 것이며, 정의를 좇는 이들은 승리할 것이다. 땅에는 평화, 사람들에겐 선의로!"

올해는 여러모로 힘든 한 해였다. 나 같은 이민자에게는 불길할 수밖에 없는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 대선 승리가 현실이 된 해였다. 거의 1년 동안 노력했던 일이 회사 높은 사람의 임의의 결정으로 무산되었고, 이 때문에 동료들의 인정과 신임도 잃은 것 같은 느낌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건강하시던 아버지께서 5월에 쓰러지셔서 지금까지 거동을 하지 못 하신 채 병원에 누워 계신다.

여름부터 내 마음 한구석을 차지한 먹구름은 좀처럼 가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들의 순수하고 깨끗한 목소리로 그 노래를 듣는 순간, 얇은 빛줄기가 구름을 뚫고 내 마음을 밝히는 것을 느꼈다. 이민자들을 향한 차별, 50살 직장인의 고민, 또 병과 죽음의 그림자… 이런 것들이 가져다준 허탈감과 두려움보다 더 큰, 더 강한 메시지를 전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아이들은 선물을 기다리는 이 날에, 어떻게 보면 너무 비현실적인 이 메시지, 하지만 우리가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들어야 하는 이 희망의 메시지를 독자 여러분께 선사하고 싶다.

"모국 땅에는 평화, 국민들께는 선의!"

신순규 / 시각장애 월가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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