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고네의 정리(正理)
안티고네의 정리(正理)
  • 이선명
  • 승인 2017.01.14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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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고네'는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시인 중의 한 명인 소포클레스의 작품이다. 오이디푸스 3부작으로 불리는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세 작품은 오이디푸스 가문의 연대기라 할 수 있다. 소포클레스가 평생에 걸쳐 완성한 3편의 작품 중 '안티고네'는 가장 먼저 발표된 작품으로 전해지나, 이야기의 흐름으로는 마지막 편에 해당한다.

'안티고네'는 그녀의 외삼촌이자 테베의 왕인 크레온과 오이디푸스의 딸이자 동생인 안티고네의 팽팽한 대립으로 진행된다. 작품 속 두 인물의 상반된 입장과 의견은 모든 반대요소의 대립이란 점에서 사회, 정치, 철학적 맥락에서 다양하게 읽혀오고 있다. 세기를 넘어 고전 중의 고전으로 손꼽히고 있다. 

본 기사는 '안티고네' 내용을 대한민국의 현 시국에 빗대어 새롭게 해석한 <US NEWS>의 이선명 주필의 칼럼이다. -편집자 주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B.C 441년 고대 그리스의 춘기대제(春期大祭) 때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초연(初演)되었다. 서양 문명사에서 관객이 출연자들의 감정이입(感情移入)을 강요받는다고 주장될 만큼 강력한 감흥을 일으키는 정상의 드라마로 손꼽힌다.

▲ 소포클레스(BC496 ~ BC406)

소포클레스는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로 꼽힌다. ‘안티고네’에서 그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의 집체(集體)적 관계에서 형성된 의무와 ‘독립된 인격’으로서의 가치추구 문제를 무대에 올려놓고 있다.

주인공 안티고네는 ‘하늘의 명령’에 따라 크레온 왕의 ‘부당한’ 간섭을 거부한다. 안티고네는 인간의 양심과 윤리를 상징한다. 크레온은 전제적 체제를 대표한다.

'안티고네'라는 드라마에서는 이 두 개의 상이한 원칙과 이해관계의 비극적 충돌을 다루고 있다. 이 충돌은 개인의 인간적 운명과 연관된다. 가치관이 시험받는 과정에서 다양한 인간관계에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고대 그리스인의 다수가 어느 특정 지역이나 시대를 구속하는 법체제를 초월하는 ‘우주적 가치’를 신봉했다는 사실은 퍽 흥미롭다. 헤라크리토스는 소포클레스 이전에 자연에 기초한 ‘일반법’의 우위를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무대 위의 안티고네는 이 자연법의 초인적 구속력, 즉 인간의 양심과 윤리에 따라 행동한다. ‘신성(神性)’의 자연법을 위반하면 그에 상응한 벌을 받는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안티고네는 이 자연법이 지닌 보편적 가치의 영원성과 정당성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상학을 완성시킨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안티고네와 크레온의 비교연구에서 사물의 이원성, 즉 시(是)와 비(非)가 양립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시인 쉘리는 “안티고네야 말로 비인륜(非人倫)적 규범에 대한 항거(抗拒)를 대표한다”며 예찬했다.

2차 대전 중 프랑스 극작가 J. 아누이는 앙드레 지드, 지로두, 장 꼭또 등과 함께 안티고네를 레지스탕스(대독(對獨) 저항운동)의 상징으로 등장시켜, 고대 그리스 드라마를 무대에 재연(再演)한다. 독일의 시인겸 극작가 베르크홀트 브렉트는 그의 작품에서 안티고네를 평화주의자로 묘사했다.

한태숙 연출의 '안티고네' 중 한 장면. 크레온 역의 신구 배우와 안티고네 역의 김호정 배우. (사진/ 연합뉴스 갈무리).

안티고네는 인륜과 도덕, 그리고 인간의 양심과 정의감을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라고 확신했으며, 이 확신에 따라 그녀는 “나는 불의를 이해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라고 선언한다.

안티고네는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내 이성의 명령에 따라 ‘우주적 질서에 반하는’ 집단적 코드의 강요를 거부한다.

우리는 인류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이같은 혁명적 도전의 발자취를 자주 목격한다. 이같은 도전은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 프랑스 혁명, 노예 해방 선언, 그리고 잔 다르크와 유관순, 3.1 독립 운동, 4.19혁명, 5.18 민주항쟁 등 역사의 발길을 크게 돌려놓은, 그리고 우리가 흔히 성정(聖戰)이라고 즐겨 부르는 커다란 운동의 원동력이었다.

코페르쿠스의 지동설, 루터의 종교개혁,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민권 운동 승리 등은 진리 혹은 정의를 위한 작은 저항의 불씨가 들불이 되어 막강한 기존질서를 괴멸(壞滅)하는 폭발적 위력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에서 "바람불면 꺼진다"던 촛불이 들불이 되어 전국을 휩쓰는 시민혁명으로 확산했다. 드디어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처럼 집체적 질서가 세운 막강한 크레온 왕을 유추하는 청와대의 사이비 군주를 탄핵했다. 세계사 초유의 불의, 부정, 비리 척결운동이 성공의 첫걸음을 내딛게 된 것은 정말 감격스러운 일이다. 

박근혜 탄핵은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는 새 패러다임의 시작이다. 민족사의 새벽을 깨우는 여명이다. 새 역사는 박정희 체제가 상징하는 모든 인적, 물리적 적폐(積弊) 청산이라는 시민혁명의 시대정신과 그 요구의 실천에서 시작된다. 

4.19 때 중국의 주은래 수상은 "저 위대한 한국의 젊은이들을 보라. 저들이야말로 세계인의 희망이다"라고 찬양했다. 세계의 많은 언론은 "한국인은 마치 일제에서 해방될 때처럼 자부심을 되찾은 기쁨에 들떠있다"고 보도했다.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에서 가장 험난했던 적진의 제1 능선을 탈취한 시민혁명, 이는 마침내 제2의 해방을 위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한국의 시민혁명은 세계 정치사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귀감이 되었다.

“해가 지지 않은” 대영제국이 그토록 초라해 보이던 간디 앞에 굴복하게 했던 '안티고네의 정리(定理)'를 다시 풀어보는 감회가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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