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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삶, 그건 폭력이다

인생은 소중하다. 단 한 번밖에 없는 삶,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Living vicariously through life itself’, 즉 ‘대리 체험’, 혹은 ‘간접 체험’이라는 주제와의 비교를 통해 구해보고 싶다.

나 자신만의 고유한 관점을 가지고, 체험으로 실천하며 사는 것이 귀하고 멋진 인생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베를린 장벽(Berlin Wall)이 무너졌던 그 이듬해, 나는 배낭 한 개를 메고 동유럽에 있는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Dubrovnik, Croatia)로 떠났다. 학회 참석이 계기가 되었지만, 사실 학회가 끝난 후 홀로 배낭여행 하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다.

Dubrovnik, Croatia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곤 유럽 일주를 시작했다. 두어 달 동안 기차, 버스, 때로는 도보로 홀로 다녔다. 먹는 것에는 별 신경을 안 쓰고, 발길 닫는 대로 걸었다. 한 번은 이탈리아 피렌체(Florence, Italy)에서 졸면서 걷다가 강물에 빠질 뻔했다. 다행히 강가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던 할아버지들이 소리를 크게 지르는 바람에, 벌떡 깨어 물에 빠지는 것을 면했다.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해서 벤치에 배낭을 내려놓고 곯아떨어졌다. 여섯 시간을 세상모르고 잤다.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잠이 깼다. 그리곤 숙소(Youth Hostel)에 가서 또 깊은 잠에 떨어졌다.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고, 나 자신의 경험이다. 두 달간 이렇게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다가 뉴욕 케네디(Kennedy) 공항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날 알아보지 못했다. 살도 많이 빠지고, 얼굴도 까맣게 타서 그랬는지, 공항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 앞으로 다가갔는데도 딸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유럽 일주를 마치고 난 후, 지구 상에 있는 어떤 곳이라도 홀로 여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선뜻 떠날 생각이 잘 들지 않기도 하지만 말이다. 

누구나 나만의 삶을 살고 싶어 한다. 물론 어떤 사람도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이 잘할 수 있고, 홀로 즐길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그러한 직접 체험들이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고,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

내후년이면 내 자녀도 대학에 입학할 나이가 된다. 물론 딸들이 대학을 가기 원치 않으면, 억지로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들도 그들 나름대로 자신만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야 하기에, 딸들이 스스로 선택하는 인생을 존중할 것이다. 부모님도 미국에 이민 와 정착하느라 바쁘게 살아서, 어려서부터 나의 일은 스스로 다 알아서 해왔다. 내 자녀도 인생으로 스스로 잘 꾸려나갈 것이라 믿는다.

삶은 묘하고 신기하다. 내 삶은 내가 살고 타인의 삶은 타인이 살면 되는 것인데, 늘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남의 집이 더 멋져 보이고, 남의 얼굴이 더 예뻐 보여도, 난 내 얼굴에 만족하면서 스스로 요리한 음식을 맛있게 먹고 내게 주어진 보금자리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내 딸들도 주어진 환경에서 자족하는 삶을 살며 행복하길 바란다. 그들의 삶은 그들의 것이기에,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내 마음대로 조정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가 대신 이루기 원하는 것은 ‘폭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아이들에게 이런 폭력을 가하고 싶지 않다. 자녀는 엄연히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과학 교사로서 학생을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다. 수업을 최대한 재미있게 진행하고, 학생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고 별별 괴상한 '재롱'을 다 떤다. 교사인 내가 연기자가 되고, 가수가 된다. 다양한 연출을 통해 수업을 즐겁게 펼쳐가려고 노력한다. 받아들이는 것은 학생들 각자의 몫이다. 다만, 그렇게 함으로써 즐거운 수업이 되고 자기 것으로 잘 흡수할 수 있는 학습이 된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학기 초에 “Scientists Observe”라는 제목의 수업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인간의 오감(five senses)을 사용해 관찰(observation)한다. 물체를 실험하며 관찰할 때, 직접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손으로 만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들은 이 간단한 수업을 진심으로 즐긴다. 사탕의 맛은 보고 만져도 실감 나지 않는다. 참맛은 직접 먹어봐야 알 수 있다.

탐방(exploration)이라는 과학 수업을 할 때도 그렇다. 교실을 떠나 외부에서 주위를 보며, 환경과 나와의 관계도 생각하게 되는 수업이다. 탐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학생들이 질문하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왜?’라는 질문을 품어야 다음 단계로 발전할 수 있다. 

인생에서 경험이 가장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만의 고유한 경험은 ‘무엇을 배웠고, 어떤 영향을 받았고, 타인이 내게 한 특정한 행동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 ‘질문’에서 이어진 실험과 탐방이 모여서 과학이라는 학문이 되는 것처럼, 인간의 역사도 같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하며 사색이 시작되고, 진지한 질문도 생겨난다. 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바로 인생 아닐까.

남의 삶을 살지 말고, 나의 삶을 살자. 내 삶을 소중하고 가치 있게 여겨야, 진정으로 행복한 인생이 된다. 타인의 삶과 비교하지 말자. 커피 한 잔도 순간의 삶을 빛나게 한다. 코스타리카(Costa Rica) 커피를 진하게 끓여내는 동안, 젊은 날 유럽 일주의 기억 속에 빠진다. 커피의 향긋함이 오롯이 이 시간, 나를 위해 뿜어댄다는 달콤한 착각을 하며 눈을 감는다.

김은주  newsm@new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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