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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 견뎌낸 1000일... '세월호 애도'의 세월사회구조로 생긴 희생에 관심 뒀다면 내 아이 죽지 않았을지도
세월호참사 '제대로 된 진상규명' 촉구 지난 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1천일, 박근혜 즉각퇴진, 황교안 사퇴, 적폐청산 11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세월호 인양과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권우성

#1. 2004년 미국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9·11 테러 이후 쓰인 그의 저서 <불확실한 삶>에서 질문한다. "어떤 이는 애도의 대상이 되고 어떤 이는 그렇지 않다. 애도할 만한 삶은 무엇인가?" 9·11 테러 희생자들이 언론을 통해 하나하나 호명되는 모습과 이라크 전쟁으로 죽어가는 이들의 극명한 대비에 의문을 던진 것이다.

#2. 2017년 한국

행정자치부가 지난 1일 국민의례 훈령을 개정했다. "임의로 묵념 대상을 추가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5월 영령, 4·3 희생자, 세월호 희생자,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자, 백남기 농민 등 친일독재부패 세력으로 인해 희생된 넋을 기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또 해야만 한다"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

애도의 감정은 종종 정치적이다. "임의로 묵념 대상을 추가할 수 없다"는 규정처럼 애도의 행위 자체가 국가에 의해 노골적으로 차단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죽음을 공적 장소에서 끊임없이 강조함으로써 다른 죽음을 애도하는 행위를 은연중에 부자연스럽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정치적이지 마라'는 요구가 실은 고도로 정치화된 주문이듯, 지극히 감정의 영역에 있을 것만 같은 애도는 자주 정치의 영역 안에 자리한다.

세월호를 향한 애도 역시 용인되거나, 용인되지 못했다. 줄곧 세월호를 지켜보며 슬퍼해 온 많은 이들은 어떤 순간엔 평범한 소시민이었지만, 다른 순간에 그들은 국가 전복을 꾀하는 '종북좌파'가 되었다. 애도의 시비를 따지는 기준은 대개 정치적이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쉼 없이 흘러온 1000일의 시간 내내 애도의 허용범위는 널을 뛰었다.

세월호 애도의 역사

2014년 7월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문화제'에서 참가한 시민들이 "시민들아 깨어나라!"를 외치고 있다.ⓒ 권우성

참사 직후, 분명 세월호는 모두의 슬픔이었다. 진도 앞바다, 수학여행을 가던 어린 학생이 대부분인 낡은 배, 구조의 실패(혹은 구조의 '없음'), 언론의 오보까지 모든 요소가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슬퍼할 이유는 아주 많았고, 분노할 이유도 많았고, 애도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애도의 허용은 변곡점을 만났다. 정치인과 노란 리본에 "지겹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경제가 어려우니 이제 그만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데에 동의한 이들이 많았다. "세월호를 애도할 것을 강요하지 마라"는 얘기도 들렸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감정을 두고 '강요'라는 표현을 선점한 이들은 쉽게 우위에 섰다. 가족의 죽음, 정보의 부족, 위태로운 생계까지 모든 면에서 이미 약자이던 이들이 순식간에 슬픔과 애도를 강요하는 강자로 규정됐다. 국민성금이나 배상·보상은 좋은 무기였다. 판세가 뒤집어지자 애도는 조롱의 대상이 됐다. 단식투쟁 앞에서 누군가는 폭식 투쟁을 벌였다.

2014년 9월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단식농성장에 나타난 한 남성이 핫도그를 먹으며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이희훈

오랫동안 허용되지 않던 애도가 요즘 다시금 허용되려 하는 듯하다. 최순실 게이트 때문이다. 음모론과 농담의 영역에 있을 법한 얘기들이 하나둘 사실로 밝혀지면서, 세월호는 다시 애도의 범주에 포섭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7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제대로 밝혀야 한다는 데에 이제는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다시 공적 장소에서 세월호 애도가 가능해지고 있으니 기쁜 일인 걸까? 애도의 금지는 광범위하고 길었지만, 애도의 허용은 이제 막 싹을 틔운 것만 같다. 쉽게 꺾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여전히 포털사이트의 세월호 뉴스 댓글에는 애도를 지우려는 이들이 넘쳐난다. 이들은 노골적이진 않다. "구조에 힘쓰다 순직하신 분들을 추모합시다", "천안함·연평해전 희생자를 잊지 않겠습니다." 애도의 총량이 정해져 있을 리 만무하지만, 이들은 애써 다른 죽음을 애도하려 한다.

여전히 애도를 지우려는 이들은 남아 있다. (1월 7일 노컷뉴스 - '천일 동안 켜켜이 새긴 눈물…진실 인양 날갯짓'에 달린 댓글)ⓒ 네이버 기사 댓글 갈무리

단순한 감정처럼 보이는 애도는 아주 정치적이고, 동시에 아주 약한 이들의 전유물처럼 보이는 애도는 힘이 세다. 애도를 금하려는 길었던 파도를 버텨낸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2014년 4월에는 잘 무너지는 약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1000일의 '세월'을 꿋꿋이 애도해온 이들은 강하다.

애도되지 못하는 삶에 대한 자각

버틀러가 보기에 애도되지 않는 삶은 애초에 삶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삶이다. 미국인에게 이라크 전쟁의 희생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생은 사회에서 온전히 존재한 적 없기에 죽음 역시 애도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 된다. 때문에 이들의 죽음을 향한 애도는 '나 역시 사회의 기준에선 애도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자각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

유가족 중 어떤 이들 역시 이렇게 말했다. "사회구조로 발생한 희생에 진작 관심을 가졌다면 내 아이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애도되지 못하는 삶에 대한 자각이다. 1000일 동안 애도의 감정을 지켜온 많은 사람 역시 여기에 공감할 것이다.

그리하여 미래는 조금은 낙관적이다. 세월호를 향한 애도가 조금은 수월해진 지금, 우리는 광장의 촛불이 가능케 한 연대를 본다. 애도라는 정치적 감정의 공유는 연대를 더욱 끈끈하게 할 것이다. 1000일 이후는 전과 같이 쉼 없이 흐르겠지만, 그 시간들이 전과 같지 않기를 기대할 수 있는 건 그래서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1천일, 박근혜 즉각퇴진, 황교안 사퇴, 적폐청산 11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에서 1천개의 노란풍선이 날아가고 있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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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영  newsm@new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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