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목사의 꿈, 한인 사회는 어떻게 이어가야 하나
킹 목사의 꿈, 한인 사회는 어떻게 이어가야 하나
  • 이선명
  • 승인 2017.01.17 1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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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자유와 평등의 그 지고(至高)한 가치관의 프리즘으로만 투시되던 인류 구원의 표상을 대표하는 나라,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의 이상이 구현된 나라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 미국에서 불과 60여년 전까지 공공연하게 자행된 흑인 차별정책은 미국 민주주의의 허상(虛像)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비인륜적 치부였다. 물론 최근까지도 유색인종 차별 정책의 유산이 전면 제거된 것은 아니지만 1950-60년대까지도 미국에서 자유와 평등은 백인들 만의 전유물이었다.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1863년 1월1일부터 노예해방 시행을 선포했지만, 그 뒤 1백년이 지나도록 흑인은 여전히 압제와 착취, 질시, 차별, 그리고 온갖 불의한 제도의 대상이었다. 사실 차별이라는 용어는 이들이 당한 수난의 참혹한 실정에 비하면 너무나 순화된 사회학적 용어이며, 진실을 호도하는 ‘스모킹 건’이다. 

미국의 남부에서 시행되던 짐크로우(Jim Crow)법은 흑인과 백인의 주거지역, 학교, 심지어는 공중 화장실 사용까지 구별하도록 규정했다. 흑인들은 버스의 앞자리에 앉는 것이 금지되었고, 음식점도 '유색인용'이라고 쓰여진 뒷 문을 이용해야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불의와 압제는 혁명의 토양을 제공하게 마련이다. 정말 우연한 기회에, 그것도 극히 미미한 사건으로 민권운동이 전개된다. 물론 그것은 오랫동안 인간의 가슴 심연에 내연(內燃)하던 화산의 폭발이었다.

1955년 12월 어느 날 미국의 남부 알라바마 주의 몽고메리 시에서 흑인 부인 로사 팍스가 이 시를 운행하는 버스에 타고 비어있던 앞 좌석에 앉았을 때 버스 기사가 “그 자리는 백인들 전용이나 뒷 좌석으로 옮기라”고 지시했으나, 이 여인은 그런 '부당한' 요구를 거부했다. 

팍스 여사는 “나는 백인과 똑 같은 요금을 냈다. 난 이런 차별 대우를 받는 게 몹시 불쾌하다”며, 자신은 버스에서 뿐 아니라 그 외의 장소에서도 백인들과 똑같이 인간으로서 존중받길 원한다고 말했다. 팍스 여사는 버스 기사의 신고로 달려온 경찰에 체포됐다. 이에 분노한 흑인들은 대대적인 버스 승차거부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당시 이 운동을 주도하던 26살의 인물이 훗날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의 아버지’로 불린 마틴 루터 킹 목사였다. 결과적으로 한 여성의 작은 용기가 전국적인 흑인 민권 운동으로 확산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인간은 신 앞에 평등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이 평등사상을 휴머니즘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투쟁을 전개했다. 그것이 바로 민권운동이었으며, 이 운동은 인간의 존엄과 인권의 보편성을 함양시키는 의식의 혁명으로 발전했다. 이 운동에 대한 역작용도 거셌다. 이로 인해 인권투쟁은 고난과 박해와 질시에 의한 수난의 역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킹 목사는 비폭력 투쟁으로 장벽을 하나씩 허물어 나갔다. 버스 승차거부 운동을 시작으로, 흑인들에게도 투표권을 보장하는 민권법 통과까지 그는 도도한 저항의 물결을 헤치고 투쟁의 선두에서 전진을 주도해 나가다가, 결국 39세의 젊은 나이에 암살을 당했다.

그는 비록 비명에 갔지만 그가 추구하던 인류 보편적 가치와 정의의 함성은 오늘도 우리의 가슴에 살아 공명하고 있다. 특히 1963년 8월28일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앞에서 거행된 '자유의행진' 시위에서 행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라는 주제의 연설은 온 인류의 가슴에 질풍과 노도와 같은 거센 감흥을 일으켰다. 

그는 이 연설에서 노예해방선언 이후 무려 일백년이 지났지만 “흑인들은 아직도 문명의 사각지대에서 몸부림치고 있다”며, 미국의 불의(不義)를 고발했다. 그는 흑인들이 당하고있는 비극적 현실을 이렇게 개탄했다.

“흑인해방 1백년이 지난 오늘도 흑인들은 인종격리의 쇠고랑과 인종차별의 저주에 묶여있습니다. 흑인해방 1백년이 지난 오늘 흑인들은 물질적 번영의 대해(大海)에 떠있는 빈곤의 외딴 섬에 갇혀있습니다. 흑인해방 1백년이 지난 오늘 흑인들은 아직도 미국 사회의 오지(奧地)에서 버둥대며, 자기가 태어난 땅에서 유배자의 신세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위대성은 바로 이 한 마디에 결정(結晶)되어 있다.

“부당하게 겪은 우리의 모든 고난이 우리를 구속(救贖)해 줄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우리의 투쟁을) 계속합시다.

흑인들은 오늘도 미시시피에서, 알라바마에서,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조지아에서, 루이지애나에서, 그리고 화려하고 웅장한 현대도시의 변경에 버려진 저주의 땅 할렘에서 비참한 생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흑인들은 절망의 골짜기에서 방황하지 말고 이러한 비정과 불의는 타개할 수 있고 또 끝내 개선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투쟁을 계속합시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도 꿈이 있습니다”며 이렇게 외쳤다.

“친구들이여, 지금이 순간의 고통과 고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 꿈은 바로 아메리칸드림에 기초한 꿈입니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날 이 나라가 일어나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진리가, 그리고 그에 대한 전 국민적 확신이 실천되는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는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날 붉은 언덕이 광활하게 펼쳐진 조지아 주에서 지난 날의 노예와 주인의 후손들이 한 식탁에서 사랑의 빵을 나누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 날 불의와 억압의 열기가 가득한 사막의 땅 미시시피 주도 자유와 정의가 넘치는 오아시스로 바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넷 어린 자식들이 그들의 피부색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우리 재미 한인들은 킹 목사에게, 그리고 그의 아름다운 꿈을 같이나누며 그 꿈을 힘써 실천하기로 맹세한 모든 미국인들에게 크게 감사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오늘과 같이 인권을 향유하며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들의 맹세와 실천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킹 목사의 꿈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상(理想)이었으며, 그의 정의감이 얼마나 위대했으며, 이를 실현하려는 그의 결의가 얼마나 단호했는 가는 1960년대와 오늘 흑인들의 삶의현장에서 찾을 수 있는 변화가 말해준다. 만일 킹목사의 헌신적 투쟁이 아니었다면, 흑인들은 아직도 노예처럼 살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자유와 인권의 영역은 자주적 노력이 없는 한 절대로 보장받 지 못 한다. 인권의 사각지대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모두 정치권력으로부터 터러리스트로 낙인찍혀 인간으로서 당할 수 없는 갖은 고난을 다 겪었다.

우리 조국에 킹 목사처럼 진정 십자가를 진 기독교 지도자가 있었다면 우리 7천만 민족에게 강요되고 있는 분단의 사슬은 벌써 끊을 수 있 지 않았을까 하는 가정을 해 본다. 재미한인들도 대부분 미국시민으로서 미국이 다민족, 다문화 국가로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미국의 법적 질서의 변경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충분한 민권을 보장받거나 향유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동포들도 서로 단합하여시 정(是正)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같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재미 한인사회는 흑인단체 등 타민족과 연대하여 민권신장운동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뉴햄프셔의 산정에서, 뉴욕주의 높은 산맥에서, 그리고 펜실바니아 주의 알리게니산맥에까지 울려퍼지고, 콜로라도 주의 눈덮인 로키산맥, 캘리포니아 주의 굽이진 산 봉우리, 조지아 주의 스톤산, 테네시 주의 루크아우트 산에서 미시시피 주의 수많은 언덕을 넘어 자유와 정의의 종이 울려퍼지게 하자. 

그 날 우리는 미국의 모든 벽촌에서, 모든 마을에서, 모든 도시에서, 그리고 모든 주에서 흑인이나 백인, 유대인, 개신교나 카톨릭교도 등 모든 민족의 아들딸들과 함께 손을 잡고 이렇게 합창할 것이다.

“우리는 자유로다, 마침내 우리는 모든 불의에서 자유로다!”  

이선명 / US News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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