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000일을 맞아 시작한 기도
세월호 참사 1,000일을 맞아 시작한 기도
  • 허현
  • 승인 2016.12.29 0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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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뒤면 세월호 참사가 있은지 1,000일이 됩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먼 조국의 아픔에 도움이 되질 못해 고민하다가 시작한 기도.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며 다시 읊조립니다.

2014년 4월 16일 오후, 동거차도 앞바다 사고 현장(사진: 김봉규 '세월호 2주년 전시'작품)

하나님 아버지,
수 많은 생명을 삼켜버린 바다를 향해 땅이 울부짖는 시절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침몰해가는 배, 그 안에 갇혀 있는 자식들을 눈 앞에 두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가슴에 묻는 부모들의 외침, ‘차라리 나를 데려가라’고 외치는 그 소리가 온 세상을 진동하는 것 같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학교에서 하듯 배밑에 남아있던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이 가슴에 사묻히도록 아픕니다. 살려달라고 벽을 치고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 쳤을 아이들이 생각나 잠못 이루는 날들을 보냈다는 사람들이 지천입니다.

그런데 왜 하늘에선 답이 없는 건가요? 왜 깊은 침묵의 심연 속으로 숨어버리시는 겁니까? 기도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들의 도깨비 방망이는 왜 이런 때는 맥을 못추는 것인가요? 하늘 아버지의 긴 침묵에 답답하기만 합니다.

아이들을 살려내시지 못했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는지, 어디서 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드러내 주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왜 그 일도 안하시는 건가요? 왜 온통 속임수와 거짓과 야합과 폭력이 남무하도록 내버려 두시는 건가요?

아버지께서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 아픔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시지 않습니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외치던 아들의 절규에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아버지의 자리에 서 계셨지요. 그것은 가난한 자들, 연약한 자들, 억압된 자들, 우는 자들과 먼저 손을 잡으시는 주님의 긍휼의 손내밈이 아니었습니까? 약자들의 손을 잡으신 예수님을 일으켜 부활하게 하신 것이 바로 그 때문 아니었습니까? 십자가는 약한자를 들어 강한자를 부끄럽게 하는, 이겼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자리를 전복해 하나님의 승리를 선포하는 자리였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저는 아버지께 간절히 구합니다. 이 부끄러운 어른들 때문에 죽은 아이들이 한국의 심장에 다시 부활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썪어버린 몸둥이에 피를 흘려보내도록 박동하게 하옵소서. 천국행 티켓을 사들고 땅을 쉽게 버린 사람들이 생명을 경시하지 못하도록 이 땅으로 내려 오소서. 이 땅이 바로 아버지께서 사시는 곳임을 저들로 알게 하소서. 그래서 이렇게 다시 기도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거짓과 속임수로, 권력과 돈으로, 야합과 폭력으로 하나님 없는 것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아버지께서 거룩하시다는 것을 드러내소서. 맘몬과 국가와 자신의 배를 숭배하는 사람들로부터 아버지의 이름을 지키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소서."
아버지의 통치는 성령을 통해 정의와 평화, 그리고 기쁨을 가져 온다고 하셨습니다. 진도의 팽목항에, 한국 땅 구석구석에, 그리고 여기 LA 에 아버지의 통치가 임하기를 원합니다. 선지자들이 부르짖었던, 예수께서 보여주셨던, 정의에 기초한 평화가 이루어 지고, 그로 인해 아버지의 백성들이 함께 손을 잡고 기쁨의 춤을 추게 하소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예수의 삶과 십자가에서 드러내신 아버지의 뜻, 곧 가난하고 포로되고 눈멀고 눌린자들에게 기쁨의 소식을 전하고 그들을 사탄의 정사와 권세로부터 해방해 예수를 따르는 길을 가게하는 계획이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에게 하루하루 살아 갈 수 있는 소망과 희망으로 먹여주소서.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해 식음을 전폐하고 있는 자들에게 물 한모금, 밥 한술 넘길 수 있는 위로를 주소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삶과 죽음이 바로 기억될 때에, 진정한 하나님과의 화해가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진정한 화해는 그러한 ‘바르게 기억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말씀이셨지요. 아이들의 죽음이 바로 기억되도록 진실이 드러나 빛을 발하는 가운데 참 용서와 화해가 일어나게 하소서.

"우리를 시험에 들지말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거짓과 야합과 권력과 탐욕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그렇게 하나님의 통치에 반하는 것들에 저항하게 하소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게 하소서. 정의 없는 평화가 약자들을 두 번 죽게하는 유혹임을 알고 속지 않게 하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습니다."
아버지의 권세와 영광이, 맘몬과 국가와 “나”라는 우상 위에 영원토록 계시며, 영원히 통치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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