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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스] 애국심은 사악한 자들의 미덕
24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광장과 서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사모의 박근혜 대통령 지지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대형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 지유석

24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 광장은 온통 태극기로 뒤덮였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맞서  ‘대통령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운동본부’(탄기국)가 대응집회를 열었는데, 집회 참가자들이 일제히 태극기를 흔든 것이다. 

집회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는 콘텐츠다. 촛불집회에선 다양한 발언이 쏟아진다. 세월호 참사 때 구조책임을 방기한 청와대에 책임을 묻는가 하면, 노동자엔 매몰차면서 비선 실세 최순실에겐 수백억의 돈을 ‘쾌척’한 재벌에 대한 날 선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또 사회 부조리에 침묵했던 자신에 대한 반성과 무조건 공부만 강요하는 어른들을 따끔하게 질타하는 발언이 나오곤 한다. 

그러나 탄기국 집회에서 알맹이는 없었다.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른 것 외엔 집회의 모든 순서가 ‘탄핵 무효’, ‘탄핵 기각’ 등의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채워졌다. 참가자들은 구호를 외칠 때 연신 태극기만 흔들었다. 

12월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더구나 성탄 전야임에도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든 시민들은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걸까? 아니다. 적어도 촛불을 든 시민들은 대통령이 비선 실세가 아닌, 권력을 위임한 시민들을 위해 정책을 펼쳐주기 바라고, 재벌의 돈이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가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부모의 권력이 아닌 실력으로 명문 대학에 진학해 당당히 학점을 따는 나라를 바랄 뿐이다. 

애국이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 정권은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어버이연합이나 엄마 부대 같은 지지세력을 동원해 국면전환을 시도했다. 세월호 때도 그랬고, 비선 실세의 일단이 드러난 정윤회 문건 파동 때도, 고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부른 민중총궐기 때도 이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때마다 정권은 ‘애국’을 마치 주문인양 되뇌며 지지세력을 독려했다.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애국심과 관련해 의미심장한 격언을 남겼다.

“애국심은 사악한 자들의 미덕이다.”
Patriotism is the virtue of the vicious.

오스카 와일드의 일갈은 일그러진 애국심이 난무하는 2016년 12월 대한민국에서는 절대적인 진리다. 

[2016.12.24. 덕수궁 대한문 광장]

24일 서울 대한문 광장은 온통 태극기로 뒤덮였다. ⓒ 지유석
24일 서울 대한문 광장에서 열린 박사모의 박근혜 대통령 지지집회에 참가한 참가자들은 일제히 태극기를 흔들며 탄핵 무효를 외쳤다.ⓒ 지유석
24일 박사모의 박대통령 지지집회에 참가한 참가자들이 서울 시청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 지유석

지유석  luke.wyclif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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