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시민과 호흡 위해" 시민들은 "전쟁이다, 전쟁"
반기문 "시민과 호흡 위해" 시민들은 "전쟁이다, 전쟁"
  • 이은진
  • 승인 2017.01.13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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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입국부터 귀가까지 혼란의 연속, '민생 속으로' 아닌 '지지자 속으로'
서울역 대합실 시민들에게 인사하는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후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역 대합실에 도착해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권우성

"총장님, 이런 혼란 예상 못하셨나요?"

"... (대답 없이 미소 지으며 악수)"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의 귀국길은 '혼선'에서 시작해 '아비규환'으로 끝났다. 12일 오후 고국 땅을 밟은 반 전 사무총장과 부인 유순택씨는 지지자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 금의환향했지만, 그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 총장이 귀국하면서 줄곧 강조했던 '민생 우선'은 눈에 띄지 않았다. 

문제는 '보여주기 식' 행보였다. 전날(11일)까지만 해도 시민 불편을 우려해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 동작구 사당동 자택까지 승용차로 이동하기로 계획했지만, 귀국 당일 반 총장 본인의 주장으로 서울역행 직통열차를 타기로 결정했다. 입국 5시간 전 급히 이동 경로를 변경한 결과는 '혼선'이었다. 동선 계산이나 질서 유지 등 사전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일정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시민과 대화, 호흡하기 위해서" 열차 탔지만 "갈 수가 없네"

'바른 세상을 만들어주세요', '큰 걸음 하셨습니다', '민족 통일을 위해 이 한몸 불사르세요' 

입국장에는 그를 맞이하는 '충주고 동문회', '충청사랑향우회', '화이팅 반기문 국민연대 운동본부' 등 지지자들의 펼침막이 게이트를 둘러쌌다. 반기문 청년 팬클럽인 '반달' 회원 10여 명을 제외하면 50, 60대 중·노년층이 다수였다. 이들의 손에는 태극기나 무궁화 등이 그려진 깃발이 들려 있었다. 반 총장이 이동을 시작하자, 공항 내 경찰, 외부 경호 인력 등 경호·의전 그룹과 함께 취재진, 지지자 수백 명이 그를 뒤따랐다.  

동선마다 수백 명이 반 총장의 뒤꽁무니를 '우르르' 쫓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반 총장이 직통열차를 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할 때도, 열차 티켓 발권을 하러가는 중에도, "목이 말라서" 공항 내 편의점을 들른 와중에도 지지자 인파가 그를 에워쌌다. 인파 사이에선 "반기문!"을 연호하는 목소리와 함께 "환영합니다" 인사도 함께 터져 나왔다. 반 총장이 원했던 '시민과의 접촉'이라기보다는 '지지자와의 만남'에 가까웠다. 

손 흔드는 반기문 총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대기중이던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기름장어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자, 반 총장의 대권 도전에 비판적인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 남소연
"반기문이 부끄럽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자, 반 총장의 대권 도전에 비판적인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 남소연

"위안부 협의 인정하더니 왜 왔냐."
"뜬금없이 나타나서 대안인 척 하지마라."

지지자 뿐 아니라, 반 총장의 대선 행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일부 청년들은 직통열차에 오르는 반 총장을 향해 손팻말을 들고 "이게 지하철 타는 겁니까",  "위안부 발언 사과하십시오, 이렇게는 대통령 못 되십니다" 등을 외쳤다. 손팻말에는 과거 반 총장이 한일 '위안부' 합의를 지지했던 장면을 묘사한 캐리커처 등이 그려져 있었다. 

반 총장이 계획했던 '열차 안' 시민과의 대화는 수포로 돌아갔다. 일반 공항철도가 아닌 직통열차의 특성상 좌석 배열도 동반 2인석으로 분리돼 있을 뿐 아니라, 지지자와 일부 취재진이 함께 탑승해 시민과의 대화는 한마디도 제대로 나눌 수 없었다. 반 총장 또한 "다른 승객들도 만나봐야 하는데 이거 참 갈 수가 없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왜 철도를 이용했느냐"는 질문에 반 총장은 "서울 시민으로 돌아와서 시민과 대화하고 호흡을 같이하려면 아무래도 대중이 많이 활용하는 전철을 활용하는 것이 어떻겠나 하는 생각에 이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항철도 티켓 발권하는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해 공항철도 탑승을 위해 표를 발권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공항철도 타기 위해 이동하는 반기문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귀국한 1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반 전 총장이 공항철도를 타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선 의식한 행보" vs. "환영하는 것이 당연"

아비규환은 서울역에서도 이어졌다. 직통열차에서 내린 반 총장이 지하 3층에서 1층까지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할 때마다 '병목현상'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경호원들과 지지자들의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부모님을 마중하기 위해 서울역을 찾았다는 한 시민은 "전쟁이 따로 없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 

"야 XX, 집에 좀 가자!"
"이게 뭔 민생이야. 사람이 넘어져도 그냥 지나가고."

서울역 대합실에서는 미리 반 총장을 기다리고 있던 지지자들이 도착시간에 맞춰 '당신을 믿습니다', '바른 세상 만들어주세요' 등의 펼침막을 난간과 계단 곳곳에 걸고 연호를 시작했다. 한 지지자는 색소폰으로 <서울의 찬가> 등을 연주하기도 했다. 문제는 대합실로 올라오는 반 총장의 선(先) 환영 인파와 서울역에서 대기하던 후(後) 인파가 한데 뒤섞이면서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의전 그룹과 몸싸움을 벌이던 한 시민이 넘어지기도 했다. 

반기문 입국장 '인산인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인파에 둘러싸인 채 이동하고 있다. ⓒ 남소연
서울역 도착한 반기문 전 총장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부부가 1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후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역 대합실에 도착하고 있다. 경호원, 지지자, 기자들이 반 전 총장 부부 주위에 몰려 있어 대합실 입구가 복잡한 모습이다.ⓒ 권우성
서울역 도착한 반기문 전 총장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부부가 1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후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역 대합실에 도착해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경호원, 지지자, 기자들이 반 전 총장 부부를 에워싸고 있다.ⓒ 권우성
서울역 도착한 반기문 전 총장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부부가 1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후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역 대합실에 도착해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부부가 1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후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역 대합실에 도착해 시민들에게 인사한 뒤 승용차를 타고 자택으로 향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주변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일부 시민들이 신기한 듯 반 총장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거나 손을 흔들기도 했지만, 불편을 느낀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일부 시민들은 '시선을 의식한 행보'라고 평하기도 했다. 서울역을 찾은 최철호(51)씨는 "반기문이 유명인사니 보고 있는데, 쇼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구성희(27)씨는 "현 시점에서 이렇게 나오는 건 너무 대선을 의식한 것 같다"면서 "지금 풀리지 않은 문제들도 많은데, 본인 안위를 더 많이 생각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박수진(19)씨는 "별로 보기 싫다. (사람들이 연호하는 것을 들으면) 오히려 반감이 들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대로 반 총장을 반긴 시민들은 '세계에서 큰일을 한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대체로 50대 이상이었다. 김부길(51)씨는 "반기문은 세계를 위해 일했으니 세계의 기운이다"라면서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큰일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소영(54)씨도 "이렇게 환영하는 게 당연하다, 반기문 총장을 흠집내고 폄하하는 국민들은 각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서울역에서 차를 타고 사당동 자택으로 향한 반 총장은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 등의 환영을 받으며 오후 8시 30분께 귀가했다. 공항에 오후 5시 30분께 도착했으니, 약 3시간에 걸친 귀갓길이었다. 반 총장은 오는 13일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뒤 자신의 고향인 충청북도 음성을 찾아 모친을 찾아뵐 예정이다. 귀국길에 이어 귀향길에서도 '반기문 식 민생 행보'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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