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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도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인터뷰] 12명의 뉴욕·뉴저지 세사모 회원

[뉴스 M (뉴욕) = 유영 경소영 기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천일이 되었다.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재외동포들이 다양한 집회 및 행사가 있었다. 뉴욕에서도 지난 8일 저녁 5시에 세월호 천일을 추모하여 영화 ‘자백’ 상영회가 ‘뉴욕·뉴저지 세월호를 잊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뉴욕·뉴저지 세사모)’ 주최로 <뉴스 M> 사무실에서 열렸다. 

세월호 참사 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밖으로 나온 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천일 동안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뉴욕, 뉴저지 지역에서 정기 집회를 진행한 이들은 어떠한 생각일까. 한국에 있는 유가족들과도 심적으로 긴밀히 연대한 이들이다. 세월호 참사 천일,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지난 8일 영화 <자백> 상영회 후 세월호 천일을 맞는 뉴욕 뉴저지 세사모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뉴스 M> 유영

영화 상영을 마치고 뒷정리를 끝낸 뉴욕·뉴저지 세사모 회원들과 둘러앉았다. 세월호 참사 천일을 지내며 든 생각은 어떠할지 궁금했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가 뉴욕과 뉴저지에 사는 이들의 삶을 어떻게 변하게 했는지도 듣고 싶었다. 다음은 뉴욕·뉴저지 세사모 회원들과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세사모는 세월호 사건을 알리고, 진상 규명을 위해 2016년 한 해 누구보다 바쁘게 달려왔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천일이 되었는데 소회를 말해 달라.

나경한 : 천일 동안 뉴욕과 뉴저지 지역에서 정기 집회를 70회 이상 진행했다. 집회 이외에도 간담회, 영화 상영 등 행사를 20회 가까이 해오고 있다. 피켓을 들기 시작할 때도 물론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천일이나 이러고 있으리라고 생각을 못 했다. 

같이 고생하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 활동을 더 오래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월호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정부는 더 감춘다. 특조위도 중단시키는 등 진행되고 있던 일이 자꾸 원점으로 돌아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자꾸 감추려고만 하는 건지 모르겠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의문이 들고 골이 깊어진 상황이다. 3년이 다 되어 가는 동안 피켓을 든 것 말고는 한 일이 없다. ‘뭔가를 더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길이 보이지 않아 솔직히 멍하다. 마음이 많이 무겁다.

최규호 : 모두 다 같은 마음이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다. 정치인도 아니고 특정한 단체에 속하지도 않았다. 세월호 사건으로 내 자식을 잃은 것처럼 마음이 찢어졌던 엄마들이 시작했다. 그리고 학생, 직장인 등 다양한 위치의 한인이 모여서 꾸준히 활동을 해왔다. 한국에 계신 유가족 등 광화문에서 계속 모이고 있는 분들과의 매개체라는 생각이 든다.

벌써 3년이 다 되어 간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아픈 마음만 가지고 시작했는데, 뒤돌아보니 많은 일들을 했다. 함께 모이고, 구호를 외쳤던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유가족에게 큰 힘이 되었다. 촛불의 동력도 되었다. 세월호가 대한민국의 희망을 주었다.

영화 <자백> 상영회가 있었던 날, 눈이 많이 쌓이고 추운 날에도 뉴저지에서 세월호 정기 집회는 이어졌다. (사진/ 김은주 제공)

안승수 : 영화 <자백>을 보는 동안 몇몇 아주머니들이 박자를 넣어주셨다. “어떻게 저렇게 하고 자식들 얼굴을 볼 수 있을까”라고 하시더라.

나의 세사모 활동 이유도 같다. 내 자식에게 부끄러운 세상을 물려주면 안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활동한다. 나이 순으로 부끄러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웃음)

세상을 바꾸기 위해 지난 30년 동안 나름 젊었을 때부터 길거리에 나가봤다. 그간 눈에 보이게 만족할 만큼 바뀌지는 않았지만, 다시 뒤돌아보면 느리지만 상당 부분 변화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이 멀기 때문에 계속 밖으로 나오고 있다.

내 아이들, 손자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평상시에는 그렇게 못 살지만, 가끔이라도 이렇게 모이고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이 바로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힘들겠지만 다들 함께했으면 좋겠다.

남수경 : 20대 중반에 미국에 왔다. 세월이 흘러 이곳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아이에게 늘 ‘엄마는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언젠가는 한국에 가서 살아 보면 좋겠다’라는 말도 한다. 엄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후, 나는 아이들에게는 더 이상 자신 있게 한국에서 살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게 너무 슬프다. 영화 <자백>을 보면서 다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재일교포 2세, 3세들이 간첩단으로 몰려 피해를 당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태어난 한국인으로서 한국을 더 이해하고 싶어 대학에 진학했다가 그런 일을 당했다. 

해외동포라면 누구나 경악할 일이다. 우리 아이와 같은 상황에 있는 젊은이가 한국에 가서 겪을 수 있는 상황인 탓이다. 간첩 조작과 세월호 사건 같은 작위, 부작위에 의한 국가 폭력이 내 아이에게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후손이 살아나갈 대한민국이 걱정이다.  

김은주 : 그 심정 백번 공감한다. 그러나 이것 또한 기억하면 좋겠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빛에는 언어도 없고 계급도 없다. 빛은 곧 우리 모두인 것 같다. 나는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불의를 보면 가만히 있지 말라’고 늘 강조하는데, 그 계기가 바로 세월호 참사다. 

항상 지금이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정의의 언어는 한국어도 영어도 아니고, ‘행동’이다. 후손에게 못난 조상이 되지 않도록 정의의 언어인 행동을 적극적으로 해, 위선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부모님도 철저한 반공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딸이 주말마다 세월호 피켓을 드는 행동을 보면서, 부모님도 ‘네가 길거리에 나서서 왜 목이 쉬도록 외치는지 이제 알겠다’라고 말씀 하신다. 부모님의 이러한 반성의 고백을 들었을 때,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싸워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2016년 세사모 활동 돌아본다면 어떤가.

조재문 : 세월호가 사고로 폭파 같은 것이 되었다면 그저 한 번 슬퍼하고 말았을 것 같다. 그러나 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구하지 않고 고스란히 수장시키는 것을 보고 ‘저렇게까지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바닥, 끝’을 봐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피켓을 들고 있다.
 
2016년 활동을 생각하면 아쉽다. 집회에 나오지는 않지만 여전히 많은 분들의 세월호에 대한 마음이 우리와 같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집회,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든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2017년엔 한 분이라도 더 동참했으면 좋겠다. 모이는 것 자체가 힘이 되기 때문이다.

김기준 : 지금까지 살면서 나만을 위한 ‘100일’, ‘1000일’ 기념일이 많았다. 그런데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세월호 천일’을 맞이하니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 기념할 수 없는 날이다. 지금까지 천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올해에는 꼭 진실이 밝혀져서 활동이 끝났으면 좋겠다. 그날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세사모는 대한민국이 온전히 민주주의 국가로 만드는 데에 일조한 활동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촛불로 인해 바뀌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다. 세월호로 희생된 아이들이 준 가르침이다. 더 밝은 대한민국을 위해 더 열심히 활동할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궁금하다.

최향이 : 나는 집에서 살림만 하던 아이 엄마인데, 세월호 사건 때문에 밖으로 나오게 됐다. 난 90학번인데, 80학번 세대와 달리 데모도 한 번 해보지 못한 세대다. 데모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자랐다. 정치와 별 상관없이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 때문에 정치를 알게 됐고, 많이 배웠다.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보니, 엄마로서 느끼는 것이 정말 많다. 정치를 외면했더니 국민이 하나둘 죽어갔다. ‘이건 정말 내 가족, 내 자식의 생사가 달린 일이었구나’라는 것을 뼈져리게 느꼈다. 정치에 더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를 보면서도 느낀 것이 많다. 정치를 외면했더니 결국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주부이지만 살림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 소위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국정조사에 나와 줄줄이 거짓말만 하는 것을 보고 인성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배태경 : 뉴욕에 오기 전에 친구들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는 미국 가니 좋겠다. 한국에는 희망이 없는데 말이야’라고 말하며 나를 많이 부러워했다. 그땐 그저 농담으로 듣고 넘겼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씁쓸해졌다. 세월호 사건 때문이었다.

세월호 사건은 내 가족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을 법한 일이었다. 정부가 손 놓고 있으면 언제든 국민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아이가 생기고 더 두려워졌다. 그래서 작은 힘이지만 나와서 힘을 보태주고 싶었다. 먼저 간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나올 수 있었다.

우리의 활동으로 대한민국이 더 많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지인들이 ‘네가 미국에 사는 것도 부럽지 않아. 한국에서도 우린 희망을 갖고 잘 살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싶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박미경 : 지치지 말고 힘냈으면 좋겠다. 끝까지 함께하자고 말하고 싶다. 끝까지, 함께 가는 게 진실 규명하는 길이고, 그것이 우리 모두가 살아남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한미령 : 나는 기독교인이다. 그래서 세월호 사건을 두고 기도를 할 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열심히 기도했다. 그런데 기도의 응답일까. 세월호가 잊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2016년에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세월호가 재조명 받기 시작했다. 

2016년에 세사모 활동하면서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수가 적어져 힘이 많이 빠졌던 것이 사실이다. 아마 한국에 있는 유가족들은 더 심했던 것 같다. ‘아직도 세월호 이야기 하나’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대통령의 7시간도 점차 밝혀지면서 세월호의 진실 규명에도 희망이 보인다. 힘들고 지치겠지만, 유가족에게 우리가 끝까지 함께 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김대종 :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끝까지 함께하는 것이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가족 곁에 국민이 함께해야 한다. 세사모도 그 역할을 끝까지 해낼 것이다.

최향이 : 한 유가족분이 ‘세월이 흘러 아직 진실 규명이 안 되었는데도, 주변에 아무도 없을까봐 가장 두렵다’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이 난다.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세월호를 계속 기억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그 마음을 간직했으면 좋겠다. 

한국에 계신 유가족에게 말하고 싶다. 주변에 아무도 없을까봐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가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니 걱정 말라고 말이다.

유영 경소영  soyoung@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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